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라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찬송가 381장(나 캄캄한 밤 죄의 길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하나님의 그지 없는 자비하심으로 멸망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사명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로마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사도는 먼저 구원받는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대’는 이 세상의 시대 정신을 말합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 세상의 영적, 문화적, 도덕적 분위기를 가리킵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세상의 쾌락과 인기와 재물과 세상의 권세를 맹목적으로 추구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추구합니다.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진리의 상대성을 열렬하게 옹호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절대 진리성을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혐오하며 비난합니다. 보이는 이 세상으로 전부라고 여기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도 부인하고 죽은 뒤의 세상의 존재를 믿지 못합니다. 설령 있다고 믿는다 해도 그러한 내세관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지 않고 수많은 신들이나 조상들의 영들의 존재를 다 인정하면서 주관적인 관점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내세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의 원하는 바를 따라서 지상적이고 육신적인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을 믿고 그가 때가 되면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영광 중에 데리고 세상에 나타나시고 심판 보좌에 앉으셔서 만민을 심판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기록된 진리의 책임을 믿습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바 주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지침이 담겨 있으며, 모든 사람의 운명과 나라와 민족과 가문의 축복과 저주와 생명과 사망의 원리가 담겨 있는 책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이 함께하시고 그들의 내면에 새 사람의 본성이 심겨져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의 본성이 신자 속에 있고, 아직도 완전히 청산되지 아니한 옛 사람의 타락의 본성도 남아 있어 갈등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 거듭난 주의 백성들은 이 세상이 당연스럽게 추구하는 불신앙적이고 거역적이고 부도덕한 세상 풍조를 거부하라고 명합니다. 믿지 않을 때에는 그 세상의 정신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내 자아의 행복과 만족만을 추구하며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죄의 길도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며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그들의 삶의 기준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천국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 합당치 아니한 이 세상 풍조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사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 뿐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원문상 인간에게 주신 생각과 판단의 기능을 담당하는 ‘이성’을 가리킵니다. 지성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의 생각과 판단도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거듭난 감정, 의지뿐 아니라 판단 기준이 되는 이성도 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을 골로새서 3:10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생각하고 판단하고 추론하고 분석하고 결정하는 인간의 내면 세계의 이성조차 하나님의 백성의 이성이 심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리분별, 옳고 그름, 유리와 불리, 행복과 불행의 기준 등을 판단할 때 옛날의 방식이 아니게 됩니다. 이전에는 세상에서의 내 명예, 내 행복, 내 만족, 내 성공에만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명예,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만족, 하나님 나라의 성공, 다른 사람의 행복, 다른 이들의 기쁨, 하나님 나라인 교회의 평안과 신앙의 성숙 등에 더 우선 순위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원문으로 보면 “마음이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이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본인 자신의 결심과 노력만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의 이끌려서 그렇게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한편에서는 이 세상 풍조가 길들여서 자기에게 순증하게 하려고 덤비고, 또 한편에서는 거듭난 새 사람의 지성을 밝혀주고 바른 판단을 갖게 하려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해주시고 마음을 감동하여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주시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변화는 이 세상과 말씀과 성령의 감화 감동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어디에 계속 내어드릴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자꾸만 세상 미디어와 세상 논리와 세상 불신 풍조에 우리 자신을 내어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기도 속에서 성령의 감동 감화로 우리 자신이 자꾸만 마음이 변화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에 ‘본받지 말라’는 말이나 ‘변화를 받다’는 말이 둘 다 헬라어 현재 시상으로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항상 세상 교훈과 풍조는 계속하여 거부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성령의 깨우쳐주심을 항상 받아들이기를 계속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서 삶의 현장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분별하다’는 이 단어는 헬라어 원어의 뜻을 더 살리면, ‘입증하라, 실제적으로 시험하여 보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대 교훈과 풍조를 계속적으로 저항하고 그 대신 말씀 진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를 계속 내어드림으로 우리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성취해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델은 물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주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하시고 그 뜻에 늘 순종하는 지상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4:34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피땀을 흘리면서 간구하시기를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42)
고 말씀하신 후에 기꺼이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자원하여 내려가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고는 자기의 간절한 육신적인 소원을 거절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2:17 말씀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세대에 순응된 생각, 신념, 행복, 성공은 바람처럼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들은 영원히 남습니다. 한평생 이 세상의 풍조와 교훈의 끈질기고 달콤하고 교묘한 유혹과 압력을 저항하여 승리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늘 받아들여서 우리 삶을 통하여서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의 작정하심만이 온전히 이루어져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