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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세계대전과 망명 등 수난·시련의 삶을 예술로 승화
박해받는 유대인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연관시켜 표현
하얀 십자가, 1938, 유화, 155×140㎝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
러시아 출신 유대인인 샤갈
‘색채의 마술사’로 알려진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은 워낙 유명한 작가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오늘은 샤갈이 그린 보기 드문 전쟁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샤갈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이란 독특한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인 러시아의 민속 주제와
유대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영감을 받았던 성서를 예술적 원천으로 삼은 작품을 많이 남겼죠. 한 세기 가까이 산 샤갈이 가장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던 시기는 20세기 전반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유럽을 휩쓸던 1·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당연히 샤갈에게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주제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크리스탈나흐트 사건’ 주제
아시는
것처럼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샤갈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핍박당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죠.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하얀 십자가’입니다. 이 작품은 ‘수정(水晶)의 밤’이라고 불린 크리스탈나흐트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죠.
1938년 11월 9일 나치 대원들은 독일 전역에 퍼져있던 수만 곳의 유대인 가게를 약탈하고 250여 곳의 유대교 사원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당시 나치는 파리 주재 외교관이 차별에 항의하는 한 유대인 소년에게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유대교 사원과 상점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합니다. 살해된 유대인이 91명, 체포된 이도 3만여 명에 달했죠. 이때 깨진 상점 진열대의 유리 파편들이 반짝이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해서 ‘수정의 밤’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전쟁, 1943, 유화, 106×76㎝ 세레 현대미술관 소장 |
고통받는 예수와 핍박받는 유대인
유대인에 대한 차별로 고통받았던 샤갈은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림으로 남깁니다. 샤갈은 ‘하얀 십자가’에서 하얀 십자가와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중앙에 배치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유대교와 기독교는 뿌리는 같지만 많은 차이가 있죠. 하지만 샤갈은 이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짊어진 채 고통받는 예수를 당시 핍박받는, 유대인을 포함한 모두로 생각했죠. 하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드러납니다. 그림 속 예수는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어깨에 걸치는 탈리스를 허리에 두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예수의 머리 위에는 ‘INRI’라는 로마
문자와 아람어(예수가 쓰던 언어) 문구도 보이죠.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의 두 팔 아래에는 수정의 밤을 알려주는
사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불이 난 상점과 유대교 사원, 핍박받는 사람들과 피난 가는 배 등으로요. 예수의 위에는 세 명의 랍비와 한 명의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사건을 차마 지켜보기 힘든지 두 손으로 눈을 조금 가리고 곁눈질하고 있습니다.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절망감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크리스탈나흐트란 사건과 이 사건이 가져다 준 충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중앙의 십자가 진 예수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누군가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죠. 샤갈이 고통받는 예수를 그린 이유는
유대교나 기독교를 작품에 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찾아온 이날의 비극을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활동하던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1·2차 대전은 20세기 전반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전쟁은 정치·사회·경제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술도 마찬가지로 전쟁을 기점으로 변화했습니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예술의 중심지가 이동했죠. 유럽이 아닌
미국으로요. 전쟁이 한창이던 유럽, 특히 파리에 머물고 있던 많은 예술가가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동했습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샤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갔죠.
이제 1943년 미국에 머물며 그린 ‘전쟁’을 살펴볼까
합니다. 제목부터 전쟁을 주제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전쟁’은 샤갈이 자신의 고향인 러시아 비테프스크가 나치의 공격을 받았고 이곳에 살던
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그려집니다. 하얀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 유대인들의 고통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려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
샤갈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눈부신 색채를 활용해 꿈꾸는 듯한 그림을 그렸던 그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죠. 샤갈은 전쟁으로 인해 여러 번 거처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특히 유대인이란 딱지 때문에 같은 시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든 삶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샤갈은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죠. 그만이 그릴 수 있는 독특한 화풍으로 말이죠. 우리가 지금 샤갈의 작품을 보며 탄성을 지를 수 있는
것은 끝까지 그가 용기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그린 화가들을 연재하며 저는 전쟁의 풍랑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많은
화가의 삶을 다시 한 번 보게 됐습니다. 절대 그들이 지금보다 나은 환경을 살았다고 할 순 없더군요. 혼란스러운 시대, 척박한 환경에도 그들은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김윤애 문화역서울284
주임연구원>
첫댓글 독특한 화풍으로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다
마르크 샤갈 ‘하얀 십자가’·‘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