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나는 참견하기로 했다 ●지은이_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0. 12. 24 ●전체페이지_120쪽 ●ISBN 979-11-86111-91-8 03810/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0,000원
귀촌, 귀농인들 섬진강 따라 시를 꽃피우다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의 두 번째 시 모음집 『나는 참견하기로 했다』가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섬진강가에 살고 있는 귀농 · 귀촌한 사람들과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시를 묶었다.
배추가 궁금한 배추벌레//참깻잎이 궁금한 왕벌레//땅속이 궁금한 지렁이//위장술의 달인 콩벌레//내 텃밭을 참견하는 벌레들//이겨보겠다고//큰소리 뻥뻥 해봐야 소용없네.//그래서 나도//벌레들을 참견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견하기 시작했다」 전문
이 시는 이 시 모음집의 표제작으로 공후남 씨가 귀촌해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천일홍, 백일홍/꽃들은 거리두기 하지 않아도 되니 좋겠다./옆집 봉숭아/우리 집 채송화도/눈치 볼 일 없어서 다행이”라며 힘들게 견디고 있는 코로나19의 세상을 이야기하며 얼른 “예전같이 마주 앉아 침방울 튀겨가며/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거리두기」)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시집의 대부분 시편은 농촌에서의 삶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 땀과 흙이 묻은 손 글씨처럼 그려지고 있다. 김옥희 씨는 “시골아이/우리 채은이/늘 심심하단다./동네에는/아이가 없으니/혼자 논다.”고 한다. “논에 벼 이삭들이/짝 짝 짝 박수를 쳐줬다!”(「혼자 노는 아이」)고 토로하는 아이의 말은 젊은이와 아이들을 잘 볼 수 없는 오늘날의 농촌 현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김용택 씨는 “이장네 생강 싹이 볏짚을 뚫고 꼬불꼬불 돋아나네요./시골에 살다 보면 무엇이든지 다 연결이 되”는 생활과 “수국에 물을 주고/해바라기에게 물을 주고/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담쟁이넝쿨을 이쪽으로/말려주”면서 “앞산 산속에서 우는 수많은 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그쪽」)이며 귀촌 · 귀향인과 함께하고 있다.
김인상 씨는 “당산나무 맑은 바람으로/소리를 걸러내고//온갖 한을 풀어 씻고/득음으로 파고”(「구담마을 강물 소리」) 드는 귀촌한 삶의 터전을 노래하고, 김희순 씨는 “끝날 줄 몰랐던 장마와 더위/세상을 뒤덮은 물난리도 지나가고/고운 단풍 지는 가을이다./갈 때가 되면 가고/올 때가 되면 오는 계절”(「순리」) 과 닮은 인생을 관조한다. 박양식 씨는 “희뿌연 안개가, 강굽이를 돌아/여름의 짙은 긴 장마를 몰아오고/그 강가/낮은 풀꽃들과/열매의 성장을 도모하지 못한 빛들의 실어증이/무성한” 귀촌 농사를 풀어놓고 있다.(「상흔, 그 장마의 기록」)
박희숙 씨는 “이불을 걷으니/긴 지네가 이불 속에서/뒹굴어 떨어지더니 도망치고 있었다./괴성을 질렀다./연고를 바르고 앉아 있으니/통증이 다리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드디어 지네에게 물렸다」)며 지네, 뱀 등 온갖 해충들에게 언제든지 물릴 수 있는 귀농 생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신일섭 씨는 “나는 살고 싶어요./함께 살고 싶어요.”(「또 하나의 이별」) 세상에 대한 고마움을 토로하고 유갑규 씨는 귀농하여 텃밭을 일구면서 “나는 너에 기대어/그렇게 살아왔다.//전염병이 난무하는/거친 세상에 너는 나에게/기대고 살아갈/힘이 되어 주었다.”(「우리 집 텃밭」)고 한다.
이은수 씨는 “허리가 굽어/맨날 땅만 쳐다보는 시암댁 할머니가/논두렁 옆에 심은/메주콩 풀들을 메다가/오늘은/아예/땅속으로 들어가게 생겼다.”(「할머니가 이길까 풀이 이길까」)며 뽑아도 뽑아도 올라오는 풀과 할머니의 농사가 얼마나 힘든 노역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정래 씨는 “장마가 끝나고 넝쿨마다/호박이 주렁주렁” 열리자 “한 개를 움켜쥐며 아들 생각/또 한 개를 움켜쥐며 친구 생각”을 하는 농사짓고 나누고자 하는 시골살이의 넉넉한 품새를 보여준다.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의 두 번째 시 모음집 『나는 참견하기로 했다』는 풀과 꽃과 새와 벌레와 안개와 바람과 강물과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함께 시를 피워 올리고 있다.
■ 차례
공후남
거리두기·11
출입을 금합니다·12
아침 강 안개·13
나는 참견하기 시작했다·14
봄을 두드리는 소리·15
박쥐·16
나는 바쁘니까·17
김옥희
우리가 먹는 것·21
상사화의 속마음·22
오늘 또 하루가 지났다·23
짝사랑·24
봄에·25
꽃을 던져 버렸다·26
아쉬움·27
혼자 노는 아이·28
김용택
감나무가 그냥 말하지 그랬냐고·33
9월·34
그쪽·36
아내가 고개를 갸웃한 날·38
산뜻한 날·40
놀란 날·41
김인상
구담마을 강물 소리·45
세월 탓이지요·46
망초꽃·47
망초꽃이 흔들리면·48
요양원·50
누구신가·52
학·53
김희순
순리·57
울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58
별이 된 고모·59
강우·60
행복합니다·61
삼계탕을 앞에 놓고·62
달밤의 체조·63
피서하는 법·64
박양식
하얀 손짓·67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68
그들은 정말 피안의 세계로 갔을까·69
너에게·70
푸른 이별을 위한 연가·72
상흔, 그 장마의 기록·74
박희숙
가을엔·79
낙엽은 뒹굴고·80
한숨 쉬지 말아요·81
드디어 지네에게 물렸다·82
신일섭
또 하나의 이별·87
유갑규
기대·91
들깨 농사·92
우리 집 텃밭·94
작은목욕탕·96
낮에 나온 달을 보며·98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나머지는 내가 먹고·100
불순종·102
이은수
수침동 새너디·105
너구리가 수박을 껴안고 그것도 달밤에·106
빗방울은 왜 동그라미를 만드는가·108
나이가 들어도 우린 모두가 외롭다·109
할머니가 이길까 풀이 이길까·110
감나무와 빈집·111
이정래
할머니의 유모차·115
칠선암·116
고맙다·117
쑥부쟁이꽃·118
애호박·119
■ 시집 속의 시 한 편
15년 동안
수박 농사를 지었다는
야미, 할매가
어느 여름날 달밤에
너구리가 수박을 껴안고
뒹구는 걸 봤단다.
다음 날
밭에 가보니
제일 잘 익은 수박만 깨먹고
너구리는 없더란다.
수박을 먹고
배가 통통해진 너구리가
어딘가에서 낮잠을 자고
야미 할매는
야 이놈 너구리야
야 이놈 너구리야
고함을 지르며
깨진 수박들을 밭두렁으로 던진다.
―이은수 「너구리가 수박을 껴안고 그것도 달밤에」 전문
■ 표4(약평)
하루종일/종종종 다니다/해 저물어/집으로 돌아간다.//아침의 희망은/다시/주워들고/집으로 돌아간다.//또 아침이 되면/마음은/부산해지겠지/그렇게 하루를 버리고/집으로 돌아간다.
_김옥희 「오늘 또 하루가 지났다」
밤이 있고/아침이 있습니다./월요일 학교 갈 차비를 빌리러 가는 어머니의 길에는/고단한 길들이 무릎을 다 펴지 못했습니다./밤이 있었는데, 아침까지 온 내 마음을 어머니는 헤아렸을 것입니다./밤이 있고/아침이 있고, 그 사이에 강이 있었다고 말하려다가/돈을 쥔 손으로, 나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그냥 말하지 그랬냐고,/저기 저 감나무가 저렇게/지금도 안갯속에/서 있는 아침입니다.
_김용택 「감나무가 그냥 말하지 그랬냐고」
녹슨 호미 한 자루/텅 빈 밭고랑에 묻혀 있다./끝내 허기진 내 할머니가/푸석한 흰 머리로/기어이, 밀어 올린/하얀 그리움
_김인상 「망초꽃」
끝날 줄 몰랐던 장마와 더위/세상을 뒤덮은 물난리도 지나가고/고운 단풍 지는 가을이다./갈 때가 되면 가고/올 때가 되면 오는 계절처럼/내 인생도 계절과 같구나.
_김희순 「순리」
■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공후남 김옥희 김용택 김인상 김희순
박양식 박희숙 신일섭 유갑규 이은수 이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