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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심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macaca
1. 착한 도도
오늘은 도도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에요. 바로 일학년 입학식 날이지요.
도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엄마가 사다준 새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무릎에 곰돌이가 있는 밤색 바지를 입고, 강아지처럼 털이 보글보글한 파란 스웨터였어요.
“아유, 우리 예쁜 도도.”
엄마가 도도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었어요. 도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도도는 엄마가 칭찬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나요.
“도도야, 밥 먹자.”
엄마가 도도에게 말했어요.
식탁 위에는 밥과 된장국, 김치와 멸치볶음, 김구이와 달걀말이가 놓여 있어요.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도도가 거의 날마다 먹는 반찬들이었어요.
“우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도도는 기쁜 얼굴로 환하게 미소를 띠며 엄마에게 인사했어요. 그래야 엄마가 기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호호, 우리 도도는 착하기도 하지.”
엄마도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었어요. 도도는 냠냠, 맛있게 아침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다 먹은 밥그릇과 수저를 개수대에 갖다 넣었어요.
“호호호, 우리 도도는 정말 착하다.”
엄마는 도도의 뺨에 뽀뽀를 해주었어요. 도도의 마음은 봄 햇살처럼 따스해졌어요.
도도는 엄마 손을 잡고 옹달샘초등학교로 갔어요.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모두 도도처럼 일학년 신입생들이었어요. 도도는 왠지 어깨가 움츠러들었어요.
“우리 도도는 잘 할 거야. 착하고 예쁘니까 친구들이 좋아할 거야.”
엄마가 도도의 손을 꼭 잡고 속삭이듯 말했어요. 도도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 있게 쭉 폈어요.
도도는 일학년 나누리반이 되었어요. 나누리반 선생님은 키가 큰 남자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은 하늘색 셔츠에 짙은 바다색 넥타이를 매셨어요. 웃을 때마다 하얀 치아가 훤하게 드러나는 멋진 선생님이었어요.
“나누리반 어린이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재미있게 공부해요.”
목소리도 시원시원했어요.
도도는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키대로 줄을 세우고는 여자와 남자를 하나하나 짝을 지워 자리를 정해주셨어요. 도도는 예쁜 여자아이랑 짝이 되었어요. 가슴에 단 명찰에는 “정수수”라고 적혀 있었어요.
“수수야, 나는 도도라고 해. 우리 친하게 지내자.”
도도가 수수에게 먼저 말을 걸었어요. 수수도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 그런데 남자 아이가 덩그러니 혼자 남았어요. 불행하게도 나누리반은 여자아이가 열두 명, 남자아이가 열세 명이지 뭐예요. 혼자 남은 남자아이가 울상을 지었어요. 그 아이의 눈은 황소만큼 컸는데 하나 가득 눈물을 담고 있었어요. 툭 건드리기만 해도 굵은 눈물방울이 주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지요.
“어쩌지?”
선생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을 휘둘러보았어요. 그때 도도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선생님, 제가 혼자 앉을게요.”
선생님은 놀라서 도도를 바라보았어요.
“도도는 혼자 앉는 게 좋으니?”
도도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도도 역시 예쁜 짝꿍 수수와 같이 앉고 싶었어요. 그러나 선생님에게 착하다는 칭찬을 더 듣고 싶었어요.
“야, 너 그러면 어떡해?”
수수는 당황한 얼굴로 속삭였어요.
“왜?”
도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흥! 맘대로 해.”
수수가 홱 토라졌어요.
선생님은 가만히 도도를 바라보았어요. 도도는 키가 그리 크지 않아서 맨 뒤에 앉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겨서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선생님, 저 혼자 앉아도 좋아요. 걱정 마세요.”
도도가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말했어요.
“어, 그래. 도도야. 고맙다. 착하구나.”
선생님이 도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칭찬을 받은 도도는 말할 수 없이 기뻤어요. 키가 큰 아이는 도도의 자리로 와서 수수의 옆에 앉았어요. 도도는 맨 뒤 자리로 가서 혼자 앉았어요.
잠시 뒤에 선생님이 말했어요.
“우리 반은 반원 형태로 앉도록 하자. 그러면 혼자 앉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키 작은 사람이 뒤에 앉는 일도 없을 거야.”
선생님은 곧 책상을 부채처럼 둥글게 만들었어요. 앞줄에는 열두 명이 앉고, 뒷줄에는 열세 명이 앉도록 했어요. 도도는 오른쪽 맨 가장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왼쪽 옆에는 수수가 있어 기뻤어요. 마치 짝꿍처럼요. 그러나 웬일인지 수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도도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뾰로통하게 앉아 있었어요.
2. 바보 도도
도도는 날마다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웠어요. 선생님이 날마다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도의 책상 밑으로 지우개 하나가 또르르 굴러왔어요.
“도도야, 그거 내 지우개야. 좀 집어 줄래?”
눈이 큰 친구가 말했어요. 도도는 지우개를 주웠어요. 향긋한 바닐라향이 나는 노란 지우개였어요.
“선생님, 여기 지우개가 떨어졌어요.”
도도는 주운 지우개를 친구에게 돌려주지 않고 선생님에게 가져갔어요.
“와아, 도도는 정말 착하구나. 여러분, 잃어버린 물건은 꼭 주인을 찾아줘야 해요.”
선생님이 도도를 한껏 칭찬했어요. 칭찬을 받은 도도는 기분이 좋아 헤벌쭉 웃었어요. 눈이 큰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도도를 바라보았어요.
급식시간이었어요. 반찬은 시금치나물과 김치, 그리고 미역국이 나왔어요. 시금치나물은 시큼털털했고, 김치는 너무 매웠고, 미역국에는 미역 건더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아이, 맛없어. 이런 걸 어떻게 먹어?”
친구들이 투덜거렸어요. 그러나 도도는 달랐어요. 맛있다는 듯이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었어요.
“선생님, 다 먹었어요.”
“와아, 도도는 다 먹었구나. 여러분, 도도를 좀 보세요. 이렇게 깨끗이 먹었네요. 여러분도 도도처럼 다 먹도록 해요.”
도도는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졌어요.
“얘, 너 정말 급식 맛있어?”
수수가 귓속말로 물었어요.
“아니.”
도도가 모기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런데 왜 다 먹었어?”
“착한 아이는 반찬 투정을 하는 거 아니야.”
“흥! 잘났어.”
수수가 홱 고개를 돌리며 코웃음을 쳤어요.
그 일이 있고부터 친구들은 도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도도만 보면 수수처럼 고개를 홱 돌려버리거나 입을 비쭉였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한 친구가 말했어요.
“착한 도도야. 우유팩 좀 따 줄래?”
도도는 착한 도도라는 말에 얼른 친구의 우유팩을 따주었어요. 친구는 우유를 꼴깍꼴깍 마셨어요. 그러다가 도도를 보고 다시 말했어요.
“착한 도도야, 우유가 많아서 그러는데, 네가 대신 먹어 줄래?”
팩 속에는 남은 우유가 찰랑거렸어요.
“그..그걸 어떻게?”
도도는 말을 잇지 못했어요. 솔직히 친구가 먹다 남은 우유를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너는 착한 도도잖아.”
친구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어요.
“아...알았어.”
도도는 눈을 꼭 감고 친구가 남긴 우유를 꼴깍꼴깍 들이켰어요.
친구들은 하기 싫은 일이 생길 때마다 도도를 불렀어요. 친구들이 하기 싫은 일은 솔직히 도도도 하기 싫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꾸 화가 나고 속이 상할 때가 많았어요. 그러나 도도는 참았어요. 착한 도도가 되려면 화를 내면 안 되잖아요. 힘들어도 참고, 속이 상해도 환하게 웃어야 하잖아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어요. 수수가 도도를 불렀어요.
“착한 도도야, 내 가방 좀 들어줄래?”
“응, 그래.”
도도는 수수의 가방을 받아들었어요.
“어이쿠.”
수수의 가방은 엄청나게 무거웠어요. 도도는 두 개나 되는 가방을 들어서 그렇거니 여겼어요.
“무겁지?”
“어, 아...아니. 안 무거워.”
도도는 얼른 도리질을 했어요.
“바보!”
“응?”
도도는 ‘바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잘못 들었나 했어요.
“넌 바보야.”
수수는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말했어요.
“나 바보 아니야. 착한 도도야.”
도도도 또렷하게 말했어요.
“아니야, 넌 바보야. 바보, 바보. 잘난 체하는 바보 바보.”
수수는 도도를 자꾸 ‘바보’라고 놀렸어요. 도도는 화가 났지만, 꾹 참았어요. 왜냐하면 화를 내면 착한 도도가 될 수 없었으니까요.
도도는 무거운 수수의 가방을 들고 갈림길까지 왔어요. 어느덧 도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돋았어요.
“바보 도도야, 이제 가방 돌려줘.”
도도는 수수에게 가방을 돌려줬어요. 무거웠던 팔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어요.
가방을 받은 수수는 가방 속에서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꺼냈어요.
“바보 도도야, 요건 몰랐지?”
수수는 돌덩이를 길바닥에 휙 내던졌어요. 도도는 기가 막혀 입을 딱 벌어졌어요.
“바보 도도야, 잘 가.”
수수는 얄밉게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가방을 메고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갔어요. 도도는 달랑거리는 수수의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가슴 위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답답해졌어요.
“어휴.”
도도는 답답한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콩콩 두드렸어요. 그래도 답답한 가슴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어요. 도도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어요.
3. 달달 할미
“네가 도도로구나.”
집으로 돌아오니 웬 할머니가 엄마대신 도도를 맞았어요. 그제야 도도는 어젯밤에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도도야. 내일부터 너를 돌봐줄 할머니가 오실 거야. 우리 착한 도도는 할머니 말씀 잘 들을 수 있지?”
엄마는 그동안 도도를 키우느라 오랫동안 일을 쉬었어요. 그런데 이제 도도가 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니 다시 직장에 나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네, 엄마. 걱정 마세요.”
도도는 의젓하게 말했어요. 왜냐하면 착한 도도니까요.
“아유, 우리 도도는 정말 착해.”
엄마는 도도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런데 오늘, 엄마대신 할머니를 보니 불쑥 화가 치밀었어요. 아마 조금 전에 수수가 ‘바보 도도’라고 말했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바보 도도’라는 말이 떠오르자, 도도는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서 있었어요.
얼핏 보니 첫눈에도 할머니의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세 개나 있고, 볼은 심술궂게 불룩했어요. 입은 툭 튀어나왔고, 눈은 왕방울만 했어요. 할머니가 말할 때마다 굵은 주름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어요.
‘아유, 엄마는 하필이면 왜 저런 할머니를 구했지?’
도도는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넌 할머니를 보고 인사도 안 하냐?”
할머니가 왕방울만한 눈을 뒤룩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아, 안녕하세요?”
그제야 도도는 마지못해 인사를 했어요.
“오냐, 나는 달달 할미다. 너는 착한 도도랬지?”
도도는 ‘착한 도도’라는 말을 듣자, 가라앉았던 마음이 둥실 떠올랐어요. 착하다는 말은 도도에게 마법과도 같았어요. 찡그린 얼굴을 금방 펴주었기 때문이에요.
“네, 그런데 왜 할머니는 달달할머니예요?”
“달달할미가 달달할미지 왜라니? 그러는 너는 왜 착한 도도냐?”
달달 할머니가 되물었어요.
“착해서요.”
도도는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흐흐, 그러냐? 그런데 전혀 착해 보이지 않는데.”
할머니가 말했어요. 도도는 기분이 나빠졌어요. 자꾸 머릿속에서 ‘바보 도도’라는 말이 오락가락했어요. 도도가 시무룩하게 서 있자, 할머니가 말했어요.
“간식 먹어라.”
도도는 간식이 담긴 접시를 보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접시에는 시커멓고 괴상한 벌레가 가득 담겨 있었거든요.
“흐흐, 딱정벌레 볶음이다. 달달 볶았으니 맛있을 거다.”
징그러운 벌레볶음을 보니 입맛이 싹 달아났어요. 하지만 도도는 억지로 조금씩 먹었어요. 일부러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내면서요. 할머니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거든요.
“흐흐, 착한 도도라더니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딱정벌레볶음을 다 먹고.”
도도가 딱정벌레볶음을 다 먹자, 할머니가 칭찬을 해주었어요. 그런데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괴상했어요. 마치 자전거 타이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같았어요. 그러나 도도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착한 도도는 예의를 지켜야 하니까요.
“달달할머니, 별명이 재미있어요.”
도도는 생긋 웃었어요.
“흐흐, 그건 별명이 아니라 내 이름이다.”
“네?”
이름치고는 퍽 괴상했어요. 도도는 ‘달달’이 무슨 뜻일까 한참 생각했어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저녁이 되자 달달 할머니는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렸어요. 동백기름에 달달 볶은 메뚜기볶음, 고추씨앗 기름에 달달 볶은 봉숭아씨앗볶음, 아주까리기름에 달달 볶은 도토리까지. 그제야 할머니 이름이 왜 ‘달달할미’인지 알 것 같았어요. 무엇이든 달달 볶아야 직성이 풀리는 할머니인가 봐요.
달달 볶은 반찬을 보자 도도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또 가슴도 답답해졌고요. 그러나 도도는 먹기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착한 도도니까요. 도도는 억지로 밥을 떠먹기 시작했어요.
“흐흐, 착하구나. 먹기 싫은 것도 참아가며 먹고.”
달달할머니가 ‘흐흐’ 웃었어요. 도도는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착하다고 칭찬을 듣는 바람에 그만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어요.
“할머니 웃음소리는 재미있어요.”
“흐흐, 그러냐? 맹꽁이 한숨 쉬는 소리 같지는 않고?”
도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어요. 속마음을 달달할머니에게 들킨 것 같아서였지요.
저녁을 먹고 나자, 할머니가 말했어요.
“양치질을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숙제를 해라. 숙제를 다 하면 책상 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책가방을 싸 놓아라.”
할머니는 잔소리를 퍼부으며 도도를 달달 볶았어요.
‘어휴, 정말 달달 할머니네.’
4. 빨간 팬티
아침이었어요.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도도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방문을 열고 나왔어요. 그러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달달 할머니였어요. 할머니는 도도를 보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달달 볶기 시작했어요.
“일어났으면 방 정리를 하고, 얼른 씻어라.”
도도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어요.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지요. 그러나 도도는 꾹 참았어요. 왜냐하면 착한 도도니까요.
도도는 방으로 도로 들어왔어요. 어? 그런데 침대 위에 못 보던 빨간 팬티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웬 빨간 팬티?’
도도에게는 빨간 팬티가 하나도 없었어요. 파란팬티, 하얀 팬티, 검정팬티, 알록달록 줄무늬 팬티는 있었지만요.
“엄마가 새로 사다 놓았나?”
도도는 얼른 빨간 팬티를 집어 들었어요. 그러자 빨간 팬티 위로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조로록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마치 마법처럼 말이죠.
“앗! 이게 뭐야?”
도도는 신기해서 글자들을 읽어보았어요.
혹시 속이 부글부글 끓지 않나요?
그렇다면 빨간 팬티를 입으세요.
속이 뻥 뚫리는 황홀한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주의사항
1) 절대로 벗지 말 것
2) 절대로 빨지 말 것
3)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 것
도도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어요. 어쩐지 그 팬티는 자신에게 꼭 맞는, 안성맞춤의 팬티인 것 같았어요. 요즘 들어 자꾸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이 많아졌거든요.
도도는 입고 있던 팬티를 훌렁 벗고 빨간 팬티를 입었어요. 빨간 팬티는 도도의 것인 양, 신기하게도 딱 맞았어요.
“흐흐, 역시 우리 엄마야. 어쩌면 이렇게 내 맘을 훤히 알까?”
도도는 달달할머니처럼 ‘흐흐’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어요.
“아차차! 남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말라고 했지?”
도도는 빨간 팬티 위에 알록달록 줄무늬 팬티를 겹쳐 입었어요. 그리고 곰돌이가 그려진 밤색 바지를 입고는 지퍼를 꼭 잠갔어요.
도도가 방을 나오자 마침 달달할머니가 주방에서 얼굴을 쑥 내밀었어요.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
도도는 분명히 달달할머니에게 아침인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어요.
“흐흐, 심술쟁이 달달볶음 할망구. 참 개떡 같은 아침이야.”
도도는 놀라서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어요.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어요.
“흐흐, 그러냐? 개뼈다귀 같은 아침은 아니고?”
할머니가 히죽 웃으며 맞장구를 쳤어요.
도도는 할머니가 차려준 징그러운 거미볶음과 맛없는 분꽃씨앗조림을 두 손으로 확 밀쳤어요.
“달달 할망구, 반찬이 이게 뭐야? 참 맛없어 보이는군.”
그러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어요.
“내가 학교 다녀올 동안, 내 방에는 얼씬도 하지 말게나. 만일 내 방에 들어갔다가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달달 할머니는 방안 청소를 한답시고 도도의 물건들을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흐흐, 제법이로구나.”
달달 할머니는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어요.
“그럼 달달할망구, 잘 있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시게.”
도도는 거들먹거리며 말하고는 집을 나섰어요. 신이 나서 달려가려는데 어럽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도도의 팔이 비행기처럼 양옆으로 쫙 펼쳐지더니 붕붕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더니 도도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어요.
“야호!”
도도는 신이 나서 팔을 마구 휘저었어요. 붕붕 붕붕. 도도의 팔에서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났어요. 맞아요. 도도는 거짓말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어요. 자동차는 장난감 같았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도는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어요.
“으하하하. 맛 좀 봐라.”
도도는 로켓처럼 쓔웅 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갔어요. 그러다가 발끝으로 친구들의 머리통을 통통, 소리가 나게 걷어찼어요.
“아얏!”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친구들이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어요.
“야! 때리면 어떡해?”
한 친구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소리를 꽥 질렀어요.
“내가 언제 때렸어? 때린 사람은 너잖아.”
옆 친구가 인상을 팍 썼어요.
“뭐라구? 내가 언제?”
“이게 그냥!”
두 친구는 주먹을 쥐고 서로를 노려보았어요. 도도는 공중에서 싸우는 친구들을 내려다보았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아이고, 웃겨 죽겠다.”
도도는 벌처럼 붕붕 소리를 내며 웃었어요. 그리고 재빠르게 팔을 접고, 현관으로 쏜살같이 들어갔어요.
“우당탕 쿵탕.”
일부러 와장창 소리가 날 정도로 교실 문을 열어 젖혔어요.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이 반갑게 맞았어요.
“착한 도도 왔구나.”
“흥!”
도도는 코웃음을 쳤어요. 착한 도도라는 말을 들으니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착한 도도야, 창문 좀 열어줄래?”
“싫어요. 내가 왜 열어요? 선생님이 하세요.”
도도는 거칠게 내뱉고는 성큼성큼 자리로 갔어요.
“어? 도도야.”
분홍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맨 선생님이 놀라서 도도를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도도는 본 체 만 체 했어요.
도도가 자리에 앉자마자, 날마다 도도에게 우유 심부름을 시키던 친구가 말했어요.
“착한 도도야, 내 우유 좀 가져다줄래?”
“니가 갖다 먹어. 이 멍청아.”
도도가 소리를 질렀어요.
“뭐어, 멍청이라구?”
친구가 눈을 부라렸어요.
“멍청이를 보고 멍청이라고 하지, 그럼 똑똑이라고 하니?”
도도가 으르딱딱거렸어요. 친구는 몹시 억울하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 도도는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처럼 후련했어요.
5. 아유, 지린내야
빨간 팬티를 입은 도도는 신이 났어요. 친구들을 골려주는 재미에다, 놀리는 재미도 쏠쏠했거든요. 친구 발 걸어 넘어뜨리기, 뒤에서 친구 밀치기, 복도에서 주르르 배미끄럼 타기, 친구의 우유팩을 팔꿈치로 탁 쳐서 우유 쏟아지게 하기, 여자 친구 치마 들치기, 머리꽁지 잡아당기기, 모자 날려버리기 등등.
예전에 착한 도도였을 때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일들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어요.
일요일이 되자, 아빠가 도도를 불렀어요.
“도도야, 목욕 가자.”
도도는 속으로 ‘윽!’하고 부르짖었어요. 바로 주의사항 ‘1)번 절대로 벗지 말 것’과 ‘2)번 절대로 빨지 말 것’ ‘3)번 절대 보여주지 말 것’ 때문이었어요. 목욕탕에 가게 되면 우선 속옷을 벗어야 하잖아요. 또 아빠와 같이 목욕을 하게 되면 아빠가 빨간 팬티를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빨간 팬티의 마법은 사라질 테니까요. 그러니 절대로 아빠하고 목욕탕에 가면 안 되는 것이었어요.
“도도야, 얼른 나오래도. 목욕 가야지.”
아빠가 현관 앞에서 재촉했어요. 사실 일곱 살 때부터 도도는 매주 일요일이면 아빠와 장수탕으로 목욕을 가곤 했지요. 도도는 아빠와 같이 뜨거운 탕에 들어갔어요.
“아아, 시원하다.”
아빠는 뜨거운 욕조 속에서 있으면서 ‘시원하다’고 말했어요.
‘뭐가 시원하다는 거지?’
도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요. 기분 좋은 아빠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도도야, 이리 와서 등을 밀자.”
아빠는 도도의 등을 박박 밀어주었어요. 아파서 인상을 쓸라치면 아빠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아, 우리 도도 정말 착하네. 때도 잘 밀고.”
그러면 도도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어요.
그러나 가끔 좋은 일도 생겼어요.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빠가 맛있는 것을 사주셨거든요. 평소에는 잘 먹지 못했던 햄버거와 어묵, 치킨 등이었지요. 햄버거와 어묵이 떠오르자 도도는 입맛을 다셨어요. 빨간 팬티 때문에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어요.
그렇더라도 목욕탕에는 갈 수 없었어요.
“아빠, 오늘은 머리가 아파.”
도도는 일부러 아픈 척을 했어요.
“그래? 어디 보자.”
엄마가 도도의 이마를 짚어보았어요.
“음, 열이 좀 있는 것 같네. 여보. 안 되겠어요. 오늘은 당신 혼자 가세요.”
엄마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넘겼어요.
“우리 도도가 학교생활이 힘든가 봐. 열이 나는 걸 보니.”
엄마는 도도를 꼭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도도의 등을 살살 쓸어주었어요.
“우리 착한 도도. 달달할머니하고 잘 지내지?”
엄마가 물었어요. 도도는 불쑥 화가 치밀어 소리를 꽥 질렀어요.
“심술쟁이 달달 볶음 할망구, 싫어, 싫어.”
“달달할머니는 우리 도도가 참 착하다고 하던데 도도는 싫어?”
엄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우이 씨. 싫어, 싫다구.”
도도는 성난 오리처럼 꽥꽥 소리를 질렀어요.
“어머, 그래. 알았다. 갑자기 엄마가 없으니 힘들지? 우리 착한 도도.”
“착한 도도. 싫어, 싫다구.”
도도는 엄마를 확 밀쳤어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엄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혀를 끌끌 찼어요.
학교에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여러분, 쉬는 시간이에요. 얼른 화장실에 다녀오세요.”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친구들은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갔어요. 그러나 도도는 오줌이 마려워도 참아야 했어요.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나란히 한 줄로 놓여 있어요. 빨간 팬티를 입기 전에는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었어요. 서로 오줌멀리 싸기 시합도 하면서요. 그러나 지금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어요. 아무리 줄무늬 팬티 속에 빨간 팬티를 꼭꼭 숨겨 놓았다 하더라도 고추를 꺼내다가 들킬 건 뻔했어요. 도도는 오줌을 꾹 참고 친구들이 모두 화장실에 다녀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마침내 화장실에 갔던 친구들이 우르르 교실로 들어왔어요. 도도는 고추를 움켜잡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향했어요. 얼른 줄무늬팬티를 내리고 빨간 팬티 속에서 고추를 꺼냈어요.
“쏴아아.”
참았던 오줌줄기가 화장실 벽으로 시원하게 뻗쳤어요.
그때 누군가 불쑥 화장실로 들어왔어요. 곁눈으로 흘긋 보던 도도는 흠칫 놀랐어요. 바로 눈이 크고 겁 많은 친구였거든요.
“야! 막 들어오면 어떡해?”
도도는 황급히 빨간 팬티를 감추며 소리를 꽥 질렀어요. 그 바람에 오줌방울들이 빨간 팬티 위로 뚝뚝 떨어졌어요. 빨간 팬티가 축축했어요.
도도는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절대로 빨간 팬티는 벗어서도, 남에게 보여주어서도 안 되었으니까요. 도도는 똥 싼 사람처럼 어기적거리며 교실로 들어왔어요.
옆 자리에 앉은 수수가 얼굴을 찡그렸어요.
“아유, 지린내야.”
“지린내?”
도도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눈이 크고 겁 많은 친구도 구시렁거렸어요.
“진짜로 지린내 난다고.”
“쳇, 남이야 지린내가 나건 말건 뭔 상관이야?”
도도는 친구를 향해 하얗게 눈을 흘겼어요.
6. 혼자가 좋아
“아유, 가려워 죽겠어.”
갑자기 아랫도리가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다리를 배배 꼬며 참았어요.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 같았어요.
“어휴, 어쩌지?”
도도는 아무도 몰래 살금살금 화장실로 갔어요. 그리고 빨간 팬티를 쑥 내렸어요, 구린내와 지린내가 동시에 확 풍겼어요.
“으윽, 냄새야.”
도도는 얼른 코를 막았어요. 그리고 팬티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사타구니에는 온통 발긋발긋 종기가 돋았어요. 지린내에 찌든 팬티를 너무 오랫동안 입어서 피부병이 생긴 것 같았어요. 발긋발긋 생긴 종기를 보자 걷잡을 수 없이 가렵기 시작했어요. 도도는 사타구니를 벅벅 긁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벅벅 긁어도 가려움증은 가시지 않았어요. 얼마나 긁었던지 사타구니가 벌겋게 상처가 생겼어요. 아프고 쓰리기까지 했어요.
‘그만 팬티를 벗어버릴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곧 도도는 도리질을 쳤어요. 다시 옛날에 착한 도도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착한 도도는 빨간 팬티 도도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달프게 살아야 했거든요.
‘참아야 해.’
사실 가려움증만 참으면 신나는 일이 너무나 많았어요. 먹고 싫은 딱정벌레볶음이나 봉숭아씨앗 볶음 대신 피자를 먹을 수 있었고, 잔소리쟁이 달달할머니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어요.
“달달 볶음 할망구. 이딴 거 말고 맛있는 피자달란 말이야.”
도도가 인상을 팍 쓰며 소리를 치면 달달할머니는 꼼짝도 못했어요. 그저 불룩한 볼을 더욱 불룩불룩거리며 심술궂게 웃기만 할 뿐이었어요.
‘아휴, 가려워.’
공부 시간이 되자 가려움증은 더욱 심해졌어요. 도도는 누가 볼세라 살금살금 사타구니를 긁었어요.
“야, 너 뭐하는 거야?”
수수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도도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확 달아올랐어요. 그래서 무작정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내가 뭐 어쨌다고오~?”
“어머머, 너...너 있잖아.”
수수는 차마 말을 못하고 얼굴을 붉혔어요.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이 바보야.”
도도는 수수를 확 밀쳐버렸어요. 수수는 우당탕 쿵탕 소리를 내며 교실바닥으로 나동그라졌어요.
“아휴, 저 나쁜 녀석.”
친구들이 도도를 보고 욕을 했어요.
“흥, 멀리멀리 꺼져버려.”
도도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어요.
“이크, 도망가자.”
친구들이 우르르 도망을 갔어요.
“나쁜 도도. 그러면 어떻게 해?”
선생님도 도도를 야단쳤어요.
“흥, 선생님도 보기 싫어요.”
“그래? 나도 나쁜 도도가 싫어.”
선생님도 횅하니 교실을 나가버렸어요.
“쳇, 좋아. 아무도 없으니까 정말 좋구나.”
도도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을 휘둘러보았어요. 텅 빈 책상과 의자들만 눈에 띄었어요.
“아아, 편해서 좋다.”
도도는 넓은 교실에 벌러덩 눕기도 하고, 책상 위를 껑충껑충 뛰어 다니기도 하고, 의자를 하나로 붙였다 떼었다하며 의자놀이도 했어요.
“쳇, 아무도 없으면 심심할 줄 알고? 혼자 노니 재미만 있네.”
도도는 콧노래를 부르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어요.
7. 맹꽁이 달달할미
도도는 일주일 내내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놀았어요. 그러다보니 점점 심심해지기 시작했어요. 교실바닥에 벌러덩 눕는 것도 재미없고, 책상 위를 맘껏 뛰어다니는 것도 재미가 없었어요.
“뭐 신나는 일이 없을까?”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하하하, 바로 그거야.”
겉옷을 몽땅 벗어버리고 빨간 팬티만 입고 노는 것!
친구들이 있을 때는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잖아요.
도도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겉옷을 훌훌 벗어던졌어요.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트이는 것 같았어요.
“음하하하.”
도도는 다리를 쩍 벌리고,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불량배처럼 웃었어요.
“흐흐, 나쁜 도도야. 오랫동안 기다렸다. 어서 와라.”
뜻밖에도 달달할머니가 불쑥 도도를 맞았어요. 도도는 화들짝 놀랐어요. 텅 빈 교실 한가운데에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쇠 솥이 놓여 있었어요.
“달달할멈, 어찌된 일이야?”
도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물었어요. 왠지 겁이 났지만 든든한 빨간 팬티가 있으니 용기가 났어요.
“흐흐, 너를 볶으려고 기다렸지. 이 무쇠 솥은 나쁜 아이만 넣으면 지글지글 끓는단다.”
달달할미가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어요.
“뭐..뭐라고?”
도도는 오금이 저려서 두 다리를 오므렸어요. 달달할미가 달려들어 빨간 팬티를 벗겨 버릴 것 같아서였어요.
“볶자, 볶자. 달달 달달 도도볶음.”
달달할미는 바람 빠지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으악!”
도도는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어딜 가려고?”
달달할미가 도도를 쫓았어요. 도도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갔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어요.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가 그 자리였어요. 알고 보니 도도는 무쇠솥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지 뭐예요? 달달할미가 빨간 팬티를 보았으니 그 효력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도도는 그만 식은땀이 났어요.
“야잇!”
도도는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두 팔을 휘저었어요. 다행히 아직 팬티의 효력은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도도의 몸이 풍선처럼 부웅 떠올랐거든요. 도도는 순식간에 교실 천정까지 올라갔어요.
“하하하, 요건 몰랐지?”
통쾌했어요. 달달할미는 도도를 잡으려고 팔짝팔짝 뛰었어요. 그러나 키가 작은 달달할미가 아무리 용을 써도 천정에 달라붙어 있는 도도에게는 미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도도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는 거예요. 마치 빵빵한 풍선에서 조금씩 바람이 빠지는 것과 같았지요.
‘어어...... . 어떡하지? 큰일 났다.’
마침 천정 한가운데 커다란 날개를 가진 선풍기가 달려 있었어요. 도도는 커다란 선풍기 날개 위에 가까스로 걸터앉았어요. 겨우 한숨을 돌리고는 밑을 내려다보았어요. 커다랗고 시커먼 무쇠솥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제야 뜨거운 솥 안에서 달달 볶이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앗!”
놀랍게도 솥 안에는 도도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어요.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 모두가 빨간 팬티를 입고 있는 것이었어요.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 중에는 수수도 있었어요. 빨간 팬티를 입은 수수는 딱정벌레만큼이나 졸아들어 있었어요.
순간 도도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어요.
“달달할멈! 가만 두지 않겠다.”
도도는 있는 힘을 다해 달달할미에게 달려들었어요.
“오냐, 어서 오너라.”
달달할미가 떨어지는 도도를 재빨리 낚아채어 지글지글 끓는 무쇠솥 안으로 쏙 집어넣었어요.
“으악!”
엉덩이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어요. 언뜻 보니 빨간 팬티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었어요. 도도는 발버둥을 치면서 빨간 팬티를 훌떡 벗어버렸어요. 그러고는 재빨리 무쇠솥 안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달달할미를 두 손으로 확 밀쳤어요. 그 바람에 달달할미가 뒤로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그 틈을 타서 도도가 얼른 수수를 흔들어 깨웠어요.
“수수야, 빨리 일어나.”
딱정벌레처럼 움츠리고 있던 수수가 눈을 번쩍 떴어요.
“얘들아, 정신 차리고 팬티를 빨리 벗어.”
도도는 때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을 마구마구 흔들었어요. 딱정벌레처럼 움츠리고 있던 아이들이 눈을 번쩍 떴어요.
“어딜? 꼼짝도 하지 마.”
어느 틈에 달달할미가 괴성을 지르며 와락 달려들었어요.
“야잇!”
도도가 달려오는 달달할미를 머리로 들이받았어요. 달달할미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다시 넘어졌어요.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아이들이 빨간 팬티를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어요. 모두 벌거숭이가 되었지만, 창피하지 않았어요. 너도나도 벌거숭이인데 창피할 게 아무 것도 없었지요.
“얘들아, 달달할미를 솥 안으로 집어넣어.”
아이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달달할미를 무쇠솥 안으로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솥뚜껑으로 꾹 눌러 덮었어요. 무쇠솥은 더 뜨겁게 달아오르며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어요.
“으악으악!”
달달할미는 빨갛게 달아오른 무쇠솥 안에서 고래고래 악을 쓰더니 이내 잠잠해졌어요. 한참이나 끓던 무쇠솥은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푸시식 소리를 내며 차갑게 식어버렸어요.
수수가 솥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어요.
“얘들아, 이것 좀 봐.”
세상에, 거기에는 징그러운 맹꽁이 한 마리가 큰 눈을 뒤룩거리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벗어던진 빨간 팬티는 어느덧 새카맣게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야호!”
아이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어요.
8. 그저 그런 도도
“맹꽁이는 어떻게 하지?”
수수가 물었어요. 맹꽁이는 그때까지도 ‘맹, 맹 꽁꽁.’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어요.
“학교 연못에 넣어주자.”
도도가 말했어요. 도도와 수수는 학교 뒤뜰에 있는 연못으로 갔어요. 그리고 불룩 튀어나온 눈을 뒤룩거리는 맹꽁이를 연못 속에 ‘퐁당’ 빠뜨렸어요.
“맹..맹..꽁꽁.”
맹꽁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뒷다리를 쭉쭉 뻗으며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어요.
도도는 수수의 손을 잡고 교실로 돌아왔어요.
“얘들아, 어서 와.”
선생님이 상냥하게 웃으며 도도와 수수를 맞았어요. 어느새 교실 안에는 도망갔던 친구들이 모두 돌아와 있었어요.
도도는 수수의 손을 꼭 잡고 자리에 앉았어요.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도 지었지요.
쉬는 시간이 되었어요.
민수가(아참! 눈이 큰 아이 이름은 민수예요)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졌어요. 옆 반 덩치가 민수의 다리를 일부러 걸어 넘어뜨렸거든요.
“야! 너 왜 못된 짓을 하는 거야?”
도도가 못된 덩치에게 대들었어요.
“흥, 너는 뭐야?”
옆 반 덩치가 도도를 확 밀쳤어요. 도도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덩치 가슴을 퍽 때렸어요.
“어쭈, 이게?”
덩치도 도도의 가슴을 주먹으로 퍽 때렸어요. 도도와 덩치는 그만 싸움이 붙어버렸어요.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는데 선생님에게 들키고 말았어요.
“너희들 왜 싸우는 거야, 엉?”
“얘가 먼저 주먹으로 때렸어요.”
덩치가 씩씩거리며 분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얘가 먼저 민수의 발을 걸었어요.”
도도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어요.
“이 녀석들 보게. 서로 핑계를 대네. 둘 다 싸웠으니 오늘 반성문을 쓰도록 해.”
선생님은 크게 꾸중을 하셨어요.
“미안해, 도도야. 나 때문에 꾸중 들었잖아.”
민수가 도도의 손을 꼭 잡았어요.
“괜찮아. 그까짓 걸 가지고 뭘.”
도도는 겸연쩍게 웃었어요.
급식시간이 되자 경우가(먹다 남은 우유를 대신 먹으라고 한 아이는 경우예요) 투덜거렸어요.
“시금치나물 정말 맛없다.”
“맞아. 너무 맛이 없어.”
도도와 경우는 시금치나물을 남겼어요. 도도와 경우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가 시금치나물을 남겼어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여러분, 무엇이든 골고루 먹어야 착한 어린이지요.”
“선생님, 저는요. 시금치달걀말이 좋아해요.”
도도의 말에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어요.
“맞아요. 저도 그거 좋아해요.”
“허허, 녀석들. 입만 살았네.”
선생님이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도도야, 같이 가자.”
수수가 다가왔어요.
“너 이제 착한 도도 아니다.”
“알아. 나는 원래부터 그저 그런 도도야.”
“그저 그런 도도? 호호, 맘에 든다.”
수수가 깔깔 웃으며 도도의 손을 잡았어요. 도도도 수수의 손을 힘주어 맞잡았어요.
현관문을 열려다가 도도는 잠시 망설였어요. 혹시 달달할미가 다시 돌아왔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거든요.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어요.
“어서 와. 네가 도도로구나.”
아니나 다를까. 웬 할머니가 도도를 맞았어요. 도도의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어요. 그러나 자세히 보니 심술궂은 달달할미가 아니었어요.
“누..누구세요?”
떨리는 소리로 물었어요.
“이 녀석아, 달콤할미 처음 보냐?”
달콤할머니가 도도에게 살짝 눈을 흘겼어요. 도도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아..아참, 그렇지.”
도도는 얼른 시치미를 떼며 머리를 긁적였어요. 자칫하다간 달콤할미 대신 달달할미가 다시 올지도 모르잖아요.
“녀석, 실없는 건 여전하구나.”
달콤할머니는 도도가 좋아하는 과일샐러드를 만들어 주었어요. 과일샐러드는 새콤달콤했어요.
“할머니, 저는 빨간 팬티는 절대 안 입어요. 알았죠?”
“호호, 그럼 파란 팬티를 입으려무나.”
다행스럽게도 달콤할머니의 웃는 눈은 반달눈이었어요.
첫댓글 아이를 볼 때 애답지 않은 아이들이 있지요. 도도가 칭찬만 받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하는데서 아이다움이 없어진 것이군요. 그래서 주변에서 싫어하게 되는군요. 아이는 아이다워야 예뻐보이는 법이지요.
그냥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같은 것으로 장편을 끌고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필력이고
역시 노련한 작가다운 작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