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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경
2. 안경의 유래
3. 한국사 유적
4. 한국사 최초의 안경
5. 안경의 보급
6. 안경을 착용한 왕
7. 안경 관련 기록
8. 안경 예법
1. 안경
시력이 나쁠 때 눈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다
2. 안경의 유래
안경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사용하는
양눈에 사용하는 방식이 아닌
볼록렌즈 형식으로 돋보기 형식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현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안경의 형태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1286년 이탈리아의 유리 세공 업자, 광학 연구자
피사의 살비노 다르마트와 피렌체의 수도사
알레산드로 다 스피나가 발명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2세기 중국에서 연기에 그을린 수정판으로 만들어진,
빛을 차단하는 선글라스일 뿐 현대의 안경은 아니라 한다
3. 유적
앞서 말했듯 양눈에 사용하는 방식이 아닌
볼록렌즈 형식의 돋보기 형태인 유적은
한국사에도 있었다
1915년에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출토된
유물인 수정 화주는
634년(선덕 3년)에 분황사 창건 때
장신구들을 같이 넣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한국사 최초의 안경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안경을 쓴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1614년(광해군 6년) 편찬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통해 안경의 유입 시기가 추정될 뿐이며
한국사 가장 오래된 안경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바로 조선 14대 왕 선조 때
학봉 김성일이 사용한 안경이 최초의 안경으로 여겨진다
사진에 보시듯 이때도 안경다리는 없어서
끈을 달아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5. 안경의 보급
우리나라는 17세기 조선 숙종 때
안경이 청나라 상인을 통해 국내에 유입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직접 만들어진 기록이 있는데
18세기 중반과 후반 무렵에
경주에서 수정을 안경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또 그 이전에 17세기쯤 이미 안경을 만들었다고 추정되며
19세기에 각 계층으로 퍼졌고 기생들도 안경을
사치품으로 차고 다니며 당시 안경알 재료는
경주 남산에서 생성되는 수정인 경주 남석이나
중국의 렌즈를 샀다고 한다
6. 안경을 착용한 왕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안경을 자주 사용하는
왕이 등장하는데 총 5명의 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숙종, 영조, 정조, 고종, 순종이다
조선 19대 왕
숙종은 젊어서 안경을 썼을 땐
이 물건을 노인들은 어째서 쓰는 걸까?
하고 자못 이상하게 여겼는데
늙어서 노인이 안경을 쓰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하였고
조선 21대 왕
영조는 안경이 시력과 맞지 않아 탈착을 반복하였으며,
불경스러움을 이유로 사도세자의 안경 착용을 반대하였다
영조는 안경을 썼다 안 썼다 하였는데 아주 답답했다고
영조는 말하며 다른 기록에는 어제 안경을 잠시 썼다가
다시 버렸다고 하면서 그런 물건은 모두 가증스러운 것이라
한 내용도 있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독서를 좋아하는 호학군주답게
정조는 안경을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심한 근시 때문에 안경을 자주 사용했으나
조정에 안경을 쓰고 나가면 여러 사람이 놀랄까 봐
쓰고 나갈 수 없었다고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었다
즉 공식 석상에서는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 26대 왕 고종 때 안경은 널리
보급되어 있었으니 넘어가며
대신 조선 27대 왕 순종도
고종 앞에서 안경을 벗었다고 한다
7. 안경 관련 기록
조선시대 안경을 처음 접하고
놀라워한 자들 중에 사례를 보자
문신이자 시인 이서우(1633~1709)는
안경에 대한 시를 지었으며
성호 이익(1681~1763)은 [애체경명]이란 시를 지어
안경을 만든 유럽을 찬양했고
강세황(1713~1791)의 산문집 안경眼鏡
이규경(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린
애체변증설 등 여러 기록이 있다
그러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은 유용한 물건을 두고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8. 안경 예법
조선시대에 안경을 어른 앞에서 쓰는 게
현대에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의미로 안경을 착용할 경우.
예의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안경이란 양반, 사대부 등 높은 사람이
이용했기에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2가지 기록을 보자
첫째 조선 24대 왕 헌종의 외숙부이자
이조 판서 관직을 지낸 조병구는
자신의 여동생인 신정왕후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자 헌종은 그를 보고
"아무리 외척의 목이라고 해서 칼날을 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죄책감과 두려움에
신하 조병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둘째 조선 말기 고종 때 기록이자
독립신문을 창간한 것으로 유명한 서재필의 일화이다
미국에서 귀국해 고종을 만난 서재필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은
높은 사람 앞에서 안경을 착용했다며 책망했다
이처럼 신분제 사회 조선에선 안경 예절이 엄격했다
안경 예법은 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 있었으며
안경이 필요하고 편리한 것은 누구나 알아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밖에 나갈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거의 쓰지 못했다
이와 같이 훌륭한 물건도 신분제의 벽에 가로막혀
사용하지 못한 건 슬플 뿐이다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
그 당시 신분제 사회의 관념에선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유용성을 버리고
예의를 지켰다는 게 슬플 뿐이다
아무튼 19세기에 유리값이 싸지고
지금은 누구나 안경을 쓸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높은 사람들만 썼던 안경
현대의 우리가 안경을 쓴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에겐 큰 축복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