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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1997년 4월 5일. 3일 전 생리가 시작한 날 함께 갑자기 쓰러진 아영이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아랫배를 잡고 화장실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는데 그녀의 병실 앞을 기웃거리는 한 남자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지난 달에 미팅으로 만나 사귀다가 사귄지 3일도 안 되어서 다짜고짜 입을
맞추려고 해서 싫다고 거부하니까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그녀가 그의 뺨을 때리고는 그대로
헤어진 남자였다. 그 후로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집 앞에서
불쑥 나타난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그를 발견하
기도 했다.
‘어떻게 왔지? 내가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아씨..’
아영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그 남자가 고개를 돌
려 막 닫히는 문 사이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자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고민하다가 어떤 환자와 함께 내렸다. 어디로 숨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천천히 발을
옮기는데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영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깨물며 비틀거리며 숨을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가 빨리
달려와 그녀의 팔을 잡아 돌렸다.
“왜 도망을 가.. 얘기 좀 하자고..”
“무슨 얘기를 해. 우린 헤어졌잖아.”
“그렇게 끝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더 잘 할게.”
“뭘..? 뭘 잘한다는 거야?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아마도 그녀가 때리면서 거절한 것이 그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린듯했다. 그것이 집착으로 연결된 듯 했다.
“미안해. 앞으로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가 그를 피해 가려고 하는데 그의 표정이 바뀌면서 그녀를 거칠게 벽으로 밀었다.
“그럼.. 키스라도 해야겠어. 친구 녀석들이 놀리잖아. 아무것도 못해보고 차였다고..”
그녀는 눈이 놀람과 두려움으로 커지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 무서우면 비명도 나오
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그러자 그가 억! 소리를 내며 그
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수액줄을 잡는 바람에 그녀의
팔에서 수액바늘이 빠졌다. 그녀는 피가 새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코너를 돌아 아무 병실문을 잡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사람이 “아영아.. 아영
아.. 어디 갔지?”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불투명한 병실문의 창문으로 비치
는 그 사람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뭐하는 거야?” 라고 자신의 귓가에 소곤
거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아영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아영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입을 막았다. 남자는 맑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
영은 혹시 밖에서 그녀를 찾는 사람이 그들의 소리를 들었을까봐 두렵고 떨리는 눈동자로
창문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그녀의 차가운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가 자신의 손을 내리려고 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안심하라는
듯 눈짓을 하고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 차디 찬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그녀는 따뜻한
그의 손의 온기에 마음까지 따뜻해 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사람이 사라지자 그녀는 깊은
한 숨을 내쉬고는 아파오는 아랫배를 잡으며 인상을 썼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턱을 괴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파?”
“으응.... 미안해. 갑자기 들어와서..”
“괜찮아. 심심했는데..”
아영은 어려보이는 까까머리 남자아이와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자아이가 그녀의 손을 잡
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둘이 동시에 문밖을 바라보았
다. 그녀는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창문에 비치는 실루엣이.. 그 사람 같았다.
“누구시죠?”
“죄송합니다. 여기.. 누가 안 들어왔나요? 피가 여기에서 끝나서..”
‘피?’
까까머리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수액바늘이 빠진 곳에서 피가 새어나와 환
자복을 적시고 그녀의 손끝으로 흘러 바닥에 한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까까머리 아이가 그녀
의 귀에 "어디에 숨어 있어." 라고 속삭였다.
그에게서 멀어진 그녀가 숨을 장소 앞에서 신발을 벗어 가슴에 끌어안고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는 말
을 하며 그녀의 피가 떨어진 바닥을 슬리퍼로 밟았다.
“아무도 안 들어왔는데?”
“확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싫은데?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특실이야. 안 가면 사람 부른다.”
하지만 곧 문이 열렸다. 문을 잡고 안을 훝어 본 그 사람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알면 나가지?”
“네..”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녀가 숨어 있는 작은 옷장문이 열렸다. 아영은
놀라 가슴에 안고 있는 슬리퍼를 더욱 꼭 끌어안으며 숨을 들이마셨다. 까까머리 아이가 그녀
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화장실로 숨을 줄 알았더니만.. 어떻게 여기에 숨을 생각을 했어? 사람이 들어갔다는 게 더
신기해.”
“왠지 화장실도 확인 할 것 같아서..”
“내가 그렇게 하게 둘 것 같아? 나와. 잠깐 앉아 있다가 가. 아직 안 갔을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돼?”
“그것보다 지혈부터 해야겠다. 이쪽으로 앉아 봐.”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그는 서랍에서 조금 낡은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긴 병원인데.. 그런 게 왜 필요해?”
“우리 엄마 꺼야. 이걸로 나랑 누나가 다치면 약도 발라주고, 붕대도 감아주고.. 그랬거든.”
“그래?”
그녀는 수액으로 부터 공급받던 진통제가 없어서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다가와 피가 흐르는 그녀의 팔을 소독 솜으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솜으로 꾹
눌러주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도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여분의 환자복 상의를 건네주었다.
“이걸로 갈아입어.”
“괜찮아. 조금 이따가 병실 가서 간호사언니한테 하나 다시 달라고 하면 돼.”
“보고 있기가 좀 그래서 그래. 너무 피가 많이 스며들어서 꼭 교통사로라도 난 것 같단 말이야. 속이 울렁 거려.”
정말 그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 알았어. 잠깐만 화장실 좀 쓸게.”
아영은 화장실로 들어가 환자복 상의를 벗고 그가 준 상의를 입었다. 남자용이라서 그런지 그
녀에겐 너무 컸다. 앞을 며미며 밖으로 나왔다.
“너무 크긴 하다.”
“좀.. 그렇지? 고마워.”
“뭐.. 이쪽으로 와봐. 지혈이 잘 되었나 살펴볼게.”
다시 깨끗한 거즈를 대고 반창고도 다시 붙여 주었다. 모든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잘 하네..?”
“그래?”
“응.. 아프지도 않고, 특히 손이 따뜻해서.. 안심이 돼.. 네가 의사라면 환자들은 좋아할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응..”
“누구랑 비슷하게 말하네?”
“응?”
“아니야.. 아까 그 남자는 누구야?”
“사귀었던 사람. 짧은 시간이었지만.. 키스도 못하고 채였다고 친구들이 자꾸 놀린대. 그래서 한 번이라도 해야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왔나봐.”
“한 번 해주지 그랬어?”
“뭐?”
“닳는 것도 아니잖아.”
“뭐? 그런 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거.. 아니야?”
“그래? 그럼 사랑하는 사람은.. 있어?”
그가 약상자를 정리해서 다시 서랍에 넣으며 물어보자 순간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걸 바라보며 그가 웃었다.
“그 사람이랑 하지 그래?”
“수험생이라서.. 수능 끝나길 기다리고 있어...”
그가 인상을 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 사람이랑 첫 키스 할꺼야?”
“음.. 몰라.”
“그럼, 나랑 할래?”
“뭐?”
“키스.. 나랑 하자고.”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어.”
그녀는 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나.. 꼬맹이 아닌데..”
“응?”
“나도 남자고, 여긴 우리 둘밖에 없고.. 무섭지 않아?”
어지러워지는 정도가 심해지자 눈을 감았다가 떴다를 반복하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
를 지었다. 정신을 잃어 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 커다란 눈을 들어 살며시 미소 지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는 그에게 속삭이듯 말하고 정신을 잃었다.
“너처럼 눈이 맑은 사람은.. 안 무서워..”
****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의 병실 침대 위에 있었다.
“엄마..”
“응.”
“어제 나 어떻게 왔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네 아버지 저녁 차려주고 오니까 여기 누워서 자고 있던데?”
“그랬어?”
“응.”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가 잠깐 산책하고 온다고 말하고는 어젯밤에 갔던 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숨어들었던 병실로 갔다. 문을 두드리고 살며시 열었다. 병실이 비어있었다.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언니.. 여기 환자 어디 갔어요?”
“퇴원하셨습니다.”
“그래요?”
“네.”
간호사언니가 지나가고 다시 병실을 바라보던 아영은 문을 닫고 자기 병실로 돌아왔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다시 갔지? 아닌가? 내가 꿈을 꾼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프롤로그 2.>
2011년 5월 13일 금요일 아침 6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집이 2개 보인다. 2개의 다른 모양의
시계에서 6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심플한 전자시계에서 나오는 전자음의 알람을 끄는 손
은 커다랗고 가늘고 긴 하얀 남자의 손.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라고
뽀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뽀로로 시계를 끄는 손은 조그맣고 조금은 통통해 보이는 여자의
손. 남자는 알람을 끄고 일어나 욕실로 향해 들어가 샤워를 한다. 여자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 7시. 남자는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프라이팬에 계란과 베
이컨을 굽고, 띵~ 소리와 함께 올라온 토스트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여자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약하게 코를 골며 이불 밖으로 나온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손을 내려 긁고 다시 손을 올
리고 잠들었다.
7시 30분. 설거지를 마친 남자는 손을 타올에 닦고, 거울에 손질한 머리를 다
시 살펴보고, 셔츠 소매를 내려 단추를 잠그고 한 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옷걸이
에 걸려 있는 재킷을 빼어 들고 문을 잠그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갑자기 눈을 뜨고 벌떡 일
어난 여자는 부리나케 욕실로 들어갔다. 양치질을 하다가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양치질과 머
리감기가 동시에 끝나고, 수건을 둘둘 말고 밖으로 나와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썬크림을 바르
고 그 위에 B.B 크림을 바르고 옷장을 열고 손에 잡힌 헐렁한 검은 색 반팔 티셔츠위에 붉은
계열의 체크남방을 걸쳐 입고, 헐렁한 검은색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바라
보니 먹을 것이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우유만 남아 있었다. 여자는 우유를 꺼내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시고는 손등을 들어 입가에 묻은 우유방울 닦아내고 가방을 들어 사선으로 어깨에
메고 운동화를 신으며 복잡한 잠금장치들을 풀고 밖으로 나가다가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저만
치 떨어지자 한 쪽발로 깡충깡충 뛰어가 신발을 다시 신으며 밖으로 나왔다.
8시. 고급스러운 검은 승용차에서는 최신 댄스 음악이 쿵쾅쿵쾅 소리를 내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씨에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흩날렸지만 그의 차는 시속 80km을 넘지 않고 있었다.
주위에서 늦게 가는 그의 차에 빵빵거렸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60~80km 사이를 유
지했다. 여자는 귀에 이어폰을 끼우고 음악을 틀자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곡이
흘렀다. 전주부분부터 그녀의 심장을 설레게 만들자 미소를 짓고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8시 20분. 남자의 승용차가 빨간 신호등을 보고 정지선 안쪽으로 살며시 섰다. 잠시 후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남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신호등이 바뀌는 걸 차분하게
기다리며 노래에 맞추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운전대를 두드렸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이며 곧 빨간불로 바뀌려고 하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음악
을 들으며 페달을 밟고 있던 여자의 눈에 건너야 할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깜빡이는 걸 바라보
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페달을 더욱 빠르게 밟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너는데
초록불이 빨간 불로 바뀌었고, 여자는 페달을 더욱 힘차게 밟았다. 남자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지자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드리며 하나, 둘, 셋을 세고는 출발하
려고 액셀 페달에 놓은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 한 대가 그의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놀란 그는 브레이크를 밟고, 운전대에 고개를 대고 숙였다.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막
출발하는 자동차 앞을 빠져나오며 “세이프!” 라고 말하며 횡단보도 건너기를 성공했다고 생각
하며 자전거를 세우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막 지나쳐 온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긴머리가 흩날리며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
보니 자전거를 탄 긴 생머리를 한 여자가 길을 건너 조금 더 간 후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인상을 쓰며 그 여자를 노려보았다.
“저런 미친.. 어후~”
남자는 차 안에서 그녀를 향해 욕을 중얼거렸다. 그 여자는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고는 “괜찮
나?” 라고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남자는 뒤에서 다른 차들이
빵빵거렸지만 한 동안 출발을 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8시 50분.
도서관에 도착한 여자는 오면서 마른 긴 머리를 돌돌 말아 정수리에 고정시키고, 남색 앞치마
를 입고, 도서관에서만 사용하는 안경을 쓰고, 마스크와 하얀 장갑을 챙겨 책이 가득 꽂혀 있
는 책장으로 다가가 정리가 안 된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엘리베이터
에서 내린 남자는 자신이 일하는 이비인후과 병원 자동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
들과 직원들이 그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는 손을 들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흔들어 보이고는 자신의 진료실로 들어와 의자에 털썩 주
저앉으며 넥타이를 풀어 느슨하게 하고는 간호사 한명을 불렀다.
“미안한데, 얼음 물 좀..”
“네.”
잠시 후 나갔던 간호사가 쟁반 위에 얼음물이 담긴 컵을 내밀자 그가 오른손으로 컵을 잡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을 때 진료실 문이 열리고 그의 친구이자 같이 동업해서 일하는 형규
가 들어와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인마, 무슨 일이야!"
그는 고개를 들어 간호사보고 이제 나가보라고 말하고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크게 숨을 들
이마셨다가 길게 내쉬고는 형규를 바라보았다.
“간호사도 있는데.. 인마가 뭐냐.. 인마가..”
“무슨 일이냐고! 땀 좀 봐라..”
“어떤 미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신호등 무시하고 지나가서.. 하마터면 칠 뻔 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아니 그 여자는 왜 신호등을 무시하고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한대?”
“그러게 말이다. 손이 떨려서 금방 운전을 못하겠더라..”
“오전에는 나 혼자 환자 볼 테니까, 너는 저기 방에 가서 쉬어.”
“괜찮아.”
“괜찮기는 임마. 네 손을 봐. 그 손으로 어떻게 환자를 보냐?”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쥐며 다시 내렸다.
“그럼.. 힘들겠지만 부탁 좀 하자.. 오전에만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그래. 그럼 쉬어.”
“응.”
형규가 그의 진료실을 나가고, 잠시 후 그도 일어나 비틀비틀 휴식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왼팔을 들어 눈 위에 올려놓았다. 눈을 감자 아까 자신의 차 앞을 아슬아슬하게 피
한 자전거에 탄 여자가 떠올랐다. 그는 눈을 번쩍 뜨고 한 숨을 깊게 내쉬고는 턱에 힘을 주
어 입을 다물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여자는 같이 일하는 소현이라는 자기보다 나이가 8살 어린 직원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정말요? 언니.. 조심하세요. 큰일 나실 뻔 했네요.”
“그러게.. 하마터면 칠 뻔 했다니까? 그 운전하는 사람도 많이 놀란 것 같던데.. 괜찮겠지?”
“아무 일 없겠죠. 그래도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고, 만약 잘 못되었다면 그 사람보다
언니가 크게 다칠 뻔 했던 일인데.. 설마 언니보다 그 사람이 더 놀랐겠어요?”
그녀는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웃었다.
“그렇겠지?”
“네.. 앞으로 조심하세요.”
“응.”
두 사람은 평상시처럼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
남자는 차분해진 모습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오후 5시에 있는 구연동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부모님
들에 의해 추천되는 동화책들 중에 직원들이 상의를 해서 선정된 책을 그녀가 재미있게 읽어
주는 시간은 부모님과 아이들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저녁 7시.
남자는 괜찮아진 모습으로 오후 진료를 마치고 앞으로 두 시간 더 진료가 남았는데 흰 의사가운을
벗고 재킷을 걸치며 옆 진료실로 향했다. 환자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그가 옷을 벌써 갈아입은 걸 보고 형규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진료 시간은 두 시간 더 있는데?”
“미안.. 어차피 지금부터는 몇 명 없잖아. 늘 그렇듯, 금요일 밤은 일찍 나가고 싶은데?”
“또 클럽이냐? 너는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런 곳은 좀 그만 가야 하지 않겠어?”
형규의 말에 그가 씨익 웃으며 “천만에 말씀!” 라고 대답했다.
“좀 어때?”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친구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졌어. 뭐.. 운전하면서 그런 일 겪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만.. 운전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었어도 워낙 네가 조심스럽게 운전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역시 사고는 나만 조심한다고 괜찮은 게 아니구나 싶다.”
“그러게.. 그 귀신같은 여자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남은 시간도 부탁한다.”
“귀신같은 여자?”
“응. 긴 머리를 풀어 헤쳤더라고.. 꿈에 나올까 무섭다..”
“훗... 그럼, 조심해서 가라.. 참! 나 오늘 우빈 형한테 가기로 했는데, 너도 클럽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거기로 와.”
“너는 무슨 그렇게 미리 초를 치고 있어. 그리고 우빈형 가게는 음악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맨날 철 지난 음악만 틀고.. 금요일 밤의 클럽은 언제든지 분위기 좋~아~”
“그래. 조심해서 가.”
“응.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
그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형규가 놀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인마! 낼 오전 진료는?”
“여자랑 오늘 밤 같이 있을 건데 내일 오전 진료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일찍 일어나면.. 생각해 볼게.” 라고 말하고는 웃으며 병원을 나섰다.
그 시간 여자는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영씨, 오늘 수고했어요.”
“아니에요. 저도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아이들이 아영씨가 읽어주는 동화책에 푹 빠져서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는 줄 모른다고 부모님들의 칭찬이 대단하셨어요.”
“헤.. 부끄럽습니다~”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까하는데.. 같이 안 갈래요?”
아영은 가방을 챙기며 도서관장님에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아.. 맞다. 오늘이 그 날이죠? 그 날은 꼭 챙기네.. 어쩌다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언니, 조심해서 가세요. 자전거는 두고 가시는 거죠?”
“응. 아무래도 오늘은 와인을 한 잔 마실 것 같아서. 월요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 걸어와야 겠다. 너도 조심해서 가.
관장님도 조심해서 가세요.”
관장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소현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전형
적인 5월의 날씨였지만 황사가 있는 것 같아 아영은 마스크를 쓰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
을 들으며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전화가 들어오는 소리에 아영은 마스크를 내리고 핸드폰 화
면을 바라본 후 미소를 짓고는 이어폰으로 받았다.
“여보세요? 효써니~”
<응. 아영~. 나는 지금 출발하는데. 너는 어디야?>
“응, 나도 이제 막 버스타려고 정류장에 있어.”
<그래? 그럼 조금 이따 보자.>
“응. 운전 조심해서 와.”
<그래.>
효선이와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음악을 틀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한편, 이제 막 물리치료실에서 하얀 가운을 벗으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효선을 보조로 일하
고 있는 주영이라는 아이가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어디 가세요?”
“응. 친구들이랑.”
“아.. 대학 친구 두 분이랑 함께 하신다는 그 모임이요?”
“응. 그럼, 잘 잠그고 가. 월요일에 보자.”
“네.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효선이는 성큼성큼 주차장으로 향해 자신의 빨간 승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벌써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은희는 대학 때부터 다니던 <Daily> 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문에서 “딸랑~” 예
쁜 풍경소리가 울렸다. 그 카페는 음료와 차, 와인도 마실 수 있지만,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카페였다. 유난히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녀들은 그녀 뿐 아니라 단골 손님들이 좋아
하는 음악CD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그날 그날 주인아저씨가 틀고 싶은 음악을
선택해서 틀어주는 데 이제까지 실망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아저씨의 음악센스는 그녀들이 좋아
하는 타입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곡들도 틀어주시지만 그녀들이 찾는 날이 되면 아저씨는 주
로 8, 90년대 음악들을 틀어주셨다. 여행스케치, 전람회, 신해철, 015B 같은 노래들 말이다.
좋은 음악과 맛있는 음식, 그녀들이 좋아하는 차, 그리고 때때로 마시는 와인 한 잔만으로도
4, 5시간은 있을 수 있었던 이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더 예쁜 곳으
로 변해있었지만, 수염을 기른 주인아저씨만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녀들을 맞아 주었다.
“오.. 왔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좀 늦는 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또 제일 먼저 왔네요.”
“아영, 효선이는 오고 있겠지?”
“아마도요.”
은희는 미소 지으며 그녀들의 지정석인 아저씨 앞에 앉았다.
“일단, 이것부터 마시고 있어.”
아저씨는 은희가 좋아하는 체리차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하얗고 예쁜 컵에 담긴 빨간색 체
리가 향긋한 향과 함께 그녀의 눈을 유혹하고 있었다. 두 손을 들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
셨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풍경소리가 들렸다. 은희와 우빈이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효선이를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일찍 왔네? 아영이도 아까 출발한다고 연락 왔었어.”
“그래?”
터덜터덜 걸으며 들어오는 효선이 은희 옆자리에 앉으며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새해도 되었는데 수염을 또 안 깎으세요?”
우빈은 자신의 수염을 만지며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없으면 허전하지... 너는 새해에는 좋은 일 생겨야지?”
“글쎄요.. 좋은 일이.. 생길까요?”
우빈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효선이가 좋아하는 유자차를 내왔다.
“감사합니다.”
효선이 한 모금 마시며 “맛있다.” 라고 말하고 은희를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응. 너는?”
“나도 잘 지냈지.”
“은희~ 효써니~”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던 아영이 달려와 은희가 앉아 있는 다른 쪽 옆에 앉으려다가 의자가
뱅그르르 돌아가 미끄러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 나 안 늦었지?”
은희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영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안 늦었어.”
“다행이다.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그래. 다치지는 않았어? 다리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 그 의자에 앉다가 넘어지는 건 너 뿐이야.
그렇다고 너 때문에 낮은 의자로 바꾸기도 그렇잖아.”
“치.. 키가 작으니까 다리도 짧은 거죠. 아저씨는 저의아픈 콤플렉스를..”
“괜찮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은희와 효선을 바라보며 아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친구들 앞에 놓여 있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어? 아저씨 저는요? 저는 얼음 동동 아이스커피주세요!”
“이 녀석아. 아직은 아이스커피 계절이 아닌데.. 그거 말고 이거 마셔.”
라며 우빈이 따뜻한 원두커피를 아영 앞에 놓았다.
“늦은 줄 알고 뛰어 와서 더운데.. 그래도 잘 마실게요.”
“배고프면 저녁부터 먹을래?”
우빈의 말에 셋은 고개를 저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클럽에 도착한 진호는 자리에 앉아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동생 호성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형, 오늘은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무슨 소리. 금요일에 여길 안 오면 섭하지..”
“뭐 드릴까요?”
“셜리템플.”
“네..”
호성이 웃으며 그가 주문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클럽에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돌아보지 않아도 여자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주위에 항상
여자들이 많아서 그는 힘들게 원하는 여자를 갖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들 중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자와 하룻밤 즐기면 그만 이었다. 그 여자들에게
오랜 시간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여자들이 자주 바뀌어 최근에 누나에게 잔소리를 들었
지만 흥미를 잃은 상대를 만나는 것처럼 힘든 것이 없어서 그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바람
에 한 대 맞았다.
“형. 주문하신 셜리템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래. 고맙다.”
그는 자신이 주문한 칵테일을 바라보았다. 그라데이션이 되어 아래는 붉은 색, 위로 갈수록
노란 빛을 띄는 예쁘지만 알콜은 없는 칵테일이었다. 새콤한 석류 맛도 좋았다. 긴 잔을 들어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시는데 벌써 누군가 그 옆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혼자 오셨어요?”
약간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여자를 본 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
카페에 앉아 있던 은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선.. 보게 될 것 같아.”
은희의 말에 아영과 효선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은희는 줄곧 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상대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조건인 사람이라고.. 부모님이 올해는 꼭 시집을 보내고 싶으신가봐.”
“어머님, 아버님이 걱정하시는 게 당연하시지.”
“그럼.. 야.. 우리 나이가 벌써 35살이야. 우리 집도 난리야. 이러다가 집안에 노처녀귀신 하나 나오겠다고.. 그래서.. 선 보려고?”
“응.. 거절한다고 안 보게 하실 분들도 아니고..”
“이번에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잘 해봐.”
효선은 자신이 이 말을 벌써 몇 번째 하는 지 셀 수도 없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은희가 좋은 사람을 만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래.. 혹시 알아? 킹카일지? 혹시 잘 되면 우리도 생각해 주고..”
아영이 웃으며 말했다. 은희가 아영과 효선을 번갈아 바라보며
“소개시켜 주면, 너희들이 할 생각이나 있어?”
“글세.. 나는...”
효선에게는 15년 동안 짝사랑 해온 동아리 선배 한재욱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설마.. 요즘도 가끔 연락 오니?”
“응..”
“정말? 어디에서 뭐한대?”
“다른 지방이기는 하지만 은행에서 근무한대.”
“그렇구나..”
“왜 전화 했대?”
“그냥.. 생각이 났다고.. 그래서 봤어..”
그런 식이었다. 효선이 그를 잊을 만 하면 찾아와서 들 쑤셔 놓고는 또 연락을 안 했다.
“나는 그 사람.. 좀 그래. 15년이야. 그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시간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아영이 말도 맞지만, 네가 편안대로 해. 하지만.. 네가 힘들지 않아?”
효선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데도.. 떨리더라.. 반갑고.. 좋았어. 나도 너희들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 하지만.. 예전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단지.. 나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아직 선배도 혼자니까.. 혼자 기대하는 거지..”
“하긴.. 내가 네 그 선배를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지.. 그 녀석이 훨씬 더 나쁜데..”
아영의 한 숨에 둘이 아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
“지난 일요일에 예배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따라와서는 좀 보자고 그러더라.”
“네가 제일 힘들 것 같아. 보고 싶지 않아도 매주 봐야하잖아.”
“응..”
“정말 그렇겠다. 그래서.. 만나려고?”
“매주 보는데 따로 보자는 건.. 뭔가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그 사람은 항상 좀.. 그렇지 않아? 보자고 하고는 다른 약속이 생겼다거나, 아니면 너와의 만남을 잠시 갖고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다며 가거나.. 그동안 네가 많이 힘들어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지 뭐..”
아영은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한 살 어린 이인혁이라는 아이와 복잡한 상황 속에
있었다. 아영이 고 3에 올라갈 때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사귀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연락도, 교회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녀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에 항상 같이 타던 버스도 타지 않고 찾아오지도 않았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그를 찾아
갔다.
“안녕하셨어요? 인혁이 있어요?”
“아영이 왔구나? 고3이라 힘들지?”
“네.. 조금요..”
“위층에 올라가봐. 방에 있을 거야.”
“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그의 방에 노크를 했다. 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왜요?”
“나야..”
“....”
“들어간다.”
“....”
아영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인혁의 등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그는 책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 왔어.”
“....”
“나.. 왔다고.. 돌아보지도 않을 거야?”
“...”
아영은 화가 났다. 그를 만나자 전보다 훨씬 더 많이 화가 났다.
“너.. 지금 뭐하자는 거야? 왜 전화도 안 하고, 받지도 않아? 버스는 왜 안타?”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좋아. 헤어지자는 거지? 그게.. 네 마음인 거지? 알았어. 우리 헤어지자. 나도 다시는 너 귀찮게 하지 않을게.”
자신의 말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 인혁의 등을 바라보며 울지 않으려고 두 손을 꽉 쥐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아영은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 쟁반에 담아 올라오시던 아주머니와 만났다.
“벌써 가게?”
“네.. 인혁이가 공부를 해서요. 방해될 것 같아서요. 아주머니..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해서 가렴. 인혁아~ 아영이 집에 데려다 주지.. 가까워도 위험한데..”
“아니에요. 뛰어가면 금방인걸요. 안녕히 계세요.”
아영은 인사를 하고 급하게 그의 집 밖으로 나왔다. 뛰어가면 금방인 집을 아영은 30분 후에
나 들어갈 수 있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말이다. 하지만 수능시험 하루 전날, 그가 아영엄마에
게 찹쌀떡이 들어있는 상자를 주고 갔고, 그 해 크리스마스에 준 카드에는 힘들게 공부하는
아영의 시간을 빼앗고,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시간을 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날 아무 말도 못한 건,
화가 난 그녀가 무서워서 그랬단다. 아직도 아영을 좋아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후였다. 대학에 가서 잠깐씩 남자를 만나 보았지만 어느새 항상 그
와 비교를 하게 되어서 그런 지 교제를 오래 하지 못했고, 인혁 역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여자들과 오래 교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항상 엇갈렸다. 아영에게 남자 친구가 있으면 그가
없었고, 아영이 없으면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이 아영에게도,
그에게도 애인이 없는 상태지만 겁이 많고, 또 엇갈리게 될까봐 그에게 연락도 잘 하지 못하
는 사이 그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다.
“여자친구.. 있대?”
“몰라. 안 물어 봤어.”
“한번 만나봐. 혹시 알아? 오랜 엇갈림 끝에 결실을 맺게 될지..”
“그럴까? 겁나.. 또 엇갈려 버릴까봐.. 다시 그 녀석 때문에 흔들릴까봐.. 힘들어질까봐..”
“그래도.. 만나고 싶지?”
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나 봐. 그래서 역시 아니다 싶으면 정리하는 거야.”
“후우~~”
“그래도 나는 너희들이 부러워.. 누군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둘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부러워.”
“나는 네가 부러운데? 선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재미있을 것 같아.”
“재미는.. 있냐?”
“없어. 재미는 무슨 재미.. 모르는 사람이랑 할 수 있는 건 똑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뿐이야. 일종의 호구조사 같은 걸까? 재미없어. 나도 뭔가 특별한.. 그런 사랑이 하고 싶은데..”
“나도 사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첫눈에 반하는 불같은 그런 사랑 하고 싶은데.. 너는?”
“글세.. 나는 불같은 사랑은 좀.. 양은 냄비보다는 뚝배기가..”
“아흐~” “에~~”
은희와 아영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네 뚝배기는 너~무 오래 됐어. 15년이라니.. 끓어 넘쳤겠다.”
“암.. 그렇고말고..”
“올해는 너희들도 그 사랑에 결실을 맺든, 결말을 맺든.. 뭔가 잘 되었으면 좋겠고, 나도.. 사랑하면 좋겠다..”
“나도..” “그래.”
셋은 아저씨가 내 준 와인 잔을 들어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클럽에서 밖으로 나오며 진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오늘은 물이 왜 이러냐.. 아침부터 재수가 없더니만..”
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나야. 어디냐?”
<나? 이제 병원에서 나가는 길인데?>
“그래? 이따 우빈형 가게에서 보자.”
<너도 오려구? 왜?>
“왜는 무슨.. 클럽 안이 호러다.. 호러야.. 그래. 그럼 거기에서 보자.”
차에 올라탄 진호는 우빈형이 운영하는 카페를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카페안에서 한참을 이야기 하던 그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다가 아영이 시계를
바라보고는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만 들어가자. 요즘 밤길이 너무 위험해.”
“그래. 내 차로 데려다 줄게.”
“괜찮아? 와인 마셨잖아.”
“나는 입만 댔어. 운전하려고..”
“정말? 은희야~ 쌩유~ 사랑해..”
아영이 와인에 얼굴이 붉어져서 은희를 끌어안자 은희가 살짝 아영을 밀어내 제대로 앉게 했다. 효선이 그러고 있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차를 가져오긴 했는데, 운전하기가 좀 그러네.. 아저씨, 제 차를 내일 찾으러 와도 돼요?”
“그래.”
“고맙습니다. 그럼 나는 택시타고 갈게.”
효선의 말에 은희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가 데려다 줄게.”
“둘은 같은 방향이지만.. 나 데려다 주려면 돌아가야 하잖아.. 피곤할거야. 택시타면 금방이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알았어. 아저씨, 오늘 감사했어요.”
“그래. 다음에 보자.”
“네. 건강하세요.”
셋은 나갈 준비를 했다. 진호는 우빈형이 운영하는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 시동이 멈추자 형규가 내렸다.
“일찍 도착했네?”
“응. 길이 안 막혀서.”
“머리 봐라.. 누가 널 의사로 보겠냐? 어디에서 그렇게 한 거야?”
“주말을 위해 항상 차에 준비를 해 놓지..”
“대단하다.. 그런데 왜 일찍 나왔어? 그리고 아까 뭐라고 했더라.. 호러라고 했지?.. 왜 호러야?”
“거의 공포에 가까운 수준의 아가씨들만 있더라고.. 아침부터 나는 오늘 너무 재수가 없나봐. 왜 그런 거지?”
“혹시 그래서 그런가?”
“응?”
카페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고 형규의 대답을 들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카페에서 나오면서
아영은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들고는 뒤에서 그녀를 따라오는 효선과 은희를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야, 오늘 황사 있던데 마스크 안 해?” 라고 말하며 마스크를 쓰며 카페 출입문 손
잡이를 잡고 밖으로 열었다.
쿵! 퍽! 악!
“악!”
“아영아! 앞에..” “야, 앞에..” 효선과 은희, 형규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아영은 문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비비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사과를 했다.
“응? 어머..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그가 인상을 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호의 눈에 보이는 아영의 모습은 두루뭉술한 몸에 정
수리에 모아 올린 머리스타일에 노란색 티셔츠에 청바지, 편한 운동화 차림에 하얀 마스크까
지 하고 있는 걸 보니 영락없이 아줌마 모습이었다. 예쁜 아가씨면 좀 봐줄까 했는데 기분이
더 나빠진 진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이거 안 보여? 그 쪽에서는 문을 안으로 당겨야지. 왜 밖으로 여냐고..”
그가 문에 표시되어 있는 표지판을 가리켰다.
“죄송해요.”
아영은 아줌마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양아치처럼 생긴 남자에게 잘못 걸리면 재수 없을까
봐 그냥 죄송하다고 했다. 그가 만지고 있는 머리를 바라보니 딱히 피가 나지도 않고 괜찮아
보여서 “죄송해요. 그럼..” 라고 인사를 하고 그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
가 아영의 팔을 잡았다.
“이 아줌마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아영은 속으로 ‘내가 알게 뭐야?’ 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기분 나쁘게 바라보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효선이가 그런 그에게 인상을 찡그리며 조금 쌀쌀맞은 말투로 말했다.
“친구가 미안하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만 하시죠.”
그러자 은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형규가 효선의 말에 시선을 돌려 진호를 말렸다.
“그래, 인마.. 그만 해. 그렇게 심하게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여자들 편을 드는 친구녀석이 괘씸해 눈꼬리를 올리며 인상을 쓰며 화를 냈다.
“아파.. 그리고 머리가 어떻게 됐을지 어떻게 알아.. 머리에 혈관이 얼마나 많은데..”
“괜찮습니다. 가세요.”
형규가 은희와 아영과 효선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정색하는 표정으로 진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 해. 가게 문 앞에서 이러는 거 아니야.”
“아 씨..”
진호가 아영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아영이 그들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은희와 효선도 그들을 지나쳐 왔다.
자신을 지나쳐 걸어가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진호가 중얼거렸다.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만해. 인마.”
형규도 물끄러미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나 오늘 정말 왜 이런 거냐?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재수 없는 하루다..”
“그거 아니야?”
“뭐?”
“13일의 금요일..”
“인마! 그걸 말이라고.. 서양에서만 있는 저주, 불행.. 뭐 그런 거 아니야? 동양에서도 효력이 있나?”
형규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진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몰라, 인마. 괜찮은 거냐? 소리가 크긴 크더라..”
그 때 그녀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진호의 머리에 혹을 만든 아가씨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다.
“야.. 뭐야.. 완전 재수 없어. 양아치인가 봐. 뒤에 있는 남자는 젠틀하더만.. 친구.. 아닌 것 같지.. 아줌마라는 말에 욱하려다가 양아치라서 잘못 걸리면 재수 없을까봐 사과했는데.. 괜히 했나봐.. 완전 싸가지 같아..”
아영의 말에 은희가 조용히 말했다.
“요즘 얼마나 세상이 험악한데.. 조심해.”
“효선이 택시 타는 거 보고 타자.”
“아니야. 곧 올 텐데 뭐 하러.. 아영이 데려다 주고 너 집에 가려면 오래 운전해야 하잖아. 어서 가.”
“야.. 하지만 저 양아치가 해코지 하면 어떻게 해..”
“걱정하지 마. 안에 아저씨도 보고 계시는 걸..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가.”
은희가 운전석에 오르기 전에 고개를 돌려 카페를 바라보니 아직 그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야, 아직 우릴 보고 있다. 얼른 타.”
“효써니~ 미안해.. 우리 먼저 갈게. 조심해서 들어가..”
“응.”
효선과 인사를 하고 아영이 그 쪽을 힐끔 보고는 차에 재빨리 올라탔다. 그녀들이 탄 차가 주차장을 나가고 있었다. 그녀들의 말, 특히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을 들은 진호는 열이 꼭대기까지 올랐다.
“저 아줌마가.. 뭐? 양아치? 재수가 없어? 내가 더 재수 없네!”
형규는 당장 달려가서 싸울 것 같은 진호의 팔을 잡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형~ 우리 왔어요.”
“왔냐? 잠깐만 앉아 있어.”
우빈이 밖으로 나가니 효선이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은희 차를 타고 가지.. 위험하게..”
“괜찮아요. 제 차는 내일 아침 일찍 찾으러 올 게요.”
“나 없을 때 왔다가 가지 말고 천천히 와서 차 마시고 찾아 가.”
“네.. 아.. 저기 오네요. 아저씨, 내일 봬요.”
“응.”
효선이 웃으며 인사하고 택시에 오르자 그가 눈으로 택시번호를 바라보고는 중얼거리며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까지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진호는 계속 중얼거리며 그녀들을 욕
하고 있었다.
“진짜.. 재수는 내가 없구만.. 어디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것처럼 생긴 아줌마 주제에..”
“얘는 왜 이러냐?”
“머리에 혹이 나서 그렇다네요.”
“형. 방금 나간 그 아줌마는 누구야? 아는 여자야?”
“인마. 아가씨들한테 무례하게..”
“아가씨? 하! 아가씨는 무슨.. 아가씨는 한 명뿐인 것 같던데.. 그리고 씩씩하게 생긴 사람 한 명, 그리고 그 아. 줌. 마..”
진호가 “아줌마”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이를 악물며 말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오던 아가씨들이야. 착한 애들인데.”
“그래요?”
“착하기는.. 나한테 양아치라고 했단 말이야.”
우빈이 거울을 꺼내 진호에게 내밀었다. 그가 거울을 들어 부딪친 곳을 살폈다.
“피는 안 나네.. 하지만 가서 사진 찍어볼 거야. 뭔가 잘못되면.. 죽었어~.. 그런데 형.. 거울은 왜 준 거야?”
거울에서 눈을 떼고 우빈을 바라보았다.
“거울 보라고. 너 지금 꼭 양아치 같으니까.”
“형!”
거울을 내려놓으며 진호가 소리를 쳤고, 우빈과 형규는 웃었다.
“아 씨.. 아까 그 아줌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누구지?”
“클럽에서 만난 아가씨 아니야?”
“야! 저런 아줌마가 클럽을 어떻게 들어 오냐?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형규가 웃으며 말하자 진호가 더 화를 냈다.
은희와 인사를 하고 작은 원룸빌라인 자신의 집에 돌아온 아영은 샤워를 하고 잠들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 인혁이라고 떴다.
아영은 손을 들어 가슴위에 올려놓고 숨을 깊게 내 쉬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자고 있었어?>
“아니.. 자려고. 너는 왜 안 자고?”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에 한 약속 안 잊었지?>
“응..”
<우리가 늘 가던 영화관에서 볼까 하는데.. 괜찮아?>
“그래.. 몇 시에?”
<11시쯤 볼까? 점심 먹고 영화 보면 되니까.>
“그래.”
<그럼, 누나 잘 자..>
“그래. 다음 주에 보자.”
짧게 끝난 통화였지만 아영의 볼은 상기되어 있었다.
“후~ 어떻게 해.. 이번에는 뭔가.. 결말을 봐야 해.. 아~ 몰라..”
아영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은희가 집에 들어가자 엄마가 나오셨다.
“재미있었니?”
“네. 아직 안 주무셨어요?”
“잠깐 깼어. 어서 자렴.”
“네.”
“참.. 다음 주에 선보기로 했어. 시간 비워 놔.”
“다음 주요?”
“응. 토요일 오후 5시에 **호텔 커피숍이야.”
“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자라..”
집에 들어간 효선은 겨울방학이라 놀러와 잠들어 있는 조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지은이 옆에 누워 있던 언니가 그녀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야! 지은이 깨..”
“미안.. 볼이 너무 부드러워서.. 안 자고 있었어?”
“네가 들어와야지. 엄마는 주무신다.”
“언니도 잘 자.”
“은희랑 아영이는 여전하니?”
“그렇지 뭐.”
“다들 시집들도 안 가고..”
“얼른 자기나 해.”
“그래. 자라.”
1월, 5월, 9월, 그리고 12월 13일은 요일과 상관없이 은희, 아영과 그녀가 <Daily> 에서 저녁
8시에 만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는 매달 13일에 그 카
페에서 만났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자주 볼 수 없게 되자 셋이 그렇게 정했다.
물론 주말에 시간이 될 때,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고 만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일 년에 5번은
말하지 않아도 8시에 그 곳에서 만난다. 선배를 좋아한지도 15년이 되었지만 은희, 아영과 친
구가 된지도 15년이 되었다. 그녀들을 만나고 오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외모에 자신이 없어. 키도 보통 여자보다 크고, 눈도 작고, 어깨도 넓은 것 같고..”
“왜? 너처럼 여성스러운 애가 어디 있어? 요리도 잘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마음도 여리잖아. 겉모습도 안 꾸며서 그렇지..”
“그래. 자신감을 가져봐. 나를 봐. 키도 작고, 통통하고.. 너는 키도 크고, 날씬하고.. 그리고 요즘 쌍거풀 없는 눈이 얼마나 인기인지 몰라?”
자신을 위로해 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준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선배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효선인 참 착하고 예쁜 것 같아. 왜 남자가 없지? 이해가 안 간다니까?”
그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효선은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선배.. 저에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아.. 네.. 그럼 거기에서 봬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다음 주 토요일에 선배를 만나면 친구들의 말대로 결말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5년 동안 미뤄 두었던 고백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늦은 밤, 그녀들은 카톡을 시작했다.
아영 : 얘들아, 나 다음 주에 인혁이 만난다.
은희 : 그래? 나는 다음 주에 선 본다.
효선 : 다들.. 약속이 생겼구나.. 나도..
아영 : 너 설마.. 그 선배 만나는 거야?“
효선 : 응. 결말을 보려고..
은희 : 결말이라니..? 말.. 하려고?
효선 : 응. 너희들 말대로 너무 오래 한 곳만 보는 것 같아서..
아영 : 그래. 너도, 나도 결말을 보자고.
은희 : 너도 말 하려고?
아영 : 응.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힘들잖아..
은희 : 오늘 만남의 영향이 컸구나..
아영 : 그렇지 뭐.. ^^
효선 : ^^
은희 : 그래. 그럼.. 좋은 결과를 들을 수 있길 바래.
아영 : 나도.. 효써니~ 너를 위해서 기도 할게. 물론.. 은희도~ 좋은 사람이 나오길.. ^^
은희 : 쌩유~
효선 : 고마워.
아영 :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또 톡 하자.
은희 : 그래. 다들 피곤할 텐데. 잘 자~
효선 : 그래.. 잘 자..
아영 : 응.. 은희도 효써니도 굿밤~ ^^
그렇게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밤이 지나 14일이 되었다. 세 여자들은 긴장과 설레임과 불안한 마음으로 일찍 잠들 수 없었다.
첫댓글 재밌어요
앗! 감사합니다..
재밌는데 폰으로봐서그런가 눈이좀아프네요ㅠㅠ 띄어쓰기랑 엔터좀더해주시면감사하겟어요! 재밋게읽엇습니다ㅎㅎ
수정하였습니다..^^
재밌게 일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잼나겡 읽고감니당 ^^
감사합니다..^^
잼써여ㅎㅎ
재미나네요 다음편바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 마지막까지 부디 즐겁게 읽어 주세요..
쌩큐~^^
잼있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가요
감사합니다. . ^^
기대 만땅 넘 잼있네요*^^*
첫 소설이라 부끄럽습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잘보고가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 첫소설에 댓글이. . ^^ 진짜 부끄러워요. 부족하고 어설프고. . 그래도 처음이라 그렇다고 생각해주시고 재미있게.. 가볍게 읽어주세요. ^^
이제 부터 재미있게 읽어 볼까요
앗. 부끄럽게 첫 소설을. . ^^;;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