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명재처(運命在妻)인가?
어제는 성에 관한 글을 올렸더니
댓글에 자신의 부부생활의 이야기도 달았더라.
마지막엔 수필을 나무라는 것인지
양기가 입에만 올라있더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어렵더라.
원래 인류는 오랜 수렵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데
수렵시대엔
남성은 밖에 나가 사냥을 하고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딴짓도 하게 마련이었다.
딴짓이라는 건 한눈파는 일도 있지만
예술이나 놀이활동도 있게 마련이다.
이와 달리 여성은 안에 들어앉아
사냥해 온 걸 지키면서
남자가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노라니 남자가 들어오기 전까진
불안의 연속이었을 게다.
이런 유습이 전해져서
남자는 여유가 생기면 밖에서 인심도 쓰게 되고
여자는 주머니를 차고 사냥감이라도
꼭 지켰던 것일 테다.
이와 같이 역할이 서로 다름에 따라
부부 사이에 앙앙불락 하기도 하는 것일 테지만
바야흐로 남성우위의 시대는 가고
여성우위의 시대가 되었는데
나의 운명은 재처(在妻)인가?
아래에 지난날의 단상을 붙여본다.
결혼은 사회 최소단위의 공동체를 만드는 의식이다.
그로 인해 평안을 찾고 행복을 꾸려나가게 된다.
허나 그건 바람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사회의 안정을 위해선
최소단위의 공동체가 공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공고하게 꾸려나가는 게 쉽지 않은 것이,
세계적 부호였던 오나시스는
자기 평생에 제일 미친 짓이 재혼이었다 하고,
세기의 지성이라 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계약결혼을 하고도 순탄치 못했으니,
그 실상은 백인백태일 것이다.
나는 부짓집 규수를 아내로 맞았다.
맞았다기보다 내가 보쌈되어 장가갔다고 해야겠다.
겨우 다이어반지 하나 해주고 혼례를 올렸는데,
결혼 뒤의 첫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를 즐겁게 해 줄 양으로
다이아반지를 팔아 치운 건
아직도 비밀로 덮어 둔 대로지만
둘이 벌어도 흡족지 않은 살림에
아내는 인내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아내 앞에 주사위를 던지고 말았었다.
“여보, 우리 이혼합시다.
그래서 내가 외국여인과 위장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갈 테니 안정되면 당신을 부르리다. “
이때 아내의 반응은 쌀쌀했지만
미련과 연민이 담겨 있었으니
단물 다 빼먹고 가긴 어디로 간단 말이냐는 것이었다.
이래서 나의 제안은 묵살되고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운명재처인 듯한 삶이 되었지만
내게 평온이 찾아온 건 자식이 태어나고
직장생활에 보람을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남달리 이웃의 사랑을 많이 받던 두 딸 덕에
내 아내도 주변의 부러움을 많이도 샀던 모양인데
아내는 지금도 그때가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한다.
이제 두 딸은 평범하게 성장하여 결혼해 나가고
나는 내 아내와 단둘이 되자
조금 일찍 직장을 버리고 나왔으니,
그건 진정한 나의 자유를 찾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앞날의 가정경제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연금수급권을
아내에게 주고 달랬으니,
그렇게 해서 나 홀로의 자유를 찾나 했던 것이다.
허나 두 딸이 결혼해 아이를 갖게 되자
나는 마치 사위들에게 보라는 듯이
스스로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손주들 기저귀를 갈아댔다.
아, 나는 언제 나의 것이 되려는가...?
이런 넋두리를 하면서도
나는 화접일몽(花蝶一夢)을 생각한다.
나비가 꽃에게 무얼 부탁하던가?
꽃은 하늘을 향해 온몸을 열어 보일 뿐이요
나비는 허공을 날다가 꽃에 내려
날개 쉬고 꿀을 빨 뿐이니
그러다가 허공에 흔적 없는 파문만 그리며
떠나지 않던가.
하지만 나는 꽃을 떠날 순 없다.
떨어진 꽃잎도 매달린 씨앗도 또 휘청거리는 줄기도
모두 내 인생의 달고 쓴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것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니,
그래서 가끔 추억 속에 있는 여인을 불러내어
노래도 불러본다.
나에겐 수줍은 여인이 하나 있지
열두 송이 봉숭아꽃이었을 소녀
시냇물 휘저으며 송사리 게아재비 좇던 시절
꽃술 꿈 머금고 수줍어 고개 숨기며
톡톡 튀는 상큼한 몸짓도 하였을 소녀
나에겐 붉은 가슴의 여인이 하나 있지
열네 주름 맨드라미였을 소녀
호기심 찬 눈망울로 먼 하늘 바라보다 삐죽이며
이유 없는 시샘도 하였을 선 가슴의 소녀
나에겐 정열의 여인이 하나 있지
스물두 겹 장미꽃이었을 여인
가슴이 부풀어 옷고름 굽이굽이 여미며
먼 데 임을 그리던
성년이 지나 막 분홍 물들었을 여인
눈을 감아도 미소로 다가오는 나의 소회 글로 적어
두고두고 읽어보아도 좋을 추억이라는 이름의 여인
이젠 민들레 꽃씨 되어 하얗게 흩날려서 더 좋을
그런 여인 하나가 나에게는 있지.
(졸 시 '추억이라는 이름의 여인' 중에서)
시인 정지용에겐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있고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의 향수가 있다.
(정지용의 ‘향수’에서)
하지만 나에겐
굽어진 등을 나의 처진 어깨에 기대고 있는 여인이 있어
떠나고 말면 내 등조차 무너져버릴 테니,
그래서도 나는 내 아내와 함께 한다.
나는 세월을 뒤따라가며 추억을 담아내는
걸망일 뿐이라 자처한다.
만약 누가 위안을 삼는 게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니체의 글귀 하나를 들 수밖에 없겠다.
”자신의 모든 행위는 다른 행위와 사고, 결단 등을
이끌어내는 요인이 되거나
혹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행위도 전혀 영향을 마치지 않는 것은 없다.
먼 과거 옛사람들의 행동조차 현재의 현상과
강하게 혹은 약하게 결부되어 있다.
모든 행위나 운동은 불변한다.
그리고 한 인간의 어느 작은 행위도
불변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났다기보다 깨었다고 해야겠다.
가스 불을 켜 미역국을 데운다.
식탁 위에 밥그릇과 수저 두 벌을 내놓는다.
냉장고엔 김장김치가 들어있다.
아내가 담갔는데
이미 시어버려 김치찌개 감으로 쓰면 된다.
얼마 전 카페 회원 황새님으로부터 김장김치를 샀다.
그걸 꺼내놓는다.
달걀 두 개를 깨 전자레인지에 익힌다.
식탁 뒤에 있는 김통도 내놓고 멸치볶음도 내놓는다.
이렇게 아침상이 준비되었다.
밥상 차려달라고 하기보다
내가 직접 차리는 게 속편 하기 때문이다.
”여보, 아침 먹읍시다. “
아내가 부스스 일어나 식탁으로 나와 앉는다.
이제 다정한 대화시간이다.
설거지는 늦게까지 먹는 사람이 하게 마련이다.
늘 내가 늦게 먹으니 그쯤이야 내가 하고 만다.
아내는 외부활동이 활발하다.
카페모임도 있고 수영모임도 있고 남사친도 있다.
물론 나도 여사친이 있긴 매한가지다.
내 운명은 인명재처인가?
아니다.
집안일은 함께 나눠하고
나가면 각각이요
얼마 되지 않는 연금수급권은 아내에게 준지 오래지만
나는 틈틈이 회계 컨설팅을 하며 용돈을 조달받는다.
(2022년 1월 13일)
위 글은 지난 2022년 1월 13일에 써본 거다.
내가 성에 관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부부생활에 관한 댓글들을 달았더라.
젊은 시절 서로 많이 다퉜다거나
아내로부터 용돈을 흡족하게 받지 못해
불만스럽다는 등의 이야기인데
나는 나와 비슷하다고 화답했지만
나의 경우를 돌아보게 된다.
퇴직한 뒤에 연금수급권을 아내에게 줬다.
그리곤 용돈을 달라 했더니
"아내에게서 용돈 타서 쓰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하는 거였다.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
그래서 두말할 것도 없이 사무실을 차렸다.
용돈을 벌어 쓰려고 말이다.
올림픽공원 앞에 사무실을 차렸다.
산들해 건물 10층 4호인데
이름도 천사 호이니 부르기도 참 좋았다.
집에서 걸어서 출근하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창문을 활짝 열고
올림픽공원을 내려다보는 게 일과였다.
사무실 차렸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문객 점심 대접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 만에 보증금 다 까먹고
철수하게 되었으니
사무실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니었다.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는 친구가 불렀다.
그래서 거기에 책상 하나 더 놓고 더부살이를 했다.
그러구러 약 25년이 지나니
어느 정도의 용돈 할 자금도 축적되었다.
이젠 부부 사이에 앙앙불락 할 것도 없이
좋은 데 있으면 함께 가고
어디 가자 하면 따라나서고
맛있는 거 먹으면 돈은 내가 내지만
매일 붙어 다니는 건 아니니
때론 여사친을 불러내어 데이트도 하게 마련이다.
원래 인간은 오랜 수렵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하여 남자는 밖에 나가 사냥을 하면서
여유 있을 땐 딴짓도 하고
여자는 안에 들어앉아 사냥해 온 걸 지키면서
남자를 감시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남자는 돈을 많이 벌면
밖에서 인심도 쓰게 마련이요
여자는 그러지 않도록 주머니를 차게 되어있다.
지난 일요일엔 부부 함께 일자산 천문공원을 거닐었다.
나는 벌과 나비를 따라 꽃을 찾아다니고
아내는 장미덩굴 안에서 땡볕을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컷 '찰깍' 했지만
마치 나는 수렵시대의 사내 같은 형국이었고
아내는 움막에 들어앉은 여자 같은 형국이었다.
이 원시시대의 작태를 벗어내기는 어려우니
여성들이여!
독립하려거든 주머니를 꼭 쥐어 차고
남성들이여!
운명재처가 안 되려면 꼬불치기라도 하시라.
첫댓글
운명재처라고 하시네요.ㅎ
우리 앞 세대에서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했습니다.
너 아니면 못산다라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너 때문에 못살겠다 라고 푸념하는 세월이
더 긴 것 같아요.
아무렇거나,
자신의 인생 자기 것이고
둘이서 합심하여 가정을 이만큼 이끌어 왔으면
복된 노후입니다.
모두들 잘 난 푸념들 하고 있습니다.^^
좋은 세상 만났지요.
이런 게시판이 있어, 자신의 속마음도 털어놓고...^^
맞아요.
잘난 푸념이고말고요.
너아니면 못산다는 건 잠깐이고
너때문에 못살겠다는 건 길다지만
그것도 푸념일 테고요.
그저 이리저리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흥미로운 내용이라 자세히 읽었습니다.
먼저 어제의 글 "성이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본문의 말미, "이번엔 성에 관한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봤지만 구김 없는 자기표현을 말리는 사람은 없을 게다."
성(性)을 포함한 어떤 주제든 표현의 자유, 자기표현의 정당성, 누구도 이를 제지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답댓글에는 "예의범절 속에 서로를 읽는, 그게 글벗이겠네요.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았는데도 남의 글에 올라타 사달을 내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다른 글에 편승해 문제를 일으키거나 남의 글에 반응하거나 논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니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본문과 충돌합니다.
이는 자신의 표현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도 타인의 반응은 사달로 규정하는 것이니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타인의 비판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자기표현만 강조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석촌님의 표현 원칙이 무엇인지 독자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글 "나는 운명재처인가?"도 같은 맥락에서 읽혔습니다.
수렵시대 기원론으로 남성의 바깥 활동을 자연의 섭리로 설명하고,
이혼 시도도, 사무실에서의 사교도, 여사친과의 데이트도 모두 원시 본능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라고 합니다,
문학적 장치로서의 유머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미의 "남성들이여! 운명재처가 안 되려면 꼬불치기라도 하시라"는 문장은 농담의 옷을 입고 있지만,
혼외 관계를 자유의 출구로 제안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글이 어떤 의미로 읽힐지, 독자로서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아래의 앞선 글에서 "구김 없는 자기표현을 말리는 사람은 없을 게다"라 하셨으니, 이 글도 그 연장이겠지요.
다만 자기표현의 자유와 그 표현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수신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독자들의 반응의 자유도 타인도 나와 같은 글을 쓸수 있다는 표현의 자유도 함께 열어두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타인과 독자의 반응을 사달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표현만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둘째님의 진지한 관심 고맙습니다.
벗이라면, 또 글벗이라면 서로 예의범절을 지키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려야겠지요.
그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구김 없는 자기표현을 말릴 사람은 없을게다'라고 쓴 것은
얼마 전 수필방에 작은 불협화음이 있었는데요
어떤 회원이 글을 쓰기를
'마치 수필방에 다양한 표현을 제한하고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는 글을 올렸고요
이에 다른 회원들이 편승해서
수필방을 편가르기 하듯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저는 그런 표현을 했던 겁니다.
말하자면 수필방에서 표현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일은 없다는 뜻이었고
표현의 자유는 말릴 이 없다는 뜻과
표현의 자유를 빌려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하지는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저의 표현의 원칙은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둘째 제가 쓰기를
'남성들이여 꼬불치기라도 하시라'고 쓴 것은
농담이 섞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내포하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그런 저의 글이 혼외의 관계를 자유의 출구로 제안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했다면 제가 표현을 잘못한 것이 되겠네요.
그런데 혼외의 관계란 일률적으로 불륜을 뜻하는 건 아니지요.
둘째님이 생각하는 혼외의 관계는 불륜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혼외의 건강한 교우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카페문화를 보더라도
연말 축제엔 7백명에 가까운 남녀가 어울려 즐깁니다.
그게 줄면 10명이 되어 친구친구 하면서 가까이 어울리고
그게 더 줄면 4명이 되어 가까이 어울리고
그게 또 더 줄면 둘이 되어 가까이 어울리게 되지요.
어울린다고 해봐야 걷고, 걷다가 차 마시고 이야기 하고
그런 거지요.
그런 중에 특별히 가까운 친분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걸 소위 여사친이니 남사친이니 하는 게 일반적인 문화라고 봐요.
그런 문화를 혼외의 불륜스런 남녀관계로 보는 건...?
글쎄요, 저는 건강한 어울림만 하고요,
도덕적으로도 마음에 걸리는 일은 안 합니다.
꼬불친다는 표현은 숨긴다는 뜻이겠지만
제가 의도하는 건
용돈에 관해 아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석촌 보다 남자 스스로 벌어서 충당하라는의미를 담았습니다.
@석촌 석촌님, 긴 답글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 당시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구김 없는 자기표현"은 수필방의 다양성을 옹호한 것이고,
"남의 글에 올라타 사달을 내지 말라"는 것은 분위기를 흐리는 행위를 경계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표현이 다양성이고 어떤 반응이 사달인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요.
글에 동조하는 댓글은 어울림이 되고
글에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은 사달이 된다면,
그것은 표현의 원칙이 아니라 동의의 원칙이 아닐까요.
표현의 자유를 말씀하셨으니, 이 재댓글도 그 자유 안에 들기를 바라며 저의 댓글이 이의 제기로 오해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둘째 어떤 표현이 사달인지는 누가 판단하느냐는 이야기인가요?
나라에선 나라의 시스템이 판단하고 조치하는 것처럼
카페에선 카페지기가 판단하고 조치할 일이지요.
그래서 그 대표적 인물이 활동중지 되었을 겁니다.
들째님의 댓글을 이의제기로 보진 않아요.
중매
나는 결혼 적령기가 되도록 내 주위에는 결혼 할만한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중매를 10 번이 넘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중매를 하고 데이트를 하게 되면 여자는 시간만 소모하면 되지만
남자는 데이트 비용을 써야 합니다
그당시 어머니는 내 용돈 빼고는 내 월급을 다 뺏어 버리던 시절 이었으니
항상 데이트 비용이 모자랐습니다
데이트 비용이 충분했으면 더 좋은 여자를 만날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중매 본분 중 한분은 중매쟁이가 맘에 안들어서
또 한분은 중매 본분 오빠가 맘에 안들어서 상대 여자분은 맘에 들지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게 지금도 많이 후회가 됩니다
그리고는 자금 아내와 중매로 결혼을 했습니다
뒤늦게 아내 말로는 중매에 함께 나온 큰 처형이 이사람 이상의 더 좋은 남자는
나타나지 않을거 라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내는 46년 이상을 함께 살아보니 바가지를 많이 긁는 여자 입디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 상대자는 지고지순한 여인이 최고 입니다
그래서 중매 시절에 여인은 맘에 들지만 다른 이유로 거절한 여인들이 더욱더 아쉽습니다
그여인들? 이 5060방을 통해서 라도 만나고 싶습니당
이상 내 중매 이야기를 해봤습니당
지나간 과거는 항상 아쉽고 아름답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위의글은 다른곳에서 쓴 내글인데?
석촌님의 글을 읽고 이글을 퍼웠습니당
충성
아마도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도 운명이라고 봐요.
운명이 그렇게 짝지워 줬으니
운명이라 생각하고
잘 사시길 바랍니다.
금슬 좋은 노부부의. 삶. ᆢ잘 읽었습니다
뭐 맞춰가면서 사는 거지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