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3시 50분 일본 센다이 기지에서 육상자위대 대형 CH47 헬기 1기가 7.5t 무게의 빨간색 물폭탄을 달고 날아올랐다. 똑같은 헬기 2기가 뒤이어 날아오르기 위해 프로펠러를 차례로 돌리기 시작했다.
헬기가 향한 곳은 후쿠시마(福島)현 제1원자력발전소 제3호기. 폐연료봉을 담그고 있는 수조에 공중에서 물을 투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폐연료봉의 핵분열 활동 재개를 막기 위한 일본 정부의 정말로 다급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원자로에서 사용한 폐연료봉은 플루토늄239와 잔류 우라늄235 등 강력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격납고로 싸여 있는 원자로와는 달리 폐연료봉 보관 수조에는 뚜껑조차 없다. 더구나 이날 제1원전 부지 전체에는 방사선 누출량이 급상승, 너무 위험해 현장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헬기는 몇 차례 원전 상공을 순회하다 약 2시간 만에 기수를 다시 센다이로 돌렸다. 상공에서 측정한 방사선 누출량이 200밀리시버트(mSv)로, 헬기 조종사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외벽은 전날 수소폭발 사고로 외벽이 이미 날아간 데다 이날 오전 8시 30분 화재가 다시 일어난 상태. 헬기로 물을 투하하기에는 오히려 외벽이 없는 게 도움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높은 방사선을 무릅쓰고 고도를 내리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물의 양이 너무 적다는 것도 작전 강행을 막았다. 자위대측은 "생명에 대한 보장이 없다. 너무나 위험한 임무"라고 했다. 하지만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은 "내일 아침 무조건 작전을 감행하라"고 자위대 통합막료장(참모총장 격)에게 명령했다. 목숨을 내놓으라는 얘기였다.
전날 외벽에 8m×8m짜리 구멍 두 개가 뚫린 4호기에서는 더 힘든 작업이 벌어졌다. 지진 당시 운전 정지 상태였던 4호기에서는 사용후연료봉이 격납용기 바깥의 수조에 들어가 있었다. 외벽에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수조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됐고 이 때문에 수조의 물이 말라버린 상태였다. 핵분열이 다시 일어난다면 방사성 물질이 사방으로 뿌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위대는 4호기에 대해서도 15일 구멍 두 개를 통해 헬기로 물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물폭탄을 투하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작다는 판단 때문에 포기했다.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이날 밤 경시청 기동대 투입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특수장비로 물을 쏘아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시시각각 결정이 변했다. 기동대는 16일 밤 4호기 부근에 경찰 물대포를 배치하고 17일 날이 밝는 대로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1·2호기에서는 높은 방사성 물질 누출 때문에 냉각수 주입 작업을 아예 하지 못했다. 원전 바깥에는 180여명의 소방 인력이 대기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 작업원들은 방사성 물질 누출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해수 주입 작업을 재개키로 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제1원전 전체에서 전쟁보다도 더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땅에선 몰려드는 영웅들… "죽을 준비 됐다, 원자로와 싸우겠다" 은퇴 앞둔 원전 기술자도 현장으로
"인생에 후회 안 남기겠다" 피폭 공포 떨치고 지원
부인도 "힘내세요" 배웅했다.
16일 오전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원자로 건물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고 하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방사성물질 농도가 급상승했으니 대피하라는 비명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온도가 치솟는 원자로를 냉각하기 위해 바닷물을 주입하던 작업원들이 '방사선 방지 시설'로 황급히 달려갔다. 후쿠시마 원전은 아수라장이 됐다. 건물들은 폭탄을 맞은 듯 허물어져 있고 녹아내린 철근들이 나뒹굴고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도로 곳곳을 막고 있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고농도의 방사선이 포함된 수증기가 언제 치솟을지 모른다는 것. 하루에도 두세 번씩 폭발사고와 화재가 발생, 작업원 수십명이 부상을 입고 피폭당했다.
하지만 이런 '죽음의 현장'을 향해 스스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후쿠시마 원자로의 냉각작업 성공 여부에 '일본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방 원전 회사에서 오는 9월 정년퇴직하는 시마네(島根)현의 59세 남성이 원자로 냉각작업에 자원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이 전했다.
이 남성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며 자원했다고 한다. 18세부터 원전에서 근무한 그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지 않기 위해 결정했다"고 했다. 부인은 남편에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힘내세요"라며 배웅했다.
폭발사고 이후 원전에서 철수했던 도호쿠(東北) 엔터프라이즈의 회사 직원 3명도 안전지대에서 다시 원전으로 달려갔다고 오키나와(沖繩) 타임스가 전했다. 도호쿠엔터프라이즈사의 유키데루 사장은 "직원들을 보내달라는 도쿄전력의 요청을 받고 직원들을 여진과 피폭의 공포가 있는 원전으로 되돌려 보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베테랑 직원 3명이 가족들의 만류에도 가족 지역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원전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16일 이들 자원자를 중심으로 108명을 원전 현장에 추가투입했다. 17일에는 경찰 기동대와 자위대도 투입된다. 후쿠시마 원전에는 그동안 73명이 남아 외로운 사투를 벌였다. 방사선 누출 사고가 나자 현장 근무자 800여명 중 750명이 철수하고 자원자를 중심으로 현장 필수요원만 잔류한 것이다.
미국 조지아대학 참 달라스 교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에 남아 있는 일본인 친구가 이메일을 통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을 대참사로부터 지키고 있는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6일째 계속된 사투로 체력과 정신력에서 모두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이들은 방사선 오염을 막는 '방사선 방지 시설'에서 대기하며 번갈아가며 냉각작업과 원자로 수증기 배출 작업을 벌여왔다. 원전시설은 전기가 끊겨 모두 수작업을 해야 한다.
각종 전자제어 장치도 모두 작동불능 상태에 빠져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폭발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작업은 원자로 수증기 배출. 기압이 치솟은 원자로에서 수증기를 빼내지 못하면 원자로가 터져 대재앙이 발생한다. 원자로 수증기에는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수증기 배출작업을 하다 피폭돼 병원으로 후송된 작업원들도 있다.
작업원들은 방사선을 방지하는 특수복과 마스터를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의 수천배에 달하는 양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의 방사선 농도가 점점 높아지자 근로허용 방사선 수치를 두배 이상 올렸다. 사실상 죽음을 각오하고 원전 폭발을 막으라는 것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절대로 (작업원들의)철수는 없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