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베소서 4장 1~4, 13~16절
오늘은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 중 ‘교회’라는 주제로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우리 성결교 세례 교육서에는 교회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죄악 된 세상과 구별되어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속받은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공동체’에 집중하려 합니다. 요즘 시대를 살펴보면 단체보다는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혼영’, ‘혼밥’이라는 말과 같이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밥을 먹는 추세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변화되는 요인에는 개인적으로 간단하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시대가 발달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휴대폰이나 텔레비전으로 간편하게 집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그만큼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둘째는 육체적, 감정적 쉼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도 체력이 소비되는 것과 서로 배려하기 때문에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며 친구들과의 만남도 갖지만, 자연스럽게 나만의 시간도 가지며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혼자서 보내는 시간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은 인간의 문화, 기술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대는 흐르며 단체보다 개인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몇천 년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말하는 성경에서는 왜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고, 서로 모이라 하였을까요? 어째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에 모이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첫 번째 공동체를 아담과 하와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실 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좋지 아니하니” 중 ‘좋다’의 원어를 살펴보면 “더 낫다.”라는 의미로 상대적 좋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중에는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들은 본래 없으며,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함께 사는 것을 더 좋게 보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서에서는 두 사람이 얻는 유익이 한 사람이 얻는 유익함보다 더 크다고 말하였고, 우리가 잘 아는 성경 구절과 같이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서로의 연합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간단하게 말한다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 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곧,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서로 하나 되길 바라신 것입니다. 우리는 저번 시간 때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감정, 피로, 아픔을 느끼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게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 이유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항상 함께해야 하며, 그분의 도우심이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하시고,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듯이 우리도 서로 함께하고 하나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 되기 전에 시선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을 떠올리면 희생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하나 되기 위해 힘써 지키라고 말합니다. 힘쓰라는 말을 원어적으로 보면 노력보다 강한 표현으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지하고 열심 있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2절에 나온 것처럼 겸손하며 온유하며 오래 참고, 사랑으로 용납하는 쉽지 않은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희생은 필요한 부분이며 서로 희생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희생이 아닌 다른 시선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섣불리 하기 어려워지고 꺼려지는 뉘앙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도와주실 분이 필요해요.”, “저를 위해 희생해 주실 분이 필요해요” 우리는 후자의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희생은 주로 거친 일이나 고된 일 또는 손해 보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들 들었을 때 떠오르는 주된 이미지는 ‘구원’일 것입니다. 구원을 가장 첫 번째로 말하며, 그 뒤로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겪으신 고난과 고통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한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 하나 될 때 하는 희생과 하나 되기 위해 겪는 어려움은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겪으신 고난과 동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서로 하나 됨을 말할 때 희생이나 그 가운데 발생하는 어려움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말하듯이 그 하나 됨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과 고통 그리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희생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희생을 얘기할 때 구원을 먼저 바라보듯이 서로 하나 됨을 얘기할 때 우리의 시선이 유익함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우리가 매우 잘 압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며, 그 몸은 교회의 모인 우리들이며, 우리들은 몸의 지체를 하나씩 맡고 있습니다. 또한 발이 원한다고 하여 손이 될 수 없고, 귀가 원한다고 해서 눈이 될 수 없듯이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서로 필요한 존재이며, 서로 돕는 지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우리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연합하여 하나가 될 때 주는 유익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8절]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있고 맡겨진 자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그곳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다시 표현한다면, 그 자리가 그 사람에게 완벽하고, 알맞으며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귀중한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한 사람의 자리와 역할을 인정하고 귀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이렇게 다양한 직분과 역할을 만드신 이유는 본문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역할을 통해 하나가 된다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보았을 때 부족한 점이 보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역할이며,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세우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점이 보이거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본문 16절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자리와 그 역할에 알맞도록 성장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8절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원하심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며 귀중한 역할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의미를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주향기교회로 모으시고 그 안에서 함께 예배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모두는 귀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심대로 이곳에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원하심대로 우리의 모습 변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서로를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대해주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모이게 하신 이유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될 때 희생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함을 위해 하나 되길 바라신다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교회 안에 다양한 역할을 만드심으로 우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보일지라도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그분을 위한 기도도 되지만, 나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고, 그분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이 찬양으로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 되어]
이 찬양의 가사가 오늘 설교를 전체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후렴 부분을 보시면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 되어 주를 예배할 때 아버지의 나라 여기 임하시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충실히 하며, 서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사랑으로 기도하고 돕는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와 함께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유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향기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천국과 같은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