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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현아 ”
“ 너 미쳤구나 ”
놀래서 얼굴이 새하얘진 날 팔로 끌어당겨 준일이에게서 떼어내는 현이.
그리곤 화가나는지 잔뜩 새빨개진 표정으로 기린이를 노려봤다.
그러자 좀 당황했는지 기린이도 아무말 못하고 서있었다.
적막을 깨려는 듯이 어색하게 말을 꺼내는 나......
“ 현아.....그게 있잖아....... ”
“ 너 너네형이 알어? ”
“ .......응? 알지......기린이....... ”
“ 그럼 저자식 옛날 과거도 아냐? ”
“ 그게 무슨....... ”
갑자기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예전의 사건.
기린이를 힘들게하고 지치게했던 그사건.
사람을 향해서 마음까지 못열게 해버렸던 바로 그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밖에는 벌써 상당수의 구경꾼들이 와있었고,
난 현이의 입에서 더 이상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 현...현아. 나가서 얘기하자....나가.. ”
“ 저 새끼가 너 손잡는것도 끔찍한데, 어떻게!!! ”
“ 그러니까...나가서.... ”
그때, 마치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어색하게 애써 웃으면서 현이에게 다가오는 기린이.
난 기린이가 이런 태도를 보인것도 처음봤고, 왠지 정말로 애쓰는 듯이 느껴졌다.
“ 먼저 너한테 못말해서 도라지도 미안해 하고.... ”
“ 니가뭔데 우림이 이름을 말해!!!! ”
흥분해서 기린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현이.
기린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얼어있었고, 그런 기린이를 향해서
현이는 정말 표정을 일그러 뜨리며,
내 평생 지워지지 않을 목소리로
말했다.
“ 더러운 새끼 ”
[ 짜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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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키도 작고, 성격이 나빴다.
친구는 있어봤자, 절대 친해지진 않았고, 항상 겉돌기만 했었다.
그때 현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한텐 손을 잡아준 친구였다.
“ .....도우림....너..... ”
내 손을 내손으로 잡고 떨었다.
나도모르게 올려버린 손을 잡고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입술은 바싹 타들어갔다.
시야는 눈물로 흐려지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 너......혹시 알면서........ ”
“ .......그만해....... ”
“ 저새끼 그렇게 지 누나랑 드러운 짓 하는 새낀줄 알면서... ”
“ 그만하란말이야!!!!!!!! ”
나한텐 처음이자 마지막일 소중한 친구가 있었다.
나한텐 소리한번 안지르고,
내가 때리면 그저 웃기만하고,
언제나 응석을 받아주고,
누가 때리면 대신 맞아주고,
자꾸만 여러 가지를 주려고 하는,
자꾸만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나한테 줄 것을 찾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
“ 기린이한테 상쳐주는건.......
싫어.......누구라도, 어느 누구라도.......
너얼굴, 보고싶지도 않아.......
왜온거야.....왜 와서 날 힘들게 하는거야.......너 정말 싫단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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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51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흐윽...흑....흐엉.... ”
“ 그만울어 임마. 그녀석한테 사과하면..... ”
“ 어떡해.....흐윽...."
한시간째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내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기린이.
내가 지금 울고있는 이유는 기린이의 생각대로 현이한테 심한말을 한 것 뿐만은 아니었다.......
아까 양호실에 몰려들었던 그아이들의,
기린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뒤의 표정.
그리고 창백해져버린 기린이의 표정.
동시에 남아있는 아직도 따끔따끔한 손바닥의 느낌.
손바닥이 따끔따끔한지, 마음이 따끔따끔한지.......모르겠다........
“ 기린아.....미안해......정말........ ”
“ 됐어. 뭐 사실만 아니면 되는거지 ”
“ 미안해...... ”
“ 아 또 운다. 또 안아달라고 우는거지? ”
내 볼을 손으로 쓸어, 눈물을 닦아주는 기린이.
그리곤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 좋은친구 뒀드라 ”
“ ......뭐? ”
“ 너 그렇게 생각해줄 친구. 아마 그녀석 빼곤 없을거 같은데 ”
“ ......속으로는 미워죽겠으면서 ”
“ 겉으론 멋진척 해야지. 이래뵈도 모델인데 ”
“ ......하나도 안멋있어 멍청이...... ”
내머리를 헝클이는 기린이.
그리곤 내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곤 먼저 일어났다.
“ 나먼저 가볼게 ”
“ 왜? 내 옆에 있어줘...... ”
“ 니옆에 동수있잖아 ”
“ 재미없어...... ”
“ 혼자마음좀 정리해봐 ”
나에게 등을 보이면서 점점 멀어져가는 기린이.
저 등은.....
볼수록 쓸쓸하고,
볼수록 가슴아프다.......
***
“ 여어 ”
학교 뒷담에 홀로 기대 서있던 현이는 웃으며 걸어오는 준일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전히 서있는 그 자리를 뜨진않았다.
그러자 자신도 그 옆에 기대서 담배한대를 꺼내는 준일.
그리곤 익숙하다는 듯이 그 담배를 입에 물고 담뱃불을 붙였다.
한모금을 내뱉는 희뿌연 담배연기는 둘의 시야를 스쳐지나갔고,
이내 아무말 없던 준일이는 담배갑을 현이에게 내밀었다.
왠지 진다는 생각이 드는지 역시 담배한대를 가져가는 현이.
그리곤 준일이가 불을 붙여주자, 역시 한모금을 깊이 빨았다.
이내,
얼굴까지 빨개진채로 콜록대는 현이가 재밌다는 듯이,
다시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는 준일이.
그러자 현이는 담배를 바닥에 버린채로 발로 짓눌러 버렸다.
그리고 이어 내뱉은 말.
“ 너한테 사과할 생각없다 ”
“ 니가 뭘 잘못했는데 ”
“ .......뭐? ”
“ 너 잘못한거 없어 ”
준일이의 말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물끄럼히 여유로운 얼굴을 쳐다보는 현이는,
이내 준일이가 두 번째 담배를 빼들자, 다시 입을 열었다.
“ 너......진짜 나쁜..... ”
“ 어, 나 진짜 나쁜새끼야. 제대로 봤다 ”
“ ....... ”
“ 난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것도 안듣고,
예전엔 니가 들은대로 걸레같이 살았어 “
이내 담배를 바닥에 툭 던져버리는 준일.
그리곤 한숨을 푸욱 쉬었다. 깊고 깊은 한숨. 그안에 묻어나오는 말.
“ 이런 걸레같은 새끼가.
그 깨끗한 얘가 좋댄다.
너 심정 이해가,
좋아하고, 지켜주고 싶었던 쪼만한 얘가.
나같은 새끼한테 손내민거.
나같아도 열받고, 죽이고 싶을거.......나도 이해해 “
시선을 땅으로 내리깔고,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 준일이의 낮은목소리의 깊은 어투.......
그런 준일이를, 현이는 아무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한없이 더럽게 취급하는 준일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근데......
나도 참으려고 했는데....... 그게 안돼.......
지깐엔 화낸다고 화내고, 욕한다고 욕해도.
나한텐 미치도록 이쁘고, 미치도록 좋아.......
막 그 내 품안에 꼭 들어오는 그녀석이,
나보고 이빨 다드러내놓고 웃으면,
진짜 죽을것같아.
적어도,
그녀석이 없다는건, 나한텐 죽을거 같으니까.
그 흔한 시시껄렁한 사랑이야기가, 나한텐 다 맞아떨어지니까
남들이 비웃고, 진부하다는 그 얘기들이, 희한하게도 다 맞아떨어지니까...... “
“ .......그만해 ”
“ 그녀석, 좋아해. 진짜 평생 안아주고 싶을정도로 ”
“ 그만하라고, 어차피 나한테 이래도, 우림이는 너 계속 만날꺼니까!! ”
“ 힘들어해 ”
“ .......뭐? ”
“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내가그렇게 안아주고 싶은녀석이,
힘들어해. 내가 어떻게 해줄수가 없어...... “
끝을 흐리면서 현이를 향해 애써 준일이는 빙그레 웃었다.
마치 스스로 너무 힘들고, 너무 괴로운 듯이.
그렇게 빙그레 웃었다.
그제서야,
입술을 깨무는 현이.
그리곤, 돌아서는 준일이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 너가.......너가 그런녀석 아니라는거......알고있었어.......
근데......그걸 부정하면.......넌 정말 멋진녀석이 되버리니까.......
우림이한텐 더 이상 나같은건 끼어들 수 없게하는 녀석이 되버리니까...... “
아무말없이 등을 보인채 서있는 준일이는,
잠시 뒤돌아 보지않았다.
근데,
뒤에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안들리는 상황.
준일이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이윽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현이를 보았다.
놀란나머지 바로 달려가 쓰러진 현이를 일으키는 준일이.
그리곤, 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이내 뒤에 엎히게 하곤,
양호실로 뛰어갔다.....
정신을 잃은채 준일이의 등에 업힌 현이를 보며,
복도의 아이들은 전부 입을 막았고,
이내 수군 거리기 시작했다....
“ 역시 고준일이 아까일 때문에 때렸나봐 ”
“ 진짜 나쁜새끼네.... ”
“ 더럽다잖아......재수없어 얼굴만믿고 깝치는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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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52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친구 ”
“ 왜 ”
“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려주겠나? ”
“ 잔말말고 따라와 ”
“ 도라지랑 미행하면 될거아냐! 왜 나까지 저자식뒤를 따라가야하는건데! ”
“ 쉿 ”
한참 걸어가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는 현이.
그리곤, 괜히 다른곳을 두리번거리는 둘을 발견하자, 기분나쁜 표정을 지었다.
계속 양호실에 있었는지 약간 피곤해 보이는 표정.
하지만 설마 끝까지 올까하는 생각에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문앞에 다다라서 이제 딱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문을 확 열어버리고 들어가는 두녀석.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살짝 벌린채 멍하게 서있던 현이는,
마치 자기들 집인양 가방을 내려놓고 쇼파에 털썩 앉는 두사람을 보고 있었다.
“ 너네 뭐야 ”
“ 야 저새낀 무슨 혼자살면서 집이 이따위로 크냐. 양심없네 ”
“ 권현, 문닫고 들어와 ”
“ ....... ”
기운없다는 듯이 체념하고 문을 닫는 현이.
그리곤 벌써 TV를 켠채 누워있는 한영이를 보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때, 저 멀리서 언제 갔는지, 벌써 주스를 마시면서 오는 준일이는 현이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 뭐 졸업앨범 이런거 없냐? ”
“ 그거 때문에 온거냐 ”
“ 어 ”
현이가 체념한 듯이 방으로 들어가선 한 책을 가지고와 탁자에 올려두자.
한영이는 먼저 그 앨범을 집어들어 한 장한장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발견했다는 듯이 크게 소리치는 녀석.
“ 우와!!!! 도라지다!!! ”
“ 풉 ”
“ 야 주스 그럴거면 먹지마. 왜 뱉으려고 그러냐..... ”
“ 얘 표정..... ”
“ 화났나 ”
“ 귀여운데 ”
그 심통난 표정의 우림이의 사진에게서 눈을 못떼는 두사람에게,
더 정보를 전해주려는지 넌시시 말하는 현이.
“ 지가 맘에 안드는 옷 입고왔다고 심통난거야 ”
“ 지금표정이랑 똑같애...... ”
“ 그러게 ”
재밌다는 듯이 빙그레 웃던 준일이는, 이내 현이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따라 들어갔다.
현이가 와이셔츠를 벗고 있자, 준일이는 마치 자기 침대인양 그 위에 누워버렸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침대옆에있는 무언가 하얀통.
그와 동시에 현이쪽에서 한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야~ 너 좀 놀았나보다? ”
한영이의 말에 곧바로 준일이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황급히 다시 옷을입은 현이를 볼수있었다.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상황.
상황파악도 못한채 한영이는 특유의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 이새끼 배에 칼자국 짱큰거 있어~ ”
이내 고개를 돌린 준일이는 그 하얀통을 정체를 알기위해 집어들었다.
그리곤 그곳에 써있는 영어를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통 알 수 없는 전문의학 용어로된 말들....
“ 뭐가 궁금한거야 ”
현이는 도대체 왜이러냐는 듯이 결국 질문을 던졌고,
준일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약통을 다시 자리에 내려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한영아 잠깐만 나가 있어주라 ”
“ 엥? .....뭐 알았어. 밖에서 기다릴게 ”
[ 덜컹 ]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흐르는 적막감.
방안엔 단 둘이 남아있었고, 그러자 기린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너 어디아픈거냐 ”
“ ......그런거 아니야 ”
“ 좀 이상했어. 맨날 학교에서도 좀 많다싶이 약을 먹질않나 ”
“ 너 나만 쳐다보냐 ”
“ 니가 내 시선이 가는곳에만 있었던 것 뿐이야 ”
준일이의 말에 대답을 하지않으면서 시선을 피하는 현이.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책상정리를 하는 모습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정확하게 듣고싶은 듯이 말을 꺼내는 준일이....
“ 아픈거라면.... ”
“ 그래, 나 병신이야 ”
준일이의 말을 뚝자르고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듯이 말을 내뱉은 현이는,
그말을 하고 나서도 무언가 힘든지 입술을 깨물었다.
준일이에게 등을 보인채로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뒤에 이어지지 않는 준일이의 목소리......
그러자 현이는 꾹 참아왔던 것처럼, 영원히 묻어두고 싶었던 것처럼.
힘겹게....힘겹게 한마디씩 꺼냈다.....
“ 진짜 이런말은 하기싫었는데....”
“ 무슨말 ”
“ 내가 왜 한국을 떠났었는지 알아? ”
“ ....... ”
“ 내가 어느날 달리기를 하는데
심장이 너무 아픈거야
다른애들이 벌써 날 앞질러서 가는데, 난 도저히 움직일수가 없는거야......
알고보니까......
내가 다른녀석들이랑 조금 심장이 다르더라구..“
“ 그래서 그것 때문에 간거야? ”
“ 응. 수술을 안하면 잘못하면 바로 생명에 위험이 올수도 있다더라고....
근데.....
벌써 그게 몇 년전인데.....
이게 진짜 고약한 병이더라고......
고쳐도 고쳐도......내 몸을 몇 번을 열었다 닫아도,
이건 도대체 완벽히 나아지지도 않는거야...... “
현이의 말에 놀란듯한 준일이의 표정.
계속수술을 했는데도 낫지 않았다는 말에, 설마 하는 목소리로 천천히 물었다.
“ 그럼......지금도....... ”
“ 금방이라도 나 열받게 하면 바로 갈지도 모른다? 하늘로...... ”
“ 너 그럼 왜온거야.....여기서 갑자기 무슨일이라도 당하면!! ”
“ 마지막 수술 남겨두고 왔어 ”
마치 초월한 듯한 현이의 표정.
마치 지금까지 슬픔에 견뎌와서 이런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표정.....
“ 죽을지도 몰라 ”
“ ......뭐? ”
“ 그 수술하면, 어쩌면. 영원히 숨쉴수 없을지도 모르고,
어쩌면......영원히 걸을수 없을지도 모르고......
어쩌면.....눈을 못뜨게 될 수도 있다는 거야........ “
“ 권현 ”
“ 마지막으로, 내가 가슴속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사람.
그사람 보고 싶었어.
힘든 내 모든 생활에서도, 그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던.
운동장 구석에 서서 얘들 뛰는것만 바라보던 내손을,
아무말 없이 잡아주던 그녀석을, 보고싶었어.
잠시동안이나마.....
잠시동안이라도....... 지켜주고 싶었어....... 웃게 해주고 싶었어...... “
“ 그래서.....체육시간에....... ”
“ 니가 던진공 맞고 저세상 갈뻔했다 ”
“ 난 그것도 모르고..... ”
당황하는 준일이의 눈을 보고, 빙그레 웃는 현이.
그리곤, 다시 슬픈 눈동자를 비춘채. 나지막히 말했다.
“ 결국......이렇게 됬는데....... 결국 그녀석한텐....... 짐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버렸는데.......
웃어주기는커녕, 지켜주기는커녕, 눈물만 잔뜩 흘리게 하고,
마음만 계속 속상하게하고.......힘들게 하고....... “
“ 아까 우림이도 자기가 한말 후회하고 괴로워 했어.
너한테 말도안돼는 행동했다고, 말도안돼는 짓 했다고.... “
“ 너무 깨끗하고 착한녀석이라....... 내가 옆에서는 것 조차 미안하고, 미안해.....
너같은 녀석은 아무것도 아냐. 나같이 비겁하고 약한 녀석이 더 더러운거야 “
“ 그렇게 말하는게 어딨어 ”
“ 근데, 이젠 괜찮아 ”
준일이를 향해 희미하게 웃는 현이는 이내 눈물 한방울을 흘렸다.
그 눈물을 볼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번져갔다.
오랜 추억에 대한 아픔인지, 오랜 사랑에 대한 아픔인지,
괴로움인지, 아쉬움인지........
기쁨일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 나보다 훨씬 괜찮은 녀석이 옆에 있어줄테니까......
내가 햇살을 막아주는 것 보다........너가 더 잘 막아 줄테니까.......
내가 아니어도.......누군가가 지켜줄테....우웁!!! “
갑자기 말을 잇지못하고 입을 손으로 감싼채 바닥에 주저앉는 현이.
그러자 준일이는 놀라서 그런 현이를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자, 황급히 부축해선 침대에 눕혔다.
그러나 멎질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는 하고 있었다.......,
준일이는 어쩔줄 몰라하다가,
이내, 그런 현이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마치, 자신의 다른모습을 보는 듯해서인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스스로를 한없이 비하시키고 낯추는 사람을
힘을 주려는 듯이 손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러자 희미하게 눈을 뜨고 준일이를 향해 힘겹게 한자한자를 건넸다.
“ 준....준일아....내 핸드폰.....3번....웁!!! ”
준일이는 황급히 옆에 있던 핸드폰의 3번을 꾸욱 눌렀고,
이어, ‘주치의’라고 뜨는 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마치 방금 일어났는지 어리버리한 목소리로 받는 한 여자.
준일이는 빨리좀 와달라고, 너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 여자는 말을 다 듣지도 않은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벌써 뛰어나간 듯이....
“ 그...그냥 119 부를까....아니다....그냥 병원으로.... ”
“ ......좀 괜찮아 진것같아....숨...숨쉬긴 ....힘든데....... ”
힘든 듯이 인상을 찡그린채 아무말 하지 않는 현이를 보며, 입술을 물어뜯던 준일이는,
그저 손만 꽉 잡아주고 있었다....
이 힘이라도 보태라는 듯이 꽉 쥐고 있었다.....
그러자, 이어진 현이의 힘겨운 목소리......
“ 나 아픈건.....우림이한텐 말하지 말아줘......적어도.....적어도 밝은모습만....... ”
“ 알았으니까. 말 좀하지말고.....가만히 있어봐 ”
“ 나 갑자기 없어졌다고......우림이 걱정하면......짜증내면서......다시 외국으로 갔다고...... ”
더 이상 말을 듣고 싶지 않은지 준일이는 그 꼭 잡은 손에 이마를 기댄채 아무말 하지않았고,
이어, 갑자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다.
“ 현아!!!!! ”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여자는,
현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도 제대로 뜨지못하고 있자,
황급히 가방을 열어 청진기를 꺼냈다.
그리곤,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이내 현이의 팔을 침대밖으로 꺼냈고,
하얗게 드러난 살에 보이는 혈관에 날카로운 주사바늘을 쑤욱 찔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점점 진정해 가는 듯한 현이의 모습.
준일이는 입술만 물어뜯는 채로 있었고,
이어 정말 현이가 잠들어 버리자,
그 주치의로 보이는 여자는 현이의 이마의 흥건한 땀을 자신의 수건으로 한번 쓸어주었다.....
“ ......이렇게 아플거 면서....한국오지말자니까...... ”
눈물을 글썽거리는 주치의.
그리곤 옆에 준일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채곤 벌떡일어났다.
마치 생명의 은인이라는 듯이 준일이의 손을 덥썩 잡는 이상한 어리버리한 의사.
“ 감사해요 옆에 없으셨다면, 정말 큰일날뻔했어요.... ”
“ 지금 상태가 많이 안좋은 건가요? ”
“ ......악화되있는 상태라 바로 출국하자마자 수술해야해요 ”
“ 외국에 다시 나가야 한다는..... ”
“ 이녀석이 우겨서 이렇게 왔는데......생각보다 빨리 악화되었네요...... ”
말을 마치고 주사를 맞고 잠이든 현이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 보는 여자.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착한녀석이에요. 한국 오기 몇 달전부턴 잠도 못잤었는데......그렇게 갈꺼면서...... ”
“ ...... ”
“ 근데, 어디서 많이 뵌분같네요 ”
“ ? ”
“ 어디서 봤지...... ”
여자는 아무말 없이 준일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준일이도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자,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벌컥 열려버린문!!
“ 권현!!!!! ”
문이 열린 그곳엔 오면서 몇차례나 넘어졌는지 다까진 무릎과,
눈물범벅이된 얼굴인
현이의 짝사랑,
첫사랑이 서있었다....
“ 현아!! ”
우림이는 들어와 바로 현이쪽을 향해서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현이는 잠이 든건지, 아니면 잠이 들길 바라는 건지 일어나지 않았고,
주치의는 그런 현이를 보자 우림이의 시야를 막아섰다.
“ 무슨일이시죠 ”
“ 현이네....어머니께서...... ”
“ 지금 방금 잠에 들었어요. 나중에 보도록 하세요 ”
“ 그치만....... ”
아직도 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주치의를 올려다보는 우림이.
그리고, 그제서야 옆에 서있는 준일이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기린아....... ”
눈물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림이가 올려다보자, 쓴웃음을 지으면서 우림이에게
밖에서 얘기하자는 식으로 손짓을 하는 준일이.
그리곤 밖에 나가자, 영문도 모르고 쇼파에서 제집처럼 편하게 자고있는 한영이를 보았다.
“ 기린아, 어떻게 된거야? 현이 많이 아프다며, 현이 아파서.... ”
“ .......아파 ”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이 잠시 입술을 깨무는 준일이는, 이내 마치 결심을 한 듯이 말을꺼냈다.
어쩌면 자신이 우려하고 있는 결과가 일어날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 너보려고...... 너 보려고 이번에 마지막 수술 앞두고 온거래 ”
“ .......마지막 수술이라니...? ”
“ 중요한 수술인가봐.......어쩌면....... ”
“ .......어쩌면 ”
“ 완전히 좋아질수도.......완전히 나빠질수도 있는....... ”
준일이 말을 듣자, 믿을수 없다는 듯이 입을 양손으로 막는 우림이는,
이내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않은채 눈만 크게 뜨고 멈춰있었다.
그리고 준일이는.......
그런 우림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부스스하게 일어나는 한영이.
하지만 이내 이 상황이 어색한지 둘을 말없이 바라봤고, 말한마디로 이 적막을 깼다.
“ 도우림, 가자 ”
“ ....... ”
일어서서 우림이의 손을 잡고 가자고 끌어당기는 한영이.
그런 우림이를 슬픈눈으로 쳐다보는 준일이.
그리고, 창백한 표정으로 입술만 깨물고 있는 우림이.......
“ 도우림!!!! 가자고!!! ”
“ 지한영. 그만해. 도라지 손목 끊어지잖아 ”
“ 고준일!!! ”
“ 미안해 ”
준일이와 한영이의 작은 실랑이 속에서 튀어나온 말.
우림이는 고개를 푹숙이고 있었고.
한영이는 그런 우림이의 손목에 힘을 점점 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우림이의 한마디에 그 손목을 잡은 손을 놓을 수 밖에없었다....
“ 아무래도.......현이 옆에 있어줘야 할것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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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이의 말에 잠시동안 아무말 없는 준일이는,
이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곤 우림이의 머리를 두어번 쓸었다.
“ 내일 학교에서 보자 ”
“ 미안......먼저가 ”
“ 그래 ”
짧고도 짧은 대화.
그리고, 준일이는 쇼파에 걸쳐져 있는 자기 마이를 들곤,
현관으로 나가버렸다.
이내 한영이도 그 뒤를 쫒았고,
우림이는 거실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episode.53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우림이가 몸이 아파서, 아무래도 몇일동안 학교에 안나올 것 같다.
과목선생님들 들어오시면 잘 말씀드리도록 “
아침종례를 끝내는 선생님의 기침소리가 그친뒤,
아이들은 몇몇은 졸린 듯 책상에 엎드렸고,
몇몇은 책을 빌리려는 듯 교실을 나갔고,
몇몇은 친구들과 어젯밤에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준일이는 일어나선 뒷문으로 나갔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로 천천히 계단을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다,
이내 옥상에 도착하자, 차갑게 식어있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린문밖으로는,
유난히 하늘은 맑게 개여 있었고,
준일이는 그런 하늘을 더 가까이 보고 싶은지 옥상난간쪽으로 걸어갔다.
1시간전,
교무실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 “고준일, 유감스럽게도, 너가 나온 약간 그런 사진이 학교 게시판에 올라왔다더구나,
더 웃긴건 평생 안들어오던 이사장자식이 그걸 봤다는 거고...... “ ]
[ “뭐, 나야 별로 신경은 안쓰지만.....아마도 이번엔 그게좀 이사회에서 뜰것같다.
그리고 너희 아버님귀에 들어가서 아버님이 널 유학보낸다고 하시더구나.... “ ]
준일이는 잠시 난간에 턱을 괴고 학교아래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곤,
잠시 봄바람인 듯한 것이 귓가를 스치고 가자,
누구한테 할 소린지 모를 말을 나직하게 속삭였다.
“ 너무 늦게 오지는 마라...... 안기다려 줄테니까 ”
.
“ 야 그거 아냐? ”
“ 뭐가? ”
“ 고준일, 결국 학교 옮긴다며, ”
“ 헐, 왜? 또 나에게 신이내린 선물이 또 사라지는 군화..... ”
“ 근데 솔직히 나같아도 쪽팔려서 학교 안다녀 ”
“ 남자라면 원래 그런사진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거야 ”
즐거운 뒷담화를 즐기고있는 여자아이들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아이들의 사이에서 마치 무지 친한친구인 것처럼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 부러워서 그러는거야? ”
“ 아....아니야 ”
“ 에이 부러워서 그러는 거 같은데~ ”
“ 그게 아니라..... ”
“ 근데 어쩌냐, 너희들은....... ”
얼굴을 한번 흝어보다가, 이내 아래를 쭉 흝어보는 한영이.
그리곤 무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 몸매도 씹창인데 ”
.
한영이는 여자아이들이 이내 얼굴이 새빨개 져선 욕도 못하고 교실로 들어가자,
바로 얼굴이 싹 굳어선 끝까지 그 뒷모습에 눈을 떼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좋은지 걸어가면서도 지나가는 얘들을 툭툭 치고다니는 한영이는,
이내 옥상문이 열려있자,
그 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 덜컹 ]
보이는건 옥상난간에 벽을 기댄채로 자고있는 준일이.
얼굴을 책으로 덮고 있었지만, 그 이기적인 기럭지는 보기 드물었기 때문에,
한영이는 단번에 바보같은 준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터덜터덜 걸어가선 그 옆에 앉는 한영이.
“ 병신새끼 ”
“ 반사 ”
“ ........헉 미친놈 ”
준일이가 자면서도 대답을 하자, 한영이는 순간 놀랐는지 몸을 움찔했다.
그리곤, 여전히 책을 얼굴에 덮고있는 준일이를 향해 말했다.
“ 도라지... ”
“ 지렁이 ”
“ 이빨........이 아니라!!!!! 자폐아냐!!! ”
이젠 좀 열받았는지 준일이가 덮고있는 책을 확 걷는 한영이.
그리곤, 준일이가 입가에 씨익 미소를 띄자, 자기도 쳐다보다가 이내 ‘미친놈’ 소리를 내며
책을 내던졌다,
“ 넌 뭘믿고 그렇게 잘생겼냐 ”
“ 글쎄 ”
“ 넌 뭘믿고 그렇게 다리가 잘빠졌냐 ”
“ 글쎄다 ”
“ 넌 뭘믿고 그렇게 놓아주냐 ”
한영이의 말에 천천히 눈을 뜨는 준일이.
그리곤 한영이쪽으로 짙은 색의 눈동자를 돌렸다.
하지만 또다시 이내 빙그레 웃으면서 한영이의 손을 살며시 잡는 준일이.
“ 너랑 사귈라고 ”
“ 지랄한다 ”
“ 왜. 나보다 누나가 좋다 이거냐 ”
“ 그게 아니라, 넌 날 너무 좋아하잖아. 난 튕기는 사람이 좋더라 ”
“ ......병신 ”
준일이는 한영이의 배를 한번 툭 치곤,
다시 누워 버렸다.
이후엔, 한영이도 더 이상 아무말 하지않았고,
준일이도 그저 눈만 감고 있을뿐,
봄바람만 살랑살랑 스쳐 지나갈뿐
시간이 잠시 멈춰 있는 듯 했다.....
***
“ 준일아 그냥 아빠말 듣지말고!! ”
“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할 일이었잖아 ”
“ ...... ”
“ 나 괜찮다니까 ”
앞에서 눈물을 뚝뚝 쏟아내는 친누나가 아닌, 누나.
물끄럼히 쳐다보다가 이내 내가 등을 토닥여 주자, 더 운다.
실감이 안나서 그런지, 난 아무런 기분이 안든다.
오히려, 이렇게 울린 내가 나쁜놈으로 생각된다.
“ 도련님, 아버님께서 찾으십니다. ”
“ 예 ”
“ 나도 갈래!! ”
따지겠다는 듯이 얼굴까지 상기 된 채로 내 팔에 매달리는 나이를 거꾸로 먹은 고유리.
난 그런 누나를 내 몸에서 널찍이 띄어낸 뒤에, 흐트러진 머리를 살짝 뒤로 넘겨주었다.
“ 안죽을테니까 걱정마”
“ .......그....래도 ”
“ 아버지랑 얘기 하고 올게 ”
난 이윽고 또다시 눈물이 눈가에 가득맺히는 고유리를 뒤로 한 채,
항상 들어가기 거북한 아버지의 방으로 걸어갔다.
[ 똑똑 ]
“ 들어와라 ”
언제나 그렇듯 자상하게 들리는 목소리.
난 그런목소리에 왠지모를 안도를 하곤 방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선 여유롭게 신문을 보시고 계시는 아버지.
“ 아버지 ”
“ 앉아라 ”
“ ...... ”
난 이 숨막힐 듯한 공기를 느끼며 아버지를 마주앉았고, 평생 피하고 싶었던 대면을 하게되었다.
언제나 따뜻하고, 자상하고 아껴준 아버지.
하지만 부담스럽고 껄끄러웠던,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던 그런 나의 태도. 그리고 마음
“ 그렇게 모델일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뭐냐 ”
“ 그건 제가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 회사로 들어오는게 싫어서 그러는건 아니냐 ”
사실 그랬다.
난 어떻게서든 빨리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고, 그때 찾아온 것이 바로 모델이라는 직업이었다.
‘고’씨의 성을 가진 고준일이 아닌, 다른사람으로써의 고준일.
그걸 꿈꾸느라, 아마도 내 꿈을 모델로 정해버린건 사실이었다.
“ 너 마음대로 해라 ”
모든걸 체념하는 듯한 말투였다.
난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툭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왜 나는 그토록 원했던 이 한마디가,
왜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 그런데, 너가 지금 꿈이라고 말하는 것을 도피처로 삼진 말아라.
적어도 너가 정말 하고싶은 일을 찾아보란 말이다 “
“ 그...건 ”
“ 니가 내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는건 나도 익히 알고있었다.
그러니 이번엔 한번 정말 멀리 벗어나 보거라 “
“ 유학.....말씀이십니까 ”
“ 그래 ”
짧고, 굵은 한마디.
난 그말에 아무런 대꾸를 할수없었다.
싫습니다, 라는 그 한마디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일이라 그런지, 전에는 그렇게 바랬던 일이어서그런지
난 갑자기 마음을 바꿀수가 없었다.
“ 가겠습니다 ”
“ 거기서 잠시 여러 가지 해보다가 너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보거라.
대학 편입도 생각해보고, 여러 가지 도전도 해보고..... “
결국, 또 인정이다.
인정에 자상함 까지 섞여있다.
내가 새어머니를 짝사랑했어도, 이사람을 넘을수 없는 이유는, 바로 저런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였는지도 몰랐다.
난 아무말 없이, 그렇게 아버지의 방을 나왔고,
왠지모를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기대 라는 것이 빠져나가자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자리에 난 분명 꿈이라는 걸 채워 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꿈안에는 한녀석도 포함되어있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episode.54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햇볕이 내 시야를 내리쬐고 있었다.
바람은 내가 그늘쪽으로 가도록 밀어주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담옆으로 기대어 앉았다.
처음 그녀석이 내 앞으로 떨어졌을 때가 기억난다.
워낙 강렬한 인상이라, 평생 잊혀지지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난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혼자 중얼거리더니 째려보는 이상한 녀석.
그냥 아마도 그땐, 세상엔 저런 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일년남짓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 상황처럼 난 여기 혼자 앉아있고, 그녀석은 내곁에 없다.
현이자식 옆에 눌러서 살생각인가 보다.
그자식 아파서 참는다.
손끝하나라도 건들이기만 해봐라,
아픈거든 뭐든 상관없이 미리 하늘나라로 던져줄생각이다.
그런데 이녀석은 소식 하나가 없다,
벌써 일주일이 다 되가는데, 일주일 내내 울진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녀석 울땐 내 품에 있어야 딱 그치는데, 평생 울꺼 다 울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는 작아가지고, 남는건 깡밖에 없는 녀석.
그리고 은근히 밝힘증이 있어서 뽀뽀해주는건 또 엄청좋아한다.
가끔 내 허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그런대로 귀여우니 참을만 하다.
근데, 지금은 내가 밝힘증이 생긴 것 같다.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다.
이젠 환각까지 보인다.
“ 기린아~~ ”
엄청난 햇빛 사이로 뛰어오는 한녀석.
난 인상을 찡그린채, 빨리 환각이면 사라지길 빌었고,
이내 그 작은녀석이 더 가까이 내앞으로 뛰어오자,
나도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순식간에 내 품에 안기는 이녀석을 놀란 표정으로 맞이했다.
아무말 없이 멍한 나에게 키가 닿지않자 가슴팍에 말로 ‘쪽’소리를 내며 뽀뽀하는 녀석.
“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
“ ...... ”
“ 뭐야. 너 안보고 싶었던 거야? ”
“ ...... ”
“ 이거이거 섭섭한데, 너 이러면 나 다시 가버린... 읍 ”
나는 약올리는 말만 쏟아내는 입술에 입을 맞췄고,
이녀석은 놀랬는지, 내 품안에서 딱 굳어있었다.
정말.
역시 나는,
이녀석 없이는 안될거 같다.
episode.55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그동안 나 몰래 뭐했어? ”
“ 꼭 그렇게 빤히 쳐다봐야돼? ”
오랜만에 놀러온 기린이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
왠지 안본사이에 더 말끔해진 게, 되게 잘생겨 졌다.
“ 왜 너 없는 사이에 여자만났을까봐? ”
“ 아니, 그런걱정은 안하지. 나같은 얘 옆에두고~ 그럴일은 걱정안해~ ”
능청맞게 기린이의 어깨를 툭툭치자,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녀석.
달라진 점이라면 이자식이 조금 더 자상해졌다는 점이다.
이상하다.
뭔가가 한단계 더 레벨업?
아니면 좀 성숙해진듯한 기분이 든다.
뭔가 마음속에선 이런 행복한 일이 있을수록, 걱정이 생겨난다.
“ 기린아 배 안고파? ”
“ 별로 ”
“ 난 배고파. 기린아 배안고파? ”
“ ......글세...”
“ 난 진짜 배고파서 미치겠는데, 너는 안고파?”
“ 그래!!! 나도 배고프다. 대체 뭐하러 물어본거야 ”
“ 뭐먹을까!! ”
“ .......너 요리못하잖아 ”
“ 응 ”
“ .......”
“ .......”
“ ......알았어 시켜줄게 ”
“ 와~!!!! ”
난 재빨리 쇼파에서 내려와선 내 핸드폰을 찾았고, 바로 폴더를 열었다.
근데, 이상하게 10통이나 와있던 부재중 전화.
그리고 전화해달라는 한영이의 문자들.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기린이가 뒤로 걸어와선 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곤 내가 핸드폰을 연채로 물끄러미 보고있자, 자기도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 탁 ]
“ 뭐야! 이리줘! ”
“ 나중에 연락해.나중에 ”
“ 왜! 뭔가 급한일이...... ”
“ 또 우리 방해하고 같이 놀자고 그러는거겠지 ”
내 핸드폰을 뺏어선 바로 배터리를 빼버리는 기린이.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기린이 말이 맞단 생각이 들어,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럼 니 핸드폰으로 피자시켜 ”
“ 오냐 ”
기린이는 내 핸드폰을 지 주머니 속에 넣었고, 난 별로 신경쓰지 않은채 쇼파에 털썩 앉았다.
피자를 시키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는 기린이.
아무래도 저자식 성형을 한 것이 아닐까???
괜히 질투가 났다....
할꺼면 나두 같이하지....
.
“ 야 너 진짜 대단하다 ”
“ 뭐가? ”
“ 혼자 어떻게 5조각을 먹냐 ”
“ 나 원래 마이 먹잖아 ”
“ ......그래그래 ”
한숨을 쉬곤 손을 닦으려는지 일어서는 기린이.
난 그리고 기린이가 뒤돌아서 걸어갈 때, 그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이 뚝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고,
바로 멀쩡한지 상태확인을 위해 집어들었다.
배터리를 다시끼니 요란한 진동을 내며 켜지는 나의 완전 오래된 핸드폰.
그리고 그 진동에 이어, 엄청난 메시지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상한 마음에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하고 바로 통화버튼을 누른나.
내가 그 버튼을 누르고, 통화음이 길게 가지도 않았는데, 바로 한영키의 긴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 야!!!!! ” ]
귀청을 찢을 듯한 목소리.
난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떼었다가, 다시 귓가로 가져갔다.
“ 왜!!! 너 남의 귓구멍에 고속도로 낼일 있냐!! ”
[ “ 왜 전화를 안받냐고! ” ]
“ 기린이가 받지말랬단 말이야!! ”
[ “ 준일이가? ” ]
“ 그래! 준일이가! ”
내 말에 잠시 아무말 없는 상대편, 그리곤 옆에 고유리가 있는지 지들끼리 쑥덕대고 있었다.
괜히 기분 나빠지는 이상황.
그때, 내 귓가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도우림 잘들어” ]
“ 엉 나 잘듣고 있어 ”
[ “ 준일이가 아마도, 나중에 말하려고 그러는가 본데, 지금 그 나중 일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 ]
“ 나중일이라니? ”
[ “ 그게말이지..... ” ]
“ 웅 ”
[ “ 준일이 내일모레, 한국 뜬다고 ” ]
“ 꼴통 뭐하냐 ”
[ “ 우림아, 내말 듣고 있는거지? 준일이가 아마도 너가 신경쓸까봐 말안하는건가본데... ”]
“ 누구랑 통화하는거야? ”
내 뒤로와선 핸드폰을 뺏어선 자기 귓가에 가져가는 기린이.
그리곤 한영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얼굴표정이 살짝 굳었다.
“ 야 지한영 너 누가 비밀발설하래 ”
[ “너 고준일이냐??? 너 미친새끼야 우림이 남을상황은 생각못하냐??? ” ]
“ 내가 알아서해 ”
[ “알아서 한다는새끼가, 몇일째 잠도 못잤다며!! 또라이새끼야!! ”]
“ 애정표현그만하고 나중에 보자 ”
[ “ 야!!! 고준일!!! ” ]
[ 탁 ]
“ 무슨말이야? ”
“ 뭐가 ”
“ 무슨말이냐고 내가지금 들은 말이 ”
“ 들은대로야 ”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기린이.
아 정말싫다.
저 내색하지 않는 표정.
분명 속에서는 엄청나게 큰 요동이 치고 있을거다.
그럴거다.
분명히.
지금 내 심장처럼.
“ 너 끝까지 나한테 말 안할생각이었어? ”
“ 아니 내일은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
“ 왜말해? 아예 그냥 인사도 안하고 가지?? ”
“ 우림아 ”
“ 내가 너한테 이것밖에 안돼는 거였어?? 어떻게 나한테....... ”
“ 그게아니라 ”
“ 뭐가 아니야?? 아주 너가면 내가 속시원하다~편하다~이럴줄알았냐?
하루전날 말하면, 그래 잘다녀와라. 몸조심해라
이딴말 해주길 바라는 거냐고!! “
“ 그런게 아니라니까 ”
“ 그럼뭔데!!! 내가.....내가 그걸 왜 다른사람 입을통해 들어야 되는건데!!!! ”
내가 마지막 울분을 토해내기도 전에 나를 품안에 넣는 기린이.
정말 생각했던 대로, 기린이의 심장은 거의 터질 듯이 뛰고 있었고, 난 그런 품에 안겨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미웠고, 너무 미웠다.
기린이랑 헤어지는 걸 생각해야하는 상황이 미웠고,
왠지 조금더 일찍 알지못한 것에 대해 미웠다.
정말,
머리가 깨져버릴 정도로,
미웠다.
“ 너니까 ”
기린이가 나를 더 꽉 안았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놔주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더 꽉 안았다.
“ 너라서, 말할 수가 없었어 ”
내 뒷머리를 끌어안은 기린이.
“ 너랑 헤어지는게 진짜 실감이 날까봐....... ”
나도 이제,
기린이의 심장소리에 맞춰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와,
그리고 기린이가 입을 여는 순간,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정말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나버렸다.
난 기린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기린이도 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비록 지금 우리가 이렇게 어린나이지만,
난 기린이를 내 일부로 생각 할 정도로,
기린이는 날 심장처럼 생각 할 정도로,
우린 사랑하고 있었다.
근데,
난 지금 이상황에서,
절대 기린이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잡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찌 생각해보면,
나중에 추억으로 이모든일들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말하듯,
그저,
스쳐갔던 첫사랑, 풋사랑이 될지도 모르는데......
난 기린이를 잡을수가 없었다.
가지말라고, 울면서 매달릴수도 없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기린이를 위해서도 아닌,
서로를 위해서.
episode.56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꿈,
그리고, 사랑.
그리고 우리.
난 오늘 남들보다 일찍 등교를 해서, 운동장 가로질러있는 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더 가까워 질수록,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
내일로 기린이와의 헤어짐이란 것이 급히 다가왔다.
나한텐 채 준비도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 헤어짐이란 녀석이 급하게 다가와 버렸다.
기린이는 말하지않아도, 분명 갈 마음이 굳게 정해진 것 같았다.
말을 아끼려는 것만 봐도, 틀림없이 이곳을 떠날것이란건 알수 있었다.
수많은 모델들이 오고가는 그 런웨이에서도, 한번의 흔들림없는 눈빛으로,
무언의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던 기린이.
자기확신.
강한 의지.
난 기린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막상 따라간다 해도,
분명 그곳에선 멀리 서있을 기린이가 있기에,
아무리 몸이 가까워도, 마음의 거리는 점점더 멀어질게 뻔하기 때문에.
난 서로를 위해 , 그 손을 그 품을 지킬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고등학교의 한낱 풋사랑으로 남을지도 모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를,
이별을 위해,
한 마디를 연습하려 하고 있었다.
“ 안녕......안녕 기린아 ”
***
어제 우림이가 울지도 않았던 터라,
왠지모르게 더 머리가 아파왔다.
확 터져버리지 않은 그녀석 성격때문일지는 몰라도.....
난 오늘 왠지 모를 정리를 하고 싶은 생각에 학교로 아침일찍 향했다.
정말로 사람이 한명도 운동장에 없었고,
난 잠시 교문앞에 멈춰섰다.
여기까지 오는 길만해도 셀수없이 많은 추억,
스쳐가는 도라지의 기분좋은 웃음소리.
처음 내 주머니에 불쑥 손을 넣었을때의 떨렸던 마음이.
갑자기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쩐지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했던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교실이 아닌, 장벽이라 불렸던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밝은 햇빛에 비쳐 더 하얀 피부로 보이는,
밝게 웃고 있는 우림이를 발견했다.
“ 우림...... ”
반가운 마음에 선뜻 내뱉은말,
그런데 난 말을 끝마칠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햇빛 때문에 보이지않았던 우림이의 눈물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입가엔 미소를 띈채로,
우림이는 밝게 인사하고 있었다.
“ 안녕......안녕 기린아 ”
episode.57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기린아!! ”
“ ....... ”
“ 야! 고기린! ”
“ ....... ”
[ 퍽!!!! ]
나는 책상에 앉아 아침부터 생각에 잠겨있는 기린이의 등짝을 엄청나게 세게때렸다.
근데 좀 소리가 큰 탓일까, 시선집중으로 우릴쳐다보는 반아이들.
뭐 이젠 숨기기도 귀찮다. 현이 때문에 그랬지, 아이들땜에 그런건 아니였으니까.
“ 아, 응? ”
“ 무슨생각해! ”
“ 아무것도 ”
“ 오늘 왜 지각했어? ”
“ 그냥 어쩌다 보니까...... ”
아침에 일찍와서 계속 기다렸는데 오질않던 기린이.
그리곤 7교시 종소리가 땡! 치자 그때서야 문이 드르륵 열렸다.
들어올때부터, 기린이는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 기린아 ”
“ ? ”
“ 우리 7교시 같이듣자~”
“ 같이듣잖아 ”
“ 아니아니 옆에서~ ”
“ 귀찮아 ”
“ 뭬야?? ”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녀석.
그리곤 또 뭔가를 계속 생각한다.
잠시 옆에서 뻘쭘하게 굴욕을 당한 나는 기린이의 눈부신 옆태를 노려보다가,
이내 당해내지 못하고 자리에 터덜터덜 걸어가서 앉았다.
망할 기린자식,
같이좀 앉으면 어디 덧나나.
벌써부터 정떼려고 저러는건가......
온갖 망상과 욕을 퍼부으며 아랫입술을 쭉내밀고 있는나,
그때, 내 옆에 무언가가 툭 던져진 소리가 났다.
책상을 보니, 7교시 문학책.
“ 자리 없지? ”
기린이는 내가 올려다보자, 빙그레 웃었고,
이윽고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근데 막상, 처음이다보니 뭔가가 부끄러운 이기분.
뭐랄까,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같은 기분?
“ 기린아~ ”
“ 수업들어 ”
이런......귀염둥이같은자식.......
난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책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열받지 않기로 했다.
***
꾸벅꾸벅 졸고있는나,
그때, 불쑥 기린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책에 무언가 끄적거렸다.
[ 내가 옆에있는데도 잠이오냐 ]
너무나 한심스럽다는 듯한 말투가 묻어나오는 저 글씨.
난 그런 글씨에 아주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아주었다.
[ 안 졸았거든 ]
[ 침이나 닦아 ]
[ 응 ]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기린이를 향해.
난 베시시 웃으며 손등으로 침닦는 시늉을 해주었다.
그러자, 잠시 엎드려서 웃음을 참는 녀석.
그리곤 다시 흠흠 소리를 내며 좀 빨개진 얼굴로 일어섰다.
난 바로 기린이책에다가 얼굴빨개진 기린그림을 그렸고,
기린이는 그걸보고 장난스럽게 살짝 인상을 찌뿌렸다.
그렇게 얼마동안의 끄적임.
마치 누군가가 유치하다고 웃을,
누군가가 추억이라고 넘길,
그런말을 적고 있었다.
내일도, 그리고 내일모레도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처럼,
언제까지나 이렇게 행복할것처럼.....
[ 기린아 배고프다 ]
[ 또 ]
[ 왜 또야. 지금 처음인데 ]
[ 맨날 배고프다며 ]
[ 응 사실. 맨날 배고파. 바나나우유먹고 싶어 ]
[ 나 가지말까 ]
잠시 그 마지막 문장을 들여다 보는 나,
마침 때맞춰서, 열린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흘러들어왔고,
마치 난 그안에 나와 기린이 둘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율학습을 하라는 선생님,
그러자 교실은 사각사각 연필소리만 들렸고,
난 여전히 그 마지막 글귀만 들여다 보고있었다.
그리곤,
그밑에 역시 한마디를 적었다.
[ 보고싶을 거야 ]
역시 아무말없이 바라보는 기린이.
그리고, 이내 나도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가득찰때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볼을 타고 눈물 한방울이 흘러내릴 때쯤
기린이가
아래에 있던 내 떨리는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리울거다.
분명히,
죽을 만큼 그리울거다.........
눈물샘이 다 말라버릴만큼,
심장이 한참 바닥까지 무너질 만큼.
괴롭고 힘들거다..........
episode.58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이게...... ”
“ 비행기 표야 ”
“ 고유리 ”
“ 꼭 같이 갔으면 좋겠어.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준일이....... 너 없으면...... “
하얀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 유리.
난 그런 유리를 보고, 아무말 없이 서있었고,
유리는 그런 내손에 비행기 표를 쥐어주었다.
내일이 벌써 기린이가 떠나는 날이다....
오늘따라 밤이 무지하게 까맣다.
지금 내 머릿속처럼,
온통 까맣게 별빛하나가 있질않았다.
평소때와 같은 이 하늘이,
나도모르게 너무나도 미웠다....
***
[ 공항 ]
“ 우림이 아직안왔어? 이자식 왜이렇게 늦어! ”
“ 잔뜩 짐싸가지고 오는거 아냐? ”
멀리서 보이는, 기린이와 한영이 그리고 고유리.
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 앞으로 뛰어갔고,
그앞에서 숨이차서 헉헉대고 있었다.
“ 헤......숨차다.... ”
“ 뭐야, 도우림. 너...... ”
“ 아니! 오는데 차가 너무너무너무 막히는거야!! 막 그래서 드라마처럼 막 엇갈리구 그럴줄알았어! ”
“ ....... ”
내가 잔뜩 숨을 참으며 쏟아내는 말.
그말에 기린이는 빙그레 웃었고, 나는 또 바보같이 헤헤거리며 웃었다.
“ 오늘 설마 핑계로 학교 땡땡이 친거 아니지? ”
“ .....들켰다 ”
“ 너 공부좀해, 그래가지고 누가 데려가겠냐 ”
“ 너가 ”
“ 아그랬지..... ”
“ 뭐야!! 또 기린이표 귀차니즘 표정!!! ”
또다시 투닥거리는 이때,
멀지않은 곳에서, 탑승을 재촉하는 승무원들..
난 잠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기린이의 양손을 꼬옥잡았다.
비록 내가 손이작아서 전부다 쥘수는 없었지만,
난 따뜻한 기린이의 손을 꼬옥 쥐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세상에서 제일 밝은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한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가,
이내 천천히 최대한 슬픔이 묻어나오지 않게
말했다.
“ 안녕 기린아 ”
“ ....... ”
어젯밤에 연습했던 한마디,
눈물에 젖고, 또 젖으면서 연습했던 그 한마디.
울면서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연습했던 그 한마디......
“ 왜 대답안해 ”
“ ....... ”
“ 대답해줘. 응? ”
“ ....... ”
“ 기린아..... ”
기린이 눈가에 점점 맺히는 눈물.
내가 잡은 손을 놓고 애써 고개를 돌리는 기린이.
아마도......기린이는 연습을 안했나보다.....
“ 준일아, 이제 들어가야돼 ”
애써 입술만 깨물면서 눈물을 참던 기린이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고,
이내 내 이마에 살며시 입술을 데었다....
내 어깨를 짚은 기린이의 따뜻한 손이 내 온몸을 주저앉게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난 웃었다.
입술을 뗀 기린이의 볼에 흘러내리던 한 줄기 눈물을,
내가 한손으로 천천히 쓸어주었다.....
“ 안녕...... ”
.
기린이는 문에들어서면서도,
나한테 손한번 흔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언젠가,
아니, 먼훗날,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그런 내 첫사랑에게,
난 짐을 덜어주려고 했는데,
기어코, 기린이는 그 짐을 가지고 갔다.
‘안녕’한마디를 힘들어 하며,
짐을 가지고 갔다......
내 손에 벌써 사라진,
벌써 스며버린 기린이의 눈물.
그제서야.
난,
심장이 무너져 버렸고,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참으려고 해봐도,
멈출수 없이.
무너지는 내 심장 주체할수 없이,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기린이얼굴을 쓸었던, 기린이 눈물을 스쳤던,
그 손을 쥐고,
그 사랑을 쥐고......
난 절제할수 없이,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다....
***
사랑했었다는 말.
사랑이었다는 말.
행복했었다는 말.
행복이었다는 말.
난 하지 않을 거야.
난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거구,
행복할거니까.
내 마음속엔,
영원히 너가 있을테니까......
episode.59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어제 기린이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오늘아침에, 난 날 안쓰럽게 쳐다보는 엄마에게, 그리고 오빠에게, 내 핸드폰을 없에달라고 부탁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엔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그리고, 따끈따끈한 토스트를 지각이라며 손에들고,
되지도 않는 뜀뛰기로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봄이 성큼 다가와선
벚꽃이 만발하게 피어있었고,
따뜻한 바람은 내 볼을 기분좋게 스쳐지나갔다.
오늘은 기린이가 내곁을 떠난지, 1일째 되는 날이다.
기린이가 내곁을 떠난지......
1일째 되는 날이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내 곁을 아름답게 스쳐갔다.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내 귀를 따갑게 했고,
난 부스스한채로 일어나선 기지개를 쭈욱 폈다.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잡담소리는 마치 내가 이 교실안에 혼자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난 그 착각속에서 문득 책상위로 내 눈길을 돌렸는데,
기린이가 썼던 이쁘지않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그 글씨를 손으로 쓸어보는 나.
가만히 그 추억을 손으로 쓸어보는 나.
그리고, 떠오르는 기린이의 기분좋은 미소.
책상밑에서 떨리던 내 손을 아무말 없이 잡아주던,
그 온기.
내가 눈길을 돌린 기린이의 자리엔 기린이가 없었고,
내가 눈길을 돌린 운동장엔 기린이가 없었다.
기린이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간 담장에도,
기린이가 없었다.
하늘은 저렇게 이쁜데, 난 기린이가 없었다.
봄이 왔는데, 난 기린이가 없었다......
내가 현이를 따라 갔다가 돌아왔을때 ,
이곳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던,
무언가를 그리워하던,
기린이가 이곳에 앉아있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장난스럽게 걸어갔는데,
날 보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울것같던 표정을한채로,
날 꽉 안아주었던,
기린이가 떠올랐다......
그때 무지 놀랐었는데,
무뚝뚝하기만 하던 기린이여서,
무지 놀랐었는데.....
아,
기린이가 이런 기분 이었겠구나......
기린이가 이렇게 슬펐겠구나......
기린이가 이렇게 날 기다렸겠구나......
근데 난 돌아왔잖아......
난 다시 왔잖아....
널 다시 안아줬잖아.....
근데 넌......
안올거잖아......
또다시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
또다시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에,
난 눈을 꼭 감았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안하기 위해 눈을 꼭감았다.
내가 보내놓았으니까....
내가 이러면 더 미안해 할 기린이니까....
난 눈을 꼭 감았다.....
근데,
눈을 감을수록, 더 선명하고 더 따뜻하게 떠올랐다.
그 따뜻한 것은 이내 눈물로 바뀌어서 흘러내렸고,
난 그렇게,
마르지 않은 눈물샘을 원망하며,
또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프게 뛰는 심장에 손을 얹은채로,
그리워서 어쩔줄 모르는 심장에 눈물을 얹은채로
또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아프게만해서, 내가 힘들게만 해서,
아픈상처에 다시 상처가 나고,
또 상처가 나던 기린이.
준일이.......
온갖짜증,
온갖변덕
전혀 그럴것같지 않은 얼굴로,
가만히 끌어안아주던,
그런 준일이.......
바보같이,
변함없이 날 보고 뛰던 그 심장을 가졌던.......
손끝하나만 닿아도 귀가 빨개지던 .........
공부할때마다 뒤에서 장난쳐도,
말없이 볼에 키스해주던.......
내가 울면 어쩔줄 모르다가,
안아주는 방법밖에 모른다고 하던.......
사실 난 그방법이 딱이었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품안에 안기면,
난 바로 잠에 들수있었는데........
이제 내가 너 손을 놓은채로,
살수있을까......
시간이 흐른뒤에도,
여전히 앙금처럼 내 가슴에 남아서,
넌 내 심장을 뛰게 할텐데....
내가 널 잊을 수있을까.....
벌써부터 못 참겠나보다....
이 인내심없는 도라지는......
벌써부터,
그리운가보다........
아마도....
평생 이럴 건가 보다......
episode.60(完)도라지와 기린이야기★
***
8년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런던거리.
저마다 무슨 사연일지 모를 얼굴을 한 사람들은 쉼없이 서로를 지나치고 있었고,
그 안에서 한 여자는 한 건물 앞에 서서, 입에는 햄버거를 문채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많이 약속에 늦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그 여자.
그러다가, 이내 저멀리서 바쁘게 뛰어오는 한 남자를 보자 바로 인상이 환하게 펴졌다.
하얀 정장을 입은채로 뛰어와선 그 여자앞에서 숨을 헉헉대며 잠시 땅을 본채로 심호흡을 하는 남자.
빙그레 웃던 여자는 이내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 왜 이렇게 늦어? ”
“ 야, 회사 앞에 와서 당장 나오라고 하는게 어딨냐!! ”
“ 내가 나오라면 나와야지 ”
“ 말 그렇게 하면 못쓴다. 너 ”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볼을 살짝 꼬집었고, 여자는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 밥먹으러가자! ”
“ 밥? ”
“ 응 한국음식 잘하는데 있는데 거기로 가자! ”
“ 야, 너 진짜...... ”
“ 지금 너 돈도 많으면서 째는거냐? 안돼겠네......이자식 ”
“ 알았어 알았어. 그럼 차 가져올테니까 우리회사쪽으로 같이가자 ”
“ 진작에 그럴것이지 ”
“ 내가 무슨 니 꼬봉이냐 ”
“ 그럼~ 우리현이는 도라지 꼬봉이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현이의 엉덩이를 도라지가 두어번 두드리자,
주변의 사람들은 재밌다는 듯이 킥킥 웃으면서 지나갔고, 현이는 한 두번이 아닌지,
이젠 한숨만 푸욱 내쉬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팔짱을 낀채로 런던시내의 사람들에 섞여, 어딘가로 향했다.
***
“ 아맞다. 근데 도라지 너 하던일은 잘 되가냐? ”
“ 에, 어려워 어려워 ”
“ 그래도 너한테 그게 제일 적성에 맞으니까 계속해 ”
“ 막 어제는 디자인 도안 가져갔는데, 다른 애들이 막 비웃는거야.
동양인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
“ 정말? 아직도 그런녀석들이 존재한단 말이야? ”
“ 근데 뭐 교수님한테는 무지 칭찬들었으니까 걱정마~ ”
정말 일이 재밌다는 듯이 도라지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고, 현이는 그런 우림이가 귀여운지
기분좋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요란한 진동소리를 내는 현이의 폰.
도라지는 바로 그 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자기가 확인했고,
이내 그 앞에 [ 형님 ] 이라고 뜨자, 인상을 찌푸렸다.
“ 으엑 ”
“ 받어. 화선이 형이 너 핸드폰 좀 사주라더라 ”
“ 또 잔소리할텐데 뭐...... ”
우림이는 한숨을 푹 내쉬곤 폴더를 열었고, 그안에서 역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야 우림이 바꿔봐 ”
“ 내가 우림이다 ”
“ 내가 이 녀석한테 전화하면 너랑 있을 줄 알았다 ”
“ 근데 왜 ”
“ 너 왜 이렇게 오라버니한테 퉁명스러워 ”
“ 내가 뭐 ”
“ 죽을래? ”
“ 아잉~농담인거 알면소~오라버니 근데 왜? ”
“ 이번에 나 패션쇼 티켓 생겨서 줄려고 했는데......뭐......너가 그러면...... ”
“ 사랑해 ”
“ 훗. 알았어 오빠가 그럼 현이 한테 표 보낼게 ”
“ 알았어~ ”
폴더를 닫은 뒤에 우림이는 너무 좋은지 들썩거리며 소리를 질렀고,
현이는 그런 우림이가 익숙하다는 듯이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곤 진정이 좀 되는 듯 하자 말을 건넸다.
“ 너 유난히 좋아한다? ”
“ 사실, 이번에 레포트 쓰는거 패션쇼 봐야하는거거든, 근데 막 돈두 없구.....빽두 없구..... ”
“ 니네 가족이 다 모델인데 ”
“ 아 그렇지~ ”
“ 그래도 난 너가 돌연변이인 줄 알았는데, 너두 결국 패션쪽으로 갔네? ”
“ 훗 당연하지. 같은피가 흐르고 있었다구~! ”
“ 또 들떴네 ”
“ 아참 근데 너희 어머니가 너 선 본다고 하시던데, 언제쯤? ”
“ 글쎄.......너 남자친구생기면 그때쯤? ”
“ 에, 평생 너도 솔로겠구나 ”
다시 기분이 좋은지 차에 내려 음식점에 들어가면서도 우림이는 방방뛰었고,
그런 우림이를 현이는 물끄럼이 보고 있었다.
그리곤 우림이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 적어도 내 앞에선 힘든 내색 해도 돼, 이제 그녀석 잊을때도 됐잖아 ”
그러자 빙그레 환하게 웃으면서 우림이가 대답했다.
“ 그 얘가 나고,
내가 그 앤데,
내가 어떻게 나를 잊어.
내가 어떻게 나를 내 가슴속에 묻어.....
난 죽을때까지 내안에 그애를 둘텐데........“
잠시 서로 말이 없어진 둘......
그 적막을 가르듯, 바람이 우림이의 긴 머리를 스쳐지나갔고,
이내 걸어가는 우림이 앞으로 커다란 벚꽃나무가 드러났다.....
우림이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추억이라도 보는듯한,
마치 행복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림이가 반갑다는 듯이 우림이쪽으로 하늘거리며 쏟아지는 벚꽃의 분홍잎들.....
우림이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벚꽃의 봄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잠시뒤,
우림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속삭였다.....
“ 다시 또 봄이네..... ”
***
일주일 뒤 한국
“ 자기야! 애기좀 봐줘! ”
“ 알았어 알았어 ”
8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듯한 고유리와 더 성숙해진듯한 한영이.
한영키는 쇼파에 앉아 양손에 쌍둥이를 낀채로 울음을 달래고 있었고,
유리는 부엌에서 데워진 젖병에 분유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기를 아우르는 한영이가 사랑스러운지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는 유리.
잠시 쳐다보던 유리는 이내 양손에 젖병을 든 채로 한영이의 옆에 털썩 앉았다.
“ 자, 어머니, 여름이를 받으시지요 ”
“ 봄이가 더 나한테 오고 싶어 하는데? ”
“ 둘 다 나한테 더 있고 싶어하거든 ”
“ 치 ”
“ 그럼 봄이 안고 있어 ”
우유병을 하나를 넘긴 채 봄이를 안아드는 유리.
그리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앞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 TV는 왜? ”
“ 아 오늘 맛집나오는거 봐야됀다구 ”
“ ......엄청먹을거 밝히네..... 살안찌는게 용하다 ”
신경 안 쓴다는 듯이 전원을 키는 유리는 이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고,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맛집 프로그램이 나오자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리모컨을 집어 들고 채널을 옆으로 막 돌리는 한영이.
그러자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영이를 쳐다봤고, 이내 소리를 꽥질렀다.
“ 뭐하는짓이야!! ”
“ 잠깐만 나 뭔가 본거 같애 ”
“ 뭘 봐 보긴, 괜히 또 축구보려고.......... 어머 ”
둘은 동시에 TV에 비친 화면을 보고 숨을 멈췄고,
이내 눈앞에 보인 누군가에게 초점을 맞췄다.
한 패션쇼의 모델들 사이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보이는 8년전 소식이 끊긴 도라지.
마치 무언가에 놀란 듯이,
한영이와 유리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손으로 막은채로 패션쇼의 옷을 하나하나 응시하는 우림이.
처음엔 우림이를 보던 한영이와 유리는,
어느새 역시 우림이가 응시하는 옷 쪽으로 눈길을 돌렸고,
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로 그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다.
옷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깨끗한 하얀색에 보랏빛의 물이 여기저기 들여 있었고,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청초했다.
누군가의 첫사랑인 듯,
누군가의 추억인 듯.
눈을 매료시키는 흰바탕의 옷에 퍼져있는 진한색의 보랏빛 물감들....
처음에 나온 모델들의 옷들은 걸을때마다 자연스럽게 접히는 것이,
마치 피기전의 꽃봉오리의 꽃잎들처럼 보였고,
점점 시간이 흐르고 그 옷들도 바뀌어 갈 즈음엔,
걸을때마다 아름답게 퍼지는 것이
마치 꽃봉오리가 점점 활짝 피어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깨끗한 작품들.
모두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봤고,
그 패션쇼의 카메라들조차 후레쉬를 터뜨리기 머뭇거리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의 나온 꽃이 런웨이를 걸으면서 활짝 펴질때쯤,
그 진하게 배인 그 보랏빛의 치마가
물결처럼 펴질때쯤.
한영이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너무 놀라 휘둥그레 저버린 한영이의 눈이 고정된 TV속의 화면.
그 화면은 모든 꽃들이 지나가고,
정면에 비춰진 한 이탤릭 체로 쓰여진 문구에 의해 채워져 있었다.....
[ To My Balloonflower ]
[ 나의 도라지에게 ]
하나둘 마무리를 위해 런웨이를 걸어나오는 모델들 사이로,
누군가의 낯익은 얼굴이 비춰졌고,
이어 아무말도 하지못한 채로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고인 큰 눈으로 환하게 웃는 한 여자가 잡혔다.
이어,
역시 아무말 하지 않은 채로
한 여자를 향해
보랓빛의 부케를 내미는
하얀 정장차림의 한 남자가 있었다.
유리가 볼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때,
한영이는 너무나 아름답게 웃고있는 도라지를 향해,
그런 그 작은꽃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는 한 남자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 저녀석들.......
결국은
다시
만났구나...... “
***
패션쇼가 끝나고,
화면은 보랏빛의 배경에
하얀 글씨로
쓰여진 문장들이 올라왔다.
못난 한 남자가,
안고 있어도 그리웠던 한 여자에게,
보고 있어도 자꾸만 보고 싶었던 한 여자에게......
이름만 손가락으로 쓸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게 했던 한 여자에게......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영원히 안아주겠다고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내 신부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To My Balloonflower ]
********
도라지와 기린이야기
The end......
그동안 많은 관심 가져주신 점,
그동안 계속 응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역시 좋은작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 black?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