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고향! 차암 편하고 좋더라 아이가? -
권다품(영철)
바다가 육지의 온갖 더러움을 포용해 준다 카더라 아이가?
어이, 고향도 안 그렇겠나?
고향!
'뺑뺑 둘러서 산빼끼 없는데, 비까번쩍한 조명도 없고, 야시같은 여자들도 없는데 뭐가 그래 좋노' 카는 사람이 있을랑강은 모르겠는데,나는 그래도 우짠지 고향이 좋더라꼬.
꼭 '이기 이래서 좋고 저기 저래서 좋다'고 똑부러지게 답은 못할 지는 몰라도, 나는 마 고향이 그냥 좋더라꼬.
우리 저녁만 먹으면 모이던 마을 앞 그 정자나무 아래 앉아서, 우리 어릴 때 소먹이러 가서 '사부자끼' 하던 평평하던 그 '솔리말리' 산도 올려다 보고, 묵찌빠로 온 산이 쩡쩡 울리도록 소리 지르던 '샘찬골'도 쳐다보고, 아침에 학교갈라꼬 나와서 '깔래'하던 동사껄도 돌아보고 ....
서가정 선배들캉 쌈 많이 하던 가찌실 아래 그 삼거리도 가보고.
또, 이 사람 썸씽 저 사람 썸씽 곳곳에 남아있는 '가찌실' 그 잔디밭도 돌아보고.
이제 동네 처녀 총각들이 없어서 그런지, 옛날 그 잔디밭도 없어져뿌고, 아카시아나무캉 밤나무들만 있더라꼬.
자전거 타고 우리 소래고디이(다슬기) 잡으러 갔던 '큰골캉'도 가보고.
그런데, 그 큰골캉도 요새는 마을 현대화 땜에 저 윗마을에서 정화조 물이나 부엌 오폐수들이 내려와서 그런강 소래고디도 없더라.
편리한 세상은 됐는데, 참 아쉽기는 하더라꼬.
참, 우리 어릴 때는 서가정 지나서 '논골'이라꼬 있었다 아이가 와?
그 당시에는 배고플 때라서, 10월 묘사 때 되마 온 동네 묘사떡 다 얻어먹고, 논골 그 먼데까지 가서도 묘사떡 얻어 물라꼬 줄 쭈욱 섯던 그 논골.
앞에서 줄 서서 받아 먹어놓고 동생한테 딱 숨겨서 갖고 있으라 카고, 다시 줄 서서 한 번 더 얻어먹기도 했고.
요새는 그 논골 쪽 산비탈도 길을 닦아가꼬, 동네 사람들, 특히 하우스 하는 아지매들 걷기 코스로 좋아졌더라꼬.
고향의 그 산과 들, 강과 개울들이 전부 다 내 마음에 짜안 하게 남았더라꼬.
도시 사람들이라꼬 그런 정서야 통 없기야 하겠나마는, 나는 이런 추억들 땜에, 시골을 고향으로 두고 사는 사람들은 그런 정서들이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들하고는 쫌 안 다르겠나 싶더라꼬.
이런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가슴 어딘가에는 아직도 어릴 때 고향에서 묻어 지켜온 그 따뜻함과 푸근함은 안 남았겠나 싶더라꼬.
그래서, 바쁘게 사는 가운데라도 어딘가 시골 정서가 풍길 것 같고, 그런 정서 땜에 한 번 더 미소짓다 보이끼네 뭔가 조금의 여유도 생기고.
사회생활 할라카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가려가며 만날 수야 있겠나 어데.
먹고 살라카마 성질 더러운 사람도 참고 만나야 되는 날도 안 있겠나?
그라고, 요새는 다 배워서 그런지, 객지 사람들도 옛날처럼 그렇게 삭막하고 막 사는 사람들이 드물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보이끼네, 도시에서만 자랐다 카는데도 심성이 바르고 멋진 사람들도 많더라꼬.
속도 깊어서 친구 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그래도, 감추고 싶은 밑천을 다 깔라카이 쫌 그렇더라 아이가 와?
고향 사람들이야 숨길라카이 내 밑천을 다 알고 있는데, 우째 숨기겠노?
고향 사람들은 지나 내나 숨길 끼 없이 솔직하게 만날 수 있어서 안 편하겠나 그쟈?
살다보마, 또 술 한 잔 마시다 보마 실수할 수도 있다 아이가?
그런데, 고향 친구들한테는 우짠지 실수 쫌 해도 이해해 줄 것 같은 그런 푸근한 생각이 드는 거 아이겠나?
그런 이해력이 묻은 사람들이 고향 사람 아이겠나?
내가 실수를 쫌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가 올라오고, 또, 친구를 덜 부끄럽게 할라꼬 일부러 농담으로 희석시켜주기도 하고.
실수한 친구가 미안해 할까 봐, 일주러 같이 실수해 줄 줄도 알고, 다 같이 웃음으로 무마시켜줄 줄 아는 속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고향 사람 아이겠나?
친구들아, 나는 쪼매이 더 자주 만났으면 싶더라꼬.
인자 옛날에 힘줬던 목에 힘 뺄 나이도 됐고, 고향 사람 만나면, 추억에 젖어서 어릴 때 모이기만 하면 하던 그 실수들도 다시 해보고.
인자, 그래 만나는 기 더 편하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아이가?
좋다 아이가?
"야 이 인간아, 어릴 때도 그라디마는 그 버르장머리 아직까지 못 고쳤는 가배? 저 인간은 저 버릇 못 고친다. 죽을 때도 안 저럴랑강 모르지." 해놓고, 다 같이 그 때로 돌아가서 배잡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고향 사람 아이겠나?
혹시라도 쪼매이 서운한 기 있어도, 소주 한 잔 마시고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를 때, "노래도 못 부르는 기 이리 내놔라." 하며 마이크 뺏아도 기분 안 나쁘고, 그렇게 마이크 뺏겨도 엉덩이 막춤 출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고향 사람 아이겠나?
나는 가끔 그런 거 돌이켜 생각하마 눈가에 웃음이 달리더라꼬.
우리 인자 쫌 편하게 살아야 안 되겠나?
골치아픈 일 많은 세상인데, 뭐 할라꼬 우리까지 그런 실데없는 일로 맞니 틀리니 다투겠노?
성격이 꼭딱스러워서 내 실수를 마음에 따악 담고,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는 할 수 없고.
어이, 우리는 저 집에 숟가락이 몇 개고, 누구 집에는 아부지 엄마가 잘 싸우고, 또 누구는 소넉이러 가서 놀다가 맨날 남의 밭에 소 들어가서 밭 절단냈다고, "소먹이러 가서 소 안 보고 뭐 했느냐"고 아부지한테 후두끼 나온 것도 다 안다 아이가?
다 아는 사람끼리는 그래도 쪼매이 덜 안 부끄럽더나 와?
또, 인자 추억으로 웃을 수 있는 나이도 됐고.
어릴 때부터 좋고 나쁜 것들을 다 겪고 봐온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들보다는 뭔가 이해가 쉬울 것도 같고....
고향 사람이 그래서 편하다 카는 기지 싶어.
고향!
차암 편하고 좋더라 아이가?
나는 좋던데.
어이, 언제 또 얼굴 보자.
술도 한 잔 하고 ....
자주 보마 더 좋고.
2024년 11월 11일 오후2시 10분
온 천지추억이 묻은 그 시골 고향에서 다품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