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만력 12년, 선조 17년(1584년)
주청사(奏請使) 황정욱(黃廷彧)을 보내어, 완성된 《대명회전(大明會典)》을 발급해서 먼저 내린 은명(恩命)을
이행하라는 등의 내용을 가지고 명(明) 나라 황제에게 아뢰니, 예부 상서(禮部尙書) 진경방(陳經邦)의 제본
(題本)에 이르기를, “저네들의 선조에 관한 기록이 잘못되어 더럽혀진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를 빨리 씻고자
정성을 다해 호소하면서 간절히 은혜를 끊임없이 바라는 사람들의 심정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해사(該司)에 알아보니 칙서를 내린 전례도 있습니다. 본부(本部 예부)에 어명이 내린 후, 한림원(翰林院)에
공문을 보내어 칙서를 한 벌 지으라 해서, 지금 온 배신(陪臣)에게 내주어 받들고 귀국하여 그들 군신들의
소망을 위로해 줘야 할 것입니다.
또 《대명회전》의 본국(本國 조선을 말함) 항목 밑에 고쳐 편찬한 글은 아직 어람(御覽)을 받아 간행하지 않았
으니 초본(抄本)을 줘야 하겠습니다.” 하다. 성지(聖旨)를 받들어 칙서를 베끼어 써서 왕에게 주었는데 칙서에,
“앞서 그대는 그대 조부인 태조(太祖)의 성(姓)과 휘(諱)가 오랫동안 잘못 쓰여져 왔다고 여러 차례 누명을
씻어주기를 청해왔기에, 새로 편수하는 《대명회전》에 사실을 상세히 기재하라고 이미 허락했다. 그런데
편찬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지금 그대가 또 전의 청을 되풀이하니, 특별히 사관(史館)에 명해
베껴 보여주노라. 이제 새로 편수하는 《대명회전》원고의 기재에 의하면 운운. 앞에 보인 항목의 사유는
그대가 본래 아뢰어 온 그대로다. 책이 완성되면 어람을 거쳐 반포하는 날을 기다렸다가 관원을 시켜 그대의
나라에 보내주겠다. 먼저 유시(諭示)하여 알려주노라.” 하다. 고사(考事)에 나온다.
[주-D001] 제본(題本) :
중국 명 나라 때의 제도로 신하가 황제에게 드리는 장소(章疏)이다. 공무에는 제본을, 사사에는 주본(奏本)을
써 왔다. 여기서는 예부의 공무이므로 예부 상서가 제본을 써서 조선의 청원에 대한 처리 방안을 황제에게
알린 것이다.
[주-D002] 저네들의 선조에 …… 사람들의 심정 :
종계변무(宗系辨誣)에 관한 일로 조선 초기부터 극히 말썽이 되어 왔다. 명 나라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의 태조(太祖)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기재되어 있어 조선이
여러 차례 그 정정을 요구해 왔다. 이인임은 고려말에 배명친원(排明親元) 정책을 내세운 사람이다.
《대명회전》의 개수를 계기로 그 정정을 보게 된 것이다.
[주-D003] 성(姓)과 휘(諱) :
본래는 태조의 성명을 바로 썼는데, 여기에선 그를 피해서 ‘성과 휘’라고 한 것임.
ⓒ 한국고전번역원 | 차주환 신호열 (공역) |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