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통해 물체 움직이는 기술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2000년 초 연구 시작한 신형철 교수 국내 BMI 독보적 존재
6월 정부 지원사업 선정 … 궁극적 목표 장애인 재활 돕는 것
“생각대로 하면 되고~♪”
마린보이 박태환이 부른 경쾌한 이 로고송. 단순히 여유있는 콧노래가 아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이 순간에도 연구실 불을 켜고 불철주야 매진하고 있는 `뇌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생각을 통해 물체를 움직이는 기술을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 Machine Interface, BMI)'라고 부른다. `뇌'와 뇌를 모방해서 만든 `컴퓨터' 사이에 정보교환이 일어나게 만든다.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어버린 장애인은 의족에 의지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비슷한 모양만 갖췄을 뿐 활동에 제약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BMI 기술이 보급되면 새로운 삶이 열린다. BMI 기술이 사용된 `기계 다리'는 장애인의 뇌에서 나오는 신호, 즉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신형철(54) 한림대 의대 생리학과 교수는 국내 BMI 연구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의 BMI 연구는 올해 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발표한 `10대 미래유망기술' 가운데 첫 번째로 꼽혔다. 의수나 의족등 인체 보조장비로 실생활에 활용폭이 넓고 수요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신형철 교수의 `뇌'도 어린 시절 천재였을까?
■상상력이 인도한 생화학도의 길
신 교수의 고향은 경북 봉화군 수식면이다. 신(申)가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자, 1980년대 말에 전기가 들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전 학급이 6개인 수식초교에서 4학년부터 대구에 있는 학교로 옮겼다. 대도시로 온 `촌놈'은 적응도 못하고 꼴찌를 했다. 그래도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간 곳이 있었다. 바로 만화방. `뿔'과 같이 로봇을 주제로 한 만화를 보느라 어머니께 강제로 붙잡혀 집에 가곤 했다.
집주인이 전기상이었던 덕에 다양한 재료로 만화에서 본 로봇을 흉내 내어 놀았다. 1968년, 집에서 11만원에 구입한 흑백 TV는 공상 과학영화 `요괴인간'을 보여줬다. 유전공학 기술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벰, 베로, 베라 세 명의 인조인간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주인집 방에 있던 공상과학전집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시골 출신이 많아 안전하다는 큰삼촌의 추천으로 서울 용산중·고에 입학했다.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 삶을 공부하는 철학, 인간과 사회를 계도하는 종교인 등을 놓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뇌'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유일하게 생화학과가 설립된 연세대에 입학했다.
왜 자연과학이었을까. 자연 속에서 놀았던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은 아니었을까. 연날리기, 대나무로 물총만들기, 시골골프인 자치기, 벌집 쑤시기 등등 30가지를 나열했다. 자연 속 친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장구벌레, 여치, 쇠똥구리, 모래무지, 물총새 등등 쉴 새 없이 나열하며 하는 말. “이 모든 기억을 BMI 기술로 컴퓨터에 다운받아서 영화처럼 보여드리면 편리하고 좋을 텐데요!”
■`한국의 BMI 연구' 개척자
실망스럽게도, 생화학과 교과목에는 `뇌'에 관한 것이 없었다. 미국 대학원에서 제대로 `뇌'를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1987년 미국 사우스텍사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하네만 의대 췌핀 교수 밑에서 1989년까지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1990년대 말,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 김성준 교수가 찾아왔다. 과학재단 산하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ERC)를 준비하며 BMI 기술과제를 부탁했다. 이 시기, 신형철 교수를 지도했던 췌핀교수와 같은 연구실 출신인 니콜레스 듀크대 교수가 원숭이로 BMI 기술을 연구한 논문을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성준 교수는 “인적관계를 잘 만들어서 한국에서도 BMI 연구를 출발시키라”고 설득했다.
공학의 공(工)자로 몰랐지만 연구과제가 떨어진다니까 덥석 뛰어들었다. 겁이 났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경북대 전기전자공학과 포항공대 정보통신 석사 출신인 김상억 박사가 함께 연구하고 싶다며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2000년 초부터 쥐를 실험동물로 BMI 연구를 시작했다.
■ `개' 접목한 연구로 미국·유럽 추격
미국은 인간에 가장 가까운 원숭이로 실험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이다. 원숭이 개체수와 전문인력 부족, 막대한 비용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 1월 의회가 `뇌 10년 법(Decade of the Brain)'을 선포하고 국가적으로 뇌 연구에 착수해 세계 뇌 분야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원숭이 실험으로는 10년을 앞서간 미국 유럽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그래서 2006년부터 눈을 돌린 실험동물이 개(犬)다.
인간의 반려동물이면서도 서구권에서는 문화적인 차이로 실험동물 사용이 불가능해 세계 뇌연구의 `틈새'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무선전송 BMI칩이 이식돼 사람과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말하는 강아지' 복술이를 선보였다. 칩 개발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그리고 지난 6월, 지식경제부 지원 `바이오닉 인터페이스 기반 신경정보제어기술' 연구사업에 선정돼 2012년까지 1단계 연구를 진행하게됐다. 한림대 총괄로 서울대 연대 의용공학부 카이스트등 11명의 교수가 참여한다.
앞으로 3년 동안 배뇨장애 조절 및 통증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2단계에는 산업체와 함께 실제 임상에서 활용 가능한 뇌신경질환 시스템을 개발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 재활을 돕는 것이다.
■ 미치지 않고서야 미칠 수 없다 (不狂不及)
지방대에서 연구하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열정있는 한국인 대학원생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BMI 연구에 관심을 가진 대학원생들도 부모 친구 연인의 반대로 지방대 진학을 포기한다.
자연계열과 의과대를 졸업한 인재들이 모두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빠져나가는 현실을 보면 한국 과학계의 미래가 암울하게도 느껴진다.
그 빈자리를 중국 러시아 출신 유학생들이 일부 채우고 있지만,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학문 간의 융합적인 공동연구가 미국처럼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 대학의 분위기. 자연·공학·의학계열간의 대표적인 융합연구인 BMI에 함께 연구할 교수진을 찾다 보면 `그게 우리 분야입니까?'라는 벽에 부딪히곤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타 계열 교수를 찾아가 읍소(!)하다시피 매달린 끝에 이제는 같은 마음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홍원 원무호 허성오 이윤렬 송동근 강태천 교수들도 큰 힘이 된다.
그는 미국 박사과정 시절 국제학생회장을 맡았다. 유학생들이 `고학력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항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며 한국에이즈퇴치연맹 활동을 해 1996년 4월 강원지회까지 만들었다. 1999년 한글문화연대 창립멤버로 방송인 임성민 정재환씨와도 활동했다. 취미는 시 수필 조각 그림 공예 등등. 모두 보통사람들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왜 장애인 재활을 BMI 연구의 최종 목표로 삼았을까.
신형철 교수는 “자신은 무결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심각한 장애인이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또 “매트릭스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등 SF영화에서 본 인간들처럼 지구에 갇혀 있지 않고 광대한 우주로 나아가는 신인류를 상상해 보는 건 어떨는지요”라고 덧붙였다.
■한림대 신형철 교수
△경북 봉화군 수식면 출생(1955년 12월13일)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1982년)
△미국 사우스텍사스대 세포생물학 박사(1987년)
△미국 하버드 의대 강사(1989~1992년)
△한림대 의과대 부임(1992년)
△한국 에이즈퇴치연맹 도지회장(1997년)
△한글문화연대운영위원, 생활속의 신지식인 부회장(1999년)
△대한 생리학회 정보위원장 (2001년)
신하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