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권 교 회 론
교회론(Ecclesiology)은 교회와 은혜의 수단에 관한 진리들을 정리하여 아래와 같은 주요 주제들을 다룹니다:
교회의 명칭, 교회의 본질, 역사적 고찰, 교회의 구분, 교회의 속성, 참 교회의 표지, 현대교회의 문제, 교회의 권세, 교회의 임무, 교회의 조직과 정치, 교회의 직분, 하나님의 말씀, 성례(세례와 성찬), 기도.
신약성경은 여러 책에서 교회론에 관해서 다룹니다.
에베소서: 교회의 본질, 속성들,
고린도전서: 교회의 문제들, 성례,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유다서: 이단 배격,
사도행전: 교회의 사명인 전도,
고린도후서: 사도직, 목사직,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목사, 장로, 집사의 자격과 임무
제1장: 교회에 관하여-1
제1절 교회의 명칭-1
성공회의 어느 신부는 교회의 한자어 뜻이 ‘가르칠 敎’와 ‘모일 會’ 즉 가르치는 모임이니까 교회의 의미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단지 예배드리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여러 기능을 행하는 곳이며, ‘교회’(敎會)의 ‘교(敎)’가 가르친다는 뜻 외에 종교라는 의미도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회는 가르치는 모임이라기보다 ‘종교를 믿는 자들이 여러 기능을 행하는 모임(會)’이라는 뜻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라는 영어 church는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인 헬라어 퀴리아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1. 구약성경에서의 명칭
출애굽기 12장의 전반부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유월절 규례를 가르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 중에서 6절을 봅니다.
[출출애굽기 12:6] “이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이달’은 ‘아뷥’月이라고 하는 유대력으로 1月인데,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니산’月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태양력으로는 3, 4월에 해당합니다.
이 말씀에서 ‘회중’은 히브리어로 ‘카할 에다’입니다.
‘카할’은 ‘부르다’라는 뜻의 ‘칼’에서 나온 말이고, ‘에다’는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다, 즉 집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카할 에다’는 지정된 장소로 불러서 모인 집회라는 말입니다.
[신신명기 4:10 전반절]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라는 말씀의 ‘모으라’도 ‘카할’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역 성경(LXX)에서는 ‘카할’을 불러냄 또는 회중이라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로, ‘에다’는 공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쉬나고게’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70인역 성경에서 헬라어로 해석한 ‘카할 에다’는 ‘불러내서 모인 공회’라는 뜻으로 교회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설명하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단어를 인용해서 설명하는 것은 성경을 기록할 당시의 이스라엘 언어인 히브리어나 그리스 언어인 헬라어의 뜻을 알면 성경을 이해하기가 조금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알면 조금 더 이해하기 좋습니다.
원어의 뜻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우리말에는 분명하게 표시하지 않는 인칭이나 수, 시제 같은 것이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에는 분명하게 나타낸다는 차이점도 원어나 영어를 찾아보는 이유입니다.
우리말 맞춤법을 보면 명사를 복수로 사용하는 예가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맞춤법에 맞지 않고 ‘많은 사람이’라고 써야 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영어는 단수냐 복수냐를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시제도 분명하게 구분을 하는데, 헬라어에는 독특하게 미완료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완료형은 과거부터 해오던 것이 완료되지 않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확장하면 앞으로도 계속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에서 ‘계시니라’는 말의 헬라어는 ‘에이미’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미완료형입니다. 미완료형은 과거에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완료되지 않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니까, 말씀은 과거 즉 태초에 계셨는데,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시고 있고, 지금까지만 계시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계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인칭대명사가 거의 없습니다. 대개 나, 너, 우리, 너희라는 말이 없고 동사에 인칭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동사에 따라서 주어가 1인칭인지 2인칭인지, 단수인지 복수인지를 가립니다.
예를 들면, 우리말로 ‘내가 교회에 간다’라는 말을 ‘내가’가 없이 ‘교회에 간다’로 씁니다. 누가 가느냐 하는 것은 ‘간다’가 1인칭 단수형이면 ‘내가 교회에 간다.’이고, 2인칭 복수형이면 ‘너희가 교회에 간다’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면서 하인들에게 한 말인 [창창세기 22:5]의 개역성경을 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개역성경은 우리말로 번역하면서는 우리말 용법대로 인칭대명사를 빼고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만 했고, ‘돌아오리라’라는 동사가 수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이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가서’ ‘경배하고’ ‘돌아오리라’라는 말이 모두 1인칭 복수형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모두 1인칭 복수형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서’ ‘우리가 경배하고’ ‘우리가 돌아오리라’가 됩니다.
영어 흠정역 성경 즉 King James Version을 보면
“I and the lad will go yonder and worship, and come again to you.”로 번역했습니다. “나와 사내아이가 저기로 가서 예배드리고 너희에게로 다시 오리라.”라는 말인데, 영어의 특성상 come again의 주어는 앞의 ‘나와 사내아이’가 되니까 ‘나와 사내아이가 다시 너희에게로 오리라’라는 뜻입니다.
NIV 영어 성경은 ‘We will worship and then we will come back to you.’ ‘우리가 경배하고 그 후에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로 써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돌아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시했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개정역 성경에서는 개역성경과 달리 이 말씀을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게 무슨 차이입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삭은 번제로 드렸으니까 혼자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히브리어로 1인칭 복수형 동사로 쓴 것을 무시하고 그냥 내려온다고만 번역을 했기 때문에 혼자 내려오는 것인지 둘이 내려오는 것인지를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이나 영어성경, 우리말 개정역은 아브라함이 혼자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즉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내려오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것이니까 결코 둘이서 내려올 수 없는데 둘이서 내려오겠다고 말한 것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예견했다거나, 나아가서 부활의 신앙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에서 원어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모든 단어를 그렇게 찾아볼 필요는 없지만 몇몇 중요한 단어는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수, 성, 시제,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원어를 찾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단어들은 목사님들이 히브리어나 헬라어, 영어를 찾아보고 특별한 뜻이 있다면 설교 중에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교회’라는 뜻을 가진 구약성경의 용어는 ‘카할’과 ‘에다’인데, 이 두 말의 차이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 말들은 흩어져 살고 있든지 모여 있든지 간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데, 한글 성경에는 ‘회중, 총회’로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