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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황 순 원
쇳네는 아버지가 데릴사위로 정해 준 남편이 그저 무섭고 싫기만 했다.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니 따랐을 뿐, 그리고 보아하니 아무개도 그랬으니 자기도 그럴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밤이면 남편과 한자리에 들었을 뿐. 나이 열다섯에.
쇳네 아버지가 쇳네의 남편으로 데릴사위 동이를 맞아들인 데는 무어 사내자식이 없다든지 쇳네가 딸자식으로 그다지도 살뜰해서가 아니었다. 집안에 여인이 쇳네 혼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같이 늙던 마누라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나 맏며느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쇳네 아버지 자기의 기력이 그처럼 쇠퇴한 때문도 아니었다.
쇳네 아버지로 말하면 육순이 지났어도 오히려 정정하였다. 그 독특한 목소리도 여전히 온 동네를 뒤흔들었다. 쇳네 아버지는 밖에 나간 집안 식구를 부를 때에는 앞마당 한가운데 서서 아래위쪽을 향해 이름을 한 번씩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요새 와서도 꽤 길쭉이 생긴 동네 어느 구석에고 안 들리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별명인 호랑이영감의 면목도 뚜렷이.
강직하고 고집센 것도 그대로였다. 근하고 끈끈하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에 들어, 앞 개울둑 임자 없는 초평을 일구어 오늘날의 훌륭한 밭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쇳네 아버지였다. 처음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아무래도 미쳤거니 했다. 사실 그것은 미친 사람의 짓이었다. 강 쪽으로는 강둑을 높여 웬만한 장마에도 물이 넘지 않도록 하고, 그 밑에다 제대로 낟알을 심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밭 모양을 만들어 놓았을 때, 정말 동네 사람들은 놀라는 데만 그치지 않고, 쇳네 아버지에게 어떤 무서움까지 느꼈던 것이었다.
그 뒤에도 쇳네 아버지는 그곳을 다듬고 다듬어 낟알 잘 되기로 이름난 오늘날의 밭을 만드는 한편, 쌓아 올린 강둑에다는 띠와 억새풀을 길러 동둑을 든든히 하는 동시에, 새(땔나무)는 새대로 누구네보다도 풍성할 수 있었다.
봄철부터 가을철에 걸쳐 쇳네 아버지는 낮일만 끝나면 으레 이 동둑에 와 날이 아주 어두워 캄캄해지도록 앉아 있는 것이 한 일과처럼 돼 있었다. 어느 누구의 소 콧김도 어느 누구의 낫날도 와 범접하지 못하게끔. 새가 한창 우거질 때면 앉아 있는 쇳네 아버지의 몸이 뵈지도 않았다. 날이 저물어 어두워짐에 따라 이 동둑에 나타나는 빨간 담뱃불로 거기 쇳네 아버지가 앉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쇳네 아버지의 담뱃불을 두고 호랑이가 홰를 켜들었다고들 했다. 쇳네 아버지는 날이 흐린 날은 도롱이를 입고서라도 좀처럼 이 일과만은 빼놓지 않았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늦게 꼴 베어 올 것을 잊고 있다가 마침 이 동둑에 쇳네 아버지의 담뱃불이 뵈지 않으므로, 옳다 됐다고, 저기 가서 잠깐 한짐 해오는 수밖에 없다고, 한참 후림 낫질을 해나가다 보니, 아이 깜짝이야, 거기 호랑이 같은 쇳네 아버지가 한 손에 담뱃대를 쥔 채 졸고 앉았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정말 호랑이라도 본 사람처럼 꼴망태를 버려 둔 채 도망쳐 오고 말았다. 물론 뒤에 그것이 내 꼴망태노라고 나서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같은 쇳네 아버지의 일과도 예나 이제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도리어 육십줄에 들어 왕성해지는 건 어떻게 하면 대농을 해볼까 하는 의욕뿐이었다. 사실 이 쇳네 아버지에게 앞 개울둑 초평 같은 땅이 또 나선다면 지금도 능히 좋은 밭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리라.
그러니 이런 쇳네 아버지가 데릴사위를 구해 들인 것은 그저 일꾼이 필요한 때문이었다. 지금 한창 일을 다 배워 놓은 쇳네라는 일꾼을 내놓기도 아까웠지만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동이가 욕심난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이 둘씩이나 있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어려서만 아버지를 도왔을 따름, 이제 와서는 어린 손자들만 수두룩하게 낳아 놓고 투전판만 찾아다니는 큰아들이나, 별별 하이칼라 모양으로 머리치레만 하면서 사진쟁이 장사를 한다고 평양에만 가 있는 둘째자식은 도리어 없는 편만 못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호랑이가 그만 스라소니를 낳았다는 말들을 했다. 이런 자식들 가운데 홀로 쇳네만이 일꾼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또, 이 쇳네만은 자지만 달고 나왔던들 그대로 자기 아버지였으리라는 말들을 했다. 여기에 쇳네 아버지는 두 아들 대신으로 쇳네의 남편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쇳네 아버지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부지런하기로 근동에 소문났던 쇳네의 남편이 데릴사위로 들어온 지 일년도 채 못 되어서부터 점점 게으름을 피게 된 것이었다. 새벽이면 어둑어둑해서 일어나 부지런을 피던 사람이, 차차 장인영감이 깨워야 마지못해 일어나곤 하더니 나중에는 깨워도, 오늘은 머리가 아프니 오늘은 배가 아프니 하고, 숫제 일어나지 않는 날도 많게끔 됐다. 하긴 일어나 나올래야 나올 수 없기도 했다. 밤마다 늦게 집에 돌아오거나 밤을 새우는 날도 가끔 있었으니. 동네에서들은 쇳네 납편이 투전판에 섞여 다닌다고들 수군거렸다.
쇳네 아버지는 그러나 전날 큰아들 작은아들에게처럼 몽등이찜을 한다든지 하지는 않았다. 동네에서들은, 역시 호랑이영감이 겉으로는 전과 다름없는 것 같지만 속으론 한풀 늙은 게 분명하다고들 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는지도 몰랐다. 쇳네 아버지는 그저 사위와 면대할 적마다 그의 눈을 한참씩 바라보곤 할 따름이었다. 너마저 그렇게 되고야 마느냐는 듯이. 그러면 쇳네 남편은 또 이것이 처음에는 장인영감의 눈을 피하는 듯했으나 차차 대담하게 마주 바라보게끔 됐다. 그래 차기 친아들들 훈계는 어디다 두고 나보고만 이러느냐는 듯이.
이러는 동안, 일년치고 궂은 날만 제하고는 언제나 낮엔 반드시 밖에 내다 매야 하던 쇳네 아버지네 소가 다시 영감의 손으로 내다 매어지게 됐다.
쇳네 남편은 술까지 배웠다. 먹어나니 술에는 고래였다. 처음에는 근처 마을에서 돌아가며 먹더니, 나중에는 이십 리나 되는 평양으로 벋어나가 며칠씩 묵어 돌아오곤 했다.
한번은 평양 갔던 쇳네 남편이 양복에 구두까지 사 신고 돌아왔다. 양복과 구두가 꼭 둘째처남의 것과 같은 식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양복이나 구두보다도 손에 낀 흰 장갑이 통 어울리지 않았다. 그 큰 손이 더욱 크게 드러나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쇳네 남편은 여태까지 남의 집 절가(머슴)살이를 해 벌어 두었던 돈 천팔백 냥을 다 날려 버렸다. 무명 헝겊에 꽁꽁 싸서, 그 희던 무명 헝겊이 검정물 들인 것처럼 되도록 만져 오던 돈을, 아직 그 무명 헝겊만은 검게 된 채 그냥 남아 있건만 속의 돈만은 한닢 남기지 않고 날려 버리고 만 것이었다.
쇳네 남편은 이번에는 아내의 은동곳(은비녀), 은가락지를 내다가 팔았다. 성한 옷가지 같은 것도 꺼내 내갔다. 평양서 입고 나온 양복과 구두도 팔아 없앴다. 그리고는 장인 몰래 쌀말을 펴내 가기도 했다.
마침내 쇳네 남편은 쇳네더러 돈을 내놓으라고 매질까지 하게 됐다. 어디 분명히 감추어 둔 돈이 있을 테니 그걸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쇳네는 어머니가 남겨 주고 간 구리가락지를 뽑아 주었다. 그러나 남편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이 미물아, 이게 무어 돈 될 물건인 줄 아느냐고, 도로 쇳네 면상에다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또 입버릇처럼, 그래 내가 너 같은 미물한테 데릴사위로 들어올 적에는 무엇 바라볼 게 있게 왔지 뭣 하러 들어왔겠느냐는 둥. 그래 내가 부지런히 일해 줬으면 좋기야 하겠지, 그러나 내가 뼈가 휘도록 일했댔자 모두 너의 오라비 좋은 일인 걸 뭣 하러 내가 일하겠느냐는 둥, 나도 누구처럼 별짓 다 할 줄 알고 몸 편한 것 좋아할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둥, 하는 말을 하곤 했다. 쇳네는 이런 남편이 한없이 무섭기만 했다.
쇳네 아버지는 처음의 기대가 너무나 터무니없이 무너짐에 따라 그만 쇳네네를 동구 밖에다 오막살이집 하나를 장만해 주어 그리로 내보내고 말았다. 그날 밤 쇳네는 이불을 쓰고 혼자 울었다. 아버지를 떠난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울어졌다. 그것은 혹 앞날의 자기의 평탄치 못할 생활에 대한 어떤 항거랄까 그러한 것이 이렇게 울음으로 돼 나오는지도 몰랐다. 남편은 이사 온 첫날 밤 재수 없이 운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웬일인지 매질을 하지는 않았다.
남편은 이제부터는 자기 살림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정신을 좀 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를 지나지 않아 남편은 다시 게으름을 피는 것이었다. 그저 전과 다른 것은 노름판에 드나들지 않는 것과 술을 끊은 듯한 점이었다.
언제나 누워 있었다.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눈을 감은 채 꼼짝 않고 몇 시간이고 있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쇳네더러, 우리 한번 먼 데로 가 살지 않을래? 하는 뚱딴지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이런 남편이 쇳네는 그냥 무섭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서 쇳네는 그래도 게으른 남편의 몫까지를 대신하듯이 부지런히 일을 했다. 들일은 물론 산에 가 나무까지 해왔다. 그리고는 모자라는 양식은 자기의 품삯을 미리 낟알로 바꾸어 왔다. 그러나 쇳네는 통 아버지한테는 가지 않았다. 그것은 요새 와서 갑자기 늙어 뵈는 아버지나 여러 조카를 데리고 고생하는 올케에게 자기네의 일로 해서까지 괴롭히고 싶지 않은 때문이라기보다도 그저 그러기가 싫었다.
이런 쇳네가 어느 날 자기의 몸이 보통 몸이 아니고 태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해 가을, 호랑이영감네 둘째아들이 아버지의 도장을 훔쳐 내어 개울둑 밭을 저당내 먹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진 지 얼마 안 되어, 쇳네 아버지는 여태까지 써온 심뇌가 한꺼번에 나타난 듯이 자리에 눕고 말았다. 값나가는 약이라곤 도무지 써보지를 못했다. 병인이 사들이지 못하게도 했다. 병인은 입버릇처럼, 자기의 병은 약을 써서 나을 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뼈와 가죽만 남아 거의 해골이 다 되어 있었다. 큰 나무일수록 넘어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듯이. 누가 보나 쇳네 아버지는 회생해 일어날 것 같지 못했다. 그러면서 동네에서들은, 그 온 동네를 뒤흔들어 놓곤 하던 호랑이영감의 목소리를, 솔직히 말해서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던 그 목소리를, 앞으로는 들을 수 없으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알지 못할 어떤 서운함이 가슴속에 서림을 금할 길이 없어했다.
투전판만 찾아다니던 맏아들과, 대개는 평양에 가 있던 작은아들이, 그래도 며칠 아버지 머리맡에 와 앉아 있었다. 병인은 어디 그런 기운이 남아 있었던지 두 아들에게 몇 번이고, 네깟놈들은 내 아들이 아니니 썩 눈앞에서 없어지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병문안 와 있던 동네 늙은이들이, 이제 와서 그런 말 말라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얼핏 보아 병인이 나아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못해도 그렁저렁 오래 끌 것만 같은데다 아버지의 역정이 듣기 싫어 큰아들은 다시 투전판으로, 작은아들은 잠깐 다녀오마고 평양엘 가버리고 말았다. 맏며느리도 손자들도 병구완에 아주 지쳐 버리고 말았다. 사위인 쇳네 남편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단지 쇳네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 곁에 붙어서 시중을 들었다. 뼈만 남은 딱딱한 아버지의 사지를 주무르고 두드린다, 손끝이 솔도록 머리를 찝어 준다, 했다.
종내 쇳네 아버지는 손과 발이 보기 좋을 만큼 부어오르더니 그러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쇳네가 눈을 감겼다. 쇳네는 아버지의 눈에 손을 얹은 채 그 자리에 나가 쓰러지고 말았다. 깨나서도 곡을 하다가 몇 번이고 까무러쳤다.
삼일장을 치르고 난 날 저녁에, 쇳네는 그만 팔삭동이 애를 낳고 말았다. 사내애였다. 동네 노파들은 와서 들여다보고는 손톱 발톱이 아직 채 굳지 않았다고들 했다. 눈도 뜨지 못했다. 사흘이 지나도 젖도 제대로 빨지 못했다. 울음조차 변변히 울지 못했다. 구삭동이보다 팔삭동이가 산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누가 보나 애가 살아날 것 같지는 않았다.
남편은 한 번도 애를 들여다보는 법도 없이, 종자로 따들인 호박을 베고 밤낮 천장만 바라보고 있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루는 휙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날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동구 밖으로 나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쇳네는 혼자 이 언제 죽을지도 모를 작은 핏덩어리를 의지하는 마음만으로 이제는 살아갈 수 있을 듯했다. 이 마음은 그 다음날에 가서는 더욱더 쇳네의 가슴속을 자리잡아 나갔다.
동네에서는 누구의 입으로부턴가, 쇳네 남편 동이가 건넛마을 석봉이네 장보러 가려고 내놓은 쌀 닷 말을 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쇳네의 가슴이 덜렁 내려앉을밖에 없었다. 종내 남편이 그런 일까지 저질렀구나! 그 길로 쇳네는 석봉이네한테로 갔다. 사실 소문대로였다. 쇳네는 이제 자기가 몸만 추스르면 품팔이를 해서라도 기어이 갚아 주겠노라고 하고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이상히 마음이 놓이는 쇳네였다. 이젠가 저젠가 남편이 돌아올 것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었다.
애는 요행 죽지 않고 살아났다. 쇳네는 죽자하고 일만 했다. 먹을 것도 먹지 않고, 남에게 갚아 줄 것부터 앞세웠다. 그리고 모든 힘들고 고됨이 이 어린애로 해서 다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즈음 쇳네의 마음에 한 가지 걸리기 시작한 게 있었다. 남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태까지의,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돌아와 줘야 할 텐데 하는 그런 남편으로서였다. 쇳네 저로서도 모를 일이었다.
백날이 되어도 웃지를 못하던 애가 그래도 어르면 사람을 알아보게쯤 됐을 때, 쇳네는 남몰래 혼자 애를 어르다가도 문득 생각하는 것은 남편이었다. 이런 때 남편이 있어 주었으면! 자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열일곱에 벌써 생과부가 됐다는 말도 참을 수 있었다. 단지 애에게만은 아비 없는 자식이란 말을 듣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도리어 자기에게는 무섭고 싫은 남편이건만 애에게만은 아비 없는 자식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쇳네는 이젠가 저젠가 남편을 기다리게까지 됐다.
애가 뒤집기 시작했다. 그러한 어떤 날, 쇳네에게 웬 편지 한 장이 와 닿았다. 쇳네는 이게 필시 심상한 일이 아니라고 안동네 맏조카한테로 갔다.
맏조카는 편지를 받아 들더니, 작숙(고모부)한테서 온 편지라고 했다. 쇳네는 무슨 전기에라도 닿은 사람처럼 앞으로 돌려 젖을 물리고 있던 애를 후딱 끌어안았다.
편지에는 별 사연이 씌어져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겉봉에 적혀 있는 주소대로 만주 어디에 와 있다는 말과, 석봉이네 쌀값은 곧 벌어 보낼 터이니 좀 참아 달라고 하라는 말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건만 쇳네는 전에 남편이 절가살이 시절에 돈을 간수하던 이상으로 정성스레 편지를 접어 주머니 속 깊이 넣었다. 석봉이네 쌀값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좋은 걸, 하는 생각과 함께 그저 다른 것은 다 그만 두고라도 애 쟐 자라느냐는 말 한마디가 들어 있지 않은 걸 적이 섭섭해하면서. 하기는 애가 죽은 줄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긴 하지만.
동네에서들은 쇳네의 남편이 그새 만주 가 산다는 말로, 쇳네를 만주로 들어오란다는 소문이 났다. 동네 노파들이 쇳네한테 와서는, 정말 만주로 들어오라더냐고 했다. 쇳네는 사실대로 편지는 왔지만 들어오란 말은 없다고 했다. 그래 들어가려느냐 어쩌려느냐고 묻는 말에 그저, 글쎄요, 하고 말았다. 그 이상 쇳네로서는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살었을 적에는 노 드나들던 살구나뭇집 할머니가, 아예 들어갈 생각은 말라고, 요새 만주에 색시장수가 들끓는다는데, 못된 놈 제 색시 팔아먹을지 누가 아느냐고, 타이르듯 했다. 쇳네는 그 말에는 아무 대답 없이 앞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도 며칠 지난 뒤 어느 날, 쇳네는 마당가에서 아지랑이 낀 들판을 내다보다 문득 안고 있던 애를 들여다보며, 너 아바지한테 간다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지금 자기가 한 말에 저 스스로 깜짝 놀랐다. 가슴이 울렁거려지며 귀밑이 홧홧 달아올랐다. 누가 혹시 자기의 말을 듣지 않았나 해 방으로 달려들어오고야 말았다.
방 안에 들어와서도 쇳네는 한참을 설레는 가슴을 진정치 못했다. 그런 가슴 한구석으로부터 아주 면 지난날 어머니와 동네 늙은이들이 무슨 말 끝엔가 한, 도시 여자란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는 격으로 아무래도 남편 따라가게 마련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쇳네는 자기만은 그렇지 않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절로 고개까지 저어졌다. 그러면서도 가슴속 깊이에서는 역시 자기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한층 굳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쇳네는 아랫목에 애를 재워 놓고 어두운 등잔불 아래서 남편이 전에 입던 다 낡은 옷가지들을 꺼내어 여기저기 손질하기 시작했다. 좀만에 한번씩 생각난 듯이 바늘 든 손을 멈추고 잠든 애를 바라보고 나서는, 어서어서 하는 듯 다시 재게 손을 놀리는 것이었다.
이 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어디서 봄기러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순원전집』, 문학과지성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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