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믿음의 동역자 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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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은 동성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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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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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가 아니야
성경은 인간에 의해 계획된 문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 아래 단지 인간어로 편집된 그분의 말씀입니다. 세상 여느 문서 같이 한사람이나 한 집단이 일관성 있게 기록하여 전체를 그럴싸하게 꾸몄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렇지를 못합니다. 성경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완전히 다른 사건과 경우를 배경으로, 그리고 여러 사람의 다른 문체와 형식을 빌려 작성된, 그야말로 한 권으로 문집 된 사실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경이로운 책인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같은 사건 같은 경우가 등장인물만 바뀌어 나오는 것도 같고, 혹은 동일 인물에 대해 묘사한 글인데도 앞뒤가 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야말로 취약하기 그지없지만, 어떠한 가감도 없는 이런 미숙한 편집이야말로 신뢰를 더해줍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으니, 바로 그 ‘편집의 내츄럴’(부자연스러움)입니다.
글을 썼던 여러 사람이, 게다가 서로를 모르는 여러 사람이, 존재하던 시간도 다르고 공간도 달랐으면서 세부 묘사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뜻은 다 똑같아! 신기하지 않은가?! 말입니다.
사무엘 상권과 하권이 바로 그런 문헌 중 하나입니다.
다윗이 수금 타는 직무로 출근 하다가(삼상 16:23) 골리앗과 싸운 시기는 분명 소년 시절인 것처럼 보이는데 금세 군대의 높은 직급이 되고, 또 왕의 수금 타는 일을 했다면 왕이 그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골리앗과 싸워 이긴 후에 “제가 누구냐, 누구네 집 애냐?”라고 부르기도 하고(삼상 17:55). 게다가 싸움에서 이긴 직후 왕 앞에 섰을 때는 웬 난데없는 요나단과 마음이 교통?
자,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안티 크리스천들이나 동성애자들이 꼭 붙잡고 싶어 하는 부분이 바로 요 부분입니다. 우선 성경 본문을 보겠습니다.
“After David had finished talking with Saul, Jonathan became one in spirit with David, and he loved him as himself.”(1 Sam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삼상 18:1)
다시 말하면, “요나단은 영적으로 다윗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요나단이) 자기 자신처럼 (다윗을)사랑했다”라고 되어 있으니… 동성애자가 좋아할 만 한 구절이죠.
현대어 성경들은 대개 말을 순화 시킨다는 것이 그만 저렇게 모호하게 축약되고 말았는데 KJV는 비교적 뜻을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the soul of Jonathan was knit with the soul of David, and Jonathan” 즉 “요다단의 (영)혼과 다윗의 (영)혼이 knit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너무도 중요한 키워드가 하나 발견 됩니다. 바로 knit입니다. 한글개역에서 ‘연락(聯絡)’이라고 번역했던 ‘was knit’.
구약에서 약 44번이 나오는 이 단어는 bind together(함께 묶였다)입니다. 이 용례를 몇 가지 알아보면,
우선 창세기 44장 30절에서 애굽의 총리 요셉이 베냐민을 붙잡아 두려고 하자 유다가 나서서 말하는 대목입니다.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창 44:30)
연락(was knit)과 결탁(is bound up)은 분명 다른 어휘지만 히브리어로는 둘 다 ‘카-솨ㄹ’입니다. 하나 더 찾아보겠습니다.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15:31)
압살롬의 쿠테타에 아히도멜이 포함되어 있다고 다윗에게 고하는 장면입니다. 처음에 나왔던 ‘was knit’ 가 이번엔 ‘is among the conspirators’(모반한 자들 가운데)라는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동일한 단어 ‘카-솨ㄹ’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삼상 22:8)
정리해보면 요나단과 다윗이 특별한 감정으로 연락(聯絡)된 것 같은 뉘앙스로 오해한 이 ‘카-솨ㄹ’는 나이 많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엮인 마음과 함께 주로는 동맹적인 마음의 결탁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전혀 성적인 심정의 용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자란 어린 베냐민을 향한 늙은 야곱의 강한 연정의 결탁’이나 ‘쿠테타 일으키는 사람들의 결연한 동맹’ 처럼 어떤 강한 결속력을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동성애자들이 다윗과 요나단에 관해 붙잡는 구절 하나만 더 보고 마치겠습니다. 바로, 다윗의 시(詩) 부분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자, 요렇게 떼어놓고 보니까 어떠세요? 진짜, 심각하죠? ^^
다윗은 정치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평생을 하나님께 시와 찬양으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詩)가 무엇인지는 굳이 그 장르에 대한 설명을 부연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詩는 詩로 읽어줘야 합니다. 그것을 단어와 단어, 주어와 동사를 따져가면서, 이러 이러하니 이런 게 아니냐는 식의 관찰을 하려드는 것은 참으로 딱한 것이지요. 그래도 문제를 제기 하니 한번 따져보도록 하죠.
시편을 보면 다윗의 시어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데 평소에 그가 사용하는 부드럽고도 강한 필체를 감안하면 사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내용입니다. 다만, 개역성경의 번역에 있어서 ‘기이하다’는 부분이 조금 모호한데 그것은 ‘이상스럽다’는 뜻의 ‘기이함’이 아니라, 놀랍다, 경이롭다(wonderful)는 뜻의 옛 구어일 뿐, 예수님을 ‘기묘자’(Wonderful; 사 9:6)로 표현한 경우가 ‘Wonderful’의 마땅한 한글 명사형이 없어서 중국식 한자 용어를 골라 쓴 말인 것처럼 여기서도 한자식 표현에 너무 집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이런 말을 안 쓰지요.
그리고 또한 pleasant는 ‘아름아움’이 아니라, 기쁜/유쾌한 등의 뜻으로 바꿔야 더 정확할 것 같구요. 내가 만약 다시 번역한다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기쁨이었고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경이로워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사역)
그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다는 사실 때문에 ‘기이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은 경이로울 정도로 크기 때문에 여인들의 이성의 사랑보다도 ‘더 초월적이다’라는 뜻인 거지요. 다른 시편의 詩들과 마찬가지로 그 영감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습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성으로부터 받는 사랑보다 더 초월적인 게 뭐가 있습니까?
자, 이로써 그들의 우정이 어떤 종류인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돌본 것은 ‘동성애’가 아닌 ‘동지애’(was knit; [kaw-shar])였던 것입니다.
https://mimoonchurch.com/archives/1693
구약성경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진 사람조차도
(1) 다윗은 요나단의 누이인 미갈과 결혼했고 그후에도 다른 아내를 얻었으며 (2) 다윗의 최악의 스캔들은 밧세바라는 여성과의 통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딴 여성을 향한 다윗의 이 탐욕과 그 남편 우리야를 죽인 음모를 혐오하셨다.
따라서 다윗과 요나단이‘동성애’관계였다는 주장은 매우 비논리적임을 알 수 있다.
http://www.christiantoday.us/21469
우정을 동성애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 하였도다 (사무엘하 1:26)" 라고 묘사하며 남성간의 깊은 우정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이를 동성애라고 설명하면 안 된다.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03441/20200320/%EC%86%8C%EC%A4%91%ED%95%9C-%EC%84%B1-%EA%B1%B0%EB%A3%A9%ED%95%9C-%EC%9A%B0%EC%A0%95%EC%9D%84-%EB%8F%99%EC%84%B1%EC%95%A0%EB%A1%9C-%EC%99%9C%EA%B3%A1%ED%95%B4%EC%84%9C%EB%8A%94-%EC%95%88-%EB%90%9C%EB%8B%A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