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산에 갔다 도문의 인심에 감동하다
지난해 가을산행으로 일광산가을단풍구경을 하였다. 일광산단풍으로는 참나무단풍이 유명하다.참나무단풍은 10월초면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며 수많은 등산객들을 부른다. 우리는 한국 경주대학의 교수님하고 함께 일광산에 올라 참나무단풍을 보며 등산의 하루를 즐기였다.
새해 1월19일, 일광산겨울등산을 선택하였다.기차로 갈가 하다 자가용 두대에 우리 일행 10명이 합승하여 출발하였다. 연길담배공장에 다니는 촬영애호가 모아산소나무님이 처음으로 함께 동행하여 반가움이 더했다.
도문에 도착하니 도문시의 류주임과 박과장님이 반겨 맞아주었다. 정심 12시반에 하산하면 정심초대를 하겠다하여 더더욱 고마웠다.
자가용차는 일광산아래 어느 단위 주차장에 세워두고 산행을 시작하였다.일광산기슭에는 나무합판으로 만들어진 <<눈물젖은 두만강>>노래유래비가 어설프게 서있어 처음 일광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배사공
흘려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
조국을 떠나 만주로 로씨야로 가는 리향민의 애환을 담은 이 노래는 지금도 사람들가운데서 널리 불리고 있지만 노래를 지은 사람도 이 노래를 불러 한국의 국민가수로 칭송받던 김정구님도 유명을 달리했다. 지금 초라한 유적비가 두만강기슭에 남아 지나간 그 옛날을 되새겨준다.
산으로 오르다 우리는 새로 포장한 도로산중턱에서 쉬면서 리원장이 가져온 토닭알로 요기를 하였다.
<<여기가 바로 노래로 유명한 범진령고개라오!>>
교통은행의 류광철님이 손짓을 하며 설명해준다.
<<그래요. 70년대 하향청년들은 범진령노래를 부르며 농촌에서 청춘을 보냈지요>>
<<그리고 저 아래 일광산을 감돌아 나진 길은 영화 <새봄>을 찍던 곳이라요>>
영화 새봄의 주제곡이 생각난다. <<내 고향오솔길>>로 데뷔한 한국화가수가 불러 인기를 얻었다.영화줄거리는 아리숭한데 노래선률은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영화주인공이 소수레를 타고 가며 부르는 노래는 선률이 너무 아름답다.최삼명작곡가가 곡을 만든걸로 기억된다.
지나간 세월을 추억케 하는 령마루와 고개길이였다. 지금은 길이 잘 뚫렸지만 이전에 이 고개를 넘으면서 호랑이가 나올가봐 가슴졸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내여 일광산정상으로 올랐다. 정상에 올라 리정옥회장의 선창으로 <야호!>>삼창을 힘차게 웨치니 가슴이 탁 트이는것만같았다. 그 우렁찬 목소리가 두만강을 건너 오지산에 갖다 메아리로 되여 돌아왔다. 여기 저기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며 등산의 희열을 만끽하였다.나는 하얀 공룡청럼 얼어붙은 두만강을 바라며 국경이란 먼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강건너는 내 조상의 얼이 담겨있는 조선땅, 일제때 지었다는 작은 기차역사가 아슴프레 보였다.역사뒤산이름이 오지산이라 하여 머리에 손을 얹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지산---다섯손가락을 펼치여 땅에 엎어 놓은 형국이다.자연은 신비하고 오묘하기만하다. 조선사람들도 저산을 오지산으로 부르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일광산정상에서 한눈에 보이는 도문의 모습과 남양의 모습이 대조되여 쓸쓸하기만 하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도문의 모습과 생기가 없이 초라하기만 한 남양의 모습에서 두 나라의 경제격차를 보아낼수 있었다.산정상에다 세운 기념비엔 해발 400메터라 쓰여져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간 문자자료에는 해발 397.7메터로 되여있다. 어느것이 정확한지 확인이 필요한거같았다.
일광산은 깍아지른듯한 괴암절벽이 두만강을 따라 병풍처럼 서있고 듬성듬성 푸른 소나무가 바위틈에서 꿋꿋이 자라고 있어서 명산으로 불리고 있다. 일광산은 아름다운 그 자태만으로도 한폭의 산수화를 방불케한다.
그래서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자주 월청으로 사생하러 오군한다.기암절벽이 두만강에 비낀 모습은 산수의 조화를 잘 보여주어 신비한 운치를 자아낸다.
일광산밑에 있는 마을은 삼툰자로 유명한 마을이다. 일광산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조선으로 건너가는 철교와 두만강대교가 한눈에 안겨온다. 도문해관은 길림성에서는 유일하게 철도와 도로가 련결된 1급해관으로서 지난 90년대에 김일성주석이 도문을 경과하여 기차로 쏘련가서 국사방문한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지금 이 해관은 중국과 조선무역의 주요통로로 되고 있으며 앞으로 대조선 일일관광도 여기를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일광산은 지금 도문시민들이 자주 찾는 등산코스로서 일광산자연관광구로 개발이 되면서 더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고있다.
연길에서 왔지만 산정상에 있는 시간은 짧았다. 정상에 오른후 내려 가는것이 등산의 순리이다. 등산은 산에 오르고 내리는 과정이 더 소중한거 같다. 파란많은 세월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도 등산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즐겁게 산을 내려오니 류주임과 박과장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불고기와 여러가지 맛갈나는 료리로 우리를 초대하여 고마움을 느꼈다. 특히 7-8년전에 신문발행으로 만났던 에피소드도 말해 더 감명깊었다.일광산도 좋지만 사람을 후덥게 대하는 도문의 인심이 겨울추위를 잊게 했다. 한국의 한 유명한 랑만파시인은 도문에 들렸다 <<두만강 그 여인>>이란 시를 남겼는데 시에는 도문의 후한 인심이 잘 표현되여있다.
도문역에 내렸을 때
마중하러 급히 달려오던 그 여인
두만강 물에 손 담글 때에도
곁에 와서 함께 손 담그던 그 여인
아아 강물은 저렇게 말없이 흘러만 가는 걸까
쇠고기 곰국 국밥집에 들어가서도
허름하지만 많이 드세요
김치깍두기도 그릇에 담겨져 나오고
우리 어머니 순 옛 음식맛 그대로인데
더 드세요, 더 드세요
시종일관 싱글벙글
만남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하는 듯
만나자 몇 시간만에 다시 이별이라
도문역으로 가 떠날 때에도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들려요
떠나는 열차 지켜보면서
남편과 함께 손 흔들어주던 그 여인!
시인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았던 짧은 순간의 만남을 그냥 지나칠수 없어 시에 잊을수 없는 도문의 녀인을 담았다고 갈파하였다.우리는 그 녀인을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고 시에 잘 나타난 그 녀인의 고운 심성을 통해 도문의 후한 인심을 피부와 마음으로 느끼기만 한다면 족하리라!인간은 좋은 만남으로 매우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간다.쉬는 날에도 우리 등산회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융성하게 초대하여 준 류주임과 박과장의 친절한 정성을 오래도록 마음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다.
첫댓글 락동강님의 일광산 등산일지를 보고 함께 등산하고 오는 기분입니다.즐감했습니다.
오랜만에 카페에 들리여 락동강님의 훌륭한 등산일지 읽어 참 즐겁네요.많은 지식을 배울수 있고 안계를 넓힐수 있는 등산일지여서 글을 읽는 저도 감개무량해지네요.
구수하게 엮은 일광산 기행 잘보았씁니다 , 이후 기회있으면 저도 델구가쇼 ,,,, 넘 렴치없으냐햇다믄 꿀꺽삼키겟어요 ,
함께 해유..
좋은 산행 일지들을 올 한해에 쭉 적어주세요.... 부탁입니다........즐감....
락동강님의 일광산 등산하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나도 등산이랑 하고 싶은데요 .
도문의 인심을 즐감하고 갑니다
글로서 보는 일광산 한눈에 쭉 안겨오는 느낌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의 인심은 글보는 사람들에도 전해와서 후더워 집니다 .좋은글 즐감하다 내립니다 .
참 좋은곳에 다녀왔네요.좋은글에 한동안 머물다가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