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부터 1965년까지 4년에 걸쳐 열린 공의회에 모두, 또는 일부 회기라도 참석한 추기경과 주교들은 28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개인적인 일지나 기록을 남겼고, 교구 신문에 기고한 이들도 있었으며, 전자메일과 저렴한 국제 전화를 이용할 수 없던 시절에 아마 대부분은 고국으로 편지를 썼을 것이다.
교황청 역사위원회는 공의회의 공식 회의록을 바탕으로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연구에 개인적인 흔적들도 덧붙일 수 있도록, 교회의 문서고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세상을 떠난 공의회 교부들의 가족들에게도 공의회 교부들이 남긴 글들을 찾아봐 줄 것을 요청했다.
역사위원회 위원장 베르나르 아르두라 신부는 “발굴된 자료들이 공의회에 대한 참된 해석인지 거짓 해석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위원회는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이념적 생각을 배제하고, 대신 균형 잡힌 학문적 바탕 위에 공의회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이 공의회가 특별한 사건이라고 평가하는 견해와 어떤 교의도 파문도 없었던 만큼 실질적인 공의회라고 볼 수조차 없다는 두 극단적인 ‘흐름’을 언급하며, 하지만 역사위원회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들과 의견들을 넘어서 기록 문서를 토대로 작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