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인류 역사상 이런 선물도 있었던가? 헤로데는 사랑하는 딸을 기쁘게 해 주려고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선물했다. 이렇게 해서 당대 최고의 예언자는 임금의 생일잔치 안줏감으로 처형되어 버렸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랑을 위하여 북을 찢어 조국을 패전시킨 낙랑 공주도, 기울어진 나라를 넘겨준 을사오적의 매국노들도, 원자 폭탄과 네이팜탄과 고엽제 투하와 무차별 학살을 명령한 자도, 고문 기술자도 모두 제 목숨과 가족과 연인은 사랑할 것이다. 사랑이란 이처럼 못할 것이 없을 만큼 위대하지만 그 사랑도 타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보다 더 커 버리면 헤로데가 되고 만다는 점을 깨우친다.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룬다.’는 뜻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삶에는 인정과 정의와 평화가 있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고, 도덕과 윤리, 예의염치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성적 욕구에 따라 살기 십상이지만 그 욕구가 선이 되려면 항상 하느님의 법 앞에 있어야 한다. 생각이 본성의 지배를 받으면 이기적 폭력이 될 수 있고, 이성의 지배를 받으면 이웃과 세계를 발전시키는 진정한 사랑이 된다. 헤로데는 그 점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자식 사랑 때문에 그를 처형했다. 예수님과 요한은 자신의 길이 죽음을 향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충실성 때문에 피해 가지 않은 분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분들의 제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언젠가 사제 서품식 미사의 성찬례가 시작되기 전 복사가 ‘쟁반’을 들고 나와 주교님의 빨간 모자를 받아 드는 걸 보고 덜컹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전 : 2015. 2. 6.(금) 매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