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증세로 고생했던 정근우. 특별 휴식을 선물 받았지만, 쉬고 있는 시간이 오히려 미안했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일본 고치현 고치 캠프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한화 2루수 정근우(33)의 머릿속에는 SK 와이번스에서 보낸 2009년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는 타율 0.350, 안타 168개(2위), 득점 98(1위), 도루 53개(2위), 출루율 0.437(5위)을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김성근 감독, 쇼다 고조 타격 코치와 함께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리그 최정상 선수로 정점을 찍었던 당시의 기억은 정근우 야구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시즌으로 남아 있다. 어느새 그의 나이는 27세가 아닌 30대 중반으로 향했지만,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도자들과의 재회는 그에게 샘솟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4일 훈련하고 하루 휴식이 주어지는(휴식일에도 훈련은 하지만), 금쪽같은 시간에 고치 선수단 숙소에서 정근우를 만났다.
#1. 담에 걸려 쉰 이틀이 아깝다!
“몸에서 제발 좀 쉬어달라고 신호를 보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아예 훈련에서 제외돼 숙소에서 쉬었는데 후배들한테 굉장히 미안하더라.”
한화 이글스의 고치 캠프에서 만난 정근우는 담에 걸려 고생 중이었다. 추운 날씨에 강행군을 펼치다 담 증상이 나타나는 바람에 꼬박 이틀을 쉬었다. 인터뷰를 할 즈음에는 많이 완화된 터라 다음날부터 훈련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훈련을 못한 이틀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입을 열었다.
SK 때와 비교해서 훈련량이 더 많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이전에는 휴식일에 야간 연습이 없었다. 원래 쉬는 날에도 훈련을 시키시는 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야간 훈련까지 하니까 진짜 힘들더라. 고치 시영구장은 이전 SK 시절의 전지훈련지였다. 당시만 해도 실내훈련장에 조명 시설이 없었다. 지금은 조명이 아주 ‘빵빵하게’ 들어온다(웃음). 밤 9시에 문을 닫지 않고 24시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밤 12시까지 타격훈련을 했을 지도 모른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 이글스에서 재회한 걸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니다.
“김성근 감독님과 SK에서 함께 했던 코치님들을 다시 만나게 돼 가끔은 소속팀이 헷갈린다(웃음). 나한테 감독님은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SK 시절에 비해 지금은 나도 나이가 있는 편이라 그 많은 훈련량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솔직히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나 감독님은 혹독한 훈련에 대한 결과와 보상을 안게 해주신다.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고생할 각오가 돼 있다. 요즘 우리 팀 선수들이 내 얼굴을 볼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다. ‘이렇게 (SK에서)5년 동안 어떻게 버텼느냐’고. ‘대단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따져 보면 김성근 감독이 SK 사령탑에 있었던 2007년부터 2011년 까지 정근우 선수의 타율이 모두 3할대를 기록했다(2007년 0.323 2008년 0.314 2009년 0.350 2010년 0.305 2011년 0.307).
“그때 3할 치고, 감독님 그만 두신 이후론 3할을 못 쳤다. 그래서 이번에 감독님과의 재회가 내 야구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감독님과 처음 만나 스프링캠프를 했던 2007년에도 처음엔 죽을 만큼 힘들었다. 강도 높은 훈련에 몸이 적응이 안 된 상태라 첫 해에는 진짜 많이 아팠다. 그러다 1년 지나고, 2년 지나면서 몸이 이 훈련을 기억하고 있었다. 2년째부터는 전지훈련에서의 훈련은 물론 시즌을 어떻게 준비하고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서 반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몸이 날 포기하더라. 살아남아야 한다는 정신만 남아 있고.”
9개 팀도 각기 다른 스프링캠프지에서 엄청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화 캠프만 ‘지옥의 캠프’로 불리며 여론의 관심을 ‘진하게’ 받고 있다.
“그 강도가 여타 캠프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캠프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스케줄의 연속이다. SK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시즌 중반에 팀 성적이 떨어지면서 선수단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다운됐었다. 그때 선배들이 미팅을 주도했는데, 다른 얘기 없이 이 말만 했다. ‘우리가 스프링캠프에서 어떻게 훈련했는지를 기억하자. 그때 우리가 느꼈던 고통을 결코 잊지 말자’라고. 그 다음날부터 드라마처럼 연승을 이어갔다. 감독님은 우리에게 그걸 심어 주시려 하는 것 같다. 훈련 때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은 그때 우리가 뼈 속 깊이 새겼던 오기, 악, 등등의 감정을 잊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야구 훈련량? 진짜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걸 해내고 나면 캠프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잊고 싶어도, 까먹고 싶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감정’이 내 안에 존재하게 된다.”
캠프 합류하기 전에 하와이로 개인 훈련을 떠나기도 했었다.
“친하게 지내는 (이)호준 형, (김)강민이와 함께 하와이로 개인 훈련을 떠났었다. 소속팀은 모두 다르지만, 캠프를 앞두고 나름 제대로 준비를 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고치 캠프 합류 후에 금세 깨달았다. 처음에는 사정 없이 몰아치는 훈련량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2007년 김성근 감독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정근우. '보살팬'들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팀 성적을 올리는 것이다.(사진=한화이글스 제공)
#2. FA 3인방을 다 잡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해
지난 시즌 타율 0.295, 137안타, 6홈런, 44타점, 32도루를 기록하며 FA 첫 해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팀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한 개인 성적은 정말 의미가 없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최악의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무리 안타를 치려고 해도 안타가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특타도 많이 하고 새벽까지 스윙을 하면서 슬럼프 탈출에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늪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점점 타석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자신감이 흔적조차 사라졌다. 할 수만 있다면 게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삼진이나 내야 땅볼로 아웃돼 들어올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첫 안타를 쳤을 때는 안타 1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나태해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시즌을 보내고 다시 감독님을 만나게 됐으니 내 입장에선 이게 운명이구나 싶더라. 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인복도 많고 돈복도 많고(웃음).”
올시즌 배영수, 권혁, 송은범 등 3명의 FA 선수가 영입됐다.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솔직히 우리 팀에서 3명 다 잡을지 몰랐다. 우승 경험 많고 실력있는 선수들이 영입돼 정말 기분 좋았다. 한화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데 그 3명이 큰 역할을 해줄 것이다. 투수들한테 종종 ‘몇 승 할 것 같아?’라고 물어본다. 배영수, 유먼, 탈봇 등 모두가 12승 이상하겠다고 말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런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
마무리 캠프에서 김성근 감독의 펑고를 받고 만신창이가 됐던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어느 정도는 몸 만들 시간을 주고 수비 훈련을 시키실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수비 훈련을 하시더라. 감독님 입장에선 정근우이기 때문에 더 지독하게 펑고를 때리셨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보고 느끼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들이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보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우리 아빠 진짜 멋있는 것 같다’고. 와이프가 통화하면서 그 말을 전해주는데 순간 울컥했다. 만신창이가 된 아빠의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해주는 아들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
김성근 감독이 올시즌 50도루를 주문했는데, 자신 있나.
“50도루에 성공한 것은 2009년 53개를 기록하고 지금까지 없었다. 지난 시즌부터 도루에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35번 시도해서 32번을 성공했다. 3번 실패도 견제사, 사인미스였고, 단독 도루해서 아웃된 것은 한 번 밖에 없었다. 올시즌에는 게임 수도 늘었고, 작년과 같은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50도루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정근우는 김성근 감독을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 감독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선수가 한 명 또 있다. 바로 배영수이다. 이 얘기를 전하자, 정근우의 반응이 재미있다. ‘오키나와(한화 재활캠프)에서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아버지’라고 하나. 감독님 밑에서 며칠 훈련 받지도 않았는데. 시즌은 끝나봐야 안다. 진심으로 그 말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웃음))
유먼이 모건에게 말했다."한화가면 너랑 비슷한 사람 있을 거야". 팀에 합류한 모건은 정근우를 바로 찾아냈다고 한다^^.(사진=한화이글스 제공)
#3. 김재현 코치와의 재회, 그리고 기대
새로 영입된 나이저 모건을 보니까 인사성이 굉장히 반듯하더라. 허리를 90도로 꺾어서 인사하던데, 혹시 인사법을 가르쳐 준 건가.
“난 아니고, 유먼이 얘기했을 지도 모른다. 모건이 한화와 계약을 맺은 뒤 유먼에게 한국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했는데, 그때 유먼이 이런 얘길 했다고 하더라. ‘한화 가면 너랑 똑같은 놈 한 명 있을 거다’. 모건이 바로 나를 찾아냈다(웃음). 모건이 악동 이미지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고, 팀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 보였다. 적당히 눈치도 보고, 훈련 이동하는 상황에서도 선수들과 함께 뛰어다니는 등 기대감을 갖게 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올시즌, 꼭 이루고 싶은 기록이 있나.
“개인 성적은 이룰 만큼 이뤘다. 올시즌은 개인 성적보다는 내가 이 팀을 위해 어떤 노력과 희생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팀 성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개인 성적은 팀을 위해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아니겠나. 물론 3년 동안 잃어 버렸던 3할 타율을 되찾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정근우는 김재현 코치와의 재회에 대해 많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코치님’이 아닌 ‘선배’ ‘형’이란 소리가 튀어나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훈련을 하면 할수록 예전부터 ‘코치님’이었던 느낌이 든다고 .
“김 코치님이 중간 역할을 잘해주신다. 선수들에 대한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시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님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실 것으로 믿는다. 올해는 말보다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보살 같은 한화 팬들에게 웃음을 선물해 드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 어마어마한 훈련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조인성, 배영수, 정근우는 훈련 캠프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조인성은 투수들의 공을 받을 때마다 무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배영수는 투수들 훈련 때마다 다양한 내기를 걸면서 후배들을 독려한다. 정근우는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김성근 감독 앞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잃지 않는 선수이다. 포지션과 성격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 올시즌 '무조건' 성적을 내는 것이다.
<일본 고치=이영미 기자>
펑고를 받다 만신창이가 된 정근우의 사진을 보고 그의 아들은 '아빠가 진짜 멋있다'라고 말했다. 정근우는 아들이 야구선수로서의 '끼'가 있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트렸다.(사진=이영미)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issue&mod=read&issue_id=531&issue_item_id=9871&office_id=380&article_id=0000000656
첫댓글 김성근 감독님과 질긴 인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