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4
우뢰의 아들이라는 칭호처럼 그들은 참 용감했나 봅니다.
다른 제자들 눈치가 보여서라도 속내를 드러내지 못할 것 같은데 현재 믿음의 상태에서 생각한 ‘주의 영광중에서..’ 형제들이 우편과 좌편에 앉을 수 있기를 간청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랬던 사람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된 야고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 그가 생각한 ‘주의 영광 중에서…‘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을 확신합니다.
성령을 날마다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 생각에 주님 말씀 조금 더하면 그저 도금한 물체가 될 뿐임을 알기에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볼 수 없는 육체의 장애뿐 아니라
볼 수 없었던 영적 장애까지 고쳐주셔서
자신을 지켜줄 것 같았던 겉옷을 던져버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은 바디매오처럼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옷 입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1절)
맹인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제게도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마음을 살펴보니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고 구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딱인 인생길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4년을 얼마 남지 않게 두고 돌아보니 이 한해도 딱히 기억이 나는 일이 없이 지나간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지만 능동적인 삶을 살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맹인 바디매오가 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52절)
저도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적극적인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막10: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
이 사람은 하나님을 도저히 믿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예전에 하곤 했는데 이 또한 교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음이 내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아무리 험악하고 완악할지라도 주님 은혜안에 거하면 바뀌지 않을 사람이 없기에 주님의 긍휼함으로 바라보고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부자청년이 천국을 갈 수 없는 이유는 부자이기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의 정체성을 내려놓아야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다음이 섬김을 받기를 포기하고 겸손히 섬기는 일입니다. 과감한 결단과 내려놓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지만 과감한 결단을 기대하십니다.
내려놓은 다음의 상황을 주님께 맡기는 단계까지가야 합니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매일 나 자신과 싸우며 삽니다. 하지만 이 싸움조차도 내 삶의 의미있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 주시며 힘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제자의 삶은 종으로 섬기는 자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은 말이 아닌 ‘행동’ 속에 담고 계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말씀을 아는 데에서도 그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는 대접받지 않고 낮은 마음으로 섬기는 자 되길 원합니다.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보통은 많은 사람이 꾸짖고 조용히하라 하면 기가 죽어 그들의 말대로 하거나 그 자리를 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맹인 바디매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소리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러 외쳤습니다.
너무 간절했기에 소리쳐 외치면 나를 돌아보실 것이란 믿음에 있었기에 그리하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소리쳐 부딪혔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간절함이 내게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간절하지만 바디매오와 같이 부딪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간절함으로 원하기만 할뿐 이토록 간절하게, 고침 받으리란 믿음으로 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바디매오를 통해 간절함과 구함 그리고 그리하여 주시리란 믿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바디매오를 통해 믿음에는 용기도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뒤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실 이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과 용기를 지닌 바디매오와 같은 믿음의 백성 되기 원합니다.
간절한 만큼 주위의 시선, 염려는 뒤로하고 주를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감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된 주의 자녀되길 기도합니다.
맹인이고 거지였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면 그의 눈이 볼 수 있을꺼라 믿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부르는 바디매오에게 많은 사람들은 잠잠하라고 꾸짖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바디매오는 더 크게 예수님을 부르며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가 볼 수 있도록 고쳐 주셨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이라 일을 할 수없으니 거지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평생 소망도 꿈도 없던 그가 예수님을 민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의 삶이 기쁨과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늘 소망을 주시고 기쁨되시고
우리를 늘 긍휼하게 여겨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핑계 삼아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바디매오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강력하게 전해지는 시간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참 소망되신 예수님!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바디매오같이 회복되어 주님을 따라 잘 살게 축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