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해밀학교 봉사를 가기위해 36번 버스를 탔다.
36번은 우리집에서 나가면 바로 신호등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탈수있다. 광천 터미널을 지나 농성동을 거쳐 양동시장으로 해서 금남로를 지나면 문화전당역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 되긴 하지만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똑같은 코스로 가고 있는 도중 옛 농촌 진흥원 그러니까 상록회관이라 하면 더 쉽게 알수 있을 법하다.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은 진작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서 흘끗 쳐다봤더니 아주 높은 아파트 단지가 떡하니
들어서 있는 것이다.내 가슴이 파랗게 부서지는 것처럼 서럽다.
그곳은 내 어릴적 빛바랜 낡은 사진 처럼 물결 같은 그리움이 기억의 단층처럼 쌓여 있는 곳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내 기억은 없지만 화순 이양에서 잠깐 살았었고, 봉선동에서도 잠깐 살았었다고 한다.
지금의 봉선동은 그야말로 광주의 강남이라 불리지만 그때 당시는 거의 시골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내 기억이 나는 곳은 지금의 농성동 말고는 없다.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결혼 할 때 까지 살았던 곳이라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오면 농성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어렸을 때라 신작로라 불렸던 지금의 도로가에는 서구청이 있었고,조달청도 있었고, 낮으막한 기와집의 동사무소도 있었다.
지금의 한전 자리가 들어서기 전, 꼭 그자리는 아닐지모르겠는데 아마도 가마터가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마터가 있는 그사이를 지나면 외가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한 번씩 다니기도 했는데 거기엔 커다란 굴이 있었고 그 굴 안에는 타다 남은 장작더미나 깨진 항아리 같은 질그릇이 있어서 그곳에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어린 나에겐 그야말로 무서움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늘 겁에 질려 후다닥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지나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농촌진흥원은 내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자,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구름과자 처럼 피어나는 화사한 벚꽃이 만개 하면
그야 말로 꽃에 취하고 향기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게 되는 곳이다.
어렸을 적 내 동생과 함께였고 때론 동네 친구들과도 함께 였는데 그곳에 들어서면 일단 꽃이 늘 예쁘게 피어 있어서 기분이
먼저 알아챈다.피아노의 맑고 은은한 선율을 닮은 듯 푸른 웃음이 피어난다.
토기풀로 시계도 만들며 꽃반지도 만들어 끼고 또한 삐비라 불리던 풀을 뽑아 한 웅큼씩 손에 쥐고서 누가 많이 뽑았나 자랑치던 친구들, 그러나 난 늘 어찌된 일인지 삐비를 구분을 못하고 뽑지를 못한다 옆에 있는 친구가 뽑아서 먹어보라고 주면 하나 받아서 돌돌
돌리면 풀어지면서 그안에 숨어있는 하얀 색실처럼 뽀얗게 말려져 있는 솜같이 부드러운 이삭을 먹는다.
달큰한 맛이 난다.
나에게 있어서 유년시절의 추억의 장소였던 농촌진흥원도 사라지고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상록회관의 벚꽃도
도금이 벗겨진 반지처럼 빛이 바랬다.
첫댓글 어릴 적 생각을 요약하면 환희, 경외가 아닐지요. 나이가 들면 추억, 번뇌가 될려는지....
어릴 적 환희가 번뇌로 바뀌어 저놈의 솜사탕을 사먹어 말어! 어릴적 모퉁이 으슥진 곳 두려움이 추억으로 바뀌어 상념에 젖게 합니다. 지금 우리 손녀는 날마다 무엇을 느끼며 성장하고 내 나이가 되어 무었을 추억할지요.
사람삶이 다 그런가 합니다.
정부수립 100주년이라 하는데 지금부터 100년은 어찌 변할까요. 다 사람사는 것은 같지 않을까요.
오늘 결혼식에 갔다 왔는데 나 어릴 적 본 결혼식이나 지금 본 결혼식이나 형식만 틀리지 그 저변은 다 같더이다.
수수하게 올라온 글 보면서 나도 같이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 봤습니다.
마치 유년시절처럼 떠오르는 나의 고향은 광주의 첫 보금자리 북구 연제동 종점입니다.하루의 일과를 마친 마지막 차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가로등도 졸린 눈을 비비는 늦은 밤의 그림자들.봄 여름 가을 겨울,경계가 뚜렷하리만치 계절의 감각들이 느껴지던 곳.작은 숲에선 뱀도 나타났으니 시골스런 분위기도 좋았지요.영주 씨가 농성동,봉선동에 살았군요.차 타고 지나면 옛 추억들이 되살아나겠습니다.추억은 반짝반짝 빛나기 보단 아련하게 빛바래있어 그립습니다.
누구라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릿한 추억...
지음님은 광주태생인지라 주로 산,들,강 만 기억되는 농촌산인 저하고는 달리 관공서 도로등의 추억들이 있네요.시골같던 광주가 정말 많이 변했군요.상록회관의 아름다운 벚꽃을 다시는 못보게 되어 너무 아쉬워요.
아.
농촌진흥원의 추억은 나도 있답니다.
고2때 친구들 넷이어 카메라를 빌려 사진찍으러갔더랬지요.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온 남학생들도 있었는데 허락없이 우릴 찍어 현상해서 사진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만나자고했었지요.
궁전제과에서 만나기로했는데 그후론 기억이 안나네요.
봉선동은 초등학교때 소풍지일 정도로 시골이었어요.
사생대회 나가던 광주공원,빨래터이던 광주천.
아스라한 어린시절들.
사무치게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