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지를 펼쳐 본 당신은 이런 광고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중증 남성 장애인들은 생활 정보지를 통해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경우가 있기 때문. 그리고 광고를 낸 장애인은 상당히 많은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거개가 이혼녀라던데.
수원에 사는 중증 장애인 이씨는 생활정보지에 결혼 광고를 내는 것이 일상적인 삶의 일부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도 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결혼에 성공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요?” “저 혼자 대소변을 치룰 수 없기 때문에 일일이 도와줘야 합니다”
이쯤되면 전화가 끊길 차례가 되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물론, 짫았지만 동거까지 한 경험도 있다. 이때의 기억을 되짚던 이씨. 씁쓸하게 내뱉은 그의 말끝에는 황망함이 묻어있었다. “웃기는 년”
아이를 낙태할 돈을 구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아이를 낙태시키자마자 짐을 챙겨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그녀는 비장애인이었다. 응급결에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여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는 그녀를 동정한 그는 방을 내주어 함께 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꿈을 가꾸었다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결혼을 전제로 함께 동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며, 그 사람의 아기를 갖게 되자 낙태를 하기 위해 일부러 결혼 상대자를 찾고 있던 이씨에게 접근했던 것.
장애인과 결혼하면 자살한다?
생활 정보지에 결혼 상대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낸 장애인들은 크고 작든 이와 같은 상처를 받고 있다. 충북에 사는 1급 중증 장애인인 서 씨 또한 이씨와 비슷한 사기를 당한 케이스. 결혼 상대자가 장애인이라도 상관없다면서 걸려 온 전화 그리고 두메 산골에 위치한 서씨의 집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 온 40대의 여인은 딸 하나를 둔 이혼녀였다.
그녀와의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서 씨는 아주 오랜만에 ‘남자’로서의 행복함을 누릴 수 있었다. 한 여인의 남편이 된다는 혹은 자신의 핏줄은 아니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 동안 말랐던 영혼의 샘을 다시 촉촉하게 채워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행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으로 끝맺게 된다. 조그만 가게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면 좋겠다는 여인의 말에 혹하여 만난지 겨우 2주도 채 되지 않아 250만원을 빌려주었던 그것. 그뒤에도 여인은 계속 돈을 요구하였고 서씨는 특별한 의심없이 돈을 빌려주어 모두 800만원에 이르게 되었다.
정부로부터 쥐꼬리만한 생계비를 지급받는 수권자인 서씨에게 8백만원은 전 재산. 그러나 사랑에 눈먼 장애인의 전 재산은 문자 그대로 ‘사기’당하고 말았다. “그 여자가 잘 살고 있으면 좋겠어요. 딸도 있으니 그 돈으로 밥이라도 굶기지 않으면서요. 결과야 어쨌든 한때 좋아했던 사람인데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나요.”
이렇게 말하는 서씨에게는 사랑에 관한 철학이 있었다. 3년여 이상 교제한 여자친구. 하지만 서씨와 결혼하면 자살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여자쪽 어머니의 서슬 푸른 고함소리. 결국 서로 너무나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쓰라린 가슴을 안고 헤어져야 했던 참담한 기억을 가슴 모퉁이에 안고 사는 서씨에게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었던 셈이다. 서씨의 전 재산을 훔친 그 여인도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결혼할 테니 대신 빚을 값아달라
장애인에게 결혼은 미친 짓일 수 있다. 아니, 2, 3, 4, 6급도 아닌 1급의 중증 장애인에게 결혼은 미친 짓에 도전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비장애인이라면 생활 정보지에 실린 결혼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씨의 말처럼 전화를 걸어 온 여성들의 태반은 돈을 원한다고 한다. 가장 많은 경우는 ‘대신 빚을 값아 달라’는데.
너무나도 살기가 어렵다보니 이제는 벼룩의 간도 빼먹을 수만 있다면 빼먹으려고 하는 게 요즘 세상사다. 결혼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 사람들의 전부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혼을 원하는 장애인 여성, 남성들의 삶의 피곤함은 더욱 크게 늘어난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일례로 결혼상담소를 통한 맞선은 성사되기가 거의 어렵지만, 생활 광고지에 낸 광고에 비장애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 역설을 증명할 것이다.
이외에 인천장애인결혼상담소의 이동희 소장의 말,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남자예요”는 어떤 측면에서 여성 장애인들은 결혼을 거의 포기하고 산다는 느낌마저 준다.
장애인에게 결혼은 자립을 의미한다. 단순히 독립된 삶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이 삶과 꿈이 지역 사회에 녹아들어가 더불어 혼융하며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사회까지 변화시켜내는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중증 장애인에게 결혼은 꿈만 같다. 이 꿈은 미국의 흑인 인권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한 유명한 말, “나는 꿈을 갖고 있다”의 시작과 끝이다.
‘장애인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미래의 강물을 젖히며 결혼이라는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그날이 꼭 이루어질 것을 꿈꿉니다. 생활 정보지에 광고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결혼을 미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에게 농락을 당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