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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루 한걸음 원문보기 글쓴이: 주인장
<브라질2/213일차> 2012년 5월 11일(금) 리우, 맑음, 예수상에서 슈거 로프까지
브라질 정치와 경제중심도시인 리우의 상징인 '구원자 예수상'
리우를 굽어볼 수 있는 코르도바도 산 중턱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어시서나 보입니다.
이른 시간인 5시30분에 일어났다. 컴퓨터를 켜려고 하니 전기 콘센트가 맞지 않는다. 창희와 아내가 귀국할 때 만능 어댑터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게 창희 짐에 쓸려들어가는 바람에 나에게 어댑터가 없다. 숙소 당직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전원을 연결해 인터넷으로 브라질과 리우데자네이루 여행 등 기본적인 사항을 좀 더 조사하고, 충전도 했다.
7시 50분 아침식사를 하고, 8시30분에 숙소를 나섰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인 코르코바도(Corcovado) 산의 ‘구원자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을 둘러보고, 국립역사박물관(National Hostiry Museum)으로 가 브라질 역사에 대해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해가 질 무렵에 설탕봉(Sugar Loaf)에 오르고, 시간이 되면 코파카바나(Copacabana)나 이파네마(Ipanema) 해변을 돌아보는 것이 오늘 일정이다. 이렇게 하면 사실상 리우에서 볼만한 것은 모두 보게 되는 셈이다. 내가 어제 저녁 숙소 직원에게 리우에 대해 물어보며 하루 만에 돌아보겠다고 했더니 혀를 내두르며 힘들겠다고 했는데,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숙소를 나서 497번 버스를 타고 예수상이 있는 코즈메 벨로(Cosme Velho)로 향했다. 리우 버스요금은 1회당 2.75레알(약 1650원)로 생각보다 비쌌다. 코즈메 벨로에 도착하자 셔틀버스 회사의 호객꾼들이 달라붙었다. 트램은 직선으로 올라가지만, 셔틀버스는 중간에 정차해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가격도 트램과 같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리우에서 유명한 것은 바로 그 예수상으로 올라가는 트램인데, 굳이 민간 셔틀버스를 탈 이유가 없었다. “나는 트램을 타고 가겠다”고 정중히 사양한 후, 9시30분 티켓을 끊었다. 트램을 포함한 입장료는 왕복 43레알(약 2만5000원)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관광지인 이곳은 역시 비싸다.
'구원자 예수상'이 있는 코르도바도 산을 오르는 트램.
트램은 구불구불 코르도바도 산을 올라갔다. 약 20여분 정도가 걸렸다. 예수상이 자리잡고 있는 코르도바도 산 언덕이 해발고도 704m이므로 제법 올라가는 셈이다. 올라가자 귀가 멍해졌다. 코르도바도 산을 중심으로 한 티후카 국립수목원(Tijuca Forest National Park)은 심한 개발 몸살을 앓고 있는 대서양 연안 지역에서 유일하게 열대우림이 보존돼 있는 지역이다. 열대우림이 리우 시내 가운데 자리 잡아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역할을 한다.
트램에서 내려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예수상이 나타납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예수상은 브라질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것이다. 리우 카톨릭 교계의 주도로 25만달러의 자금을 모금해 1922~1931년 9년 동안의 작업 끝에 만들어졌다. 높이 39.6m, 양팔을 펼친 폭이 30m에 이르러,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예수는 평화와 구원의 상징이다. 저녁에는 예수상 아래쪽에서 빛을 발사해 예수상을 비추는데, 이 빛은 9200km 떨어진 로마에서 발사된 단파 주파수에 의해 작동한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그 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 리우에서 작동시킨다고 한다.
예수상 앞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파를 헤집고 들어가 나도 그 앞에서 예수처럼 팔을 벌리고 인증샷을 찍었다. 뒤를 돌아보니 리우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로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안과 슈거로프(Sugar loaf), 이파네마(Ipanema) 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아침 안개가 남대서양 해안을 감싸고 있어 시야가 약간 가렸지만, 환상적이었다. 한참을 대서양 연안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에 빠져들었다. 역시 리우데자네이루는 열대지역으로 항상 따뜻한 날씨가 지속돼 살기에 좋고, 자연풍광도 뛰어났다.
관광객들이 예수상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습니다.
앞은 협소하고 예수상은 워낙 커 카메라로 전모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리우를 끌어안는듯, 삶의 무게에 어려움을 겪는 리우 시민을 구원하려는 듯...
예수상 아래로 중산층이 밀집한 리우의 남부 지역은 해안을 끼고 고층빌딩과 비교적 잘 정돈된 주택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예수상 반대편의 티후카 국립공원 건너편 북부지역은 매연인 듯한 검은 띠가 감싸고 있었다. 공장지대와 함께 빈곤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멀리서 봐도 중산층 거주지역과 빈곤층 거주지역의 차이가 느껴졌다.
예수상 앞에서 내려다본 리우 시내와 대서양.
바다 한 가운데 뾰족 솟아있는 봉우리가 설탕봉이며,
그 앞에 백사장이 길게 이어진 해변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리우의 가장 남쪽인 이파네마 해변과 도시의 건물들.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예수상 아래에는 작지 않은 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두 1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일부 관광객들이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예수상 주변의 복잡한 모습과 달리 이곳은 조용한 기도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예수상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의 조각이 있었는데, 예수상을 디자인한 하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Heitor da Silva Costa)의 흉상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수상 아래의 성당과 기도실입니다.
예수상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트램에서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모두 흥에 겨워 몸을 들썩입니다.
예수상을 둘러보고 리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다 11시30분 다시 트램을 타고 내려와 422번 버스를 타고 국립역사박물관(National History Museum)으로 향했다. 론리 플래닛에는 간단히 소개가 돼 있지만, 나는 브라질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브라질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걸음도 가벼웠다. 버스에 함께 탄 브라질인이 유창한 영어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리우에 온 이후로 버스를 탈 때마다 이런 도움을 받고 있다. 브라질 사람들이 생각보다 친절했다.
브라질의 버스. 통로 입구에 차장이 앉아서 요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입구가 매우 좁아 뚱뚱하거나 큰 짐을 든 사람은 지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돼 박물관 입구의 식당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물을 포함한 가격이 21.5레알(약 1만2700원)로 생각보다 비쌌다. 1인당 소득이 1만2000달러 정도인 브라질 경제수준에 비해 물가가 비싼 느낌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입장료 4레알에 오디오가이드 8레알 등 총 12레알(약 7000원)로 저렴했다.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국립역사박물관은 1762년 도시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한 유서 깊은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1922년 박물관으로 개조돼 공개됐다. 하지만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실망감이 몰려왔다. 브라질이 엄청난 국토에 유구하고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이 위주로 돼 있었다. 더욱이 지금도 아마존 밀림지대에는 다양한 부족들이 다양한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전시와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과연 브라질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재의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브라질 국립역사박물관 입구.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합니다.
브라질은 어떤 나라인가. 인구가 1억9300만명, 국토가 남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국이다. 인구에선 세계 5위이며, 경제규모는 세계 6위다. 1인당 GDP는 1만2000달러 수준이다. 남미와 라틴 아메리카를 아우르는 최대 국가이며, 중남미의 맹주다. 1500년 이후 300년에 걸친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에 이어 1822년 독립을 선언하고, 1889년 대통령제의 공화정으로 이행했다. 이후 흩어져 있던 지역을 통합해 연방국가가 되었으며, 현재 26개주에 5564개의 지역 및 도시(Municipalities)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인 아마존은 천연자원과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며, 이곳에는 아직도 67개 부족이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빈부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빈민 거주지역인 파빌라(Favela)는 범죄조직이 창궐해 공권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한 나라였다. 하지만 지난 2003년 집권한 노동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이 8년 동안 사회개혁을 실시한 이후 큰 변화의 몸부림을 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1990년대 2% 미만으로 내려갔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는 5% 안팎으로 급격하게 높아졌고, 룰라 대통령의 후계자인 호세프 대통령이 2011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회 및 경제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브라질의 사회 문제가 워낙 깊었던 데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구촌의 양대 스포츠 제전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회와 2016년 리우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기대감이 충만해 있다.
이런 기대감을 갖고 국립역사박물관을 찾았으나, 역동적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찾은 관람객이라고 해봐야 외국인 4~5명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박물관은 텅텅 비어 있었다.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 민족이나 국가는 사회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그만큼 사회개발도 후퇴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브라질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인지 의문이 몰려들었다.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에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릴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지금이 평일 낮이기 때문에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국립역사박물관이 이처럼 텅 빈 경우는 처음이었다. 인도도 박물관엔 학생들과 일반인들로 북적이지 않았던가. 역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전시내용이 감동을 주지 못해서인지, 도대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토착 인디언들의 유물.
장구한 인디언의 역사는 박제돼 있을 뿐이며,
오늘날 브라질의 역사는 포르투갈 식민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식민세력인 일제를 대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의 조각으로,
저 안에 금과 은 등을 넣어 밀수를 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대 브라질 역사를 보여주는 대통령 선거 포스터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대포들.
포르투갈 왕실 및 브라질의 귀족들이 사용하던 마차.
아쉬운 마음으로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멀지 않은 공항으로 향했다. 어제 포르투갈을 떠나면서 입국 심사원에게 보여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한 항공권을 반환하기 위해서였다. 절차가 간단하지 않고 수수료도 떼겠지만, 그냥 갖고 있는 것보다는 반환이나 취소하는 것이 이익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공항의 탐(TAM) 항공사 창구로 가 표를 내밀면서 취소를 요구하니 군말하지 않고, 여권을 보여달라면서 바로 취소해주었다. 그런데 수수료가 77유로(10만8천원)에 달했다. 원래 지불했던 금액인 241.62유로(약 33만8000원)에서 77유로를 제외하고 앞으로 3개월 이내에 164.62유로(약 23만원)가 신용카드에 지급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하루만에 34만원을 날렸다가 반환으로 23만원을 돌려받게 됐다. 기가 막혔다.
이어 공항에 있는 우체국에 들러 서울에 있는 가족에게 예수상이 담긴 카드를 부쳤다. 잘 도착해 즐겁게 여행하고 있으니, 한국에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썼다. 갑자기 가족이 또 보고 싶었다. 우표 가격이 2.7레알(약 1600원)이었다. 내 수중에 있는 동전이 조금 모자랐지만, 우체국 직원이 2레알 조금 넘는 돈만 받고 우표를 부쳐주었다. 자상한 직원이었다.
그런 다음 걸어서 시내로 향했다. 공항의 여행자 안내센터에서 해변으로 가는 방법을 물으니, 12레알(약 7000원) 하는 프리미엄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그동안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여기서도 걸어보기로 했다. 더욱이 지금은 나 혼자 여행하고 있기 때문에 걸어 돌아다니는 맛도 더 날 것 같았다. 공항에서 리우 중심가는 멀지 않았다. 급성장하는 브라질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면서도, 개선해야 할 것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리우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육교에서 바라본 리우데자네이루.
멀리 코르도바도 산 언덕에 구원자 예수상이 보입니다.
한국의 1980년대 정도 될까? 국민소득은 1만2000달러에 이르지만, 아직 사회의 소외된 곳까지는 모두 돌보지 못하는 상태 같다. 대기업 직원과 공무원, 전문직들은 경제성장의 바람 속에서 풍요롭게 살지만, 빈부격차는 커지고, 이 사회를 통합할 가치나 정체성은 갖지 못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가 그나마 정체성 확립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식의 성장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중심가의 고층 빌딩들.
세계 6위인 브라질 경제를 이끄는 철강, 통신, 정유, 금융 등의 기업들이 즐비합니다.
시내의 스낵코너에서 6.8레알(약 4000원)을 주고 샌드위치를 사 먹으며 휴식을 취한 다음, 카테드랄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시멘트를 저렇게 드러내 놓은 요상한 건축물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안으로 가보니 놀랍게도 성당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성당을 본 적이 없는데, 새로운 양식으로 아주 흥미진진했다. 내가 들고 다니는 론리 플래냇에도 소개가 없어 그것이 성당인지 몰랐다. 건물 앞의 설명문을 보니 산 세바스찬 메트로폴리탄 카테드랄이라는 이 성당은 높이가 96m, 기단부의 지름이 106m에 이르며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직선의 돔 형식으로 만들어진 카테드랄.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안에 들어가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카테드랄까지 돌아보고 나오니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있다. 시간도 5시가 가까이 되고 있다. 서둘러야 했다. 석양의 리우를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슈거 로프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숙소 앞의 버스정류장으로 와 464번 버스를 타고 리오 술(Rio Sul)에서 내려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뛰어가다시피 서둘러 걸어갔다. 해가 서쪽의 예수상 뒤편 산 너머로 막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보면서 케이블카를 향해 뛰었다.
입구에 도착해 53레알(약 3만1000원)을 주고 티켓을 끊은 다음 케이블카에 올랐다. 포르투갈어로는 아슈카르(Asucar), 영어로는 슈거 로프(Sugarloaf)라고 불리는 이 설탕봉은 대서양 연안의 과나바라 만(Guanabara Bay)에 삐죽 나와 있는 반도의 봉우리로 높이는 396m다. 바다 한 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설탕이 없다. 설탕을 생산하거나 거래하던 시설도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설탕봉이란 이름은 그 모습이 원뿔형의 설탕 덩어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름의 기원은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이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브라질 상업의 중심지였던 리우를 중심으로 사탕수수와 설탕 무역이 번성했는데, 설탕 덩어리를 배에 싣기 편리하도록 설탕을 원뿔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리우 주민들은 이 봉우리가 설탕덩어리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설탕봉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정식 명칭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설탕봉(슈거 로프)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설탕봉에서 리우 시내를 바라보니 서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가운데 도시의 거리와 건물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서양 연안에 떠 있는 배에서도 환한 불빛이 뻗어져 나왔다. 멋진 풍경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이 밀려오면서 도시의 불빛이 토해내는 빛의 강도가 높아졌다.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아픔을 어둠이 묻어가는 듯했다.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남쪽의 해안가와, 노동자와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북쪽의 분위기가 다른 듯했다. 세계 3대 미항인 리우 항구와 리우 시내, 길게 뻗어있는 해변에 넋을 빼앗겼다. 난간에 걸터앉아 뜨거운 포옹을 하는 아베크족들도 보였다. 리우의 낭만이 흠뻑 풍기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설탕봉에서 바라본 리우 시내와 예수상.
해가 지면서 붉은 노을이 리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커피도 한 잔 마시며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리우의 야경을 실컷 구경을 한 다음 6시30분 정도 돼서 내려오니 거리엔 짙은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이 도로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리우의 불안한 치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숱하게 들어서 그런지 약간 어둑어둑한 길은 걷기에 께름칙했다. 일단 센트랄(Central)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안전하니까. 버스에서 지도를 보며 차가 지나가는 위치를 파악하다 차장에게 물으니, 역시 영어를 할 줄 아는 여성 승객이 나서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굳이 버스를 갈아탈 필요 없이 중간에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며 내려야 할 정류장까지 알려주었다.
관광객들이 설탕봉 전망대에서 리우 시내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긴 코파카바나 해변과 리우항에도 불이 들어왔습니다.
남반구 최대도시인 리우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사진 가운데의 산 너머가 공장과 빈민층이 주로 거주하는 북부지역이며,
사진 아래쪽과,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 너머가 중산층 거주지역인 남부지역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돌아오다 몇 개의 점포를 들른 끝에 중고 가전제품 판매점에 들러 어댑터도 구입했다. 남미의 전기는 220V이지만, 전기 코드의 크기가 달라 어댑터를 사용해야 했다. 한국에서 사가지고 온 만능 어댑터가 창희 귀국 가방에만 들어가지 않았어도 전자제품 매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잘 통하지 않는 영어로 어렵게 어댑터를 구입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전자제품 가게를 돌아다닌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다시 광란의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숙소는 빈 침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고, 젊은 청춘남녀들이 술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영주도 잔뜩 만들어 놓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북스 호스텔(Books Hostel)은 이른바 ‘파티 호스텔’이었다. 젊은이들이 밤새워 파티를 하며 즐기는 것을 컨셉으로 하는 호스텔로 매일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올 나이트’ 전문 숙소인 셈이다.
소란스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한결 개운해졌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리우 시내와 외곽을 돌아다녀 피곤했지만, 역시 샤워는 피로를 풀어내는 데 최적이었다. 그런 다음 상파울로 숙소와 꾸리찌바 홈페이지를 샅샅이 훑으면서 이후 일정을 준비했다. 하지만 꾸리찌바 방문에 앞서 이메일을 보내려 했으나 마땅한 연락처를 찾을 수 없어 도시 엔지니어링과 관련한 내용만 확인했다. 그러고 나니 10시가 넘어 일찌감치 침대로 들어갔다.
그런데 밖에선 요란한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왁자지껄한 대화, 웃음소리가 숙소 전체에 울려퍼졌다. 밤새도록 아침 새벽까지 그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광란에 가까운 파티는 새벽 5시가 돼서야 거의 마무리된 듯했다. 그때까지도 술에 취해 떠드는 일부 청춘 남녀들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과연 이 나라 젊은이들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삶을 즐기는 모습이 즐겁게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이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얼마나 고민을 하는 것인지 복잡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 숙소 분위기는 지금까지 다녀본 호스텔과 완전히 다르다. 지금까지 7개월 동안 들렀던 거의 모든 호스텔은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세계를 주유하면서 갖는 생각과 청춘의 기쁨, 아 픔, 꿈, 희망을 공유하는 공간이었는데, 여기는 젊은이들이 모여 밤새도록 술 퍼마시고 놀고, 그러다 잠도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침실에 소음이 그대로 들리는 데도 침실에 있는 고객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찢어지는 듯한 음악을 틀어놓고, 북을 치면서 노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다른 숙소에서는 다른 투숙객들을 고려해 대화도 조용조용히 하라는 권고를 했는데, 여기는 완전 반대다. 헉, 기가 막힌다.
나의 학창 시절, 민중의 고통과 분단 조국의 앞날에 대해 밤을 새워 토론하고 고민하곤 했는데 이곳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살아가는 것일까. 브라질이야말로 한국의 1980년대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갖고 있는 나라 아닌가. 이 나라 젊은이들은 세계 최악의 빈부격차와 사회 갈등, 권력층의 부정부패에 대해 도대체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이곳 브라질에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자유를 위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것인지, 의문만 쌓였다. 브라질, 덩치만 큰 브라질, 터져나갈 듯한 살점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한, 비대한 브라질, 그러나 자신은 제대로 관리할 줄 모르는 나라 아닌가. 아, 브라질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광란의 파티가 초래한 소음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도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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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루 한걸음 원문보기 글쓴이: 주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