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밤이 운동화를 신고 있다 바다 쪽으로 휘어진 산방산 산등성 위 눈썹달이 고요하다 먼바다는 빛나고 눈앞은 캄캄하다 두 팔을 흔들며 걸으면 씩씩한 바람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자기 그림자에 말을 걸었다 헤드폰에 모여들던 음악이 사방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나는 아픈 동생과 함께 타원형 운동장을 돌고 있다 울음을 대신한 멜로디를 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 손가락 사이 제주의 바람이 몰래 지나갔다 곶자왈을 아침마다 복용하는 동생은 점점 초록의 표정을 닮아가고 있다 가끔 그 내음을 온몸에 바르곤 했지만 이내 계절은 어지러움으로 비틀거렸다 겨울도 겨울 같지 않은 제주에서 난 출구를 잃고 헤매는 바람의 갈피를 넘기는 일을 반복했다 이제 좋아질 거야 점점 나아질 일만 남았어 애써 위로하는 수선화의 노란 말이 동생은 들려도 듣지 않은 척했다 무표정의 표정이 겨울을 보내려고 별빛을 뭉친다 산방산은 종 모양이야 동생은 말했다 종소리가 울리면 곧 봄이 올까 우리는 어둠의 한가운데를 돌고 있다 타원이 직선으로 느껴졌다 이 세상에 멈춘 것들은 없어 보이지 않아도 다 움직이고 있지 내일은 어느 바다로 노을을 보러 갈까 밤이 푸른 밤의 운동화 끈을 묶는 동안 우리는 기다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