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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斷想
혼자 떠나라
사람들이 관광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가이드가 가리키는 대로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는 것은 보기만 해도 피곤하다. 그리고 그 작품들이나 건축물들이 자신들의 삶과 생각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모습들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간다. 마치 세트장에 갇힌 새들처럼 창조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행....
여행에 무슨 창조력이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일상생활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창조력이 아닐까?
그런데 국내에서부터 여행자들은 대부분 세트장이기를 자청하고 나선다. 동창생, 친구들, 계모임 등. 떼거리로 몰려가 떼거리로 돌아다니는 것. 그리고 저녁엔 술을 먹고, 해외에서까지 비싼 노래방을 기어이 찾아 한국노래를 한자리 불러야 직성이 풀리고, 하루만 김치를 못 먹어도 안달하고…. 잠자리, 먹거리. 웬 놈의 불평은 그리 많은지. 내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몇 번 간 기억은 거의 그랬다.
혼자 떠나라! 혼자 떠나기 전 어려우면 둘이 떠나라! 부부이면 더욱 좋고, 친구, 형제지간, 이성 간이던 둘을 넘어서면 초점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도 세 쌍 중 한 쌍이 의견이 맞지 않아 이혼한다니 웃을 수 없는 아이러니다.
붙였던 눈썹도 띠고 가라는 게 여행인데, 더욱이 장거리에 장시간의 여행은 여럿이 함께 가면 의견 조정을 하기도 힘들고 한국판 여행의 재현이어서 여행의 의미도 없다.
이곳 피렌체에 와서도 나는 그 많은 르네상스의 예술과 유물을 일일이 다 구경할 수도 없으려니와, 또 할 의사도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피렌체시의 전경을 관망하고, 아르노강에 있는 베키오 다리를 건너, 우피치 박물관에 가서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을 감상하고,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다는 바디아 성당에 가서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보고,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 진품을 감상하고, 베키오 궁전과 씨뇨리아 광장을 거쳐 두오모 성당의 산 조반니 세례당과 산 로렌초 교회에 가서 우리의 소원을 한 번쯤 기원해 보는 것. 우와! 이 것만 해도 무지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내어 피렌체의 풍물과 먹거리를 맛보는 시간은 꼭 내야 한다.
스스로 내 발로 걸어서 그 내용을 알든 모르든 한가지라도 관심사 있는 것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한 번쯤 유심히 음미해 본다는 것 자체가 좋다. 이래라저래라하는 가이더의 신물이 나는 잔소리에서 벗어나 르네상스의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어 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여행에서 욕심은 금물이다. 다 보려고 하다가는 하나도 보지 못한다. 사실 여행의 진수는 안내자도 안내 책자도 없이 탐험 정신으로 떠나는 것에 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하듯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간다면 그 엑싸이팅한 흥미가 반감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다만 세상이 험하고 악한 자가 많으니 교통과 잠자리는 미리 챙기고, 역사적인 내용들과 문화에 대한 정보 정도는 미리 좀 알고 간다면 금상첨화. 그래야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의 향기를 느끼고, 문화의 정취를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장에 가서 안내 책자를 떠들어 보고 하는 것은 이미 때늦은 발상. 그러다간 현장의 모습도 놓쳐버리고, 우글거리는 소매치기와 집시들의 표적이 되고 만다.
영화 '전망 좋은 방'에서 샬롯과 동행한 이름은 잊었지만 극중의 작가가 피렌체의 거리를 함께 걷다가 길을 잃은 장면이 생각난다. 길 잃은 샬롯이 안내 지도를 보아야겠다고 하자 그 작가는 이를 만류한다. 여행은 지도를 안 보고 다녀야만 맛이 난다고 하면서…. 길도 잃어 보고, 도둑도 맞아보고, 바가지도 써보고.... 하는 우여곡절을 거쳐보아야만 오래도록 그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 앞에서 내렸다. 아펜니노산맥에서 발원하여 피사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는 아르노강의 너비는 우리의 한강에 비하면 사실 손바닥 크기에 불과하다. 이 강 위에 피티궁전과 우피치 박물관을 연결하는 귀족들의 다리가 베키오 다리다.
1층은 일반 통로로 사용하고 2층은 지금도 우피치와 피티궁을 오가는 관광귀족(?)들이 사용한단다. 2층 뚜껑이 있으니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젠장, 오늘도 비가 많이 내리려나….
좌우간 아내와 손을 잡고 유럽의 무수한 문인, 예술가, 연인들이 즐겨 건넜다는 베키오 다리를 건넜다. 아르노강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그들의 미사여구는 내가 보기엔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하기야 다리를 건널 때 누구와 함께 걷느냐가 중요한 느낌을 주겠지, 구린내 나는 강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향기로 둔갑하고 말 것이다.
아내의 땀나는 손을 잡고 가는 것은 좋은 데 안개가 낮게 드리워져 있는 아르노강은 잿빛으로 변해 있다. 날씨 탓이겠지…. 이제 나는 우피치의 수많은 예술품 중에서도 오직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을 보기위해 베키오 다리를 건너 그 기다란 건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풍만한 여체와 황금물결 같은 긴 머릿결과 손으로 살짝 가리고 있는 그녀의 젖가슴을 마음껏 탐닉해 볼 작정이다. 아,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아름답다 못해 고혹적인 비너스의 여체를 보기 위해….
단테와 베아트리체
베키오 궁전을 떠나 끌로 조각된 듯한 거리를 거닐어 본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는 우리의 통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재개발 되어야 할 도시처럼 느껴지기만 하는데…. 하나같이 예술의 진품으로만 느껴지는 대리석 건물들과 조각품 사이를 돌로 예쁘게 장식된 거리의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마치 동화에서나 봄 직한 어느 마법의 도시를 거니는 느낌이 절로 든다.
르네상스 이후 천년이 지나도록 거의 원형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거리 하나하나, 건물과 조각상 하나하나를 만나는 것 자체가 나를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휩싸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불멸의 예술을 창조한 르네상스인들의 영혼을 이 도시의 거리거리에서 그들의 손때와 함께 만난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한 알 수 없는 뭔가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다.
마법의 성처럼 생긴 산타크로체 교회까지 걸어가는데도 전혀 피곤한 느낌이 없다. 로마의 거리를 걷는 것과 피렌체의 거리를 거니는 것은 상당한 차이를 느낀다. 로마의 거리는 집시와 소매치기들이 날뛰는 이리떼들의 살벌함과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의 소음공해로 금세 피곤함을 느끼는데, 예술의 영혼들이 물결치는 피렌체의 거리는 조용하고 차분하며,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현재는 납골당으로 쓰이는 이 교회는 이곳 출신의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 피렌체를 꽃피운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무덤이 놓여 있다. 미켈란젤로의 무덤 옆에는 단테의 가묘도 있다. 나는 이 납골당에서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천재 천문학자 갈릴레이의 영혼과 조우한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의 힘을 느낀다.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그들은 지금 어느 별이 되어 하늘에 머물고 있을까?
싼타크로체 교회를 나와 다시 단테의 생가 쪽으로 걸어가는데 여전히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다행히 바람도 불지 않고 빗줄기도 가늘어서 걷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함께 거닐어 보는 피렌체의 거리는 낭만 그대로다. 단테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이 거리를 거닐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베아트리체. 아, 그녀만을 생각하면서 이 거리를 방황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시성 단테의 기념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네모진 광장에 우뚝 선 단테의 기념상을 올려다보는데, 너무 외롭게 느껴진다. 그 옆에 베아트리체의 조각상이라도 곁들였더라면 덜 외로워 보일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바디아 성당으로 들어갔다. 시성 단테는 불과 9살 때 베키오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단번에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전설이 있지만, 혹자는 이곳 바디아 성당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후자의 얘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요즈음 나는 두 권의 프랑스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 한 권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요, 다른 하나는 필립 빌랭의 <포옹>이다. 나는 이 두 소설, <단순한 열정>과 <포옹> 사이를 오가며, 마치 릴레이식으로 그들의 사랑 야기가 연결되는 듯하여 흥미와 스릴을 느낀다. 소설 내용에 피렌체에 관한 이야기가 가끔 등장하여 눈길을 더 끌게 한다.
아니 에르노는 그녀가 죽도록 사랑했던 A와의 이별을 결심하며, 피렌체에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나온다. 아니의 <단순한 열정> 속에도 이곳 바디아 성당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도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장소가 바디아 성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바디아 성당을 배회하며,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녀와 A에 대한 사랑의 종말을 연상해보기도 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영혼의 사랑으로 연결하게 한 이 바디아 성당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 A와 이별을 생각하며 아쉬움에 전율한다. 그리고 그와의 이별은 그녀의 생명의 끝나버리는 것으로까지 비화한다. 아니는 도대체 A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사람의 에이즈 균이라도 간직했으면 좋겠다.'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썼을까? 어? 이야기가 왜 아니 아르노의 방향으로 흐르나?
단테가 어느 곳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건 그건 별문제 안된다. 다만 그가 9살 때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는 첫사랑에 빠져버렸고, 18세에 다시 만나 그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더욱 가슴속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그녀는 단테의 집에서 불과 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는데, 그토록 그녀를 만나기 어려웠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꿈속에서 갈망하는 연인으로 단테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사랑은 더욱 깊었고, 어느덧 성모 신앙과도 같은 마음의 지주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베아트리체가 시모네 데 바르디란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1290년, 젊음과 아름다움의 절정기인 24세에 요절해 버리고 난 후, 그녀는 더욱 단테의 영원한 연인과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단테의 역작<신곡>을 집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단테의 신곡은 '사후의 영혼이 가는 길'을 그려 놓은 것으로 그 주요 줄거리는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되어있는데, 지옥에서 연옥까지는 단테가 흠모하고 존경했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그를 인도하고, 연옥의 마지막 길에서 드디어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의 안내로 단테가 천국에 이른다는 줄거리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의 크기는 얼마큼 될까? 학창시절에 단테의 <신곡>을 읽다가 이해하기도 어렵고 도저히 믿기질 않은 이야기들로만 가득한 느낌이 들어 그만 책을 팽개쳐 버린 기억이 난다. 천재 단테의 마음을 어찌 이 둔재가 알겠는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새삼스럽게 먼지가 낀 빛바랜 세계문학전집을 찾아내어 다시 들추어 보게 되었다. 단테가 35세에 집필을 시작한 이 책은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꽉 차 있다. 그녀가 얼마나 엄청난 사랑의 무게로 그를 눌렀으면 단테는 그녀를 신앙의 성녀로까지 승화 시켰을까? 초로의 나이에 다시 읽어보는 단테의 <신곡>. 이제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를 할 것 같다.
그는 한평생을 베아트리체를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수십 년을 살았는데도 이 시인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베아트리체였다. 아름다운 베아트리체, 요절한 베아트리체, 슬픈 베아트리체로 시인의 가슴을 적시며 영원한 사랑으로….
두오모 대성당
바디아 성당에서 아내와 나는 합장을 하고 소원을 한가지씩 빌기로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내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내는 자못 숙연한 표정이다.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까? 나는 아내의 건강이 떠오르고, 나의 장래가 잠시 생각나는가 하더니, 다시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운 환상이 아른거린다.
바디아 성당을 나와 잿빛 하늘로 뒤덮인 두오모 성당의 지붕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웨딩케이크처럼 생긴 지오모 종탑이 두오모 대성당 옆에 데코레이션처럼 장식한 채 서 있다. 흰색과 분홍색, 초콜릿 색까지 동원한 지오또 종탑은 두오모의 거대한 꾸뽈라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오모 광장을 지나 싼 로렌쪼 교회로 발길을 옮겼다. 피렌체의 수호성인 싼 조반니에게 바친 이 성당에 들어서면 흔히 피렌체 관광의 핵심이라는 '천국의 문'과 마주친다. 성서의 창세기 이야기를 10개의 부조로 구성한 이 문은 로렌쪼 기베르띠가 21년에 걸쳐 북쪽 문을 완성한 뒤 다시 28년에 걸쳐 완성한 문인데, 원본은 대성당 오페라 박물관에 있고 이 작품은 정교한 모조품이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고 하지만 진정한 모습은 예술의 꽃이 핀 도시다. 몇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꽃의 도시.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여성의 꽃이 단테의 시성을 자극한, 그리하여 영원불멸의 <신곡>을 잉태시킨 예술의 도시 피렌체.
여성의 아름다움은 사랑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그리고 남녀의 사랑 속에서 모든 인간의 생명이 잉태되는데. 아, 과연 예술은 이 사랑의 생명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쿠르베의 그림에서처럼 여성은 정녕 아름다움과 생명을 잉태시키는 '세상의 근원'일까? 사실 사랑하는 여성이 없다면 돈도, 명예, 권력도 남성에게는 거품처럼 그 무게가 가벼워지고 말 거다. 따지고 보면 여성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남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것들을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예술과 꽃이 물결치는 도시 피렌체…. 이 도시의 거리를 아내와 함께 걸어 다니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던 것은, 천년이 지난 후에도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단테의 가슴속을 파도치듯 흔들어 놓은 것처럼, 사랑과 아름다운 영혼의 물결들이 아직도 거리에 파도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이제 '피렌체의 전망 좋은 방'은 이쁨에서 이별을 고하고,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를 낳은 '피사'를 향해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