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숙
⊙ 47세.
⊙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아령하는 밤》,
장편소설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 한국일보 문학상, 백신애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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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 꺾인 더위는 언제 젊음이 있었냐는 할머니처럼 힘이 없다. 열정이 냉정으로 변한 걸 계절은 숨길 수가 없다. 열린 창가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차 버린 홑이불을 끌어당기며, 벌써 냉정해진 여름에 대해 열정의 구애를 할 수 없다. 종로구 필운동에 위치한 ‘레더라’ 경희궁점은 스위스브랜드 수제 초콜릿 카페이다. 강영숙 작가와 만나기로 한 공간이다.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 《리나》는 부모를 따라 국경을 넘는 열여섯 살 소녀의 이름이다. 부모와 함께 탈북하여 국경의 유랑민이 된 소녀. 탈출과 굶주림 속에서 ‘P’국이라 지칭된 나라에 정착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동경은 소녀의 신앙과 같다. 최고급 수제 초콜릿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입에 쏙 들어갈 만한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소녀 ‘리나’가 스쳐 갔다. 아직도 국경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것 같은 리나를 초청했다.
강영숙 작가는 등단 15년 차의 중견작가이다. 키가 크고 서늘한 눈매의 이미지 너머에는 부드럽고 너그러운 여성미도 풍긴다. 따뜻한 언니 같은 느낌은 작가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성에 대한 사랑이 아이에서부터 할머니에까지 이른다. 가히 국민언니가 되어도 손색없다. 또한 비영리 재단에 23년째 다니며 일과 소설쓰기를 병행하는 부지런한 작가이다. 그런데 정작 작가는 본인이 아직 신인이라고 말한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국민언니는커녕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작가는 한 소녀가 국경을 넘어 얻으려고 했던 꿈과 가치를 상상하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장편소설 《리나》는 국경을 넘는 소녀의 필살기이다. 열여섯 소녀는 살기 위해 제 몸을 팔면서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돌보기도 한다. 탄광촌의 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가 탈출 얘기를 하자 밤마다 국경을 꿈꾸었다. 회색 빨래가 걸려 있는 탄광촌에서 평생 사는 것과 창녀가 되더라도 외국 물을 먹어 보고 사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은지 열여섯 나이로는 판단이 힘들다. 그러나 외국 물을 먹을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리나는 한밤중 꿈처럼 국경을 넘어간다. 첫 국경을 넘은 안도감도 잠시, 리나는 부모와 떨어져 화공약품 제조공장으로 끌려간다. 독하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공장관리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하기는 하지만 동경하는 ‘P’국을 가려면 돈이 필요했다. 부모를 만나고 대학도 가기 위해서다. 절실하게 ‘P’국으로 들어가야 했던 리나는 거리의 여자가 된다. 그렇게 몇 년 후 리나는 ‘P’국도 별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 어느 나라도 선택하지 않은 리나는 또 다른 국경을 향하고 있다.
<드디어 스물두 명은 총소리 한 번 듣지 않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은 푸른 띠처럼 펼쳐진 드넓은 둑 위에 있지도 않았고, 불 켜진 은빛 교각이 빛을 발하는 강물 위에 있지도 않았다. 국경은 그저 퇴로가 없이 사방이 막힌, 비탈지고 조용한 산길의 일부일 뿐이었다. 국경을 넘는 순간 리나는 목에 걸려 있던 사탕이 뱃속으로 쏙 미끄러져 들어가며 숨통이 확 열리는 기분이었다. -중략-
“한 사람 앞에 두 개씩만 먹어야 해.” 어른들이 말했다. 너무나 배가 고파 앞에 앉은 사람 얼굴도 제대로 안 보였다. 간장도 물도 없이 입속에 만두를 넣었다. 건너편 의자에 앉은 여자들이 뚫어져라 만두를 쳐다봤다. “이렇게 맛있는 만두는 처음이야.” 누군가 감탄해서 말했다. 다들 금세 만두를 먹어치우고는 두 손을 모은 채 이번엔 또 뭘 줄 건가, 인솔자의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인솔자가 가방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대과일을 꺼내 두 사람 앞에 한 개씩 나눠줬다. 껍질째 두 쪽으로 나누자 말간 자주색 알갱이가 터져 나왔다.> -본문에서
탈북자들에게 중국은 경유지가 아니라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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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 《리나》는 국경을 넘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나라로 가지 않고 국경에 맴도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취재한 인물이 있었습니까.
“이 소설은 2005년 한 문예지에 연재했는데 하필이면 왜 탈북 소녀의 얘기냐 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그때 당시 탈북 청소년들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 나이가 소녀를 벗어나 성년이 되는 때였어요. 몸은 우리 애들보다 굉장히 작았지만 말을 시켜 보면 어떤 친구들은 말을 아주 잘하고 어떤 애들은 침묵만 지켰어요. 말을 잘하는 친구들이 저는 훨씬 더 흥미로웠어요. 계속해서 자신을 꾸며 댄다는 느낌이 들었죠. 소설의 캐릭터라는 게 자신의 비루함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꾸며 대는 속성이 있잖아요. 그런 캐릭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전반적으로 여성의 성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다뤄 보고 싶었어요.”
—창작의도에서 왜 리나를 국경에 계속 남게 한 겁니까.
“이 소설은 국경을 넘고, 국경을 넘기 위해 국경 부근에 거주하는 동안의 시간을 상상해서 쓴 것입니다. 실제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몇 년씩 거주하잖아요.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몸은 자라고 여자들은 늙어 가죠. 거쳐 가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거주죠. 사건도 계속 일어나고 삶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P’국이라는 이상향으로 가야 한다는 꿈이 있죠. 처음부터 이 소설에서 국적을 지운 공간을 그려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유목적인 삶의 양상이라고 할까. 국경도 삶의 공간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동이 많아지는 시대 흐름과 인간의 이주 욕망, 자본과의 관계 등 나름대로 동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반영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묘사로만 리나가 이동하는 국경을 짐작할 수 있는데 오히려 더 힘들지 않았습니까.
“무국적의 공간을 그리다 보니, 이동 경로를 추측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논문들을 참고하기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중국 공업지대의 철도 노동자들의 삶을 2년 동안 찍은 왕빙의 다큐멘터리 <철서구>를 봤어요. 550분짜리 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봤죠. 또 무국적이라고 해도 소설을 이루는 세부항목들은 우리 현실에서 가져와야 했는데, 뭘 써야 할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어서 굉장히 힘든 상태에서 소설을 써 나갔어요.”
—왜 22명을 탈출시킨 겁니까. 소설 구성상 인원이 많아 힘들지 않았습니까.
“숫자에 의미를 둔 건 아니고요. 혼자 감행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니까. 처음에는 몇 가족이 함께 출발하고, 그러다가 리나만 남기는 방식으로 한 거죠. 22명을 가족별로, 그룹별로 나눴어요.”
—마지막 장면은 결국 리나가 원점으로 돌아온 겁니까.
“원점으로 돌아온다기보다는 어느 곳도 선택하지 않아요.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P’국은 한국이겠죠. 부모는 이미 와서 정착한 나라이고 ‘니 방을 준비했다’고 마지막 편지에 씌어 있죠. 그러나 저는 왠지 리나가 제3의 선택을 하기를 바랐어요. 좀 도식적이지만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소설에 깔린 전반적인 논리와 맞다고 생각했어요.”
—소녀 리나는 마더 테레사적, 잔다르크적인 면이 있습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면이죠.
“글쎄요. 그런 영웅적인 면모가 있나요? 그냥 저는 좀 생기 있는, 재잘거리는 캐릭터를 그려 보고 싶었어요. 물론 뭔가를 다 감싸 안으려는 듯한 이미지도 있기는 하네요.”
“캐릭터는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onthly.chosun.com%2Fupload%2F1310%2F1310_493_1.jpg)
—반면 리나는 실속 있게 돈통을 챙기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그런 면은 작가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겁니까.
“저는 리나와는 반대되는 성향인데요. 냉소적이고 우울하고 그래요. 직설적으로 말을 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돈을 잘 모으지도 못하고 실속도 없어요. 리나가 처한 그 상황에선 돈이 제일 중요해요. 돈이 있어야 이동이 가능하고 국경을 넘을 수 있으니까요. 국경을 이동하는 사람들은 현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죠. 돈을 철제 통에 보관한 건 애들한테서 힌트를 얻었어요. 애들이 돈을 과자상자에 넣어 책상 밑에 감추는 걸 봤거든요.”
—문학평론에서 “‘정조유린’ 차원에서 남성이 행하는 여성 훼손을 적어도 리나의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응징된다”고 쓰여 있어요. 어린 소녀가 페미니스트인가요.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해도 소설에서는 응징을 하는 게 정직하다고 봐요. 강간당할 뻔한 친구를 구해 주는 장면이 끝나고 결국 리나 일당이 가해자인 카페 사장을 죽이는 장면 같은 거요. 무거운 시체를 끌고 나간다든지, 땅 속에 묻는 장면요. 좀 만화 같은 장면이기도 하죠? 하지만 제 감각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봐요.”
—주인공 리나나 ‘라이팅 클럽’에 나오는 영인, 작가님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동일 인물이라 할 만큼 비슷한 점이 있고, 비슷해도 싫증나지 않는 인물이거든요. 그 소녀들에 대해 들려줄 얘기가 있다면요.
“캐릭터는 소설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죠. 그 당대의 분신이고 당대의 오감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감정이입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에 나와 만나는 부분도 조금은 있었으면 해요. 리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걸 행동으로, 말로 표현하는 역할을 하죠. 그에게 활력이 없다면 저는 소설을 계속 써 나갈 수 없어요. 리나의 중반쯤 쓰다 보니 제가 리나라는 캐릭터에게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어떤 때는 소설과 주인공이 어디로 흘러갈지 잘 모르기도 하니까요. 리나 같은 경우에 어쩌면 또 다른 국경을 넘는 건 도식적인 결론일 수 있어요. 멋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선 그럴 수 없죠. 그런데 그런 도식을 몸으로 해 버리는 캐릭터를 만들려다 보니 리나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부모도 버리고, 뭐 좀 이상한 행동들을 연속적으로 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아요.”
—리나 성격의 소녀 캐릭터를 다른 소설에서 계속 등장시키는 건 어떤가요. 그렇게 된다면 강영숙 등장인물의 전반적인 특징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인물이 처한 상황을 핍진(逼眞·실물과 아주 비슷함)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의 활기랄까 그런 것이 없다면 소설이 이어지기 힘들 것 같아요. 현실이 가혹하면 할수록 그런 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활기가 없으면 진다! 그게 어떤 지독한 현실에 대응해서 싸우는, 소설 속 캐릭터의 성격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인물이 소설 속에서 이 세계에 대해, 구조에 대해 작가를 대신해 멋진 말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을 견디고 분석하고 버티게 해 주는 활기와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강영숙 작가의 문체에 대해 오정희 소설가는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라고 했어요. 평소 성격과 유사한 겁니까.
“그게 아마 첫 소설집 《흔들리다》에 써 주셨던 말씀이었는데, 지금은 건조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어떤 빛깔을 만드는 데 관해 예전에 비해 힘이 좀 빠진 것 같아요.”
“문학 주변의 다른 자리에서 소설 인용될 때 재미” —순수문학에서 독자는 지극히 제한적이죠. 독자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나요.
“저는 독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누가 내 소설을 읽고 영향 받는지 솔직히 관심이 없어요. 독자가 누군지 알더라도 그들에게 맞출 수 없어요. 간혹, 독자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 걸 들어 보면 아주 지엽적인 부분에 매료되어 있거나 하나의 아우라에 갇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저는 사실 독자를 어떻게 배려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행사를 할 때 제 독자라며 어떤 분이 가까이 다가오면 굉장히 이상해요. 무슨 대행업체에서, 작가 행사를 위해 임시 고용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조차 해요.(웃음) 그렇지만 굉장히 좁은 의미의 창작활동 결과인 제 소설이 인문학이나, 어쨌든 문학 주변의 다른 자리에서 인용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소개될 때, 그럴 때는 좀 재밌어요.”
—하나의 단편을 쓰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대개 얼마입니까.
“단편 하나 쓰는 데 한 달 정도 걸려요. 어떤 경우는 아주 빨리 쓰기도 하는데 천천히 쓰든, 빨리 쓰든, 어떡하든 딱 마음에 들고 좋지는 않아요. 퇴고하는 과정도 복잡하고 어떤 결론에 빨리 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뭔가 다른 게 없을까 하며 쓰기를 멈춘 채 길거리를 돌아다녀요. 쓰는 게 목적인지, 돌아다니는 게 목적인지 잘 모르겠어요.”
—쓰신 소설을 봐도 그렇고 여성애가 강한 분이라고 논평에도 있고, 실제로 여자들에게 더 잘해 주는 성격일 것 같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A다 B다, 옳다 그르다, 이런 결정을 잘 못 내려요. 어떤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해요. 원칙이 없어요. 사람도 잘 못 봐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얘기들을 잘 따라가지 못해요. 남성과 여성이 있는데, 그 둘이 아닌 다른 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여성 친화적이어서 여성들과의 교류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제가 만나는 사람의 70퍼센트는 남성이랍니다.”(웃음)
—단편을 꽤 많이 썼던데요. 제 개인적으로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장편을 많이 안 써 봐서 장편이 맞다 아니다 말하긴 힘들어요. 연재를 했다가 책으로 묶지 않은 장편이 있는데 그 작품을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나요. 단편은 희미한 서사만 가지고도 천천히 만들어 갈 수 있지만 장편은 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장편은 좀 더 에너지가 필요한 게 사실이에요. 우리 나라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아주 잘 쓰기 때문에 저 또한 단편도 잘 쓰고 싶어요.”
—추석은 어떻게 보내나요.
“작가가 된 이후, 추석 때도 거의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원고를 쓰거나, 회사 일을 했거나, 집이나 작업실로 혼자 돌아왔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못해요. 가족들도, 키가 크니까 찬장 높은 데 있는 그릇 꺼내는 거 그런 거 시켜요.(웃음) 음식은 아예 시키지도 않고, 부엌에 서 있으면 나오라고 해요.”
“버스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게 좋아” —남편은 외조를 잘하는 편인가요.
“술 많이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그런 게 외조였죠, 전에는. 소설 쓰게 가만히 내버려두는 거 말고는 별로 도와주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가족의 개념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역할이며 관계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 와중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직장생활 하며 글쓰기가 쉽지는 않죠.
“저는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게 좋아요. 신문 보고 커피 한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건 평범하지만 좋아요. 전업을 할 수 있다면 커피를 마시면서 오후 1시까지 글을 쓸 수 있겠죠. 어떤 작가는 그렇게 해서 67권의 저서를 남겼다던데. 그런데 저는 늙어도 또 직장을 찾아다닐 것 같아요. 뭐 간단한 사무보조라든가, 목소리가 좋지 않지만 전화교환원이라든가. 뭔가 찾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가 글만 쓸 수는 없는 물리적인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반적인 매체 환경이 거의 혁명에 가깝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정책을 통해 바뀔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유럽 교회의 종교세처럼 누군가 문학세라는 걸 걷을 수도 없고요.(웃음) 글쎄요. 어떡하면 작가들이 편안하게 글만 쓰며 살 수 있을까요. 애초부터 성공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지금 강의도 하고 있죠. 강의를 통해 어떻게 학생들과 교감하나요.
“강의가 꽤 힘들어요. 누군가 언어로 축조한 건축물이 있다면 그것을 읽는 것을 통해서 또 하나씩 해체해서 읽는 과정을 통해서 그 축조술의 미학을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죠.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쓴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쓰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글쎄요. 그저 읽기를 통해 얘기할 수 있지만 가르치기는 힘든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