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낫
아스낫(אסנת): 희생자가 아닌 승리자가 되는 법을 보여주는 여성
삶은 그 순간순간을 통해 경험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삶을 살아가지만, 뒤를 돌아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견뎌낸 시련이나 위기가 사실은 더 큰 선을 실현하기 위한 발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과 여성 영웅들이 지울 수 없는 긍정적인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런 여성 중 한 명의 이름이 ‘미케츠(Mikeitz)’ 토라 구절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파라오는 요셉의 이름을 자프나트-파네아크(Zaphnath-Paneach)라고 지었고, 온의 제사장 포티파르(Potiphar)의 딸 아스낫(אסנת)를 아내로 주었다. (창세기 41:45)
미드라쉬에는 아스낫이 요셉의 여동생 디나가 세켐에게 강간당하여 낳은 딸이라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 폭력적인 사건에서 아스낫의 거룩한 영혼이 태어났는데, 그녀는 의로운 요셉의 미래 아내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피르케이 데레베 엘리에제르, 제38장)
미드라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야곱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금판에 거룩한 이름을 새겨 [아스낫의] 목에 걸어주고 그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녀는 길을 떠났습니다. 모든 것은 거룩하신 분, 축복받으실 분 앞에 드러나 있기에, 천사 미카엘이 내려와 그녀를 데려가 이집트의 포티파르의 집으로 데려갔으니, 아스낫은 요셉의 아내가 될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포티파르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아스낫은 그의 딸처럼 자라났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통치자가 되었을 때, 젊은 여성들은 그가 매우 잘생겼기 때문에 그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창세기 49:22) 그들은 요셉이 자신을 눈여겨보기를 바라며 그에게 선물을 던지곤 했습니다. 아스낫(אסנת)도 이 여성들 대열에 합류하여 목에 걸고 있던 부적을 빼내어 그에게 던졌습니다. (Midrash Tanchuma 14:1; Chizkuni, Gen. 41:45)
이렇게 해서 요셉은 아스낫이 야곱의 손녀(즉, 요셉의 조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는데,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온의 제사장 포티파르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었다.” (창세기 41:45)
이제 우리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아스낫(끔찍한 강간을 통해 잉태되어 수치 속에서 쫓겨난 딸)도, 요셉(배신당하고 노예로 팔려가 부당하게 투옥된)도 자신들의 미래가 이처럼 빛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인물들이 막중한 ‘정서적 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물며 그토록 빛나는 지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견했을까요? 아무리 믿기 어려워 보일지라도, 그들의 내면의 강인함과 결의는 그들을 영적 성취의 숭고한 경지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요셉과 아스낫이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해 나간 점을 존경합니다. 이들의 이 내면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요셉은 일어난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했고, 따라서 자신을 비방한 가해자들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로 여겼습니다.
요셉은 불리한 처지에 갇혀 원망에 빠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넓은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각 경험은 일련의 사건들로 이어져, 결국 요셉이 파라오 다음으로 이집트의 실권자가 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요셉은 기근을 막음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이 자신을 이집트로 내몰았던 일에 대해 용서해 주었으며, 동시에 형제들의 진심 어린 회개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아스낫와 결혼한 것은 아스낫의 양어머니가 요셉의 순결을 훼손하려던 허위 고발에 대해 요셉의 결백을 입증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iketz. Pirkei d' Rebbe Eliezer, ch. 38)
그들의 결혼을 허락함으로써, 아스낫의 양아버지인 포티파르는 요셉이 주장한 결백을 인정한 셈이었습니다. 아스낫의 출생과 그 후 이집트로의 이주 모두는 결국 그녀가 요셉과 결합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결혼을 통해 에프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명의 모범적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유대 문화권 밖인 이방 땅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모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그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비록 이집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 이교적이고 부도덕한 문화의 영향은 그들의 가치관에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밤, 아들들이 에프라임과 므낫셰처럼 자라나 자랑스럽고 신앙을 실천하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기를 기원합니다. 토라 유산의 가치관과 상반되는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모범으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스낫도 토라의 가치관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양어머니는 이집트 사회의 부도덕한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교도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스낫은 내면의 순결함을 드러내고 지켜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으로, 압도적인 유혹을 이겨낸 능력으로 칭송받는 요셉에게 어울리는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49:19)
‘마아세 아보트’ 시만 라바님(מַעֲשֵׂה אֲבוֹת סִימָן לַבָּנִים) — 우리 조상들의 행적은 자손들에게 주는 표징입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먼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대를 초월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요셉과 아스낫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단순히 과거나 가족의 산물일 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배경이든 부정적인 배경이든, 그것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볼지에 대한 선택이야말로, 미래의 성취를 가늠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입니다. 성공과 성취감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신의 사명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은, 신의 섭리가 우리 삶을 인도하고 있음을 깨닫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내면의 빛을 드러내고 실현하기 위해 목적의식을 가지고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과거의 감정적 짐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축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과거의 짐은 당신의 마음속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By Katia Bolotin (a pianist, songwriter, and composer of contemporary classical music.)
Art by Sefira Lightstone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