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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어긋남과 시적 역설
―박종인의 시세계
구모룡(문학평론가)
시인의 마음이 화해를 지향하고 동일성을 추구하는 일은 지속적인 시적 과정이다. 나누어지고 어긋난 삶을 고뇌 없는 조화로움으로 봉합하는 서정은 없다. 오히려 시인은 궁극의 화를 추구하기에 대립하고 싸우고, 분열하며 흩어지고 얽히는 세속에 더 민감하다. 시적 발상의 근본적인 원천은 기원의 단절이지만 이로부터 비롯하는 비극적 감성을 쉽게 초월할 수 없는 게 시인의 숙명이다. 시인은 환상에 눈멀기보다 그 이면의 진실을 보려는 존재이다. 박종인 시인의 개성적인 발화도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어긋남의 사태를 구체적인 언어로 기술하는 데서 나타난다. 과연 그는 “어긋남을 잘 꼬집고 사물을 바로 보는 능력 있으니 부득부득 시인”(「우격다짐 행복다짐」에서)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또한 「세상에 이용당하자」라는 시편의 한 구절이 말하듯이 그는 “어긋나 있는/이 세상을 많이도 원망했었다”라고 한다. 세상을 추수하며 “나를 잃어버리는 것인 줄도 모르고” “자기중심적”인 삶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인 줄 모르고” “한 세상에 흡수되어” 살았다는 성찰적 자아를 표출한다. 이러한 가운데 “세상에 이용당하자”라는 표제처럼 ‘수동적 적극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처럼 박종인의 시적 지향은 세속의 어긋남을 드러내면서 그 너머 긍정과 화해, 나아가서 행복의 지평을 상상한다. 이는 “세상이 감옥”(「사형수」에서)이라는 전언이 말하듯이 현실에 관한 시인의 회의주의적 태도를 반영한다.
세상이 감옥이다.//어긋남이 모든 사람에게/사형선고를 내렸다./눈앞에서 죽음의 장면이/비일비재하게 펼쳐진다./형 집행이 진행되고 있다./모든 육체가 형장으로/한 걸음 한 걸음 뗴어놓고 있다./삶의 보폭이 줄어들고 있다.//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사형수」 부분)
이 시편에 표출된 시적 화자의 의식은 환멸에 가깝다. “어긋남이 모든 사람에게/사형선고를” 내렸으므로 세상은 이미 사형을 앞둔 사람들 혹은 “죽은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불길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시인이 이와 같은 극단의 이미지를 소환하는 까닭은 「카인의 후예」가 제시하는 인간관에서 만나게 된다. 시편의 표제는 성경에 기대어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을 인류의 초석으로 간주한다. 또한 이러한 처음의 폭력이 확대 재생산된 혼돈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인식이다.
시합이다./오뚝이가/뒤뚱뒤뚱 술 취했다./똑바로 서지 않고 자꾸만 거꾸로 선다./앉는 줄 알았더니 돌아눕는 궁수/쓰러지지 않으면 오뚝이가 아니란다./점점 어긋나게 부추기는 세상/손짓과 유혹에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자기 꾀에 취한 오뚝이/분노에 사로잡히고/치고받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자기를 잊어버린다./선수도 관람객도 영역 표시를 넘어선다.//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맘대로 자유를 휘두른다./죽음의 그림자가 멀리 어긋난 길로 내달린다./오뚝이 다시 무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숨죽인 오열/손뼉 치는 관객들/주먹이 날아다니고 혼란을 부추기던 심판관이/아수라장을 빠져나간다.//외면당하는 궁수를/풍선처럼 소쿠리에 담아 띄운다./콧방귀에 활의 줄 끊어지고/오뚝이가 낭떠러지에서 곤두박질친다.//화살은 날아가는 중심도 없다.//과녁이 뒤따라가고 있다. (「카인의 후예」 전문)
긴 전문을 인용한 연유는 이 시가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알레고리의 수법으로 시적 화자는 인간의 조건을 말하고 그 존재 의미를 극적으로 제시한다. 극적 제시의 방법은 「낮과 밤」이나 「쿠데타」와 같은 시편에서 표나게 드러나 있기도 한데 시인이 현실을 중대하고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가령 전자는 “빼앗은 부가 가난을 짓밟고도 행복하고 가난은 불행을 보복한다. 이것이 어긋난 세계의 부자와 가난의 시작과 과정과 결말의 차이”라는 귀결에 이르고 후자는 “녹색혁명”이 어긋나 “쿠데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정”에 도달한다. 마찬가지로 「카인의 후예」가 전달하려는 의도도 인류가 처한 긴박한 상황이다. “궁수”와 “오뚝이”라는 과녁, “선수”와 “관람객”, “관객”과 “심판관”의 역할과 위치가 모두 어긋나 있다. 자기 꾀에 취하거나 서로의 영역과 경계를 넘어선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내달리고 오열과 환호가 뒤섞인다. “혼란”과 “아수라장”의 연속이다. 모두 어떤 환상을 좇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를 상실한 데서 연유한다. 시적 화자는 “카인의 후예”가 만든 현실의 무대를 혼돈으로 인식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자끄 엘룰이 말한 “도시의 의미”를 환기하려 한다. 인류 최초의 도시인 에녹은 카인이 만든 도시이다. 그의 해석에 기대면 인간의 도시는 죄와 폭력에 기초한다. 박종인의 「카인의 후예」도 이와 같은 해석의 맥락을 공유하는데 이는 「작은 자들의 어깨 겯기」가 환기하는 바와 같다. 시초에 어긋난 인간의 삶은 현대에 이르러 “옳고 그른 도덕과 비도덕이 한꺼번에 무너져” 마침내 “홍수를 만난 내 입이 저기 어딘가 떠내려가고 있다”라는 묵시적 예감으로 표명된다.
박종인은 회의적이고 때론 환멸적인 현실을 ‘어긋남’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설명한다. 그의 시편이 보이는 어긋남의 양상은 ‘나’로부터 가족과 사회 그리고 세계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장된다. 먼저 자기의 문제는 앞에서 「세상에 이용당하자」라는 시편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세계와 거리를 만들고 환각에 이끌리지 않고 환상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의지적 수행으로 풀고자 한다. 「부동산의 가치」에서 시적 화자는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크기로 줄이려 투자한다”라고 역설의 어법으로 발화한다. “큰 덩치에 몰입”하는 규모의 경쟁에서 놓여나 “작은 진주”와 같은 장소를 찾고 “그 무엇보다 값진 건강을” 획득하겠다는 의도를 품는다.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이 주는 진실에 충실하겠다는 태도이다. 이는 본디의 “순수함”(「뒷걸음질」에서)을 견지하려는 노력에 상응한다. 물론 「시각적 사유」가 말하듯이 고향을 떠난 “나는/몽유병 환자”처럼 “향수병이랄까 마음의 담장을 넘은 탈옥수랄까/어긋난 인생”을 아프게 자각한다. “일곱 살 소꿉놀이 그림이 그려진 풍경” 앞에서 “타향 만 리 떠나온 숨죽인 죄인”으로 인식하는 의식의 발현이다. 유년의 고향을 통하여 순수한 자아를 회복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자아를 죄의식으로 바라본다. 이와 같은 자아의 이중화는 한편으로 어긋난 사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긋남을 넘어서는 과정이다.
지금도 범죄자가 되어/아무도 몰래 어릴 적 고향의 둘레를 배회해요./마음의 발소리 따라가 보면/칡넝쿨 우거지고 돌담으로 둘러친//섬세하고/정 넘치고/끈적거리고//물, 공기, 바람까지도 재잘재잘 소리내어요./가슴속 깊이 숨겨놓은/그 옛날 내가 태동했던 자궁 속 아늑함이에요./오늘도 비슷한 무엇이 뇌리를 스치면/지난 삶이 수갑을 채우고/고향이 스케치되어 끌려와요./지난 삶의 흔적에 빨간 줄이 그어져요.//무자비하게 정신을 지배하는/몽유병은/형벌처럼 몽타주로 시비를 걸어요./과거의 목을 잡고 아프게 조이는 듯해요.//오늘도 나는 나도 모르게/독특한 음영, 명암으로 감방을 만들며/옛날의 필름을 현상하면서/날마다 고향을 펼쳐 들고/편집하는 몽유병 환자가 되어요. (「시각적 사유」 부분)
이 시편에서 시인이 문제 삼는 어긋남은 심각한 의식 현상으로 나타난다. 단순하게 생명의 시원이자 모성의 근원인 고향 회귀를 통하여 현실의 불화와 고갈을 대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러한 고향을 그리고 추억하는 ‘나’를 “범죄자”로 만드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무자비하게 정신을 지배”하며 순수한 그리움을 “몽유병”이 되게 한다. 그만큼 난폭한 세계가 압도적이다. 「타이밍」이나 「100세 시대 분석」은 “어긋난 세계”에 처한 몸의 이야기이다. 변화하는 몸 관습과 의료 기술에 의존한 수명은 삶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몸으로서의 지구라는 인식이나 생명과 기술의 문제가 시인의 시적 관심의 지평 안으로 들어온 장면이다. “어긋난/세상의 아이러니”는 몸과 죽음에 대하여 자주 “이 사회의 잘못된 자가당착”(「모순」에서)으로 나타난다. 자아와 몸에 이어 펼쳐진 영역은 가족이다. 시인은 「인생 성공가이드」에서 우화를 통하여 가족의 어긋남이 마음의 문제임을 말하고자 한다. 사람을 위협하는 칼이 마음을 움직이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영과 육과 골수를/생각까지 발라내는 말씀”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가족은 때론 어긋난 현실을 봉합하고 진정한 화해를 얻어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진정한 효도」는 수도관이 파괴되어 물난리를 만난 도로와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을 병치시켜 고치고 치료하는 과정을 통하여 사회적 어긋남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수수께끼의 기법으로 쓰인 「흥부와 놀부」가 말하듯이 시인은 어긋남의 대안에 “사랑”이 있음을 말한다.
어긋난 세계에서/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만나/몇 년 동안 입 아프게 거래했다.//남자가 여자에게/자기 집에서 살림을 살아달라는 그런 거래였다./여자가 튕기며 뜸을 들이는데도/다른 사람 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이상한 거래다./여자 역시 어엿한 직장이 있으면서 그다지 싫은 기색이 아니다./자신의 월급을 얼마 받아야 할지 묻지도 않고/오로지 남자에게만 관심이 있다./여자가 남자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날은 동네방네 소문내고/잔치까지 벌이며 증인을 세웠다./기념으로 화려한 사진도 걸어놓고 즐기면서/출퇴근하며 밥도 짓고 청소도 하고 아기도 낳아 주는 이상한 거래./종일 노동의 대가도 없이 우는 애를 업고 동동거리면서도/마냥 행복해하는 거래 남자도 피 같은 월급을/여자에게 통째로 맡기고도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남은 돈은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거래./오직 정이라는 이름 하나로 아이의 잔병치레가/통장을 거덜 내도 잘 키운 건강이 거래 명세서고/통장의 잔고라는 이상한 거래./온통 그들의 관심이 아이에게 집중되고/사랑을 사방으로 전달하는 이상한 거래./그 거래가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이상한 거래 명세서」 전문)
이처럼 시인은 가족 관계를 “이상한 거래”라고 한다. “어긋난 세계에서” 그나마 예외적인 형태가 온존한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 가사와 바깥일의 노동 분업, 대가 없는 교환, 부모와 자식의 사랑 등에서 어긋나지 않는 거래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족애와 가족주의는 다르다. 사랑과 믿음으로 이뤄진 진정한 관계의 한편에 어긋난 관계가 가족주의로 위장되기도 한다. 시적 화자의 의문은 가족주의의 “이상한 거래”에 있다. 그러니까 맹목과 헌신, 그림자 노동이 바탕이 되는 가족은 어떠한 가치와 위상을 가지는가? 망가지고 해체되는 세상에서 가족이란 무엇일까? 시적 화자는 분명히 “이상한”이라는 수식어를 통하여 물음을 던진다. 물론 시인은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 아니라 “돈을 노예로 부리는 사람”(「돈키호테」에서)을 추구한다. 돈으로 사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사용가치를 앞세우고 진정한 관계의 회복을 염원한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어긋난 세상”에서 “질서와 무질서를 분리하고 악과 의를 구분할 블랙리스트의 어둠을 뚫는 암행어사 박문수”의 출현을 갈망한다. “요즘 듣고 싶은 말은 느닷없이 출몰해 마패를 들이미는 암행어사의 우렁찬 목소리”(「밀운불우」에서)라는 구절에서 시인의 정치적 무의식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만큼 “어긋난 세계”에 관한 비판의식이 강렬하다.
시간은 세 시에 사망했다.// (
여기는 에덴, 젊고 싱싱한 차들이 쌩쌩 달린다. 갑작스레 사과 하나 훔쳐 먹자 도미노 현상이 전개된다. 멀쩡하던 도로가 용량을 초과한 트럭에서 큰 통을 하나 떨어뜨린 것 같다 문제가 많은 세상이다 도로는 급속히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차에서 뛰어내린 통은 폭탄이다. 도로가 꽝꽝 폭발한다. 질병과 불안전이 연쇄 충돌한다. 비명은 역대급이다. 직진으로 달리던 속도는 쓰러지거나 주저앉았다. //사고의 파편이 이리저리 튕긴다. 뒤따라오던 오후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의식이 흐릿해진다. 속도는 방전되고 주말의 고속도로가 폭발한다. 사람들도 폭발한다. 도로변 가로수들도 덩달아 폭발하고 길의 꼬리는 점점 늘어난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마지막 날의 특징들이 튀어나온다.// 길가에 잠복했던 레커차가 구급차보다 발 빠르게 달려오고 하이에나 떼처럼 득시글, 사람들이 신음을 낚아챈다. 사건들이 아파서 아우성친다.「어긋난 세계」 전문)
앞서 언급한 「카인의 후예」의 후속 시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날의 특징들이 튀어나온다”라는 절박한 구절에서 시적 화자는 종말론적 실존이 된다. “에덴”에서 쫓겨난 카인의 후예가 건설한 도시는 폭력과 질병과 불안전이 만연하다. 파국을 향한 속도가 커지면서 종말의 징후가 뚜렷하다. 욕망과 속도와 자본은 같은 방향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 시편의 비유처럼 “고속도로”에서 서로 앞서려는 차량이 사고를 일으키고 속도를 방전시킨다. 이처럼 지구 또한 엔트로피의 증대로 파국에 이를 수 있다. 돌이켜 볼 때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뒤안길”은 폭력의 예감으로 가득하다. 이 시편에서 “레커차가 구급차보다 발 빠르게 달려오고 하이에나 떼처럼 득시글”거리는 장면이야말로 시적 화자가 인식하는 세계상을 제대로 요약한다. “사건들이 아파서 아우성”치는 전도된 형국이다. 이처럼 세속의 어긋남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심각하다. 이러한 태도가 시적 구성을 극화하고 시적 언어를 직설로 만든다.
“어긋난 세계”에 대한 시인의 환멸은 낭비되는 시간과 소진되는 생에 대한 시인의 감각을 고조시킨다. 「시간 구하기」는 “소진되는 시간”, “낭비되는 시간”을 구할 방법을 찾는다. 이 시편의 부제가 “욕심”이듯이 타자의 욕망에서 벗어난 “제대로 된 정신”이 “시간을 설계”하고 “시간을 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달리 말하여 “정신세계의 각도와 관점에 따라”(「1%의 온도 차이」에서)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환멸의 세계상에 응전하는 자아의 입장이 선연하다. ‘세계 내 존재’인 시인에게 파국의 이미지는 극단의 상상에 속한다. 여기에 개입된 종교적인 상상력을 쉽게 단정하긴 어려우나 기독교적인 시각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시인의 언어는 종교의 의장보다 현실주의에 더욱 입각하고 있다. 일상과 생활, 사물과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각하는 데서 시적 발화를 지속한다. 이러한 점에서 「명품의 유효기간」이 말하는 소진과 소멸의 시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또한 주목하게 된다. 세계에 대한 회의와 환멸이 생활세계를 희생하거나 소거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긋남에 예민하게 감각하고 때론 사물과 사건을 어긋나게 하면서 시적 발화를 강화한다. 그렇지만 이 모두 어긋남을 넘어서려는 갈망과 무연하지 않다. 이는 시적 역설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어긋났다. 크고 작은 공포가 비행기 타고 몰려다닌다.//이번엔 코로나가 자동차를 탔다. 그 덕에 이기적 태도가 뒷걸음을 치더니 이제는 파랗고 동그랗게 멈춘다. 호수 같은 사랑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작은 사랑이 열매를 맺더니 자아제일주의와 자기자랑 시대를 이긴다. 흐트러트린 어긋남도 무너뜨리고, 맛있고 달콤한 바름이 백신처럼 끼어든다. 마구 굴러다니던 흥청망청도 밀어내고, 어긋나 있는 세상이 잊고 살았던 아름다움이 각 가정에서 팔랑팔랑 헤엄친다. 마주치지 않은 확진자에게도 바다처럼 넓고 깊게 따뜻한 마음이 전달된다. 걱정하는 심사가 모든 사심을 내려놓고 진정과 진정이 이어진다. 평행선에서 넌지시 바라보는 파란 동그라미와의 관계, 전 세계가 애착이 생겨 서로서로 TV를 타고 자선을 파랗게 요구한다. 어긋난 세계를 바로잡고 인류의 적 바이러스를 지구 밖으로 밀어낸다.//변종들, 저만큼 물러난다! (「긍정적 사고」 전문)
시적 화자는 “코로나”로 어긋난 세계를 반성과 회심의 계기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이기적 태도”가 멈추고 자연이 되살아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새로운 사랑의 발명 가능성을 예감한다. “자아제일주의와 자기자랑 시대”로 규정한 나르시시즘의 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흐트러트린 어긋남” 대신에 “맛있고 달콤한 바름”이 등장한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전환하였다는 시인의 입장 표백이다. “마구 굴러다니던 흥청망청”으로 “어긋나 있는 세상”에서 “잊고 살았던 아름다움”이 “가정”으로 귀환한다. 가족애가 더해지고 사람 사이의 연대가 확연하게 커진다. 지구적인 인식이나 인류애 또한 코로나 상황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이 시편의 결구는 “어긋난 세계를 바로잡고 적 바이러스를 지구 밖으로 밀어낸다”라고 선언한다. 코로나 이후에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염원이 오롯하다. 이처럼 박종인은 “어긋난 세계”를 환멸과 파국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이와 달리 회복과 생성의 갈망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휘감는 회오리에 어긋난 문제가 있어도 유머러스하게 잽싼 몸으로 대처하면 미래가 지겹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싸움의 기술」의 시적 화자는 말한다. 부단히 어긋남을 이겨내는 방법을 탐문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반어적 상황’을 수용하는 열린 문법 혹은 시적 역설의 구조를 내포한다. 이는 어긋남의 극단에서 바름을 보고(예를 들어 「모양들」에서) 어긋남이 만연한 현실에서 그와 다른 화해와 생성의 풍경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예를 들어 「대학가요제」, 「B boy dance」, 「추수감사절」 등에서) 나타난다. 애써 형성한 역설의 언어가 더 단단한 구조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책소개
박종인 시인의 신작 시집이 산지니시인선 20번으로 출간되었다. 2010년 『애지』로 등단해 세 번째 시집을 펴내는 박종인 시인은 구체적인 사물과 언어를 불러와 어긋나 있는 현실을 구성하는 새로운 세계를 표현한다. 언뜻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속에 내재한 회의적이다 못해 환멸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현실 모습을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박종인
저자 : 박종인
2010년 『애지』 등단
시집 『미술관에서 애인을 삽니다』, 『연극무대』
부산부경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인생 성공가이드
어긋난 세계
모순
다양한 죄수복
위대한 예술가
추수감사절
솔로몬의 재판
세상에 이용당하자
즉결심판
뒷걸음질
긍정적 사고
카인의 후예
사형수
제2부
기다림을 보았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의 불시착
시각적 사유
대학가요제
세상의 현황
1%의 온도 차이
밥 먹는 도서관
진정한 효도
시간 구하기-慾心 欲心
만유인력의 법칙
단점을 장점으로
외국 여행
제3부
검은 봄
대기만성형
타이밍
돈키호테
기억을 걷는 시간
낮과 밤
밀운불우(密雲不雨)
진짜 구별법
작은 자들의 어깨 겯기
모양들
명품의 유효기간
몰래카메라
우격다짐 행복다짐
제4부
100세 시대 분석
반어적 상황
양파의 작용
여자의 소유권
흥부와 놀부
일하기 싫을 때 읽는 시
싸움의 기술
쿠데타
부동산의 가치
B boy dance
숫자 전문가들
일일 대통령
이상한 거래 명세서
해설: 세속의 어긋남과 시적 역설-구모룡(문학평론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창문을 내려다보다가 서서 걷는 사람보다 앉아서 가는 이가 더 많은 것을 본다. 어긋난 세계의 현실이다. 머리가 띵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재판장이 앉은 위치라는 생각에 서서 걷는 이와 앉아서 가는 이를 재판석에 앉히기로 했다. _「솔로몬의 재판」 부분
본래의 아름다움이 어긋나기 시작했죠. 야금야금 문명의 단맛에 쪼개지고 부서졌죠. 총각의 머리숱이 확연하게 적어졌죠. 사람들 식성은 메뚜기 떼 같았죠. 벌레 먹은 과일이 더 달콤하다고 야금야금 운명의 단맛에 쪼개고 부수었죠. _「즉결심판」 부분
한 사람을 놓고 어느 사람은 비도적적인 빨간색으로 보거나
어느 사람은 도덕적인 파란색으로 보거나
사과를 잘라먹으면서 왼쪽 면만 보거나
전체를 보거나
진화를 보거나
창조로 보는 것이나, _「자기중심적인」 부분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 우리가 살고 있는 낯설지 않은 세계
여기는 에덴, 젊고 싱싱한 차들이 쌩쌩 달린다. 갑작스레 사과 하나 훔쳐 먹자 도미노 현상이 전개된다. 멀쩡하던 도로가 용량을 초과한 트럭에서 큰 통을 하나 떨어뜨린 것 같다 문제가 많은 세상이다 도로는 급속히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차에서 뛰어내린 통은 폭탄이다. 도로가 꽝꽝 폭발한다. (「어긋난 세계」 부분)
표제작 「어긋난 세계」에는 시인이 꼬집고자 하는 세계의 어긋난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용량이 초과한 트럭이 야기한 도로 위의 비명부터, 사고가 발생하자 구급차보다 먼저 나타난 레커차까지. 세계의 어긋난 부분은 하나로부터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이 세계 속에서는 “옳고 그른 도덕과 비도덕이 한꺼번에 무너”(「작은 작들의 어깨 겯기」)지고 “빼앗은 부자가 가난을 짓밟고도 행복”(「낮과 밤」)하다. 이런 세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시인이 표현한 ‘어긋난 세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구축한 세계는 시인이 환멸적으로 바라보는 비극적 세계임과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일치한다. “한 사람을 놓고 어느 사람은 비도덕적인 빨간색으로 보거나/어느 사람은 도덕적인 파란색이라고” 보는, “무엇이나 자기중심적”(「자기중심적인」)인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런 어긋난 세계인 것이다.
▶회복과 생성에 대한 희망의 언어
시인의 마음이 화해를 지향하고 동일성을 추구하는 일은 지속적인 시적 과정이다. 나누어지고 어긋난 삶을 고뇌 없는 조화로움으로 봉합하는 서정은 없다. 오히려 시인은 궁극의 화를 추구하기에 대립하고 싸우고, 분열하며 흩어지고 얽히는 세속에 더 민감하다. 시적 발상의 근본적인 원천은 기원의 단절이지만 이로부터 비롯하는 비극적 감성을 쉽게 초월할 수 없는 게 시인의 숙명이다. 시인은 환상에 눈멀기보다 그 이면의 진실을 보려는 존재이다. 박종인 시인의 개성적인 발화도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어긋남의 사태를 구체적인 언어로 기술하는 데서 나타난다. _구모룡(문학평론가)
시인은 어긋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세히 표현하며, 그 절망적인 세계에 내재한 문제를 기술하고 있으나, 그 세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기를 갈망하기도 한다. 시인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당도한 시대의 부조리와 파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회복과 생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시인이 구축한 어긋나 있는 시적 세계뿐 아니라 현실의 시인이 발 딛고 있는 어긋나 있는 세상에 품고 있는 희망일 것이다.
어긋난 세계
박종인
시간은 세 시에 사망했다
여기는 에덴, 젊고 싱싱한 차들이 쌩쌩 달린다. 갑작스레 사과 하나 훔쳐 먹자 도미노 현상이 전개된다. 멀쩡하던 도로에 용량을 초과한 대형트럭이 큰 통 하나 떨어뜨린 것 같다. 문제가 많은 세상이다. 도로는 급속히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차에서 뛰어내린 통은 폭탄이다. 도로가 꽝꽝 폭발한다. 질병과 불안전이 연쇄 충돌한다. 비명은 역대급이다. 직진으로 달리던 속도는 쓰러지거나 주저앉았다. .
사고의 파편이 이리저리 튕긴다. 뒤따라오던 오후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의식이 흐릿해진다. 속도는 방전되고 체증으로 짜증으로 주말의 고속도로가 사람들이 폭발한다. 도로변 가로수들도 덩달아 폭발하고 길의 꼬리는 점점 늘어난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마지막 날의 특징들이 튀어나온다.
길가에 잠복했던 레커차가 구급차보다 발 빠르게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오고 하이애나처럼 들시글, 사람들이 신음을 낚아챈다. 사건들이 아파서 아우성친다.
검은 봄
박종인
어긋난 세계, 꽃피는 봄날, 만발한 꽃들이 싱숭생숭 바람을 뒤집는다. 이리저리 뒤집히다 바람 꽃동네 삽화 속 풍경과 사랑에 빠진다. 도서관은 늘 그녀를 읽는 곳이다. 글자들이 빽빽한 사연을 이루고 책 속의 연애는 절정이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그림 속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 그녀를 만나자 해 저무는 줄 모른다. 울울창창한 나무도 봄 향기에 빠져 있다. 도서관 앞 벚나무가 꽃을 가지에 내걸고 바람의 눈은 여전히 책에 꽂혀 있다. 그녀가 꽃뱀으로 드러날 때쯤 그에게선 단물이 다 빠져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쇼크가 반쯤 정신을 내보내 버스에 책가방을 그만 놓고 내렸다.
느닷없이 그녀가 떠났다. 둘러보니 벚나무는 꽃을 버린 지 오래, 바람은 화들짝, 책 속의 봄에서 빠져나와 도덕적 세계에 와 있다. 봄이 한꺼번에 다 사라졌다.
기다림을 보았다
박종인
십년 못 본 강산 훌쩍 낯설다. 상전벽해라더니, 세월의 주름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 제법 터를 늘렸다. 허나 제자리 보행의 어긋남이다. 서너 걸음 곁에 톱날이 다녀갔다. 그루터기가 의자로 변하는 과정은 짧고 상처는 길다. 나는 강산에게 적인가. 아군인가. 산을 떠나 마을에 뿌리내린 나는 동거인가. 별거인가. 나무와 나무의 간격은 사람의 간격만큼 예민하다. 새로 이주한 잡목들이 지지대도 없이 버틴다. 근성이 좋은 뿌리가 보이지 않는 지팡이다. 아버지의 걸음이 찍힌 오솔길은 사라지고 그늘은 나무 벤치가 차지했다. 훌쩍 키가 자란 대화를 그들은 해독할 수 있을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던 어긋난 붉은무릎 기억할 수 있을까. 기다림이 무성하다.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시간에 쫓겨 떠나간 열차
나무들의 무릎을 보았다.
십 년 뒤 나의 모습을 앞당겨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