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석 기자
한국서 300억원 사기쳐도 최대 형량 13년
솜방망이 처벌에 사기 전과자들 다수 재범
미국은 100년 단위 형벌에 옥중 사망 사례도
'재벌 3세'를 사칭하며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전청조씨(27)가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자신이 파라다이스그룹 혼외자인 재벌 3세라며 투자자들을 현혹해 30억원 넘는 돈을 뜯어낸 전청조(27)가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2022년에는 투자사기로 총 1485명에게 1조원 규모의 피해를 입힌 60대 남성 A씨가 약 1년간 도주한 끝에 베트남에서 체포됐다. 둘은 모두 ‘사기 전과자’다. 전청조는 동종전과가 최소 7범, A씨는 13범에 달한다.
법의 철퇴를 맞은 이들이 사기 무대에 몇 번이고 복귀할 수 있는 근본 원인으로 법조인들은 낮은 형량을 지적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처벌 수준이 솜방망이다 보니, 사기가 ‘남는 장사’로 인식되면서 사기 전과가 2번 이상인 재범이 늘고 피해자가 양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에서 사기방지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실효성, 형평성 문제로 계류 중이다.
◇국내 사기꾼 3명 중 2명은 재범
경찰청은 지난 2022년 1조원대 투자사기로 1485명의 피해자를 낳은 사기범 A씨(66)를 국제공조를 통해 베트남에서 검거해 국내로 송환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압송하는 모습. /뉴스1
19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6~2021년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 2401건 중 1556건(64.8%)은 피의자가 사기 전과자였다. 나머지 845건(35.2%)은 초범이었다. 사기꾼 3명 중 2명이 재범인 셈이다. 사기 전과자 4명 중 3명(1168건, 75%)은 이전과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쳐 다시 재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 사기꾼이 26.5%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대(20.5%), 40대(20.9%), 30대(18.1%), 60대(8.6%) 순이다.
법조인들은 형량이 낮고 범죄 수익 환수가 어려운 탓에 젊은 사기꾼이 늘어나는 것이라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어차피 10년 안팎 살고 나와서 사기로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온전히 쓸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범행을 저지르는 게 낫다며 사기를 계획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단독 범행으로 300억원 넘는 사기 피해를 일으킨 경우 기본 형량이 6~10년이다. 가중처벌이 돼도 최대 형량은 13년이다. 피해액이 300억원을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더 많은 피해자로부터 돈을 뜯어낼수록 이득인 셈이다. 아울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 중 73.4%가 ‘피해액을 하나도 되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베트남은 3000만원 사기 쳐도 ‘무기징역’ 가능해
미국 연방대법원. /AP 연합뉴스
해외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사기죄 형량은 낮은 축에 속한다. 미국은 금융사기범이 몇백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먼 슈미트는 지난 2008년 자신에게 돈을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수천만달러를 챙긴 혐의로 330년형을 선고받고 형을 살던 중 지난해 감옥에서 사망했다.
중국은 ‘전자통신금융사기 방지에 관한 법’에 따라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신종 범죄를 처벌하고 있다. 피해액이 매우 큰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고 가해자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사기로 5억동(약 2947만원) 넘는 돈을 가로채면 기본이 12~20년 징역이고 경우에 따라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양형 기준 자체가 너무 약하다 보니, 형량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검찰이 애쓰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17일 검찰은 전세 사기로 99명으로부터 총 200억원 넘는 돈을 가로챈 일당에 징역 7~10년을 선고한 1심 판사에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장 제출하기도 했다.
◇ “사기 천국 된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형량 늘려라”
일러스트=이은현
사기가 판을 치다 보니, 사기로 잃은 돈을 만회하려던 피해자들이 다른 투자처를 찾다가 또 사기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일례로 50대 여성 김모씨는 지난해 아도인터네셔널 폰지사기에 휘말려 1억원 넘는 피해를 봤다. 이후 다른 고수익 투자처를 찾다가 최근 코인 사기까지 당해 4000만원을 잃었다. 아도인터네셔널 폰지사기는 유사수신업체인 아도인터네셔널이 자신들 사업에 투자하라며 3만명 이상으로부터 4000억원 규모를 뜯어낸 사건이다.
김씨 법률 대리인인 노성환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는 “사기 피해금을 매꾸려다 다른 사기 피해를 입었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그만큼 사기꾼이 곳곳에 득실대는 게 한국 사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경찰 출신 국회의원인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사기방지 기본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경찰청 소속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을 신설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기꾼 신상을 공개하는 게 법안 골자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이 되기엔 부족하다. 노 변호사는 “한국이 사기꾼이 많은 건 수사기관이 이들을 잡지 못해서가 아니라, 워낙 형량이 낮은 탓에 피의자들이 ‘잡혀도 그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형량을 늘리고 범죄 수익을 몰수하는 데 힘을 싣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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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다
어쩌다 우리민족이 이렇게 퇴화되어 이지경까지...
누구를 탓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