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아내를 잃었음.
유배 생활 2년만의 일이었음.
1842년 11월 13일의 일이었지만 김정희는 그 사실을 모르고 다음날인 14일 아내의 병을 걱정하는 편지를 부쳤음.
다음은 14일에 부친 그 편지는 아니지만 김정희가 부쳐오던 편지의 일부임.

어느덧 동지가 이르렀는데, 아픈 몸은 어떠하신지요? 그 병의 증세는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어렵습니다만, 그간 병의 차도는 어떠하셨는지요?
(...)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염려는 되지만 어찌 할 길이 없습니다.
잠자는 것과 식사하는 형편은 어떤지요? 그동안 무슨 약을 드시는지요?
아주 몸져 누웠다 하시니 나의 간절한 심려가 갈수록 진정치 못하겠습니다.
김정희는 젊은 시절부터 유배를 간 시점까지 틈만 나면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음. 김정희의 편지 중 남아있는 것은 40통이고, 그 중 절반은 아내에게 보낸 것인데 아내의 병을 걱정하는 내용이 많음.
추사의 염려대로, 결국 추사의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음. 죽은지 한 달이나 지나서야 그 소식을 들은 추사는 통곡을 하면서 이 글을 지었다고 함.

1842년 11월 13일 부인이 예산의 집에서 일생을 마쳤으나 그 다음달 15일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고가 제주도에 전해졌다.
그리하여 지아비 김정희는 위패를 설치하고 통곡을 하며 살아서도 이별했는데 죽어서 다시 이별함을 참담히 여긴다.
(...)
아! 나는 형벌을 받거나 큰 고개와 큰 바다를 넘는 유배지에 갈 때에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다 달아나 내 마음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이는 무슨 까닭이란 말입니까. 아! 사람은 다 죽는다고 하지만 당신만은 죽지 말아야 했습니다.
(...)
예전에 장난삼아 말하기를
"당신이 죽을 것 같으면 내가 먼저 죽는것이 나을 것이오."
라고 했더니, 당신은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크게 놀라 귀를 막고 피하면서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요.
(...)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끝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은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 멀쩡히 뜨고 홀아비로 살아가게 하는 것인가요. 저 푸른 바다 저 긴 하늘 같이 나의 한은 끝이 없을 뿐입니다.
김수현 짤 때문인가
분명 슬픈 일인데 광대가 슬쩍 올라간다.
그런 김수.. 아니 김정희가 남긴 만시는 이러함.
누가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는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유배지에서 아내가 죽은 소식을 듣고 만시를 짓다>
여기서 월모는 부부의 연을 이어준다는 전설 속 노파임. 대형 중매쟁이.
위의 산문에서도 그렇고 시에서도 그렇고 정말 아내를 앞세우기 싫었던 모양임.
2. 채팽윤

여찌들 어린 신랑 좋아해?
그래서 여진구로 준비했지.
채팽윤은 숙종 대 문인임. 아내가 죽은 후 도망시 두 편을 비롯해서 아내를 주제로 12편이나 되는 글을 남김.
실제로도 아내가 4살 연상이었고 해서 여진구가 딱임.
채팽윤의 부인은 병이 난 지 열흘 남짓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 됨.
채팽윤이 남긴 만시는 이러함.

등불은 어른어른 물가 난간 드리우는데
나그네는 새벽 닭 우는 소리에 눈물 떨군다
이내 몸이 죽어야만 이 슬픔도 끝이 날까
오늘 밤엔 생시인 양 꿈속에서도 뚜렷해
서늘한 바람은 주렴에 불어 가을을 울어대고
짙은 구름은 골짜기에 떠돌아 어둠이 쓸쓸하네
더욱 마은 아픈 건, 편지에서 어린 아이가
아비와 헤어진 뒤 밤낮 울기만 한다는 것
<상산 객지에서 밤에 잠을 자다 꿈을 꾸고 서글퍼지다>
이게 부인을 애도한 것인지 남은 자식을 애도한 것인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 채팽윤은 아내를 주제로 남긴 작품이 많음. 시는 또 있음니다
여진구도 또 있지.

한 해 한 해도 날로 흘러만 가니
사람도 날로 멀어져만 가는구려
(...)
맺힌 한은 갈수록 더 얽혀만 갈 뿐이고
숨은 슬픔 잠시도 달아나지 않는다오
(...)
하늘의 뜻 거스른 적 없었는데
어찌 차마 내 아내를 엿보셨는지요
(...)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데
생일은 누굴 위해 돌아오는 것인지
아이를 데리고 빈소에 나아가
풍속대로 술과 밥을 차렸다오
당신은 어찌도 그리 황천에 빨리 갔으며
나는 이 세상에 어쩜 이리도 오래 있는지요
일찍이 한 번이라도 기쁘게 해 주지 못했는데
이미 죽고 없는 마당에 이런 만사가 무슨 소용이리요
(...)
신선이 먹는 것을 상에 올린다 한들
한 국자도 뜰 수 없는 당신
늘 말했지요, 홀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요
여러 차례 말했지요, 정성을 다하지 못했노라고
잔 올리니 그만 내 목이 메이고
강 같은 눈물만 흐를 뿐이구려
<사월 십일에 감회가 일어나서 쓰다>
채팽윤은 이런 글도 남김.
'당신은 병이 난 지 19일만에 죽었는데, 나 팽윤은 병이 든지 석달이 지나도 죽지 않는구려. 이것도 다 자신의 운명이란 말입니까.'
조선 사랑꾼인게 틀림 없음 손가락 아픈데 아직도 쓴게 남았어.
대충 맘에 든 대목만 쓸게
진구야 누나 글 좀 살려주라

아, 당신은 마음을 다해 내 한 몸만 편안케 하였소.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을 즐겁게 해 주려 당신의 생일날을 손꼽았지만 당신은 그것마저 조금도 바라지를 않았으니, 내 마음을 어디에 펼 수 있으리오.
(...)
날이 멀어질수록 날로 잊혀질 것이라고 하였으나, 옛 사람이나 나나 그 말에 속았소. 오래 되어도 또렷해져만가니, 어찌 견뎌야할지..(...)
<조선 사랑꾼이 죽은 아내 생일에>
아! 지난 날 꿈속에서도 환하게 나를 맞아주던 이는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어찌하여 아득히 만날 수도 없게 나로 하여금 저 외론 무덤만 부여잡고 울게 하는 것인가요?
당신이 죽은 지 삼년이나 되었건만 아직도 살아있는 듯 황홀하기만 하오.
(...)
당신의 평생 자취 찾아보려 하지만 당신이 있던 방엔 사람도 없고 정원은 텅 비었소.
(...)
예전에 당신과 나란히 함께 걷기도 하고 서로 쫓기도 했지만 이제는 당신의 그림자만 붙들고 나 홀로 돌아가오...(...)
<조선 사랑꾼이 아내를 잃고 3년 뒤 씀>
황천길은 이미 막혀있고 자취도 점차 아득해졌다오.
거친 언덕엔 풀만 무성하고 가는 봄에 석양만 기울었는데
(...)
옛날 일을 추억해보자니 내 마음만 슬퍼질 뿐이오. 이 눈물 다하노라면 가버린 당신도 알겠지요.
<조선 사랑꾼이 아내를 잃고 12년 후에 씀>
3. 채재공

사실은 임시완 하려고 했는데 흰 한복 입은 짤이 없더라고. 필요한데.
그래서 유아인 낙점.
채제공은 아내가 죽었을 때 지방에 내려가 있었음.
먼 타지에서 아내의 부음을 듣고 서둘러 돌아가려 하지만 때는 겨울.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한 자가 넘게 눈이 쌓이고는 했음.
채재공은 '나의 걸음이 더디구나, 신령이여! 나의 간절함을 돌보아 주소서!' 하고 읊기도 했음.

해마다 이 좋은 보름날 밤이 되면
당신은 달 보며 아들 낳기를 소원했죠.
가련한 사람, 죽고 또 아들도 없는데
봄 맞은 성은 예처럼 달빛만 환하구려
<보름날 밤에>
채제공의 아내는 임신 중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음.
체제공은 아내가 죽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아들을 낳아 기쁜 마음으로 같이 달을 올려다 볼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밝고 맑은 흰 모시옷 흰 눈 같은데
당신이 살았을 적 간수하던 것이라고 했소
당신이 고생하며 낭군 위해 마련했건만
바느질도 다 못 한 채 사람만 먼저 갔구려
옷감 상자 열더니 할멈이 하는 말
누가 이 솜씨를 대신한단 말인가요
(...)
아침에 시험 삼아 빈 방에서 입어 보니
당신 모습 꼭 다시 보는 듯 하구려
이전에 당신이 창가에서 바느질 할 그때에
어찌 알았으리오. 오늘 아침 내가 이 옷 입을 것을 보지 못 할 줄
(...)
누가 저 황천에 가서 말 좀 전해주시게
이 모시옷 낭군 몸에 빈틈없이 꼭 맞아요. 라고
<흰 모시옷 노래>
4. 심노숭
마지막은 누구 할까 고민하다가 사심대로 강동원 하기로 했어.

이 짤 보는 순간 아.. 내 남편이었으면.. 싶더라고.
강동원 말고 심노숭 이야기 해야 하는데......
일단 만시 보자.

지난 해 나는 관서지방으로 나가서
석 달 동안 강산 천 리 유람하였네
돌아오니 당신은 병들었고 쑥도 시들었는데
당신이 울며 하는 말 "돌아오심이 왜 그리 더디었나요?"
"쑥은 흐르는 물과 같아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도 그사이에 하루살이와도 같은 것이지요.
나 죽어도 다음해에 쑥은 돋을테니
그 쑥 보면서 저를 생각해 주시겠지요?"
오늘 마침 제수씨가 밥을 차려주는데
그 상에 놓은 여린 쑥 보자 문득 목이 메이네
그때 나를 위해 쑥 캐주던 그 사람
작은 무덤 그 얼굴 위로 쑥은 돋아나는데
<동쪽 뜰에서>
심노숭은 아내를 여의고 2년동안 슬픔을 담은 글을 미친 듯이 써내려 감.
조선 사랑꾼 채팽윤이 아내에 대한 글을 14편 정도 남겼다면
심노숭은 50편 가까이 남아있음.
사랑꾼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인듯.
심노숭이 남긴 <새로 쓴 무덤가에 나무를 심는 이유를 적은 글> 이라는 글에 아내를 잃은 슬픔이 또 나타남.

이 글에서 심노숭은 아내가 평소 집에 꽃나무를 기르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성격이 게으른 탓에, 또 살던 집이 너무 낡아 소원을 이루어주지 못했다고 적었음.
그러다 드디어 파주에 새 집을 짓고 꽃과 나무를 심었는데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위독해진 것임.
아내는 파주 집 곁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하고 세상을 떠났음.
파주로 이사가던 날, 아내는 관에 실린 채 그 곳으로 오게 됨.
심노숭은 집에서 백 보도 되지 않는 곳에 아내를 묻고 이듬해 한식에 아내의 무덤가에 삼나무 30그루를 심음.
아! 이것은 참으로 오래 된 계획이었다.
이전에 내가 서울 집을 버리고 파주로 가려 했던 그 계획을 이제야 이루었으나 아내와는 하루도 함께 살지 못했다.
(...)
남은 생애를 생각해보면 불과 수십년이지만 한번 죽고 나면 천년이나 무궁할 뿐이다.
이에 내가 택할 바를 알겠으니, 곧 서울 집이 파주 집으로 옮겨간 것뿐만이 아니라, 살아서는 파주의 집을 얻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서로 길이 파주의 산을 얻은 것이니 그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내가 묻힌 산에 나무를 심고, 집에 심어본 것의 품질을 살펴 하나같이 산에 옮기는 까닭이다.
(...)
심노숭은 아내와 살지 못한 현생의 파주 집 보다는 내세에 아내와 살 파주 산을 선택한 것이었음.
주변에선 앞으로 살 일은 찾지 않고 죽은 후의 일만 도모한다고 나무랐으나
심노숭은 "죽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내가 진정으로 참을 수 없는 말이다." 라고 반박함.
심노숭은 아내가 죽은지 45년 후에야 파주 미륵산에서 아내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었음.
과연 얼굴 천재들은 내 글을 살려 줄 수 있을것인가.....
첫댓글 이런거보면 현대의 남편들보다 과거의 남편들이 아내를 더 사람으로 대하고 사랑으로 대한 것 같음 시간이 지나면 발전을 했어야지 한남들은 어째 퇴보했냐
지금보다 낫네 ㅜㅜ
유아인에서 쭉 내리려다 강동원보고 멈칫함 ㅎㅋㅋ
근데 너무 슬프다..ㅠㅠㅠ뭔가 마음이느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