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김지명
산마루에 오른다. 화창한 날씨에 진달래와 상수리나무의 가지끝 부분은 처녀의 젖가슴처럼 볼록하게 부풀었다. 기온은 영상 구도였으나 바람이 없어 활동하기에 약간 더운 날씨였다. 계곡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기 위해 깔딱 고개를 올라갈 때 젊은 산악인들과 함께 하니 숨차고 힘들었지만, 옛날에 산으로 자주 다닌 덕분에 체력이 따라주어 무사히 동행할 수 있었다. 화왕산 마루에서 흔적을 남기려고 산 이름이 적인 표지석을 주인공으로 곁에 서기나 기대어 멋진 폼으로 카메라의 피사체가 되기도 했다.
창녕의 자랑이고 화왕산의 풍경에 운치를 더하는 억새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이렇게 멋진 경치를 주머니 카메라에 담기 전에 신체의 카메라로 머릿속에 담았다. 이곳 화왕산의 억새가 수만 평의 군락지로 대 장관을 이룬 이 아름다운 풍광은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꽃잎은 떨어졌지만 아직 억새의 곧은 줄기는 칼바람에 시달리고 눈보라가 스쳐 가도 지치지 않고 꿋꿋한 자세로 서 있는 이곳 억새밭엔 가을을 방불케 한다.
라디오에서는 봄 오는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화왕산 억새밭엔 영원한 가을을 느끼게 하는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진다. 아! 멋지다. 이래서 화왕산을 찾아들고 좋다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흘러들었나 보다. 역시 부산의 해송산악회에서 이렇게 멋진 곳을 빠뜨리지 않고 안내하는 고마움에 두 손 모아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이것 뿐만은 아니다. 계절마다 가고 싶다는 희망자를 모집하여 저렴한 가격에 편안하게 안내하는 회장과 더불어 운영진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억새밭에서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어 영원히 남을 추억을 가방 전화기에 담는다. 억새밭의 풍광이 너무나 멋져 이런 경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아름다움에 빠졌으면 동영상으로 촬영할 때 억새밭은 가을로 되돌려 놓은 느낌이었다. 억새밭에 앉아 흘러간 노래를 추억하기도 했다. 원로가수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이란 가사 중에 으악새 슬피 우는 이라는 구절이 있다. 으악새는 억새의 경기도 방언으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노래를 국민들은 자주 불렀다.
화왕산의 계곡에서 개울마다 일급수의 맑은 물이 졸졸 소리 내어 흐른다. 이런 맑은 물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어느 지역보다 인기가 높아 보인다. 이런 미나리를 자주 먹을 수 있도록 소문낸 동네는 한재마을이다. 한재마을은 야생미나리를 재배하여 줄기가 붉은 색깔로 맛과 향이 달라 전국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졌다. 특히 경사도 사람들은 미나리를 유별나게 좋아하므로 삼겹살에 한재 미나리를 잊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들 게다가 여인들은 계모임에서 미나리 밭을 자주 찾는다.
지역마다 유명한 미나리 밭은 자자하다. 대구도 도심지 변두리에는 미나리 밭이 많다. 울산에도 언양 미나리 선바위미나리 남창미나리가 있는가 하면 원동에도 춘삼월이면 미나리 축제를 빠뜨리지 않는 곳이다. 부산에는 두구동미나리꽝에 봄이 밀려오면 잊지 않고 찾아가기도 하는 곳이다. 이러하듯 가는 곳마다 미나리에 삼겹살이 냄새를 풍기며 발길을 잡는다.
해송산악회 대원들은 창녕미나리꽝으로 가기 위해 하산하면서 능선으로 걸었다. 대원들은 팔십 명이 넘어 한꺼번에 이동하기가 어려웠지만, 줄지어 따라붙어 모두가 무사히 하산하여 버스로 미나리꽝에 도착했다. 산기슭에 비닐하우스가 수십 동에 이르지만, 그중 한곳에는 식탁처럼 만들어져 이동식 카스렌지에 불판을 올려놓았다. 하우스의 대다수가 수경법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안에는 싱싱한 미나리가 아주 무성하게 자랐다.
길게 늘어진 하우스 안에는 남녀 산악인들이 테이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누가 자리를 정해준 것도 아닌데 우연히 앉다보니 술과 담을 쌓은 네 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각 테이블마다 술을 포함한 미나리와 삼겹살이 푸짐하게 놓였다. 술을 멀리하기에 자상한 성격은 배려하는 마음이 넘치다보니 서로 고기 굽기에 바빴다. 태우지도 않고 놀놀하게 아주 잘 구워진 삼겹살 냄새에 군침이 생긴다. 네 명은 음료수로 잔을 높이 들고 파이팅을 외치며 우정을 다졌다.
미나리는 맛으로 먹지만, 보약 같은 성분이 풍부하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은 아주 풍부하고 지방이나 나트륨과 지방분도 함유하고 있다. 돌미나리는 생것도 좋지만 오징어나 문어를 넣어 전으로 구워먹어도 영양분은 변하지 않으며 그 맛을 처녀총각이 키스하는 느낌이다. 이처럼 미나리는 다양한 조리로 만들 수 있으나 가끔 체질에 따라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 덕분에 생 미나리가 좋아 사인분의 절반을 혼자서 맛나게 먹어치웠다.
어려서 미나리를 하도 좋아하여 가족들과 자주 먹었다. 초봄이면 미나리의 뿌리까지 날것으로 된장에 찍어먹었다.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아버지가 내 것은 따로 나누어 주라고 했다. 한단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우니 풀만 먹는 짐승 같다고 했다. 그 대신에 육류는 아주 싫어했다. 소고기 국을 끓일 때 증기를 맡으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온난 일이 잦았다. 육류는 군대생활하면서 체내에서 받아주기 시작하여도 잘 먹지 않았다.
회장님이 앉은 테이블에 앞에서 산토끼님에게 가을 여인님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산토끼님이 말이 없자 회장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회장님의 심리를 알아보려고 말을 꺼냈으나 무언의 눈빛으로 질투심은커녕 아내를 예쁘게 본다는 느낌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듯했다. 예쁜 아내의 남편으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단체를 리드하는 회장답게 모두를 포용하는 마음은 바다처럼 넓게 느껴졌다.
산으로 오를 때 난센스님은 개명한 듯이 넌센스로 불러달라고 한다. 난센스님은 대원들을 걱정하면서 안전 산행을 유도하지만, 산토끼님은 닉네임답게 한순간 산마루 쪽으로 사라졌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아 높은 곳으로 오르기에 최적의 자격을 갖춘 모습이다. 닉네임에 걸맞게 산행할 때는 토끼처럼 가볍게 잘도 걸어 그림자를 밟기에 역부족이었다.
화왕산 등산은 억새군락지가 마음을 뺏었고 저녁은 미나리와 삼겹살로 배를 채우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