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첫번째날을 이 카페에서 시작하려고 들어왔는데 너나들이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글을 읽고 정말 안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식으로 까진 하진 않았지만 누구나가다 부모님에 대해서 공기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있을때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다가도 없으면 한시라도 살수 없을만큼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그런 공기 같은 부모님의 존재 말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우리 삼형제를 위해서 밤을 낮삼아 낮을 밤삼아 일을 해오셨는데 이제 정년퇴직을 할 나이가 되니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작년에 서울중앙병원에서 대 수술을 받았답니다.
그때 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가족을 전부 부르더니 만약에라도 사망하더라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것을 다짐하는 서명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야지 수술을 집행할수 있다구요. 그때의 심정은 누구나가 다 이해할수 있을것 입니다.
저는 아버지와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본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어렸을때 잡아보고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퇴소식 하던날, 부모님은 울산에서 논산 까지 멀다면 멀수도 있고 가깝다면 가깝다고도 할수 있는 그곳까지 오셨습니다. 그때 "충성!"하고 외치는 나에게 아버지는 처음으로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때의 아버지의 손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군 제대를 하면 부모님께 효도 할것이라고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막상 제대를 하고보니 내 생활에 바쁘고 하다가 군대 가기전과 같이 부모님께소흘하게 되고 또 예전과 같이 아버지와는 말한마디 안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수술을 마치고 면회가 허용되었을때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몸 곳곳에 바늘이 꽂아져 있었고, 아버지의 몸상태를 체크하는 의료기기들이 갖가지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음식도 못드셨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란 아버지 침대 옆에 있는 쇼파에 누워서 도와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매시간마다 주사를 맞고 피검사에다가 별별 일로 곤히 주무시는 간호사들이 밉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잘 계시지만 매일 세번씩 약을 먹어야만 심장을 정상적으로 뛰게 할수 있습니다.
이런 늬우침도 잠시 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6개월간 해서 모은돈을 부모님께 드리지 못하고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어학연수갈 돈으로 쓴답시고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해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들지만 그런 따뜻함은 내게 없나 봅니다.
오늘 이글을 읽고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흙에다 묻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다 묻는다구요.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혈인 여러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나들이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깨우치게 해주었네요.
제 여자친구에게도 이글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