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 등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일부 독립 손해사정사들의 변호사법 위반 사례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피보험자가 사고나 재해를 당했을 때 손해액과 보상금을 산정해주는 고유 업무 외에 보험금을 대신 받아주거나 손해배상액과 관련한 중재 등 법률사무를 대행해 주고 보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손해사정사들은 특정 병원이나 피보험자와 짜고 보험사기를 저질러 검찰 수사 선상에도 오르고 있다.
독립 손해사정사 A씨는 최근 교통사고 피해자와 병원 입원 문제부터 신체감정, 합의 절차 등 모든 과정을 대행해 주기로 하고 보상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기로 하는 수임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보험회사 담당직원과 전화 및 면담을 통해 합의금 액수에 관해 협의한 다음 자신의 의뢰인인 피해자에게 합의금액이 적당하다고 조언해 보험회사의 합의 제안을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으로 화해계약을 주선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금치산 선고를 위한 소장 작성 대행까지 했다. 모두 변호사법 위반이다.
보험업법 제188조는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를 손해 발생 사실의 확인, 보험 약관 및 관계 법규의 적정성 판단, 손해액 및 보험금의 사정, 이와 관련된 서류의 작성 및 제출 대행, 보험회사에 대한 의견 진술로 한정하고 있다. 대법원도 지난 2001년 11월 "손해사정사가 금품을 받거나 보수를 받기로 하고 교통사고 피해자 측을 대리 또는 대행해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피해자 측과 가해자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 등과 사이에서 이루어질 손해배상액의 결정에 관해 중재나 화해를 하도록 주선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등으로 관여하는 것은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에 속하는 손해사정에 관해 필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없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명시적으로 판결한 바 있다(2000도513).
재해·사고 당한 피보험자 보험금 대신 받아 주고
손해배상액 중재 등 법률사무도 대행, 보수 챙겨
일부는 특정 병원·피보험자와 짜고 보험사기까지
보험사에 터무니 없는 손해배상액 여구 횡포도
손해배상액 중재 등 법률사무도 대행, 보수 챙겨
일부는 특정 병원·피보험자와 짜고 보험사기까지
보험사에 터무니 없는 손해배상액 여구 횡포도
보험업계는 터무니 없는 고가의 손해배상액을 요구하는 일부 독립 손해사정사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최근 A씨 등 수십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사고나 재해를 당했을 때 손해액과 보상금을 산정해주는 전문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6000명이 손해사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손해사정사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다수인 80% 이상은 보험사나 보험사가 위탁한 손해사정업체에 소속돼 일하고 있고 800명 가량이 독립 손해사정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람들이 독립 손해사정사를 찾는 이유는 보상금을 더 타내기 위해서다. 보험사 등에 소속된 손해사정사들은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보상금을 후려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독립 손해사정사가 사무실을 유지하려면 월 1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반드시 고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며 "독립 손해사정사의 이런 상황과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의뢰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무리한 보상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 손해사정사들은 보험사의 관리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에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도 독립 손해사정사의 법 위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관정)는 최근 의사와 결탁해 허위진단서를 발급받은 손해사정사 배모씨와 의사 최모씨를 변호사법 위반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서울·인천 등 경찰 광역 수사대도 독립 손해사정사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변호사 단체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창우(61·사법연수원 15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지난 4월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을 만나 손해사정사들의 변호사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손해사정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등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올 하반기 중에 손해사정사에 대한 현장 검사를 벌이기로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도 지난 2월 변호사 자격이 없으면서 손해배상액의 결정과 관련한 중재·화해 등 법률사무를 취급하고, 금품이나 보수를 수수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손해사정업체 대표 4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대한변협도 지난해 8월 같은 혐의로 모 손해사정업체 소속 손해사정인 4명을 수원지검에 고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