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랍비 벤 조마는 "화를 조절할 수 있는 자는 힘센 자보다 낫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도시의 정복자보다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주변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화를 다스리지 못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 시대입니다.
분노조절장애는 성인남녀 중 50퍼센트가 앓고 있어서 현대인의 신종 질병이라고까지 불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화는 우리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허물어뜨리는 주범이자 신체적 건강도 무너뜨리는 무서운 적입니다.
따라서 이 심각한 고질병인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불행의 길을 내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심리학 박사 브렌다 쇼샤나는 [마음의 불을 꺼라]에서 일상의 상처와 분노에 대처하는 심리기술을 들려주고 있는데, 이 중 분노조절장애 시대에 화 다스리는 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심어진 분노의 씨앗을 알고 스스로 화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원한은 가슴에 굳은살을 만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했을 때, 또는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그렇게 느낄 때 쉽게 원한을 품곤 한다.
이러한 원한은 가슴에 굳은살을 만든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원한은 우리를 비정하게 만들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류까지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우리를 심술궂은 사람, 두려움과 불신감으로 인해 행운을 붙잡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이용당했고 상처를 입었는지에만 생각이 사로잡혀 있다면 이 세상은 서로를 이용하고 속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원한이 이런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이다. 관계를 망가뜨리는 원한의 위험성을 잘 깨닫고 상대방의 조그만 실수에도 원한을 품는 일은 없도록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2, 에고( 자신에 대한 의식 )는 험담을 먹고 자란다.
남에게 창피를 주는 일을 즐기면서도 자신이 모욕당할 때는 극도로 흥분하게 되는 것은 그릇된 자존심 때문이다.
그릇된 자존심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불안정한 감정으로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에고를 건드리는 말이 귀에 들리는 순간, 우리는 에고의 우위를 지켜내기 위해 분노와 상처와 고통으로 폭발한다.
비방과 뒷말은 에고를 지키려는 헛된 노력이다. 우리는 이런 수법에 개입하는 것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상처 입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갈등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배배 꼬인 생각과 뒤틀린 마음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다른 사람의 말로 손상되지 않으며 칭찬과 비난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진정한 자아는 본래 강하기 때문에 분노라는 그릇된 힘을 빌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화를 다스릴수록 기쁨과 활기가 더욱 충만하게 드러날 것이다.
3, 남을 탓할수록 자신은 무력해진다.
우리는 모든 일의 원인을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좋아한다. 실망과 갈등, 손해 등 온갖 부정적인 경험을 겪을 때마다 책임을 돌릴 만한 사람부터 찾는다.
이렇게 남 탓을 하는 사람은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라는 위험한 생각을 갖게 된다.
즉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성향이 커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 완전하고 우월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강자이고 다른 사람은 약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약하고 무력해진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무방비 상태로 대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적절하게 대처하거나 잘못된 점을 개선할 수 없는 법이다.
남 탓하는 것을 멈추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 할 때 비로소 우리 삶은 큰 변화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4, 우울증은 자신을 향한 공격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향한 분노를 우울증으로 정의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좌절과 적개심, 숨겨진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 그 마음을 표현할 만한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이때 분노는 내면을 향하게 되며 무기력함, 절망감, 무관심, 실망감을 만들어 낸다.
의기소침한 사람은 삶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바깥세상에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기 때문에 최악의 결과를 기대하거나 보게 되며, 심지어 자신과 별로 관련이 없는 일에서도 실망과 패배의 감정을 갖게 된다.
또는 냉소적인 사고방식이 깊이 뿌리내릴 수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가치관은 파국적 기대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실현 가능성이 적은 이런 근심들 속에 함몰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명확하게 직시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5, 죄책감은 성장을 가로막는다.
순교자형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저 양보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을 경솔하고 둔감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순교자는 동등한 인간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정체성은 '이용당하고 상처를 입은' 상태에 단단히 묶여 있을 뿐이다.
그들은 종종 자신이 거의 성자 수준에 다다른 존재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베푸는 행동과 상대방을 조종하는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조금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죄책감은 치명적인 독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덜기 위해 자신을 처벌할 방법을 찾는다. 따라서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죄책감과 뉘우침의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뉘우침은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다시 전진하게 해준다.
6, 우월감 대신 자부심을 택하라
사람 대부분은 우월해지려는 욕구를 지니고 태어난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수시로 비교하고,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바로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일 것을 깨닫지 못한다.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겠다는 생각은 상대방을 계속 내 발밑에 붙잡아 두겠다는 욕망을 일으키고, 때로는 그들의 고난과 손해를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고위층 인사의 사생활을 물고 늘어지고, 뒷말과 비방에 열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에 자부심은 모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진정한 자부심을 지닌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상대방에 대한 공격, 우월감 등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그는 동질성을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당신과 상대방의 본모습 사이에 세워진 장벽을 무너뜨려라. 당신도 훌륭한 사람이고 상대방도 훌륭한 사람임을 깨닫고 인정하라.
7, 낮은 자존감은 겸손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고 있다. 어색함, 수줍음, 스스로에 대한 불신, 수치심 등 자신을 향한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여기에 속한다.
낮은 자존감을 겸손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르다.
진정한 겸손은 건강하고 활기에 넘치지만, 낮은 자존감은 그렇지 않다.
외부를 향해서는 항상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정작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렇듯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위험한 적이 될 때는 그 함정을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순종적인 성격을 갖기 쉽다. 그들은 제 생각, 희망, 꿈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들은 순종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지만, 정작 자신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낮은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절망감을 키운다. 마음의 평정이 유지될 때까지 자신의 지독하게 싫은 점, 지긋지긋한 점을 생각해 보고 그 이면에 흐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해 보자.
우리는 상처 입고 배신당하고 모욕을 받으면 받은 만큼 되돌려줌으로써 손익을 맞추려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부당하게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애쓰며, 상대방을 내치고 고통에 빠뜨린다. 내가 옳고 상대는 잘못됐으니 내게는 복수할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복수의 방법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직접 가해자에게 찾아가 대놓고 비난을 퍼붓는 일이다.
그 외 고소를 하거나, 항의 편지를 보내 복수할 수도 있다. 반면에 곧장 반격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은밀하게 가해자에게 복수할 궁리에 빠진다.
받은 대로 되돌려줄 기회만을 엿보는 것이다.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비난하기는 가장 쉽고 만족스러운 결론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더 넓은 시야로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지혜,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9, 학대를 견디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학대받는 사람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자신을 형편없는 바보, 또는 매력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오랫동안 학대를 받아온 사람은 자기중심을 되찾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개중에는 학대적인 관계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 사람과 헤어지면 또다시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의 낮은 자존감과 자기혐오는 스스로 처벌을 끌어들인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학대받는 상황을 즐기고, 인격적으로 또는 성적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
학대받지 않으면 안정감 또는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증상을 전문용어로 마조히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학대적인 관계를 끊는 것은 당신뿐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당신을 통해 그들은 머지않아 밖을 향한 채찍질을 그만두고 내적인 문제와 마주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 최선의 방어는 언제나 사랑이다.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도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해치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어는 자신의 참모습, 재능, 가치, 진리의 눈을 돌리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거부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사람과 보살핌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여서가 아니다.
상대의 거부는 그의 선택일 뿐이다. 누구나 자기 모습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존중할 때 고통과 상처와 분노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으며 무한히 퍼져간다는 분명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