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이른 아침은 꽤 서늘하다. 어제 잠시 내린 비 때문에 그런 것일까? 한 자릿수 영상 7도인데... 다른 고장에서는 이미 피었다가 진 아카시아꽃이 이곳 봉평 설다목 산골에서는 이제 피기 시작한다. 대부분 지역은 5월 꽃인데 고원지대라서 그런지 꽤 많이 늦다. 거의 대부분의 꽃이 다 그렇지만... 지난해 이맘때는 뭐가 바빴는지 아카시아꽃을 따 튀김으로 튀겨먹는 것을 깜빡 잊어 뒤늦은 후회를 했다. 올해는 꼭 꽃을 따서 튀김을 튀겨먹자고 하는 아내의 바람을 잊지말고 들어줘야겠다.
봄날에는 종류도 다양한 꽃들이 하늘이 정해주는 순서에 따라, 자연이 정한 이치에 따라 피고지고를 쉼없이 반복한다. 불과 얼마전 백당나무꽃, 부처님 두상 닮은 불두화가 피었다가 이젠 아카시아꽃에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히 지고 있다. 또다른 꽃들이 뒤를 이을 것이다. 지금은 붓꽃 종류가 한창이다. 앞뜨락의 독일붓꽃이 만개하여 예쁘게 자리한다. 우리의 토종 붓꽃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피었다. 이 붓꽃은 촌부에겐 추억을 간직한 꽃이다. 수많은 야생화를 단지안으로 불러들이고 모셔왔다. 그 중 하나이지만 붓꽃을 번식시켜 우리가족들이 다니는 길의 이름을 붓꽃길이라 부르게 했던 꽃이다. 우린 카페 주차장에서 바베큐장에 이르는 좁다란 길을 붓꽃길이라고 부른다. 그 길 양옆으로 붓꽃을 심어 꽃이 피면 느낌이 참 좋다.
정원 안쪽과 중앙통로 오른쪽에는 데이지가 하얗게 꽃을 피워 장관이다.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한동안 이 녀석들이 단지안에 피는 꽃의 주인공 행세를 할 것이다. 어느해 몇 그루 얻어와 심었는데 번식력이 왕성하여 제멋대로 씨앗의 번져 큰 정원 안쪽까지 영역을 넓혀 다니는 길까지 점령을 해버렸다. 꽃을 함부로 없앨 수가 없어 그냥 둔다. 머잖아 예초기를 짊어지면 다른 곳은 그냥 두지만 다니는 길에 나온 녀석들은 어쩔 수가 없어 베어내게 될 것이다.
집을 비운 사흘 사이에 블루베리와 더덕이 함께하는 밭이 엉망진창이었다. 온갖 잡초들이 서로 자기들 자리라고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꼴을 보고있을 촌부가 아니라는 걸 녀석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호미를 들고 보이는 녀석은 몽땅 캐내고 뽑아제끼는 촌부의 손놀림에 기겁했을 했을 것이다. 그래봤자 며칠 지나면 촌부를 비웃듯 또다시 다른 녀석들이 고개를 쑥쑥 내밀겠지만... 그래도 할미꽃과 고들빼기는 그대로 두었다. 다른 녀석들이 그랬겠지? '영감탱이 차별 심하네!'라고... 사실 이 밭은 더덕이 주인인데 블루베리 심을 곳이 마땅찮아 12그루의 블루베리를 심었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계속 둘 생각이다. 더덕 덩굴이 블루베리를 감고 올라가지를 못하게 하려고 자그마한 막데기를 하나씩 꽂아놓았다. 아주 잘 감고 잘 타고 올라간다. 이따금씩 블루베리 가지를 넘보는 녀석들은 곧바로 강제 조치를 취한다. 이러다 더덕은 블루베리 맛이, 블루베리는 더덕 맛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테지?
첫댓글 촌부님의 집에는
언제나 꽃길만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계절의 신비로움이 좁은 한반도에서 느낄 수 있지만
아카시아의 그 향기를 생각하면서 촌부님을 그려봅니다.
오늘도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