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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여섯 분의 할머니들 영정 사진을 찍어야 한다.
구례 8월 8일 이후 읍내 골목의 몇몇 할머니들을 살펴보던 모모가 목요일 죽 배달을 시작한 날이 10월 29일이었을 것이다.
악양의 이유식회사 <에코맘의산골이유식>에 기부를 요청했고 두 말 하지 않고 오천호 대표는 그리하겠다고 했다.
12월 31일은 그 죽 배달이 끝나는 날이다.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 매듭은 지어야 했다.
12월 24일 죽 배달을 마친 모모가 영정사진 이야기를 했다. 지난 수해에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영정사진을 잃어버렸다.
별 일 아니다. 사진은 찍으면 되는 일이다. 몇 분이 필요하신지 파악을 다시 요청했지만 내 상황이 쉬는 날이 아니면
요즘은 이런 단순한 일 조차 수행하기 어렵다는 일상의 변화가 있다. 알다시피.
원유헌 선수에게 기별했다. 같이 좀 하자. 놉은 없다. 좋다고 했다.
그날이 12월 31일 마지막 죽 배달일이고 마침 나는 6일 동안 가게를 닫기로 한 첫날이다.
신문사 그만 두면 사진기자는 카메라가 없다고 주장하는 원 기자의 소박한 카메라와 나의 부상 병동 카메라를 들고
한 집 씩 방문했다. 카메라보다 더 낡고 병 든 우리의 모델들은 이 시골 골목 어느 구석 진 골방에 그냥 그렇게 살아 있었다.
한 시간에 끝을 낼 것이라는 나의 과업주의적 발상은 헛소리였고 일은 두 시간 넘어 이어졌다.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편한 것이다. 그러나 보고 들어버린 탓에 마음은 무겁고 불편해졌다.
이 일이 그러할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하루 전 눈이 내렸고 바람은 매서웠다. 가능하면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개인적으로 영정사진은 살던 집 마당에서 일상복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찍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지만
차가워진 날씨가 걱정스럽긴 했다. 최근 거의 한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장 거리를 걷기도 오래간만이다.
산은 춥고 살림은 더 추워보였다.
연말 선물로 모모가 준비해 간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녀들 혼자만의 힘으로 말년의 이 고난을 이겨내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꽃은 그렇게 생의 훈장으로 입혀졌지만 그녀들이 정성을 다해 키운 꽃들은 보이지 않는다.
새해에 대해서 어린시절부터 별 다른 감정은 없었다. 특별편성방송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추운 겨울이고 모든 그녀들의 방은 추웠다.
기름 아끼는 평생의 버릇 탓이기도 하고 버튼 조작을 할 수 없어 그러하기도 하다.
독거(獨居) - 혼자 삶. 또는 홀로 지냄.
약간 늦은 점심을 나누고 세 사람은 흩어졌다.
제법 피곤했다. 그러나 긴 시간 운전해서 도착하면 제 각각의 친정에는 역시 보고 싶은 엄마가 아직 있다. 가족이 있다.
머리카락을 잘라드렸고 외식을 했고 아이들을 걱정했고 어쩌면 미래도 이야기했다.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내어 다행스러웠다.
그것은 일말의 여유였다. 누리는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니.
시커먼 천장 모서리 바라보며 바람 소리 유난한 독거의 밤을 헤아리는 노년을 어느 누구도 꿈 꾸지 않았다.
가족 버리지 마라.
읍내에 나와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좋은 친구들이 있어 12월 31일답게 보냈다.
4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