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의성김씨 서지재사(安東 義城金氏 西枝齋舍)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선생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향하기 위해 조선후기인 1700년대에 세운 재사이다.
의성김씨 서지재사
안동 와룡면에 있는 이 건물의 정면은 누다락집으로 되어 있으며,
ㅁ자형인 재사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안채는 뒤쪽의
경사지를 이용하여 높은 터에 위치하기 때문에 안마루의 바닥높이가
누마루 바닥보다 높으며, 누다락 정면은 누하(樓下)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어간(御間)에 대문을 내었을 뿐, 양옆의 앞쪽은 흙벽으로 막았다.
서지재사 측면
2층건물의 아래에는 광과 대문간 외양간 등이 있으며
위에는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가 있는데 묘제 후 음복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1984년)되었다.
재사정문
경사진 재사 앞면(2층)과 뒷면(단층)
뒤쪽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기둥
재사 서쪽의 김성일선생 묘소와 신도비
학봉선생 신도비각
학봉 김성일선생 신도비
이 신도비는 1634년(인조 12)에 세웠는데,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로 만들어졌으며, 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비문은 정경세가 짓고, 서예에 뛰어난 이산해가 글씨를 썻으며,
앞면 맨위에 새겨진 비의 이름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신도비명과 묘방석 표석, 그리고 신도비각
신도비각은 1664년(현종 5)에 건립되었다.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선생의 묘
학봉 김성일 (鶴峯 金誠一,1538~1593)은 퇴계선생의 수제자로
경상도지역 유림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590년(선조 23)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이 침입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여 임란초에 파직되었으나, 곧 사면되어 경상도 초유사에 올랐다.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모으고 군량미 확보에 힘썼다.
곽재우 등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진주대첩 승리의
기반을 만들었으며 그 후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항전 중 사망했다.
학봉 김성일과 정부인 권씨 묘지석
학봉 김성일 묘방석
묘비나 묘방석은 묘의 주인을 밝히기 위해 묘의 바로 옆에 두는
석조물인데, 김성일의 묘 오른쪽에 있는 묘방석은 1619년
(광해군 11)에 세워진 것으로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팔 때
나온 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해 글씨를 새겼다.
앞면의 글은 퇴계 문하에서 같이 공부를 한 정구선생의 글씨다.
묘방석 4면으로 돌아가면서 연결하여 새겼다
묘방석과 문인석, 향로대
문인석 좌.우
묘소 옆에서
학봉 김성일의 묘 안산
김성일 묘역으로 뒤는 김성일, 앞은 영인(令人) 순흥안씨의 묘
학봉 김성일의 초실(첫째부인) 안동권씨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안동권씨가 별세한 후, 김성일은 순흥안씨와 재혼(계실,후처)하였다.
위의 묘는 첫째부인인 안동권씨(安東權氏)와의 쌍분묘이고,
아래는 후처인 영인 순흥안씨(令人 順興安氏)의 묘이다.
학봉 김성일의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