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장한철 지음, 정병욱 옮김, 범우사
표해록은 세 편이 전한다. 나주 선비 최부의 것, 문순득의 이야기를 듣고 옮긴 정약전의 것,
그리고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제주 선비 장한철의 것.
장한철은 꽤 영민한 유생이었던 듯하다. 향시를 거듭 수석하니 제주유지들이 과거응시를 지원해 제주를 떠나는 배를 탄다.
그런데 겨울의 풍랑을 맞아 표류한 배가 유구의 무인도에 가까스로 다가 되고,
거기서 일본해적에게 봉변을 당한 뒤, 베트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거대한 상선을 얻어탔다가,
제주 한라산이 보이는 곳에서 그들의 제주도민임이 알려지고, 과거 제주목사가 안남국 태자를 죽인 일 때문에
베트남선원들이 그들의 다시 배에 태워 놓고 가자, 제주로 향하다가 다시 바람을 잘못 만나 제주에서 멀어지다가
우여곡절 끝에 청산도에서 난파하여 일행의 2/3를 잃고 8명만이 살아남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야기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 흥미진진하다.
더구나 당시 제주를 중심으로 주변국에 대한 지식과 역사 등의 지식은 물론
점을 치거나 신화 등을 인용하고, 선원들의 습속과 미신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다.
위기에 직면해 드러나는 사람들의 공포와 의리 등도 그렇다.
하지만 산같이 크게 묘사된 국제상선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자신들의 배를 타고 강풍이 불면 속수무책 표류하는 수준의
조선의 항해술과 선박들 수준을 보면 국제적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제외된 국가의 상황이 저절로 대비된다.
100년 뒤 일본의 밥이 되는 역사적 과정이 당연하다싶을 정도로 우물안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