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시는 자리
가끔 산과 바다로 캠핑하러 갑니다. 캠핑 인구가 늘어난 요즘, 가까운 근교에
시설이 잘 갖춰진 곳도 많이 생겼지만 저는 주로 한적한 노지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물론 거기는 불편한 점도 많습니다.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길을 찾느라
지도를 더 꼼꼼히 봐야 하고, 화장실도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좀 없어
보이고, 좀 무섭습니다. 그래서 간혹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말도 듣곤 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 깊은 적막감이 좋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북적대는 곳에서는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쓸 수 없고, 행여나 최신의 장비를 갖춘 사람들
틈에 있으면 괜히 비교하며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 의자를 펴고 앉으면 ‘세상 호사 내가 다 누린다.’라는 만족감도
잠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난 한 주 화를 많이 낸 것 같다. 좀 참을걸!’,
‘집에 아버지, 어머니는 잘 계실까?’, ‘그때 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왜 그랬을까?’, ‘좀 잘 살아야겠다.’… 참 희한한 게 그렇게 자성의 시간을 갖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고 밝아진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아마 계속 지도를 펴게 되는가봅니다.
우리가 매일 혹은 매주 하는 미사가 이런 여행과 닮았다 싶습니다.
산과 바다 덕에 잊을 건 잊고, 새길건 새기는 것처럼 조금은 부족해도 미사의
은총이 더 크기에 정화와 치유가 이루어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의탁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도 있고,
뱀에게 물린 백성이 뱀(구리)을 보고 낫게 되는 대목(민수 21,9)도 나오는데,
정작 우리가 미사 중에 해야 할 것은 더 짊어지는 것도, 아예 도망가는 것도 아니라
더 내려놓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질러진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것은
나의 업적과 공로가 아니라 성체를 바라보는 것이며,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이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오늘 대축일을 맞이해서 빵은 우리말로 밥이라며 평화의 인사를
“밥이 됩시다.”로 하자고 하더군요. 참 괜찮은 제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잘하고 있다.’, ‘오늘도 의무를 다했다.’라며 영적인 포만감에 머물기보다는
그 신부님의 제안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밥이 된 적이 있는가?’,
‘나도 밥처럼 살아야겠다.’라는 적극적인 자성까지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빈자리에 예수님이 오셔서 더 큰 치유와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이고,
더 나은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글 : 채창석 빈첸시오 신부 – 대구대교구
한 청년의 삶의 이야기
스물넷, 장애를 가진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006년 일곱 살 때 일심재활원에 왔습니다.
그 후 아동 그룹 홈을 거쳐 2016년 지역 내 공동생활가정에 거주하면서
자립을 준비하여, 2019년 LH 행복주택을 얻어 자립했습니다.
자립을 하며 당면했던 어려움은 금전관리였습니다. 또래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금전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사기 피해를 입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모아둔
자산은 바닥을 드러냈고, 무단결근 끝에 상의도 없이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습니다.
교사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지,
당시 내 삶에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가 무척 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청년을 위한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본인이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힘든 시간이 계속될 즈음, 청년은 찾아와 도움을 청했고,
그때부터 청년이 처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구직을 위한 노력과 함께 밤낮이 바뀐 생활패턴을 바로잡기 위해 재활원으로
출퇴근하면서 주어진 일을 했습니다. 이 청년의 성향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 2019년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 입사해서 현재까지 성실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둘째, 임대 아파트 보증금 감액을 통해 연체료 등 빚을 정리하였습니다.
직장이 안정되고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다시 스스로 돈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실수들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본인이 계획한 돈 안에서 사용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재산을 모아 더 넓은 평수의 임대 아파트로
이사했고 집을 사겠다는 목표까지 세우게 되었습니다.
셋째, 대인관계입니다. 사람을 통해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일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청년에게, 그가 가진 장애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용하기 쉬운 약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약점을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 청년도, 저희도, 좌절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청년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 관계에서도 자기 것을 챙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립과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았던 이 청년이 스스로 해법을 찾으며 성장하도록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먼저 해결해 주는 것은 장애를 가진 청년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막상 청년이 겪는 현실을 보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겠지요. 그래도 멈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청년의 성장을 도왔고, 그 힘으로 주체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음을 저희도 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저희들의 고민과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생겼습니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은 이 청년과 함께 추억으로 기억하려 합니다.
글; 김지영 – 일심재활원 생활재활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