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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京畿 [安山 金弘道 祝祭]
安山 金弘道 祝祭
安山을 대표하는 畵家로 刻印된 朝鮮最高의 畵家 檀園 金弘道는 18세기 英∙正祖時代 文化的土壤이 매우 肥沃했던
安山에서 7~8세부터 20餘歲까지 豹菴 姜世晃으로부터 그림과 글을 修業했으며, 豹菴의 薦擧로 圖畵署畵員이 된 후
御眞을 그릴 정도로 大成했다. (*豹: 표범 표 *晃: 밝을 황)
1991년 文化觀光部로부터 ‘檀園의 都市’가 된 것을 契機로 安山을 ‘檀園의 都市’로 定着시키기 위해 1999년부터
檀園藝術祭를 열고 있으며, 初期에는 檀園美術公募展으로 그림展示를 主로, 體驗行事를 附帶行事로 열다가
2003년부터 安山 金弘道祝祭와 함께 열고 있다. 祝祭는 金弘道의 一代記 및 作品世界, 마당극〈檀園 金弘道展〉과
風俗畵, 檀園圖畵書員 選拔大會, 風俗畵版畵製作體驗, 아동 미술마당, 茶道試演 및 體驗, 傳統婚禮再現 등 체험과
장터가 主를 이루고 있다.
2018.10.12(금)~14(일) 3일간 檀園區 花郞遊園地에서 <安山 金弘道 祝祭>가 열리는 마지막 날(10.14)
[安山 金弘道 祝祭]를 관람하며 찍은 사진을 올린다.
(01) 電鐵 4호선 古棧驛 -18.10.14
*古棧洞은 安山市 檀園區의 東部에 있는 法定洞이며 行政洞은 고잔1동과 고잔2동으로 분리되어 있고,
安山市廳∙安山警察署등 安山의 公共機關들이 있다. '고잔'이라는 지명은 곶[串]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곶안’이라고 했으나 發音이 변화한 것이다. 朝鮮時代에는 安山郡 仍火面 古棧里지역이었으나 1914년
行政區域改編에 따라 始興郡 秀岩面 古棧里가 되고, 1986년 安山市에 編入되어 中央洞관할의 古棧洞이
되었다. 1988년 中央洞에서 고잔1동과 고잔2동으로 分洞되고, 2003년 古棧新都市에 인구가 증가한
남쪽지역이 湖水洞으로 분동되었으며, 2002년 安山市의 區制施行에 따라 檀園區에 속하게 되었다.
(*棧: 사다리 잔 *仍: 인할 잉)
(02) 安山 文化藝術의 殿堂 -18.10.14
2004년 開館한 安山 文化예술의전당은 해돋이劇場(1,592석), 달맞이劇場(714석), 별무리劇場(200석) 등
세 개의 公演場을 갖추고 있다.
(03) 安山 와~스타디움의 무지개모양構造物
와 스타디움(WA Stadium)은 ‘와~’하는 觀衆의 喊聲, Welcome to Ansan, World Ansan등의 複合的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天然잔디蹴球場과 陸上競技場을 갖춘 綜合運動場으로, 觀衆席 35,000席의 地下1층∙
地上4층 규모로, 2006년 竣工했다. (*喊: 소리칠 함)
(04) 安山 와~스타디움入口에 있는 [蹴球記念物]
(05) 安山市 檀園區廳
1986년 安山市가 출범한 뒤 2002년 安山市가 常綠區와 檀園區로 分區될 때 安山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畵家 檀園 金弘道의 歷史性과 象徵性을 통해 文化藝術의 고장임을 浮刻시키기 위해 金弘道의 雅號인
檀園에서 딴 이름이다.
(06) [護國 國家有功者 功績碑], 大韓民國武功受勳國家有功者 功績碑
(07) 2018 安山 金弘道祝祭場入口, 草芝洞 花郞遊園地 제3주차장
*檀園藝術祭: 安山市에서 每年 10월에 열리는 文化藝術祝祭.
朝鮮의 代表的인 畵家 檀園 金弘道(1745~1806?)가 安山에서 활동한 豹菴 姜世晃에게서 7~8세부터
20代初盤까지 그림을 배우고 成長했다고 1991년 ‘檀園의 都市’로 이름 붙인 것을 契機로 檀園藝術祭가
1999년부터 열리고 있다.
金弘道 展示館
(08) 金弘道 年譜 -18.10.14(*以下 金弘道 展示는 모두 같은 撮影日字로 省略)
*檀園 金弘道(1745~1806?)
金弘道는 英祖 21년(1745) 武班에서 中人으로 轉落한 집안出身으로 出生地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7~8세 때부터 安山의 豹菴 姜世晃의 집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어린시절을 安山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豹菴은 當代의
鑑識家이며 文人畵家로 두 사람은 師弟關係로 시작하여 職場의 上下關係로,
나중에는 藝術的 同志로 豹菴이 他界하는 1791년, 檀園이 47세까지 이어졌다.
金弘道는 姜世晃의 추천으로 圖畵署 畵員이 되었으며, 29세의 젊은 나이에
英祖의 御眞과 王世子(正祖)의 肖像을 그렸다. 檀園은 1791년 忠淸道 延豊縣監이
되었다가 3년만에 罷職되어 漢陽으로 돌아와 그림에 專念했다.
金弘道는 山水, 人物, 道釋, 佛畵, 花鳥, 草蟲 등 모든 장르에 뛰어났지만 특히
風俗畵를 잘 그렸다. (*鑑: 거울 감 *釋: 풀 석 *蟲: 벌레 충)
(09) [舞童] -檀園風俗圖帖(보물 527호) 25幅中 一部 -26.8 x 22.7cm.
-紙本 水墨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당시 賤民으로 취급되던 風角쟁이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흥겨움을
諧謔的으로 다룬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로, 檀園은 당시 蕙園 申潤福과
함께 風俗畵에서 獨步的인 境地를 개척한 畵家로, 簡潔하면서도 纖細한
檀園 특유의 筆法을 구사했다. (*賤: 천할 천 *諧: 화할 해 *謔: 희롱할 학
*蕙: 풀 이름 혜 *潔: 깨끗할 결 *纖: 가늘 섬)
(10) [빨래터] -檀園風俗圖帖(보물 527호)中 -28.0 x 23.8cm -종이에 엷은 彩色.
냇물을 배경으로 빨래터를 描寫했는데 바위 뒤에 숨어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빨래하는 女人들의 姿態를 훔쳐보는 閑良을 등장시켜 蕙園 申潤福이 즐겨 다루던
春意를 담고 있는데 檀園의 風俗畵로서는 異色的이다. 그러나 表現技法이나
女人네의 소탈하고 순수한 모습 등은 蕙園의 畵風과는 차이가 있다.
(*描: 그릴 묘 *姿: 모양 자 *閑: 한가할 한)
*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보물 제527호
朝鮮後期의 畵家인 檀園 金弘道(1745∼?)가 그린 그림책 형태의 風俗畵 25점으로,
[씨름], [대장간], [글방]등과 같이 庶民社會의 생활모습과 生業에 從事하는 모습을
구수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風俗畵의 대부분은 주변의 背景을 省略하고
人物中心으로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더욱 익살스럽다. 活氣차게 돌아가는
庶民들 日常生活의 寫實性과 社會性을 生命으로 삼고, 庶民의 일상생활을 主題로 해,
당시 社會相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1) [花鳥圖] -32.5 x 23.6cm -종이에 먹과 엷은 色.
오른쪽 위에서 對角線으로 아래로 드리워진 나뭇가지 위에 콧잔등에 털이 난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倣林良 筆 檀園]이라는
自筆 落款과 署名이 있다. (*倣: 본뜰 방 *款: 항목 관)
(12) [松下猛虎圖] -90.3 x 43.8cm -비단에 먹과 엷은 彩色 -三星美術館 리움 所藏
호랑이는 등을 곧추 세우고 꼬리를 치켜 든 채, 正面을 凝視하고 있어 호랑이의
威容을 잘 표현했다. 호랑이의 全身은 터럭을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소나무는 비교적 簡潔하게 그렸으나 굵은 나무 둥치와 상대적으로 가는 가지를
寫實的으로 표현해 對比시키고 있다. 호랑이는 옛날부터 僻邪의 機能을 담당하여
새해를 맞아 厄을 물리치는 의미로 龍과 함께 大門에 붙이거나 서로 주고받는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凝: 엉길 응 *潔: 깨끗할 결 *僻: 궁벽할 벽
*邪: 간사할 사 *厄: 액 액)
(13) 씨름[相撲]-檀園風俗圖帖(보물 527호)中 -26.9 x 22.2cm -종이에 엷은 色.
[씨름]은 檀園 風俗畵의 특징을 대표할 만한 名品으로 두 무리의 구경꾼들을
畵面上下에 둥글게 배치하고 가운데 공간을 열어, 힘을 겨루는 두 사람의
씨름꾼을 그려 그림의 중심을 잡았다. 왼쪽에 서 있는 엿장수는 구경꾼들의
關心밖에 있으면서도 이 圓形構圖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벗어 놓은 신발은
오른쪽으로 터진 餘白을 좁히는 구실을 하고 있다. 빈틈없이 짜인 構成과
簡潔한 붓질로 풍부하게 묘사한 人物들의 표정과 열띤 座中의 분위기가
金弘道의 非凡한 才能을 잘 나타내고 있다. 人物들의 무명옷質感에 맞추어
驅使된 투박한 筆致와 둥글넓적한 얼굴, 동글동글한 눈매도 그가 즐겨 다룬
風俗人物에서 共通的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撲: 칠 박 *潔: 깨끗할 결 *驅: 몰 구)
(14) 기와 잇기 -檀園風俗圖帖(보물 527호)中 -27.0 x 22.7cm -종이에 엷은彩色
기와를 잇는 光景으로 遠近法을 적용해 多樣한 일꾼들의 모습을 쭉 둘러보기
좋게 구성했다. 밑에서 던진 기와를 맨손으로 받아내고, 흙 반죽덩이를 달아
올리는 모습, 먹줄을 늘어뜨린 木工이 한 눈을 감고 기둥의 쏠림을 點檢하고,
木手가 대패질하는 모습 등을 實感나게 그렸다.
(15) 書堂 -檀園風俗圖帖(보물 527호)중 -26.9 x 22.2cm –종이에 엷은 채색
쪼그리고 돌아앉아 훌쩍이는 學童을 畵面의 焦點에 두고, 그 주위에 方巾을
쓰고 儒生옷차림의 훈장을 軸으로 學童들을 둥글게 배치했다. 畵面構成이나
省略된 背景, 옷주름의 筆致, 얼굴모습 등 모두가 現場感넘치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서러움이 완연한 學童의 표정도 재미있지만, 주변인물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에도 情感이 넘쳐나,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微笑를 머금게
한다. (*焦: 탈 조 *巾: 수건 건 *微: 작을 미 *笑: 웃음 소)
(16) 협접도[蛺蝶圖] -29.0 x 74.0cm -종이에 水墨 淡彩 -1782年作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蛺: 나비 협 *蝶: 나비 접 *淡: 맑을 담)
부채면에 나비를 그린 작품으로 檀園은 翎毛(*새, 짐승을 그린 그림)나 花卉草蟲에서도 우수한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石竹, 제비꽃, 나비와 같은 花卉草蟲에서도 實物을 방불케 하는 뛰어난 技倆을 볼 수 있다.
畵面의 右側下端에 흰 꽃을 배치하고, 좌측에 다양한 종류의 나비를 그려 簡潔한 構成을 보이고 있다. 그 사이
餘白에는 石草와 姜世晃의 評과 또 다른 인물의 篆書題跋을 기록해, 그림의 韻致를 더해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壬寅秋士能寫’의 干紀와 款識가 있어 檀園이 38세에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翎: 깃 영 *卉: 풀 훼 *倆: 재주 량
*篆: 전자 전 *跋: 밟을 발 *干: 방패 간 *款: 항목 관 *識: 적을 지)
(17) [始興還御行列圖] -156.5 x 65.4cm –비단에 채색 -華城行幸圖屛 중 제7폭
-三星美術館 러움 所藏
6,000여명의 인원과 1,400여필의 말이 동원된 盛大했던 行列을 그린 장면이다.
漢陽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始興行宮을 멀리 바라보면서 그 남쪽의 安養橋앞에서
行列을 잠시 멈추고 正祖가 惠慶宮 洪氏에게 米飮과 茶盤을 올리는 장면을 그렸다.
旗手隊앞의 길이 급격하게 꺾인 부분에는 임금의 行次를 알리는 거대한 龍旗가
펄럭이고, 그 앞에 지금은 비어 있는 正祖의 正駕轎가 있다. (*駕: 멍에 가 *轎: 가마 교)
*華城行幸圖 屛風 -보물 제1430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正祖가 父親 思悼世子의 回甲을 맞아, 正祖 19년(1795) 潤 2월 9일부터 8일간
母親 惠慶宮 洪氏를 모시고 思悼世子의 墓所인 華城의 顯隆園을 行幸했을 때 거행한
주요행사를 그린 8첩 병풍이다. 각 폭의 내용은 華城聖廟展拜圖, 洛南軒放榜圖,
奉壽堂進饌圖, 洛南軒養老圖, 西將臺夜操圖, 得中亭御射圖, 還御行列圖,
漢江舟橋還御圖 등으로 구성되었다. (*悼: 슬퍼할 도 *顯: 나타날 현 *榜: 방 붙일 방
*饌: 반찬 찬 *操: 잡을 조 *還: 돌아올 환)
(18) [奎章閣圖] -144.4 x 115.6cm -종이에 채색 -1776년작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奎章閣은 昌德宮에서 景觀이 가장 아름다운 暎花堂 옆에 2층 樓閣으로
건축했으며, 1층은 奎章閣, 2층 樓閣은 宙合樓였다. <奎章閣圖>는 규장각이
그림의 主題였던 만큼, 畵面의 중앙에 규장각을 실제보다 크게 강조해 그렸으며,
四方에 부속건물과 주변 경치를 에워싸듯 묘사했다. <奎章閣圖>는 金弘道가
32세에 그린 그림으로, 初期의 본격적인 山水畵風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正祖때 學術과 政治의 中樞機關이었던 奎章閣을 單獨으로 그린 그림으로 奎章閣의
位相을 가늠하는데 참고가 된다. 繪畵的으로는 金弘道의 다양한 畵風中에서
山水畵風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그 多樣性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正祖 때
記錄文化의 發展相을 파악할 수 있다. (*暎: 비칠 영 *樞: 지도리 추 *繪: 그림 회
(19) [玉荀峯]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보물 제782호)]중 -26.7×31.6㎝ -종이에 水墨淡彩 -1796년 -삼성미술관 리움 所藏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의 첫 번째 그림으로 丹陽八景의 하나인 玉荀峯을 그린 것이다. 나란히 선 玉荀峯의 최고봉을
가운데 두고, 점차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내려오도록 배치했으며, 제일 높은 봉우리를 짙은 線描로 强調해 主題를
浮刻시켰다. 반면에 巖峰아래와 遠景은 中淡墨의 ‘번지기’를 사용하고 餘白도 적극 살려 主題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空間感을 살렸다. (*荀: 풀 이름 순 *描: 그릴 묘 *淡: 맑을 담)
金弘道가 延風縣監時節 隣近의 丹陽일대를 유람하고 그린 것으로 보인다. 강물에 떠 있는 작은 배에 앉아 있는
두 선비의 모습이 여유롭고, 그림의 왼쪽에 ‘丙辰春寫檀園’이라고 썼다.
*번지기: 美術技法의 하나로, 종이의 한쪽面에 붓으로 물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그 위에 물감을 칠하거나 떨어뜨릴 때
번져 나가는 효과.
(20) 釣魚山水圖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보물 제782호)] 중 -26.7×31.6㎝ -종이에 水墨淡彩 -1796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큰 절벽아래 개울가에서 한가롭게 낚시하는 두 사람을 그렸는데. 畵面 오른쪽 위는 절벽, 왼쪽아래는 시내와
아슴푸레한 遠景으로 처리했다. 절벽아래 물가부분에 집중적으로 皴法을 써 安定感을 주었으며 그 위의 넓은 面을
빠르고 물기 많은 線描와 바람을 爲主로 간결하게 처리했다. 낚싯대를 드리운 두 사람은 右下구석에 앉아 있으나
對角線上으로 배치된 나무들이 延長線上에 있어 눈에 잘 띈다. (*釣: 낚을 조 *皴: 틀 준)
*皴法: 東洋畵에서, 山岳∙巖石따위의 立體感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技法.
(21) [騎牛渡江圖]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보물 제782호)]중 -26.7×31.6㎝ -종이에 水墨淡彩 -1796년 -삼성미술관 리움 所藏
넓은 개울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마주 보이는 건너마을에 이들의 집이 있는 모양이다. 소 잔등을 탄
두 사람에게는 송아지가 딸려 있고, 다리를 건너는 인물들은 지게를 진 두 사람과 갓을 쓴 사람이다. (*騎: 말 탈 기)
(22) 秋林雙雉圖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보물 제782호)] 중 -26.7×31.6㎝ -종이에 水墨淡彩 -1796년 -삼성미술관 리움 所藏
深山幽谷의 어느 點景에 꿩 한 쌍이 위아래에서 對角의 자세로 마주보고 있는데 背景의 山水는 꿩의 布置와 相反되게
對角線方向으로 흐르고 있다. 여기에 左右의 나무들이 對角線構圖의 강한 對比를 누그러뜨리면서 자연스러운 멋을
돋궈 주고 있다. 특히 淡墨으로 처리한 은은한 背景山水에 樹木과 꿩의 표현이 예리한 濃墨으로 點綴되어 主題를
부각시키면서 背景은 毅然하면서도 柔軟한 분위기를 자내고 있다. (*雉: 꿩 치 *淡: 맑을 담 *濃: 짙을 농 *毅: 굳셀 의
*柔: 부드러울 유)
(23) 蟹圖 -30.9 x 41.2cm -종이에 水墨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그림의 크기나 중앙의 접힌 자국으로 보아 畵帖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水草를 배경으로 한 쌍의 게[蟹]만
나타낸 것으로 ‘爲柳老贐行饌需寫贈’ 墨書가 있다. 水墨만으로 그린 게 그림은 갈대와 게를 함께 나타낸 그림이
일반적인데, 갈대가 아닌 일반 물풀[水草]에다가 송사리 등 작은 물고기를 함께 그린 작품들도 있다.
(*蟹: 게 해 *贐: 전별할 신 *饌: 반찬 찬)
*贐行(신행):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詩文이나 물건.
(24) [荷花蜻蜓圖] -30.9 x 41.2cm -종이에 淡彩 -澗松美術館 所藏
[하화청정도]는 붉은색의 연꽃과 싱그러운 푸른 연 잎 등 設彩와 섬세한 描寫技法의 뛰어난 작품으로 畵面 아래의
일정한 범위에 淡靑을 옅게 입혀 水面雰圍氣만 暗示的으로 나타냈다. 畵面 왼쪽위에 짝짓기하고 있는 붉고 푸른
잠자리를 나타내 滿發한 연꽃과 더불어 視線을 兩分하고 있다. (*蜻: 잠자리 청 *蜓: 잠자리 정 *雰: 눈 날릴 분)
*設彩: 바탕을 먹으로 먼저 그린 다음 色彩를 올림.
(25) 金弘道展示館밖에 있는 [傳統茶 體驗場]의 8폭 屛風
傳統茶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金弘道 展示館 外部
(26) 幽靈으로 扮裝한 사람 (*扮: 꾸밀 분)
(27) 花郞遊園地 [檀園閣]
梵鐘을 奉安한 檀園閣에서는 每年 새해맞이打鐘行事가 열린다고 한다.
(28) 花郞遊園地 八角亭
(29) 花郞遊園地 野外公演場
(30) 奇妙한 모양의 太陽電池 外燈
(31) 花郞遊園地 金弘道 祝祭 行事場
(32) 花井川을 건너는 花井橋
花井川은 檀園區 花井洞 麻山에서 發源하여 仙府洞·草芝洞을 거쳐 始華湖로 흘러 드는 32.59㎞의 河川으로
花井洞의 꽃우물에서 유래된 地名이다.
(33) 古棧驛으로 가는 陸橋步行路에서 본 花井川 上流쪽 모습. (*棧: 사다리 잔)
*古棧驛
고잔역은 1937년 8월 水仁線의 狹軌列車가 오가는 簡易驛으로 처음 營業을 시작했다. 1968년 驛舍를 新築했으나,
사람 대신 갯벌만 가득한 시골의 簡易驛이었기 때문에 1983년 乙種乘車券代賣所로 格下되었다. 이후 1992년
약 699.5㎡규모의 현재 驛舍가 신축되고 안산선이 開通, 普通驛으로 昇格했으며, 1994년 서울 地下鐵 4호선,
果川線 直結列車가 運行되면서 크게 成長했다. 1994년 9월 처음 古棧驛의 문을 열었던 水仁線은 폐지되었으니
16년만에 水仁線·盆唐線이 開通되면서 다시 繁昌하게 되었다.
- 끝 -
첫댓글 고산이 안산사는 나보다 안산을 잘 아시네 덕분에 잘 보고갑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