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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대백두에 바친다☆]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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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로지르고 분단의 벽을 깨트리는 겨레시의 천둥소리!
남녘의 시인으로는 처음 중국 땅을 밟고 백두산 천지를 근참하고, 장엄한 겨레의 혼불을 노래하고 북녘땅을 밟고 올라 천지에서 일출을 보고, 금강산 가는 첫 배를 타고, 금강산 육로 첫 차를 타고, 독도 탐방을 했다. 축시, 신년시, 조시 등 글쓰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근배의 시의 혼불은 끝없이 타올랐다.
그가 쓴 1백여 편의 기념시에서 정선한 53편의 절창의 시편들.
[◎대백두에 바친다◎]
이근배 기념시집 / 시인생각(2019.12.10)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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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두大白頭에 바친다
1.
외치노라
하늘이란 하늘이 모두 모여들고
햇빛이 죽을힘을 다해 밝은 거울로 비춰주는
이 대백두의 묏부리에 올라
비로소 배달겨레의 모습을 보게 되었노라
내 청맹과니로 살아왔거니
나를 낳은 내 나라의 산자락 하나
물줄기 하나 읽을 줄 몰랐더니
백두의 큰 품 안에 들고서야
목청을 열어 울게 되었노라
보라
바람과 구름을 멀리 보내고
눈과 비 뿌린 흔적 하나 없이
홀로 우뚝 솟고 홀로 넉넉하며 홀로 빛을 모으는
백두의 얼굴, 백두의 가슴, 백두의 팔과 다리를
이 겨레를 낳고 기른 살과 뼈마디마다
나를 불태워 한 줌 흙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어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낳은
태胎에 돌아와서
자랑스러운 내 나라 만년 역사의 숨소리를 듣는다
맨 처음 땅을 덮는 불이었다가
물을 빚어 나무와 풀과 날것들에게
목숨을 준 창조의 신神백두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산을 짓고 강을 깎아
한 나라 한 겨레의 영원한 보금자리를 닦았거니
환웅 님 세우신 신시神市
단군님 일으키신 조선의 크고 밝음이
오늘토록 줄기차게 뻗어내리고 있지 않느냐
거룩하고 거룩하다
천문봉에 올라 엎드려 절하고
우러르는 천지의 모습
하늘도 눈을 뜨지 못하는
저 깊고 푸른 빛의 소용돌이
바로 이것이다
이 겨레 으뜸으로만 살아야 하는 까닭
누만대累萬代가 흘러도 나날이 새로운 빛으로만
목숨을 얻을 수 있는 까닭
오 오 불의 불, 물의 물, 빛의 빛, 힘의 힘
시간도 여기서 태어난다
그렇다 천지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나도 다만 한순간의 불티일 뿐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왔고
나라는 어디 있고 겨레는 누구인가를
아득히 꿈속처럼 뵈올 뿐
대백두 그 한없이 높고 한없이 깊은 말씀
어찌 다 이를 수 있으랴
2
내 나라는 반도가 아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옛 조선의 지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저 굽이굽이 펄펄 끓는
고구려의 말발굽 소리를 들어라
백두의 불과 물이 이르는 땅은
모두 내 나라요 내 겨레의 터전이다
겨레여
이 백두에 올라 보라
처음부터 물려받았고
마침내 다시 찾고야 말
끝 모를 땅이 저기 부르고 있다
하물며 반세기 역사, 반세기의 지도를 두고
가슴 조이고 아파할 일이 무엇인가
이 백두에 와서 보라
한 핏줄 나눈 형제끼리 싸우는 일이며
기쁨이며 슬픔, 사랑이며 미움, 분노이며 용서 따위가
얼마나 부질없고 부끄러운 일인가를
1989년 8월 15일
나는 작디작은 물고기가 되어
장백폭포를 거슬러 올라
천지의 물가에 닿는다
손을 담근다
천지가 내 안에 기어들고
내가 천지에 녹는다
엎드려 물을 마신다
내 썩은 창자의 창자 속에서 솟구치는
견딜 수 없는 힘이 나를 물속에 빠뜨린다
나는 일파만파로 천지의 물살을 가른다
어머니의 태胎 안이듯 꿈의 꿈, 사랑의 사랑 속에 노닌다
이대로 오르고 싶다
하느님의 밧줄을 잡고
불과 물이 뒤섞이는 바닥까지 내려가고 싶다
겨레여, 6천만이여
아니 6천만의 아들의 아들, 딸의 딸들이여
철철 넘치는 이 하늘샘에 오라
태평양에도 대서양에도 뿌리를 내리는
백두산 천지에 와서
영원히 사는 겨레, 영원히 하나인
겨레의 어머니 품에 안겨보라
3
일어서라
백두대간은 다시 불기둥을 세워
지구촌의 가장 드높은 봉우리임을 선언하라
압록이며 두만이며 송화며
한라며 지리며 금강이며 묘향이며
부챗살처럼 퍼진 긴 백두의 산맥을 일으켜
북을 울리라
우리에게 설움이 있었더냐
짓밟힘이 있었더냐 쓰라림이 있었더냐
아니다
더 큰 역사, 더 큰 나라 되기 위한
스스로의 담금질이었을 뿐
우리에게 종속이 있을 수 없고
분단이 있을 수 없고
더더욱 상잔相殘아 어디 있으랴
그러나 오늘 이 겨레 매인 사슬
더러는 쓰러지고 더러는 찢긴 피 흘림의 자국
이 크나큰 밝음 앞에서도
눈감고 길을 잃는 어리석음 있나니
아직 다 못 가진 내 강토가 있나니
백두대간이여
다시 한번 불을 뿜어다오
천둥소리를 들려다오
통일의 새벽을 열어다오
아아 백두산 천지
나는 부르지 못한다
온 겨레가 목놓아 부르는 합창이 아니고는
나는 노래할 수가 없다
허나 내 다시 오리라
통일이 오는 날 다시 와서
참았던 불덩이 같은 울음 터뜨리리라
겨레 함께 껴안고
더덩실 춤추며 날아오르리라
― 1989년 광복절의 날 대한민국 시인으로 처음 백두산 천지를 근참覲參하고 쓴시(1989.9.5「중앙일보」)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오래 이 땅을 지켜온 말들이
어둠에 갇혀 목청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붓을 쥔 사람들의 생각이
두꺼운 얼음장에 덮여
푸른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을 때
바리케이드와 통금시간에 걸려
내일로 가는 길이 막혀있을 때
한 시대의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 하나 첫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 나라의 가을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흔들고 있었다
산도 물도 나무도 풀도 꽃도 새도
그 소리에 눈을 뜨고 귀 기울이고 있었다
비로소 지평은 넓게 트이고
목마르던 모국어의 논밭은 샘이 솟아
새로운 경작이 시작되고 있었다
말과 글을 빼앗겼던 질곡 속에서
더욱 타올랐던 모국어의 혼불들
분단과 전쟁과 궁핍 속에서도
잠들지 않고 용암처럼 들끓더니
그 거친 숨소리, 지각을 뚫는 소리
밤을 새워 듣는 이 있어
마침내 새벽의 언어를 터뜨리는
「문학사상」은 태어난 것이다
그로부터 서른 해
어둠과 싸우며 가시울타리와 싸우며
이 땅의 문학은 줄기차게 뻗어 올라
잎과 꽃과 열매를 매달고
지상의 새들도 모두 불러들여
넘치는 수확을 거두어들였다
‘창간호’에 별이 되던 이름들
유진오, 양주동, 주요한, 박화성, 신석정, 김동리, 서정주, 박두진, 오영수, 유주현, 박남수, 강신재, 이범선……
참으로 큰 별들이 하늘 밖으로 떠났지만
그 뿌리에서 별들은 다시 떠올라
새 세기의 하늘을 수놓고 있나니
이제 어느 어둠이 와서
광활한 이 토지를 덮을 수 있으랴
끝없이 새벽을 깨워
오늘의 아침을 맞이한 「문학사상
우리 모국어의 종소리는
날로 새롭고 날로 더 멀리 울려 퍼지리라
― 2002.1.「문학사상」창간 30주년 기념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새들은 저희들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
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
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
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
내 나라의 금강산을 가는데
반세기 넘게 기다리던 사람들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
앞다투어 길을 나서는구나
참 이름도 개골산, 봉래산, 풍악산
철 따라 다른 우리 금강산
보라, 저 비로봉이 거느린 일만 이천 묏부리
우주만물의 형상이 여기서 빚고
여기서 태어났구나
깎아지른 바위는 살아서 뛰며 놀고
흐르는 물은 은구슬 옥구슬이구나
소나무, 잣나무는 왜 이리 늦었느냐 반기고
구룡폭포 천둥소리 닫힌 세월을 깨운다
그렇구나
금강산이 일러주는 길은 하나
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 길 두고
우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구나
분단도 가고 철조망도 가고
형과 아우 겨누던 총부리도 가고
손에 손에 삽과 괭이 들고
평화의 씨앗, 자유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
오순도순 잘 사는 길을 찾아왔구나
한 식구 한솥밥 끓이며 살자는데
우리가 사는 길 여기 있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이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 2005.8.12「세계평화시인대회」금강산에서 낭송
내 나라 땅을 밟고 올라 백두산 해돋이를 보다
달이 먼저 와서
어둠을 쓸고 있었다
이른 새벽 정한수 떠놓고
두 손 모두어 비는 어머니인 듯
백두산은 그 깊고 맑은 하늘못에
열여드레 달을 띄우고
예순 해 산과 물 끊긴 길
마음도 한 줄로 잇고 오르는
이 땅의 아들딸들을
품 안에 보듬어 맞이하고 있었다
날마다의 하늘
날마다의 해와 달과 별이 아니었다
오랜 밤을 모국어의 혼불로 밝혀 온
남과 북의 한 핏줄 글형제들이
비로소 내 나라 땅을 밟고 우러르는
백두산이고 천지의 새벽임에랴
날마다 트는 먼동이 아니었다
억누르며 참아왔던 겨레의 숨결이
마침내 활화산으로 터져 오르는
새롭게 태어나는 백두대간
새롭게 태어나는 역사의 해돋이였다
광복 예순 해 칠월 스무사흘 이른 다섯 시
저 짓눌린 한 세기의 어둠을 벗겨내듯
끓어 넘치는 빛의 용암을 이끌고
동녘에서부터 장엄한 일출의 서곡이
대지를 우렁차게 흔들고 있었다
서로 손잡은 글형제들은
통일의 그 날을 위해 가다듬어온
모국어의 대합창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살과 피를 닳이며 기다렸던
절정의 절정, 황홀의 황홀, 개벽의 개벽이
아침 햇살의 눈부신 불길을 타고
백두천지를 새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비로소 뵈온 나라의 얼굴
비로소 듣는 겨레의 말씀이었다
― 2005.「시경」겨울호
독도 만세
하늘의 일이었다
처음 백두대간을 빚고
해 뜨는 쪽으로 바다를 앉힐 때
날마다 태어나는 빛의 아들
두 손으로 받아 올리라고
여기 국토의 솟을대문 독도를 세운 것은
누 억년 비, 바람 이겨내고
높은 파도 잠재우며
오직 한반도의 억센 뿌리
눈 부릅뜨고 지켜왔거니
이 홀로 우뚝 솟은 봉우리에
내 나라의 혼불이 타고 있구나
독도는 섬이 아니다
단군사직의 제단이다
광개토대왕의 성벽이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대왕의 뿔이다
불을 뿜는 충무공의 거북선이다
최익현이다, 안중근이다, 윤봉길이다
아니 오천 년 역사이다
칠천만 겨레이다
누가 함부로
이 성스러운 금표禁標를 넘보겠느냐
백두대간이 젖을 물려 키운 일본열도
먹을 것, 입을 것을 일러주고
말도 글도 가르쳤더니
먼 옛날부터 들고양이처럼 기어 와서
우리 것을 빼앗고 훔치다가
끝내는 나라까지 삼키었던
그 죗값 치르기도 전에
어찌 간사한 혀를 널름거리는 것이냐
우리는 듣는다
바닷속 깊이 끓어오르는
용암의 소리를
오래 참아온 노여움이
마침내 불기둥으로 솟아오르려
몸부림치는 아우성을
오냐! 한 발짝만 더 나서라
이제 독도는 활화산이 되어
일본열도를 침몰시키리라
아예 침략자의 종말을 보여주리라
그렇다
독도는 사랑이고 평화이고 자유이다
오늘 우리 목을 놓아 독도 만세를 부르자
내 국토의 살 한 점 피 한 방울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서로 얼싸 부등켜안고
영원한 독도선언을 외치자
하늘도 땅도 바다도 목청을 여는
독도 만세를 부르자
― 2005.4.4.한국시인협회 「독도사랑 시낭송회」
한강은 솟아 오른다
아침이 열린다
긴 역사의 숲을 거슬러 올라
어둠을 가르고 강이 태어난다
이 거친 숨소리를 받으며
뛰는 맥박을 짚으며
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물살 앞에서
설움처럼 감춰온 한강의 이야기를 듣는다
강은 처음 어머니였다
살을 나누어 나라를 낳고
피를 갈라서 겨레를 낳고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
꽃과 새와 나무와 풀과 산과 들과
그리고 말씀과 노래와 곡식과 잠자리와
사랑과 자유와 믿음과……
강은 거듭나는 삶이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는 날부터
숱한 목숨들을 일구면서
한편으로 죽어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강은 끝없는 울음을 삼켰다
때로 지치고 쓰러지고
찢기고 피 흘리면서도 강은
다시 일어서서 달리고
더 큰 목숨을 부등켜안고 왔다
나라는 나라로 갈리고
형제는 형제끼리 다투면서
칼과 창과 화살의 빗발이 서고
남과 북, 동과 서에서
틈틈이 밀고 들어오는 이빨과 발톱들……
강은 홀로 지키고 홀로 싸우며
마침내는 이기고야 말았다
온갖 살아있는 것들에게 젖을 주고
품에 안고 가꾸면서도
강은 늘 버림만을 받아왔다
먹을 것을 주면 썩은 껍질을 보내오고
꽃을 주면 병든 이파리를 던져오는
시달림과 아픔과 쓰라림을 견뎌왔고
끝내는 가시철망에 한 허리가 잘리는
눈감을 수 없는 슬픔을 만나야 했다
그러나 이제 강은 다시 태어났다
생채기를 주고 마구 더럽히던
그 아들과 딸들의 손으로
맑고 환한 피가 뛰는 숨결을 살려냈다
바다로 몰려나갔던 물고기 떼가 돌아오고
제 고향으로 날아갔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뗏목이 흘러오던 그 물이랑에
오늘 한가로운 놀잇배가 두둥실 떴다
그렇다 들리느냐
정선아리랑 굽이 돌아 가슴에 젖고
한강수타령 장구춤에 흥겹구나
만선의 돛폭 올리며 징징징 울리는
그날의 뱃노래 다시 부르며
한강은 새색시 같은 어머니가 되어
푸른 치마폭 넘실 감싸준다
흘러가라
역사에 얼룩진 땟자국이여
나라의 어지러운 비바람이여
겨레의 앙금진 핏물이여
그리고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만
자유의 이름으로만 평화의 이름으로만
통일을 싣고 오라
깃발 드높이 통일을 싣고 오라
― 1986.9.10 「경향신문」새로 태어나는 한강 준공 기념식
마침내 금강산이여 못다 부른 노래
하늘이 열리는구나
땅이 열리는구나
바다가 열리는구나
아니 이 무슨 개벽
이 무슨 천지창조이길래
이 나라 겨레에 터지는 축복이 있길래
별들도 하늘을 떠나서
제 몸을 태우며 불비로 쏟아지는 것이냐
우리 7천만 한 핏줄
잠 못 들며 가슴 찢으며 기다려 온
그날임을 어찌 알았었느냐
우리는 가슴에 햇덩이를 안고
동해를 가르며 어둠을 씻으며
반백 년 닫혀있던 아침을 만나러 간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형과 누이를
아들과 딸들을 만나러 간다
눈에 밟히고 밟히던
허공에 손을 내젓고 내젓던
분명코 내 나라의 살과 뼈인
돌 하남 물 하나 나무 하나 흙 하나
펄펄 끓는 피로 보듬어 주러
우리는 금강산에 간다
뜬눈으로 날이 새더니
이윽고 어둠 저쪽에 떠오르는 빛줄기
마침내 금강산이구나
아니 내가 첫발을 내딛기 전에
금상산이 먼저 나를 껴안아 입맞춤을 하는구나
사랑이라 말 못하고 몸으로 말하는구나
터져 오르는 슬픔 두 팔로 감싸주는구나
누가 금강산을 돌이요 물이라 했더냐
저 돌이 어찌 돌이겠으며
물이 어찌 물이겠으며
나무가 어찌 나무이겠느냐
우주를 빚은 조물주가
천만년을 바쳐 이룩해낸
마지막 혼신의 불꽃
그 활활 타는 불꽃 속에 뛰어드노니
내 몸 한 줌 재라도
겨레이고 역사이고 어머니인 금강산의
이 장엄, 이 선경, 이 신비에 묻고 가려 하노니
끝끝내 못 다 부른 노래
떨어지는 물소리라도 들려다오
그렇다
만물상이 우리네 배달자손의 모습으로
서로 부등켜 얼싸안고 있나니
구룡폭포가 목청을 열어
천둥을 치며 기쁜 울음 쏟고 있나니
저기 눈 쌓인 비로봉이 흰 머리칼 휘날리며
오냐 오냐 부디 하나 되어라
이렇게 만났으면 더는 나뉘지 말아라
비는 듯 타이르고 있나니
백두대간이여 일어서자
잠시 접었던 날개 활짝 펴고
우리 지구촌 머리 위에
해보다 밝은 해로 떠오르자
기쁘면 함께 웃고 슬퍼도 함께 울며
오순도순 억만년 살아간 보금자리
금강산 만세를 부르자
5천 년 역사를 새로 쓰는
통일의 아침을 맞이하자
― 1998.11.23「문화일보」금강산행 첫 배를 타고 가서
조국의 이름으로 하늘에 새긴다
마침내 활화산이구나
이 나라의 산이란 산 모두 일어서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이 나라의 물이란 물 함께 용솟음치며
비로소 크고 하나된 나라
대-한민국을 외치는구나
오랜 역사의 비바람 속에 억눌리고
참아왔던 설움 씻어내고
오늘에사 내 조국 만세를 부르는구나
천둥처럼 울음을 우는구나
자랑스럽고 자랑스럽도다
위대하고 위대하도다
이 땅의 불사조, 태극의 영웅들‘
월드컵 코리아에서
지구촌을 번쩍 들어 올렸구나
새 역사를 활짝 열었구나
빛기둥으로 높이 솟았구나
하늘은 알았으리라
땅도 읽었으리라
기필코 오늘의 이 새벽이 올 것을
내 조국, 승리의 기쁨
붉디붉은 용암으로 솟구쳐올라
지구촌을 덮을 날이 오고야 말 것을
들었느냐
오천만 겨레 한 덩어리 붉은 마음으로
터뜨리는 저 환희의 함성을
보았느냐
금수강산을 눈부신 꽃빛깔로 물들이는
태극의 깃발, 태극의 물결을
누가 기적이라 말하는가
누가 신화라 일컫는가
아니다 아니다
이것은 태양 같은 심장
배달겨레 어둠을 넘어
벽을 무너뜨리고
눈보라를 이겨낸
오직 산악 같은 투혼의 개선이거니
에베레스트인들 못 쓰러뜨리랴
태평양인들 못 뛰어넘으랴
오라! 세계를 다투던 힘센 나라여
한 핏줄 뭉쳐 일어선 우리 앞에
이제는 모두 무릎을 꿇게 하리라
오늘의 승리는 영원한 승리로
성난 파도같이 달려나가리라
그렇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칠천만 겨레의 몸과 마음
서로 엉겨 용광로에 끓어 넘치고 있다
우리 언제 나뉘었더냐
얼굴과 얼굴 맞대고 가슴과 가슴을 열고
이대로 자손만만대 부등켜 살리라
천지를 흔드는 북소리, 징소리
통일이, 통일이 열리는구나
백두여 불을 뿜어라
한라려 솟아올라라
산과 물 모두 일어서서
이 하나 됨의 승리를 노래하라
세계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 조국 빛나는 이름
대-한민국을 합창하라
영원한 승리를 함께 기뻐하라
― 2002.6.22「한국일보」월드컵 승리의 노래
아침의 나라에 바친다
여기 굽이치는 산봉우리와 봉우리
저기 끓어오르는 물보라와 빛줄기들
이 하늘과 땅에 비로소 목숨을 얹혀주는
크고 밝은 태양이 뜨고 있다
이 나라 5천 년의 감춰진 눈물을 씻고
한민족 가슴마다에 이낀 긴 어둠을 걷고
1989년이 밝아온다
우리 모두 산으로 가자
백두나 한라나 설악이나 지리나
그 영봉에 올라 해돋이를 보자
오늘의 역사는 어제의 허물을 벗고 태어났듯이
지금 떠오르는 태양도
지난 어둠의 탯줄을 끊고 솟아나는 것
우리 목청을 열자
어머니가 물려준 젖과 피가 마르도록
내 나라의 아침을 노래 부르자
산과 산, 물과 물, 구름과 구름, 바람과 바람
꽃과 꽃, 새와 새, 나무와 나무들이 일어서서
모두 합창하게 노래부르자
어디서 눈보라가 오느냐
비바람이 몰아오는 숨소리가 들리느냐
설령 우리의 앞에 안개가 서려도
이제 저 하늘의 빛은 가릴 수 없거니
가난에 허리를 조르고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살아온
이 억세고 끈질긴 핏줄은 짓누를 수 없거니
눈 부릅뜨고 바라보는 약속된 내일이 있거니
겨레여
우리 햇빛 속에 따사롭게 손을 잡는
산이듯 물이듯 나무들이듯
이제는 한데 모여 사랑을 나누자
설움도 아픔도 떠가는 구름이듯 흘려보내고
5천만 한 덩어리로 밭 갈고 김매고 곡식을 거두자
압록강과 한강이 서로 만나고
대동강과 낙동강이 이야기하는
1989년의 시간의 꽃밭에서
우리는 자유라는 말을 쓰지않고 자유로우며
평화라는 말을 모르나 평화를 지키며
정의를 외치지 않으나 정의롭게 사는
아니 찢기고, 피 흘리고, 짓밟히고, 억울한
그런 낱말들을 까맣게 잊고 사는
새날의 꿈을 가꿔야 한다
오, 오
아침의 나라에 넘치는 빛이여
빛을 먹고 사는 한민족의 거룩함이여
마침내 통일의 날개를 치고
금빛 목청으로 우는 산하여
우리 아들딸들이 복된 보금자리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 1989.1.1. 「중앙일보」신년시
금강이 뜬다 내 나라의 해가 뜬다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불꽃보다 더 뜨겁게 징징 타는
이제는 눈물마저도 마른
내 산하의 노래가 있다
바람 소리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귀 기울여 온
내 겨레의 노래가 있다
저기 보이느냐
젖가슴을 활짝 풀어헤치고
달려들면 두 팔로 얼싸안을 듯
저기 서 있는 산이 보이느냐
오 금강이구나
그렇구나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
펄펄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는 듯
금강이 내 앞에 와 있구나
내 태어나기 전부터 들어왔던
금강산을 이제야 보겠구나
옛날 어느 나라 시인은
금강산이 보고 싶어
이 나라에 태어나기를 소원했는데
내 태어난 지 반세기 넘어서야
비로소 저 눈 코 입 귀를 보는구나
저것은 산이 아니다
저것은 흐르는 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저것은 노래다
춤이다 입맞춤이다
저 얼굴을 보라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누나의……
아니 이 나라 7천만의 얼굴
아니 자손만대의 얼굴
단군조선의 고구려의 백제의 신라의
고려의 조선왕조의……
이 나라 5천 년 역사의 얼굴 얼굴……
누가 빚어낸 솜씨더냐
하느님이던가 부처님이던가
그 누구든 산을 만들고 물을 만들고
삼라만상을 모두 빚은 뒤
마지막으로 죽을 힘을 다해
깎고 다듬고 새긴
아름다움의 순정이거니
백두대간의 용틀임을 치다가 치다가
마침내 피워 올린 꽃봉오리거니
눈부시구나
장엄하구나
황홀하구나
신비의 불꽃으로
오래 감추며 살아온
슬픔이며 아픔이며
기쁨까지도 모두 살라서
한 덩어리의 해로 뜨는구나
동해일출로 오는구나
해돋이를 보러 가자
금강을 앞세우고 백두 설악 지리 한라……
모두 색동옷 입고 나서는구나
어서 가자
7천만 하나로 띠를 이어
통일 해돋이를 보러 가자
저기 금강이 뜬다
내 나라의 해가 뜬다
― 1994.1.1.「동아일보」신년시
백두산아 금강산아 어화둥둥 한라산아
-대한민국
1
하늘이어라
해도 달도 별도
어화둥둥 어화둥둥
고운 아침 여는 하늘이어라
땅이어라
산도 물도 색동비단 수놓아 날고
더덩실 더리덩실
새날 맞아 신명나는 땅이어라
나라이어라
저리 드높은 청잣빛 하늘
기름진 땅, 샘솟는 물
나는 새, 꼬리치는 물고기도
다투어 찾아드는
가장 복되고 가장 은혜로운 터전 위에
단군성조 우뚝 세우신 나라이어라
겨레이어라
배달겨레 한 핏줄 오롯이 이어받아
한 갈래 얼, 한 갈래 말
한 갈래 글을 가꾸며 살아온
어질고 슬기로운 겨레이어라
거룩하여라
비바람 눈보라 뿌리치고
늠름하고 씩씩하게 뻗어온
반만년의 역사
영원토록 그 숨결 이어가리라
아름다워라
금을 꿰매어 머리에 이고
은을 엮어서 허리에 차고
옥을 깎아서 목에 걸고
흙을 빚어서 달을 담던
찬란한 문화
온 누리에 가득히 넘쳐나리라
2
자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라
어머니의 어머니의 나라
아들딸들의 그 아들딸들의 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
하늘 아래 이보다 더 크고
더 밝은 이름 있으랴
땅 위에 이보다 더 따뜻한
보금자리 있으랴
우러러 보라
저 장엄한 겨레의 명산 백두산
철 철 철 넘치는 하늘샘으로
뿜어내는 성스런 빛의 기둥을 보라
겨레를 낳고 나라를 낳고
역사를 낳고 산과 강을 낳고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바위와
구름과 비와 바람과 눈보라를 낳고
백두대간은 줄기줄기 가지를 뻗어왔거니
그 품 안에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날로 더 새롭구나
오 압록강이 흘러
동해를 살찌우면
두만강은 황해에 젖을 물린다
묘향산이 대동강 물굽이를 차고 나오면
금강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목청을 갈아 노래한다
북한산이 두 팔 벌려
세계가 상모 돌리던
6백 년 서울 한마당을 얼싸안으면
한강은 둥둥둥 북을 울려
지구촌 하늘 높이 띄운다
동학의 횃불 들고
금강이 황산벌을 치달리면
태백산은 낙동강을 풀어
신라 천년 화랑의 말발굽 소리를 낸다
후여 후여 지리산 영산강이
배를 저으니
태평양 거친 물살 휘어잡고
날아오르는 한라산을 보아라
3
언제 분단의 세월이 있었더냐
찢기고 피 흘린 어둠이 있었더냐
승리는 있으나 패배는 없었느니라
기쁨은 있으되 슬픔은 없었느니라
더 큰 나라 더 큰 겨레 위한
한줄기 비바람을 어찌 마다겠느냐
부르노라
영원한 조국의 이름 대한민국
7천만 겨레 하나의 가슴으로
사랑하노라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은 어머니의 나라
자유의 나라 평화의 나라
민주의 나라 평등의 나라
행복의 나라 복지의 나라
번영의 나라 문화의 나라
통일의 나라
그렇다
대한민국은 통일의 나라다
7천만 하나 되어
어화둥둥 어화둥둥 얼싸안고
통일춤을 추자꾸나
백두산아 금강산아
어화둥둥 한라산아
압록강아 두만강아 더리덩실 한강수야
새날 맞이 통일맞이
북 울리고 징을 치자
만세 만세 만만세
영원하라 대한민국
영원하라
영원하라
― 1995.10.24 KBS 광복 50주년 기념 칸타타를 위한 시 나인용 작곡, KBS홀 공연
오라 만해개벽이여
하늘의 소리 있어라
바다의 노래 있어라
이 나라 천지에 어둠 벼락 몰아칠 때
만해 부처 이 땅에 오시어
한 몸 기름불로 태워
세상의 고통 모두 쫓았어라
어리고 착한 백성들
쓰리고 아픈 가슴 달래는
천둥보다 더 우람하고
햇빛보다 더 눈부신
《님의 침묵》을 쏟아부었어라
독립만세였어라
불교유신이었어라
사랑이었어라
자유이었어라
평화이었어라
억눌린 백성들 살리기 위해
동학의 횃불 높이 들었고
나라 빼앗겼을 때
맨 먼저 짚신발로 뛰쳐나와
방방곡곡 독립의 불길 질렀어라
이 겨레의 정신 바로 세우던
부처님의 가르침 어지럽히고
백성들 번뇌에 빠져 길 못 찾을 때
눕지 않고 길어 올린
설악의 물소리로 씻고 씻은
불교유신론의 새벽을 열었어라
그렇다
누가 이 나라의 산을 모두 깨우고
물을 모두 일으켜 세웠겠느냐
만해는 만법의 바다
빛을 몰고 오시는 미륵이거니
오늘 이 백성들 어리석음을
큰 부싯돌로 깨우쳐 밝혀주고
갈리고 찢긴 이 산하
한 덩이로 껴안는 개벽을 주리라
보라 설악 영산의 한 마당
백담가락에 치솟는 이 빛기둥
만해현신萬海現身의 장엄한 불꽃을
백두대간 천阡의 산이 모두 모여
법고를 두드리고
동해 만萬의 물결이 일어서서
범종을 울리고 있다
마침내 침묵을 깨치고
하늘이 내리쬐는 푸른빛의 말씀
바다가 넘쳐오는 원광圓光의 노래 들리도다
오라 만해개벽이여
그 날의 활화산이 되어
다시 불을 뿜어다오
7천만 한 덩어리로 뭉그러져
산도 바다도 덮어버리는
한 개 바위로 살게 해다오
만만년 통일을 열어다오
― 2002.8.3「만해축전」낭송 축시
독립선언서
산들이 내려온다
만세 소리 다시 들으려
물들이 일어선다
손에 손에 기를 흔들고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산도 물도 타오른다
보라, 가는 행렬
저 흰옷의 사람들
가슴엔 해보다 큰
불덩이를 안고 있다
목숨은 하나뿐인데
나라 목숨에 올린다
그날 겨레 얼은
살아 저리 푸르른데
어둠만 홀로 있는
청맹과니들의 놀이
이 아침 눈을 뜨거라
새 하늘을 보아라
쓰라 다시 쓰라
육천만의 독립선언
온몸으로 녹아들어
한 나라로 우뚝 서라
온전한 자유며 평화
나라 함께 꽃피거라
― 1987.2.28.「중앙일보」 3․1절 기념시
모국어에 바친다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에 붙여
높아만 가는 산이 있다
깊어만 가는 강이 있다
역사와 더불어 겨레와 더불어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보듬고 살아온
우리의 얼이요, 살이요, 피인 나랏말씀
세계 수많은 언어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기롭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평화로운
으뜸의 말씀, 어머니 나라의 말씀이 있다
말씀은 노래였느니라
말씀은 사랑이었느니라
해와 달, 하늘과 바다, 산과 강, 들녘과 언덕
나무와 풀, 꽃과 새, 바람과 구름……
농사와 고기잡이, 태어남과 죽음
사람의 생각이 미치는 우주의 모든 것
낱낱이 밝혀 읊어왔느니라
겨울 가면 봄이 오고 여름가면 가을 오는
사시사철 맑은 날 흐린 날 없이
해가 뜨나 달이 뜨나
좋은 일 궂은 일 없이
먼 먼 할아버지 적부터 너나없이
그리 오래 말씀의 씨앗 노래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 갈아왔어라
시로 해가 뜨고 달이 지는 나라
하늘의 별만큼 헤아릴 수 없이
이 땅은 시인들의 낙원이더니
지난 한 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라 잃고 말씀과 글마저 빼앗길 때
우리 시의 일꾼들은 눈 부릅뜨고 일어나
모국어의 텃밭 일구어
산천 가득 시의 꽃을 피웠어라
마침내 나라 되찾아
진정한 모국어의 새날을 맞는가했더니
분단에 이어 찾아온 한 핏줄의 전쟁
그 혹독한 시련을 다시 딛고 넘어서서
비로소 들어 올린 한국시인협회의 깃발
시인공화국의 아침이 오고
모국어의 불길은 타올랐어라
하늘로 하늘로 치솟았어라
땅으로 땅으로 넘쳐났어라
이제 반세기 눈보라 멀리 보내고
오늘 우리는 눈부신 햇빛 속에서
산보다 더 높아가고
강보다 더 깊억는
모국어의 새아침을 노래한다
겨레를 넘어 영원토록
인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시의 활화산을 뿜어 올린다
― 「한국시인협회50년사」 2007.8.8
마침내 광화문이여 영원한 빛의 마당이여
― 광화문광장 개막에 붙여
1
하늘 더욱 푸르러라
백두대간 뻗어내려 우뚝 세운
삼각산도 더 높아라
천지신명이 빚은 빛의 어머니
이 겨레 낳은 아침 해의 나라에
이 나라 역사 품어 안고 키운
빛의 솟을대문 광화문이 솟아올라라
조선왕조 600년의 서울
천세 만세 넓혀갈 대한민국의 서울
빛의 기둥 빛의 샘물이 넘쳐흐르는
광화문광장이 솟아올라라
2
거룩한 역시이어라
자랑스러운 겨레이어라
비바람 눈보라 뿌리치고
지구촌 하늘 높이 우뚝 선 이름
대한민국의 서울이어라
세종대왕 오시어 나라 말씀 밝히시고
나라글자 훈민정음 지으시니
그로 더불어 우리 슬기로운 배달겨레
하늘을 훨훨 나는 용이었어라
온 누리를 뛰어넘는 사자였어라
저 임진년 왜적들이 쳐들어와
이 나라 사적 바람 앞의 등불일 때
충무공 이순신 성웅 거북선을 지어
남해바다 깊이 빠뜨려 물리치고
구구의 승전고를 드높이 울렸얼
이 겨레 길이 우러러 받드는 나라님
오늘 여기 광화문광장에 모시었으니
금빛 문화 널리 꽃피우고
장엄한 역사 날로 깊이 융성하리라
3
오라, 빛의 아들딸들이여
오늘은 빛 맞이하는 날
7천만 하나 되는
통일맞이하는 날
오라 기미년 만세 소리도 오고
광복의 태극 깃발도 오라
명주 무명 삼베 짜는
베틀 소리도 오고 다듬이소리도 오라
후여 후여 들녘에 부르는
풍년가 소리도 오고
등불 밝혀 있는 책 읽는 소리도 오라
오라, 오라, 오라
대한민국의 빛 마당
평화의 빛 자유의 빛이 솟아나는
광화문광장으로 오라
통일의 빛 가슴에 안고 오라
영원한 빛의 시간으로 오라
와서 통일 만세를 부르라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라
― 2009.8.1<개장 준공식에서 낭독>
조국에 바친다
-육군사관학교 개교 60주년의 새 아침에
새 하늘이 열린다
아침 해 고운 나라의 가장 눈부신
새 역사의 빛기둥이 솟아오른다
백두대간이 거친 숨결로 끓어오른다
너무도 가팔랐던 고난의 60년
내 조국을 심장처럼 부등켜안고
당당하게 지켜온 승리와 영광의
육군사관학교가 오색 축포를 울리며
장엄한 보루로 떠오르고 있다
보라! 백두 천지에서
묘향, 금강, 설악, 지리, 한라까지
비단결 위에 꽃수 놓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
반만년 역사의 눈보라 비바람 물리치고
이 겨레 억세게 가꿔온 보금자리
찬란하게 꽃피운 문화의 터전에
자유와 평화, 번영과 행복이
강물처럼 넘쳐흐르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
저 적화야욕의 무리들이 탱크를 앞세워
고이 잠든 내 나라의 산하를 짓밟고 밀려올 때
육사의 계급장을 겨우 가슴에 붙인
꽃다운 청년장교들이 몸을 던져 막았었고
자랑스러운 자유대한의 간성으로
베트남에서 동티모르에서 이라크에서
평화의 십자군으로 용맹을 날려 오고 있다
우리는 흩어진 세 나라를 모아
큰 한 나라를 이룬 화랑의 슬기와 용기를 이어받았고
수, 당의 백만 대군의 피로 대륙을 물들인
을지문덕, 연개소문의 승리를 배웠으며
수백 척 왜선을 노량 앞바다에 빠뜨린
이순신의 불굴의 혼을 한몸에 담았다
누가 함부로 고구려를 훔치려 들고
동해 앞바다를 기웃거리겠느냐
들어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가 낳은
1만 8천의 금 은빛 계급장들이
이 새 아침 북을 울리며 진군하는
우렁찬 개선의 함성을!
육사의 계급장은 해가 갈수로 더욱 빛난다
국방에서 외교에서 정치에서 경제에서
과학에서 문화에거
아니 지구촌의 곳곳에서 밤도 낮도 없이
하늘의 별보다 더 밝게 빛난다
보무도 당당히 세계열강과 어깨를 RUE는
우리 국군의 지휘탑, 육군사관학교
자랑스럽다
늠름하도다
새 아침의 햇살처럼 반짝이는
두 어깨의 계급장이어!
빛나는 승리의 훈장이어!
더 높이 더 멀리 타올라라
영광된 조국의 평화와 함께
― 2011.9 「육사신보」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
-백두대간 이화령 구간 복원에 붙여
눈부시구나
드높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과 물 보듬고 어흥! 등뼈를 세우며
굽이굽이 치닫는 우리의 백두대간
봄 오면 진달래, 산벚꽃 다투어 피고
뻐꾸기, 멧비둘기 우짖는 여름
가을이면 타오르는 만산홍엽
겨울엔 설화 피어 세상 밝히는
금수강산 한 허리가 빛 잔치이구나
그렇다
저 겨레의 성산 백두 천지로부터
금강, 설악, 태백, 소백, 죽령, 속리, 덕유
지리로 뻗어 내린
이 장엄한 국토의 혈맥을 타고
반만년 자랑스러운 역사를 들어 올리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
오순도순 복되고 기름진 삶을 꾸려왔거니
흙 한 줌 풀 한 포기인들 사랑으로 다독이며
만대를 우러러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늘 여기 국토의 대동맥을 잇는
이화령 고갯길은
일제의 삽날로 끊어진 지 오래
상처러 남았더니
이제 아픈 세월을 씻어내고
세계로 나아가는 더 큰 나라
인류의 멘토로 나서는 더 큰 겨레의
우렁찬 출정을 하는 백두대간의 첫걸음이다
한반도의 젖줄 한강과 낙동이
여기서 두 갈래 길을 내고
동과 서, 남과 북을 경계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요새였던
이울재 마루
이 길을 넘어 문화와 물류가 오가고
역사의 고비마다 말발굽 소리와
포성은 지축을 흔들었으리라
그러나 끊긴 국토의 혈맥이 하나 되는 오늘
반가워라, 단군께서도 오시고
주몽, 온조, 혁거세 잔을 드시니
백두, 묘향, 금강, 지리, 한라 덩실
춤을 추는구나
나라의 평화, 겨레의 자유와 복락
이화령에서 꽃으로 피어나리니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
통일의 새 아침을 향하여
우리 함께 날아오르자
새 역사의 탑을 쌓아 올리자
-일제가 끊어놓은 백두대간 ‘이화령’ 구간 복원 기념비에 새김 2012.11.15■
.♣.
=================
■ 시인의 말
나를 낳아준 산과 물, 그 풀 한 포기 흙 한 줌도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모국어의 가락임을 어찌하랴. 질기고 오랜 역사를 이끌고 어둠과 비바람을 쫓으며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을 우러르며 나는 풀벌레만큼의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다. 다만 나를 젖 물려 키우고 말과 글을 가르쳐준 이 땅에 태어난 너무도 눈부신 축복 앞에서 서툰 글자들을 써서 소지燒紙로 태울 뿐이다.
돌아보면 내게 맡겨진 한 시대는 몹시도 가파로운 고갯길이었다. 저 일제의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 분단, 전쟁…… 그리고 이어지는 갈등과 격동의 물살을 겪으면서 정작 써야 할 시 한 줄도 나는 내놓을 힘이 없었다. 그런 내가 나라 안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기념시, 축시 등의 자리를 자주 부름을 받은 까닭을 모르는 채 엎드려 한 글자씩 적어나갔을 뿐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앞에 놓고 막막해하면서 내가 아는 낱말들을 곰곰이 새기고 끝까지 쫓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더러는 선배 시인들의 분에 넘치는 덕담을 들으면서도 나는 시집에 끼워 넣지 못하고 한구석에 밀어 넣었던 것들 속에서 가려 뽑아 용기를 내어 책으로 묶는다. 이것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닌 나를 낳아준 흙과 물과 내가 살아온 시대가 흘리고 간 말을 주어 담은 것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10월
이 근 배
.♣.
=============== == = ==
◆ 표4의 글 ◆
언어와 율격과 형식이 혼윤된 절창!
대한민국에서 축하의 뜻을 담은 시, 애도의 마음을 표현한 시를 가장 많이 쓴 시인이 이근배시인일 것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분단 비극, 민족 정한의 주제가 담긴 작품으로 화려하게 등단하여 일후 60년의 세월 동안 민족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토지일관 지켜온 전형적인 우국 애족의 시인이다. 그의 시의 내면에는 경건한 전통의식과 결곡한 선비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선인들의 유물을 통해 정신의 줄기와 뿌리를 찾으려는 구도의 마음 또한 즐기차게 이어진다.
그의 시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는 웅숭깊은 서정성이다. 작품의 적재적소에 긴요한 시어를 배치하고, 가슴을 울리는 정서를 그것에 호응하는 리듬과 이미지 로 표현해 내는 시적 구성 능력은 독보적이다. 거의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시적 재능은 언어와 율격과 형식이 긴밀히 혼융된 절창을 분수처럼 뿜어낸다.
인간의 삶의 특징을 하나의 화폭으로 압축적으로 포착하는 능력, 많은 문헌을 널리 읽고 분명히 기억하는 박람강기博覽强記의 능력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는데 그는 이것을 시 창작에 활용하여 화룡점정의 묘미로 삼는다.
이러한 요인이 작용하여 그는 많은 행사시(occasional poems)를 지었는데, 그중 53편을 정선하여 백두대간에 펼치니 천지신명도 반기고 기뻐할 것이다.
― 이숭원李崇源. 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
=================
▶이근배 시인∥
∙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장학생으로 입학. 김동리, 서정주 교수의 지도로 소설과 시를 공부했다.
∙ 1961년부터 1964년 사이 경향, 서울, 조선, 동아 등 여러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시조, 동시 등이 당선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추사를 훔치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달은 해를 물고]
∙장편서사시집 [한강]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한국대표명시선 [살다가 보면]
∙기행문집 [시가 있는 국토기행] 등이 있다.
∙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가람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편운문학상, 월하문학상, 고산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심훈문학대상, 한국시인협회상, 만해대상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 서울예대, 추계예대, 재능대, 신성대 등에서 초빙, 석좌교수 등으로 시창작 강의를 했다.
∙ 월간『한국문학』발행인 겸 주간, 계간『민족과 문학』주간, 계간『문학의 문학』주간, 간행물윤리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부회장과 문학분과회장을 역임했다.
∙ 중앙대초빙교수, 2019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회장(제39대)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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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로지르고
분단의 벽을 깨뜨리는
겨레시의 천둥소리
남녘의 시인으로는 처음 중국 땅을 밟고 백두산 천지를 근참(1989.8,15)하고 장엄한 겨레의 혼불을 노래하고 북녘땅을 밟고 올라 천지에서 일출을 보고(2000,7,23) 금강산 가는 첫 배를 타고(1998,11,18) 금강산 육로 첫 차를 타고(2003,12,14) 독도 탐방을 하고(2005,4,4,) 서울올림픽, 광복50년, 2002월드컵, 평창올림픽, 책의 해,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숭례문 화재, 조선총독부 철거……,
충무공 이순신, 추사 김정희, 우당 이회영, 매천 윤봉길……, 심훈, 정지용,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박경리……, 백두대간 굽이굽이 역사의 현장 발자취 따라, 항일, 문학사의 큰 인물들……, 축시, 신년시, 조시 등 글쓰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근배의 시의 혼불은 끝없이 타올랐다. 그가 쓴 1백여 편의 기념시에서 정선한 53편의 절창의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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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달빛자락 / 명상음악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http://cafe.daum.net/musicgarden/5r73/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