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였더라? 좋아했던 배우의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고 입가에 맴돈다.
조금 전 쓰던 휴대폰을 찾아 집안 곳곳을 맴돈다.
지난 주말 친구들 모임에 참석한 이들과 먹었던 음식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나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겪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이대로 치매로 접어들까 걱정이 된다.
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필자에게 ‘기억력 감퇴’는 단골 대화 주제다.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느냐?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 이렇게 답한다.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이 중요하네. 뇌를 많이 사용하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게. 금연은 기본이네.”
운동과 뇌 건강의 상관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 뇌의 크기가 줄어든다.
이때 꾸준한 운동은 뇌의 축소를 늦춰 기억력 감퇴를 막고 치매 가능성을 줄여준다.
이는 동물 실험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유산소 운동이 기억 생성에 관여하는 뇌의 해마에 염증을 없애고,
신경세포 생성과 시냅스 가소성을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의 염증이 신경세포 퇴화를 촉진해 치매를 유도한다는 이론도 이제 정설로 자리 잡았다.
"꾸준한 운동이 치매 줄여"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간의 뇌세포는 성장기가 지나면 더 이상 신생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노화에 따라 세포 수가 줄어들고 뇌 기능이 쇠퇴한다는 것이 당시의 보편적 견해였다.
그러나 성인의 뇌에서도 신경세포가 새로 생겨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를 반복 사용하면 해당 부위에 뇌세포가 생겨나 뇌 조직의 양이 증가한다.
예컨대 베테랑 택시 기사는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보통 사람보다 크다.
또한 명연주자의 청각 피질은 일반인보다 두껍다.
악기 연주에 필요한 감각 신호를 대뇌로 전달하는 척수시상로,
동작을 미세 조절하는 운동 피질도 남다르게 발전한다.
이는 연주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심지어 저글링 연습을 7일만 열심히 해도 뇌에 변화가 일어난다.
시각 피질과 운동 피질에 신경세포 수가 증가하고, 두 피질 사이를 연결하는 백질이 강화된다.
뇌의 단면을 해부학적으로 관찰하면 회백색 부분(회백질)과 백색 부분(백질)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쪽 피질은 회백질이다. 주로 신경세포의 몸체가 모여 있다.
안쪽 피질은 두 가지 색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분포한다.
백질은 수초(myelin)로 감싸진 액손(axon)들이 다발을 형성한 곳이다.
"활발한 사회활동과 금연은 기본"
백질도 기억 형성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최근에야 밝혀졌다.
복합적 기억을 형성하려면 뇌의 여러 부위 사이에 신경 활성이 동조화되어 정보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생성된 기억 정보들은 여러 뇌 부위에 흩어져 보관된다.
특정 상황에 대한 기억을 정확히 회상하려면 각 부위에 분산돼 보관된 복합적인 정보들이
정연하게 동조화되어 호출돼야 한다. 이때 백질이 뇌 부위 간 동조화를 담당한다.
그러려면 신경 액손들의 전달 속도가 최적화돼야 하는데,
여기에 희돌기아교세포가 생산하는 ‘수초(신경섬유 주위를 둘러싼 피막)’의 역할이 중요하다.
생쥐가 미로 찾기 학습을 반복하면 해마에 희돌기아교세포 수가 늘어나고 수초 생산이 증가한다.
이 세포의 생성을 막으면 기억 형성이 저하된다. 수초의 생산은 새로운 기억 형성에 필수 요소인 것이다.
백질의 감소 또는 손상은 인지기능 저하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치매 환자는 물론 건강한 노인에게도 인지기능 저하 과정에 백질의 저하가 수반된다.
60대 이상 건강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를 보여준다.
노인들에게서는 6개월의 짧은 기간에도 노화에 따른 변화(인지 기능 및 백질 저하)가 나타났다.
반면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한 노인들은 오히려 백질이 강화되고 기억력도 증진됐다.
노화에 따른 백질의 저하를 인위적으로 막을 뿐 아니라 되돌릴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다.
동물 실험에서도 열심히 운동을 한 생쥐는 그렇지 않은 생쥐보다 학습능력이 우수하고
뇌 염증 반응이 줄어들었다. 운동하는 생쥐의 혈장을 분석해보니 여러 단백질의 양이 변화했다.
그중 혈관 내피세포에 작운동하는 생쥐의 혈장을 분석해보니 여러 단백질의 양이 변화하였다.
그중 혈관 내피세포에 작용하여 염증을 억제하는 ‘클러스트린’이 많이 생성되었다.
이 생쥐의 클러스트린을 운동 부족 생쥐에게 주사하였더니
흥미롭게도 학습능력 상승과 뇌 염증 감소가 관찰되었다.
치매 모델 생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대상 실험에서도 6개월간 꾸준히 운동하면 클러스트린 양이 증가했다.
건강검진 때 의사들이 늘 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권유가 입버릇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운동이 뇌 기능을 증진시키는 다양한 기전은 앞으로 더 밝혀질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영국 사상가 존 로크의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운동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주)에스엘바이젠 이사
2021. 12. 23.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