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주꾸미 구이 골목'
연탄불에 저무는 하루
골목에 들어서니 맵싸한 연탄불 냄새가 진동한다.
흠~ 이 골목인가?
매운 양념이 은근한 불에 타며 온 골목에 연기를 피워내는 곳.
그래서 술꾼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
특히 비라도 오면 중독이 된 듯 끌려오는 곳이 바로 '주꾸미 구이 골목'이다.
주꾸미.
낚지보다 다리가 짧고,문어보다 몸집이 작다.
그래서 육질이 낚지 보다는 질기고 문어보다는 연하다.
적당한 씹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의 맛이라 할 수 있다.
봄에 암놈이 알을 배면 머리에 쌀밥 같은 알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먹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놈이 바로 주꾸미다.
남포동 입구,옛 부산문화방송 맞은 편 골목.
부산데파트 옆 30여m의 좁은 골목에 주꾸미 골목이 들어앉았다.
골목이 마치 숨어 있듯 해서 간혹 헤매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골목을 처음 찾는 이들은 냄새를 따라 찾아오는 편이 현명하다.
늘 이 골목은 매캐한 매운 양념이 타는 연기로 자욱하니까 말이다.
남포동 주꾸미 골목.
이 골목이 형성된 건 한 4~5년? 몇 년 되지는 않았다.
원래 이 골목은 보쌈과 빈대떡으로 유명했던 골목이다.
그 시절,시내 입구의 이 골목에는 시청 공무원,상공회의소 사람들,언론사 기자 등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 곳에서 막걸리와 빈대떡 한 조각으로 하루 일상을 접었던 것이다.
한 때 두부 두루치기를 잘 하는 집이 있어 글 쓰는 사람들과 자주 들르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다 모든 관공서들이 이전을 하고 남포동 입구가 공동화 되면서,이 골목도 그 운명을 같이 했다.
한 번씩 옛 생각에 찾아가던 이 곳은 상실한 옛 고향의 정취 같은 적막만 감돌 뿐이었다.
그러던 이 골목이 연탄불에 주꾸미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주꾸미를 파는 곳은 6집.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부산 사람들의 화끈한 입맛에도 맞아 입소문이 잦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꾸미 구이'의 음식 구성이 부산 술꾼에게 안성맞춤이다.
화끈한 고추장양념의 주꾸미 구이 한 접시가 가운데 놓이고,그 옆자리에 속까지 시원해 지는 술국이 자리한다.
술국은 집마다 틀리는데,주로 진한 대구탕이나 시원한 명태국,또는 콩나물국 등으로,
술꾼의 복잡한(?) 속을 풀어주는데 특효다.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주꾸미집으로 들어간다.
벌써 많은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꾸미 한 접시를 시킨다.
곧이어 들어오는 주꾸미 구이에서 연탄불에 탄 훈증 내가 물씬 풍긴다.
요즘은 맡기 힘든 냄새가 옛 시절의 기억을 새록새록 되살린다.
벌겋게 고추장양념 범벅이 된 놈을 노란 배추 잎에 얹는다.
고추와 마늘을 쌈장에 조금 찍어 함께 입에 넣는다.
우선 매운 양념 맛과 구수한 훈증 내,풋풋한 소채의 향이 서로 어우러진다.
서로 잘 어울린다.
향을 즐기고 나자 주꾸미 본연의 씹히는 느낌이 살강살강 제법 괜찮다.
이제부터 제 철인 주꾸미는 씹히는 맛이 더욱 좋아질 것이다.
몇 점을 싸 먹고 나면 얼얼해진 입안을 시원한 술국으로 다스려 준다.
입과 속이 시원해진다.
소주 한 잔에 다시 주꾸미쌈을 한 입 먹는다.
연신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주꾸미의 매력이다.
봄이 익어가면서 점차 봄 피로가 느껴질 시기다.
하루 날 잡아 마음을 터놓는 친구와,이 골목에서 저무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연탄불에서는 매운 양념의 주꾸미가 익어가고,마주앉은 오랜 친구와는 우정의 대화가 새록새록 깊어가는 밤.
술 한 잔에 남자의 속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으며….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