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1969년 1월 19일
도쿄대학 분쟁(야스다 사건) 사건 종결
도쿄대 야스다 강당.
1969년 1월 18일 오후 5시 45분, 도쿄대학 야스다 강당에서 공방전을 벌이던 학생들이 전원 검거되면서 1년을 끌어오던 ‘도쿄대학 분쟁’ 이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631명의 학생이 검거된 사건으로 도쿄대학은 1969년도 신입생을 모집하지 못했다.
1960년의 ‘안보투쟁’ 에서 패배한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학과 니혼대학에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다시 호기를 맞기 시작했다. 당파를 초원한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에 일반 학생들도 공감하면서 학생운동은 점차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중심으로 전국 116개 대학에서 교내분쟁이 일어나 15개 대학이 이들에게 점거됐다. 특히 1968년 7월부터 1969년 1월까지 전개된 도쿄대학 야스다 강당 공방전은 ‘전공투’ 운동을 상징할 만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1968년 1월 29일 인턴제 폐지에 불만을 품은 도쿄대학의 의학부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던 중 학교 측 간부가 감금된 것이 발단이었다. 대학 측은 17명의 관련 학생을 제명했으며 사건현장에 없던 학생들까지도 제명하면서 사태는 악화됐다. 의학부 학생들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제명철회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물리력으로 학생들을 강당에서 몰아냈다.
같은 해 7월,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해 야스다 강당을 재점거 하고 ‘도쿄대학 전공투’ 를 결성했다. 자기부정과 도쿄제국대학 해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학생들이 바리케이트를 치며 장기전에 돌입하자 마침내 1969년 1월 18일, 수천 명의 경찰이 강당 진입을 시도했다. 학생들은 돌과 화염병을 들었고 경찰은 헬리콥터를 동원해 최루탄과 물 세례를 퍼부었다. 진압 작전은 이틀만에 학생측의 패배로 종결됐다.
전국 대학 분쟁의 절정을 이룬 이 공방전 이후 학생운동은 과격하게 치달았고 결국 무장투쟁노선을 추구하는 ‘적군파’ 를 탄생시켰다.
그 해, 오늘 무슨일이… 총4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