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찌트
장엄함과 광채와 빛의 날개
히브리어로 새나 천사의 날개를 가리키는 단어는 카나프(כָּנָף, kanaph)입니다.
이 단어는 또한 의복의 모서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일 때 마치 날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실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너희 대대로 너희 옷의 [네] 모서리(카나프)에 술(찌찌트, צִיצִית, tzitzit)을 만들고, 각 술에 청색 끈을 달라.” (민수기 15:38; 신명기 22:12)
이 술(tassels)은 유대 백성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계명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표징이었습니다.
성경 시대에 유대인 남자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탈리트( טַלִּית, tallit,큰 겉옷 또는 망토)를 입었는데, 모서리에 찌찌트가 달려 있어서 담요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 이후, 유대인들은 이방인 이웃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옷차림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보는 것처럼, 유대인 남자들도 바지와 셔츠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통파 유대인 남성들은 셔츠 안에 직사각형 모양의 속옷, 즉 작은 탈리트를 입는데, 그 모서리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하는 찌찌트가 달려 있습니다.
기도할 때 유대인 남성들은 찌찌트가 달린 기도 숄(탈리트)을 걸칩니다.
그러나 이 의복을 착용하는 데에는 단순히 미쯔보트(계명들)를 기억하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유대인 남성들에게 기도 숄을 몸에 두르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장엄함과 영광의 날개 아래 자신을 감싸는 것과도 같은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탈리트로 자신을 덮기 전에 찌찌트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장엄함과 영광으로 자신을 감싸신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축복의 기도를 드립니다.
시편 104편 1–2절의 말씀을 따라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위대하시며 존귀와 위엄을 입으셨나이다. 주께서는 빛을 옷처럼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펴셨나이다.”
각각의 유대인 남성이 하나님의 빛과 영광의 옷을 두를 때, 그는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막, 곧 영적이면서도 육적인 피난처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우리는 피난처를 찾습니다
기도 숄이 사람의 온몸을 덮을 때, 그것은 특별한 기도의 골방과도 같아져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오직 기도와 찬양, 경배에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머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덮개와 보호를 상기시킵니다.
기도 숄을 머리에 처음 덮을 때, 다음과 같은 축복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들이 주의 날개(카나프-(כָּנָף, kanaph)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시편 36:7–11 참조)
하나님의 피난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비천한 자든, 부유한 자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권세 있는 사람이었던 다윗 왕조차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피하여 그분을 피난처로 삼아야 함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생애에서 가장 낮고 힘든 순간 가운데 있다고 느낄 때, 그는 시편 61편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리이다.” (4절)
우리 또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마치 그분의 빛과 영광과 위엄으로 우리 자신을 감싸 안으시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따뜻하고 보호하시는 날개 아래, 마치 하나님의 성소 안에 거하는 듯이 그분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 (시편 2:12)고 말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으며 (시편 31:19), 원수로부터 “구원”을 얻는다고 증언합니다 (시편 17:7).
그들은 또한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11). 선지자 이사야는 더 나아가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선포합니다 (이사야 57:13).
이러한 축복은 모압 출신의 이방 과부 룻에게도 임했습니다. 그녀는 고향의 신들을 떠나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부유한 사람 보아스를 만났는데, 보아스는 룻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충성과 사랑, 헌신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기 2:12)
시간이 흐르면서 룻은 보아스를 찾아가, 그의 옷자락(날개)을 자신 위에 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그가 남편으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권위 아래 두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룻기 3:9–10)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관계, 곧 남편 되심을 묘사할 때 사용하신 아름다운 언어이기도 합니다:
“내가 네 곁을 지나며 보니 네가 사랑할 만한 때라. 내가 내 옷자락(날개)을 네 위에 덮어 네 하체를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을 세워 너를 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6:8)
보아스가 룻과 결혼했을 때, 그는 그녀와 언약을 맺어 돌보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다윗 왕의 증조부모가 되었고, 그 계보에서 결국 메시야 예슈아가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온 세상을 덮을 만큼 광대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로서 그 옷자락 아래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그분 아래로 들어갈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보호와 권위 아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날개 아래 거할 때 우리는 그의 권위 아래 들어갑니다
엘 샤다이(El Shaddai), 곧 전능하신 하나님은 크신 날개로 그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애굽기 19:4)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안전하게 옮기신 후, 시내 산으로 모으시고 그들을 그의 날개 아래 두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토라와 그들의 왕으로서의 주권 아래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고, 공급하시며, 돌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크신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온전히 순종하며 내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너희는 내 소유가 될 것이며, 온 땅이 내 것임에도 너희는 나를 위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니라.”(출애굽기 19:5–6)
하나님의 권위 아래 들어간다는 것은 곧 그의 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 곧 대사(spokesperson)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방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첫 언약과 둘째 언약)과 메시야 예슈아가 세상에 오셔서 온 인류를 가르치고 축복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권위 아래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대사이자 제사장이 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소유라.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 그의 놀라운 빛으로 인도하신 분의 찬양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9)
메시아의 치유의 날개 아래에서
타나크(Tanakh)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메시야적 예언을 발견합니다.
“의의 해가 그 날개-카나프(כָּנָף, kanaph)로 치료를 가져오리라.” (말라기 4:2)
예슈아(“구원”이라는 뜻)는 우리를 그의 치유의 날개로 완전히 감싸 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영혼을 치유하셔서 영원토록 그의 날개 아래 거하게 하십니다.
메시아로서의 그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시로, 예슈아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중 일부는 그의 옷자락(카나프(כָּנָף, kanaph)을 붙잡고 도움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는, 12년간 출혈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인파 속에서 예슈아를 열심히 찾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군중 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예슈아 옷자락(카나프)의 술 장식을 만졌고, 즉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녀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슈아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 서쪽 해안의 게네사렛(Gennesaret)이라는 마을에 이르시니, 사람들이 그 소식을 온 지역에 전하며 병든 자들을 다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구하여 예슈아의 옷자락(카나프) 끝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 하였고, 만지는 자마다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4:35–36)
군중들은 예슈아께서 육체적으로 치유해 주시는 것을 기꺼이 받았지만, 모두가 하늘 왕국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듣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슈아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것이라 말씀하신 도시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내진 자들을 돌로 치는 너희여, 내가 얼마나 자주 너희 자녀들을 모아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 하려 하였는가. 그러나 너희는 원치 아니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3:34)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은 세상의 죄를 담당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죄 제물로서의 예슈아를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
그들이 예슈아를 그들의 메시야(구원)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서 날개를 거두고 이방인에게만 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날개는 그를 찾는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영원히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메시야 예슈아로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성경, 특히 메시야적 예언을 통해서였고, 또한 꿈과 환상을 통해 성령으로 나타내시거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증거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약 35만 명의 유대인이 예슈아를 믿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슈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By Messianic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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