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명물
김지명
갓바위에 간다. 팔공산 갓바위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곧장 등산 안내소 앞으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갓바위의 실명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찾는데 갈 때마다 새롭게 단장하고 깨끗하게 잘 정비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주차장에서 갓바위까지 새롭게 만든 1,365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천천히 올라간다. 불자들이 자주 다니는 오솔길로 걷다보니 보살들은 끈임없이 줄을 잇는다. 앞서가는 보살의 그림자를 밟으며 따라걷는다. 대구의 명물인 관봉석불여래좌상 앞에서 기도하려고 이토록 어려운 삼복의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관봉까지 쉬엄쉬엄 걷는다.
아득한 갓바위를 쳐다보면서 오솔길로 발걸음 옮긴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관봉석조여래좌상 앞으로 가려고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간다. 젊었을 때는 관봉까지 단숨에 올랐건만, 일흔이라는 숫자가 보폭이나 속도를 느리게 한다. 산 능선에도 삼복의 강렬한 햇볕은 조용히 내리쬐고 있지만, 어른 바람은 보이지 않고 아기 바람이 보살의 긴 머리카락을 흔든다. 대구의 명물이라서 그런지 팔공산이 품은 갓바위는 언제 어디서 보아도 조금도 가르지 않다.
한적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오솔 길엔 잡목들의 우듬지가 하늘을 가린다. 숲속으로 걸어가면 시원하게 들려오는 미물들의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숲속의 맑은 공기는 기분을 가볍게 하지만, 거친 숨소리는 천천히 가라고 발걸음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 깔딱 고개에서 숨을 헐떡거려도 갓바위를 향하여 쉬지 않고 쉬엄쉬엄 걷는다.
관봉석조여래좌상은 신라 때 의현 스님의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하여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하나의 바위로 깎아서 사각 모자에서 발까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주 특징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갓바위라고 부르지만, 학술상의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풍수 지리학적으로 관봉석조여래좌상은 팔공산에서 양의 기운을 품고 불국사가 자리한 곳은 음의 기운을 품었다. 갓바위 부처와 불국사 석조 입불상[立佛像]에 같은 날 불공을 드리면 반드시 소원 성취한다는 설화도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석조여래좌상은 한국의 명품이기도 하고 대구의 명물이다. 삼복의 더위도 잊은 채 앞만 보고 걷다보면 뙤약볕에도 염불을 업은 목탁 소리가 신도의 마중을 나온다. 앞에서 부르는 사람도 없고 뒤에서 어서 가자고 보채는 사람도 없다. 목탁소리의 리듬에 맞추어 불경을 암송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산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청아한 목소리는 산새의 노래였다. 사람을 보고 반가워서 재재거리는 산새는 안내자가 된듯이 앞에서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닌다.
오솔길 언저리 벼랑 끝에 뿌리내린 노송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하늘을 떠받친다. 노송은 덩치가 굵어 두터운 껍질을 가졌으나 봄이면 송화를 날리고 여름이면 오솔길에 그늘을 준다. 범종의 은은한 울림은 불법을 안고 너덜겅 속속들이 숨은 미물에게도 빠뜨리지 않고 전한다.한 걸음 한걸음 묵은 번뇌 벗기려고 돌계단을 밟으며 깔딱 고개 올라간다. 한 계단 올라서서 문수보살, 두 계단 올라서서 보현보살, 계단을 오를 때마다 보살 이름 부르며 발걸음 옮긴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산사의 목탁 소리와 숲속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산새 소리가 내심금을 울린다. 산새가 폴폴거리며 마중 나올 때 오솔길 언저리에 풀 이파리 한 잎 흔들리지 않는다. 지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단숨에 올라가려고 꾸준히 걷는다. 팔공산에서 내바보이는 풍광이 발목을 잡지만, 쉬지 않고 염불하면서 거북이처럼 쉬엄쉬엄 걷는다.
힘겹게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눈 앞에 펼쳐진 경치가 발목을 잡는다. 먼 산봉우리를 내려다보면 아가씨의 젖가슴처럼 볼록 볼록하여 신기함에 감동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동하여 발걸음 멈추고 산 아래로 내려다볼 때 풍광명미에 취한다. 갓바위 뒤쪽에 자리한 선본사 산신각마당에는 지하수가 솟는다. 졸졸 흐르는 생명수에 목을 축이고 갓바위를 향하여 다시 하체에 힘을 가했다. 깔딱 고개에서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갈 때 이마에 닭똥 같은 땀방울이 얼굴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온몸에는 열기가 넘쳐 젖은 옷에서 증기가 피어오른다.
거친 숨을 몰아쉴 때 하체가 휘청거려도 인내심을 양껏 발휘하여 산마루에 올라서니 찬탄이 절로 나온다.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진기한 풍경들이 동양화를 방불케 하므로 만심환희에 젖는다. 임신과 출산은 위대한 자연의 섭리다. 안개가 산을 임신하였다가 출산하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안개가 흥분하였는지 산허리를 감싸 안고 사색에 젖었다. 안개와 산의 만남에서 얼마의 시간인지는 몰라도 에로틱한 분위기에 빠져 포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러있다. 내 곁으로 안개가 다가오더니 아무런 조건 없이 애무하고 스쳐 가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살아왔지만, 산과 안개가 몸을 섞어 하나 되는 신비로운 광경을 처음으로 체험한다. 이토록 진기한 안개의 풍광에 빠져 혼신을 잃을 정도였다.
갓바위와 노송은 수세기가 지나도 허리가 휘어지지 않는다. 산마루에 홀로선 노송이 수백 년을 지나도록 외롭게 서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번지 없는 오두막집에서 살아가는 자연인 같다. 자연은 나에게 이토록 경이로움을 보여주지만, 내가 산으로 오면 훼손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아도 몇 세기를 살아가는데 자유롭게 활동하는 나는 겨우 한 세기를 넘길지가 의아하다. 말라가는 이파리를 볼 때 가뭄이 계속되는 자연 속에서 기다림을 배우고 햇빛을 받으려고 경쟁하는 식물에서 생존의 투쟁을 체험한다.
관봉석조여래좌상 앞에서 기도 삼매경에 빠졌다. 무릎을 꿇고 앉아 갓바위 부처님의 은총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고개 숙였다. 반세기 동안 역경 속에서도 건강을 지켜왔지만, 여생에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관봉석조여래좌상 앞에서 손 모아 기도에 빠져든다. 수도승이 아니라도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갓바위 앞에 섰다. 오로지 세파에서 벗어나 온각 잡념을 털어버리고 기도에 빠져들고 싶다. 스님처럼 속세를 벗어나려고 해도 실행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버리지 못하는 탐욕인지 수행이 부족한 탓인지 알 수 없다.
수목들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나도 수목처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도 갓바위처럼 휘어지거나 흔들리지 않기를 빌었다. 내 어리석은 마음을 털어버리고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니 삶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그 높은 팔공산 관봉까지 오르면서 땀 흘리며 올라간 보람 있기를 양손 모아 고개 숙였다. 갓바위를 등지고 발걸음 옮길 때 오욕을 털어버리고 숲속의 맑은 공기만 가득 채우고 싶다.
팔공산의 명물인 갓바위 부처를 뒤로하고 하산하여 하루의 여정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