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의 대표적 시인이며, ‘전적벽부’라는
명문장으로 그 명성이 높은 소동파. 그는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에 조예가 깊은
거사였다. 그가 지은 시문들을 살펴보면 깊은 정신세계가
곳곳에 깃들어 있고, 가히 개안의 안목을 갖추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현재 미디어붓다에서 개설한 미붓아카데미에서는
‘소동파·백거이의 선시 세계’ 강좌가 진행 중에 있다. 강사는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박상준
선생이다. 한문으로 쓰인 선시 감상이라고 하니까 적지 않은
분들이 지레 겁을 먹어 많은 숫자가 수강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강을 하는 불자들은 격조 높은
한시, 특히 수행의 경지를 담은 동파와 거이 거사의
심원한 정신세계를 그들의 명문을 통해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 중국 송과 당을 대표하는 대문장 소동파와 백거이의
시세계와 불교적 안목을 점검해보는 알토란같은 시간은 그야말로 ‘요즘
사는 즐거움’이다. 동파거사의 전적벽부와 거이거사의
장한가, 비파행을 함께 읽으며 그들의 높고 오묘한
정신세계를 함께 노니노라면 절로 무릎 쳐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 절창에 깃든 고준한 경계를
접하노라면, 갈구와 기복에 부나방처럼 매달리는 오늘의 한국불교
재가자들의 신행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쩌랴, 욕망을 부추기거나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친들, 우이독경인 것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일주일 쯤 지나 있었던
강좌에서 강사 박상준 선생이 돌연 백거이의 비파행 강의 대신 동파거사의 ‘극락왕생 발원문’을
화이트보드에 특유의 유려한 필체로 적었다. 이
시문은 동파거사가 그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지은 극락왕생 발원문이다.
동파거사의 발원문을 박상준 선생의 해설과 함께
읽은 후로는 세월호 참사로 망극한 일을 당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더 자주 떠올린다. 박상준 선생 역시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 특히 어린 학생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의미로 이
발원문을 가져온 것일 터였다.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바다를 향해
합장기원 중인 스님들. 사진=금강스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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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以大圓覺
(불이대원각) 充塞河沙界
(충색하사계)
我以顚倒想
(아이전도상) 出沒生死海
(출몰생사해)
云何以一念
(운하이일념) 得往生淨土
(득왕생정토)
我造無始業
(아조무시업) 本從一念生
(본종일념생)
旣從一念生
(기종일념생) 還從一念滅
(환종일념멸)
生滅滅盡處
(생멸멸진처) 卽我與佛同
(즉아여불동)
如投水海中
(여투수해중) 如風中鼓橐
(여풍중고탁)
雖有大聖智
(수유대성지) 亦不能分別
(역불능분별)
願我先父母
(원아선부모) 與一切衆生
(여일체중생)
在處爲西方
(재처위서방) 所遇皆極樂
(소우개극락)
人人無量壽
(인인무량수) 無往亦無來
(무왕역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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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대원각으로 항하사 세계를 가득 채우고
계시거늘
나는
물구나무선 전도몽상으로 생사고해에서 허둥대고
있구나
어떤 것이 단
한 생각에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도리인가
내가 무시이래로 지어온 업이
본래 한 생각으로부터 생긴
것이니
이미 한
생각에서 생겨났다면 다시
한 생각을 따라서 없앨 수도 있다네
생멸 자체가 사라져 없어진 곳에서
나와 부처님이 똑같아지는
것이니
마치 태평양에
물 한 방울 던지는 것과 같고 바람이 쌩쌩 부는 허공으로 풀무질하는 것과
같아라
비록 대성인의
지혜가 있다 해도 이
도리는 분별해서 알 수가 없다네
원하옵건대 선망 부모님과 더불어 일체 모든 중생들이
있는 그 자리가
서방정토가 되고 만나는
곳마다 극락세계 되어서
사람 사람마다 무량수아미타 부처님 되어
생사에 왕래함이 아예
없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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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참사를 보도하는 각종 매체들의 기사 멘트에서
‘실종자’가
‘희생자’로
바뀌고 ‘구조’가
‘인양’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희생된 소중한 생명들에 대해 미안함과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시신을 찾은 가족이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세상, 자식이 시신으로 발견되어 주검을 확인하는 것이
되레 다행으로 여겨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참혹한 광경이 한 때는 21세기를 선도하는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섰다며 스스로
자부했던 대한민국의 현 주소라니….
그런대도 책임자는 진솔한 사과대신 처벌방침을
최선의 대책인양 되풀이하고 있고, 책임을 져야할 각 주체들은 책임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한 점 의혹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것보다는 정부관리들 입에서 ‘관피아’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연루된 특정종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참사의 책임을
벗어나보려는 ‘부패
사슬들’의
음험한 시도도 얼핏얼핏 감지된다.
불교계는 이번 참사에 대해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명하고 있지만, 어떻게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교학적 규명이나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승가 교육의 방향을 책임지는 교수아사리들
모임에서조차 ‘기도
밖에 달리 할 방법이 없다’는
발언이 맥없이 터져 나올 뿐이다. 연기적 구조가 어떻고, 공업이 어떻고 운운하던 분들도 이번 세월호
참사에는 웬일인지 입을 닫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사회의 윤리 문제’를
거론한 것은 한국사회의 정신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종교계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으로 들리는 데도 종교계는 별 반응이 없다. 솔직히 한국불교는 이 같은 교황의 꾸짖음에 대해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출가공동체나 재가나 공히 위계가
무너지고, 질서가 와해된 지 오래다. 염치는 사라졌고 오직 이권(추구)만이
절대선인양 횡행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불교계에 한국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계도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다르지 않다.
참사를 당해 한국불교 수뇌부가 한 행동들은 어떤
것이었나. 국정최고책임자가 국민을 향해 간접적인 사과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 것, 쏟아지는 비난에 풀이 죽어 있는 지도자에게
‘변함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준 것(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희생자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가능한 요란하게 하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닐까.
정치권과 관료사회 전반에 손을 쓰기 어려울 만큼
깊이 뿌리내린 악의 고리들을 과감하게 혁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이번 참사의 기저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도 도사리고
있음을 적시하며 그 반대에 나서겠다는 천명을 하거나,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참회, 보여주기 식이 아닌 최선의 대책을 촉구하고 그
감시자로 나서겠다는 선언 등을 기대한다면, 그리고 사회가 불교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교단
안의 온갖 부패와 무원칙, 무질서, 부도덕, 범계행위에 대한 발로참회를 이번 참사를 계기로
수뇌부 스스로 결단하기를 기대한다면….
아무튼, 참사 현장에서 가설법당을 만들어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발원하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과 아픔을 같이한 지역 스님들과 불자들, 불자자원봉사자들의 숭고한 자비행과 노고마저
없었다면, 한국불교의 존재감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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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멸
자체가 사라져 없어진 곳에서/ 나와 부처님이 똑같아지는
것이니/ 마치 태평양에 물 한 방울 던지는 것과
같고/ 바람이 쌩쌩 부는 허공으로 풀무질하는 것과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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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거사의 극락왕생 발원문을 들려주는
것으로, 대참사를 당한 희생자들의 원통함을 덜어드릴 밖에
달리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원혼들이시여, 부디 생멸 자체가 사라져 없어진 곳에서 윤회의
멍에를 훌훌 털어버리소서. 살고 죽는 것이 바다에 물 한 방울 던지는
것, 풀무질로 인 한줌 공기가 광대무변의 허공에
뿌려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
첫댓글 천하의 동파거사가 그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지은 극락왕생 발원문 큰 감명을 줍니다...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