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10월이 달리기라도 하는 양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애틋한 이유는
육신의 몸이 점점 늙어가는 안타까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늙기 전에 더 즐기길 원하지만
주님의 백성은 늙어갈수록 주님의 뜻대로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은 수년 만에 야외예배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지체들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여러 가지 활동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하옵소서.
이런저런 것으로 섬기는 모든 손길들 위에 은혜를 부어주셔서
자기 자랑이 아닌, 오직 감사하는 마음만 넘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본문 주해)
1~3절 :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약하고 그 순종의 동기는 공경이어야 한다.
이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이다.
첫 계명이란 십계명 중 하나님과의 관계(1~4계명) 외에 인간 사이의 관계(5~10계명) 중 첫 계병이란 것이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한 결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3절)는 것을 약속으로 본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잘 공경한 아들 예수님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라는 말씀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다.
자녀들에게 주시는 이 말씀은 생물학적인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예수님을 공경하는 자가 바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자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 아버지의 집에서 그 말씀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넘겨주신 분임을 알고 믿는 자들이다.
이것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4절 :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새번역)
노엽게 한다는 것은 화가 나도록 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의 역할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를 어떻게 만들어 내시는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역할인 것이다.
육신의 부모는 자신의 씨를 넘겨주지만, 믿음의 아버지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씨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완성하시고 그 의를 선물로 주셨다고 전달하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란 것이다.
5~8절 : 종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서신이 기록될 당시의 종이란 노예이며, 노예란 그저 살아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시대였다.
종이 육체의 상전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하라는 것은 마치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인을 대하라고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라고 한다.
노예제도를 개혁하고 노예해방운동을 해야 마땅할 텐데 그런 말을 예수님도 바울 사도도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과 세상의 질서에도 순종하라고 하는 것이다.
노예 제도는 혁명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예나 노예의 주인이나 간에 복음으로 사람이 바뀌어짐으로 노예와 주인이 사랑하는 형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으로 살든 주인으로 살든, 남자로 살든 여자로 살든, 그가 처한 그 삶의 현장에서 정말 그리스도를 믿고 사느냐 하는 것을 보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노예라도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인이기에 현재 세상의 신분과 지위를 한탄하지 말고 오히려 육체의 상전을 그리스도께 하듯이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이 세상이 감당 못하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7:20~24)
9절 : “주인 된 이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 위협을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새번역)
노예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면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을 자유인(상전)들이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인들도 똑같이 종들에게 잘해 주고, 윽박지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종이나 상전이라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니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해 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의 묵상)
어제는 부부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말씀하는 내용이었다.
오늘 본문은 부부관계에 이어서 자식과 부모 그리고 종과 주인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인 그리스도를 알려 주신다.
@자녀와 부모의 입장에서 : 예수님처럼 아버지를 공경하신 자녀는 없으리라.
단 한 순간도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는 적이 없었던 예수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서 33년을 사시다가 요절하셨고, 그것도 가장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면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는 3절 말씀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부모는 그저 생물학적인 씨를 남겨주는 자가 아니라, 자녀에게 영원한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역할을 맡은 자들이다.
그러한 부모를 자녀가 공경한다는 것은 바로 부모가 전해주는 말씀, 곧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 전 말씀으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셨다.
부모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한 내용-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을 공경하는 것이 바로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말씀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넘겨주신 분임을 알고 믿는 자들이다.
이것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들은 육체로 사는 이 땅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나는 결혼하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더 넘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 과정에서 육신의 부모님들에게 어설프게 전도를 하였는데, 전하는 자 때문이 아니라, 놀라우신 성령님의 역사로 부모님들이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 공경도 효도도 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에 아프다.
그러나 부모님을 전도한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위로에 마음을 담아 본다.
그리고 지금 내게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과 연결하여 생각도 해 본다.
현재 내가 이 땅에서 이미 누리는 있는 영생의 삶이 바로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증거가 아닌가?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주님의 약속을 받은 자-복음을 알고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되어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하는 부모가 되었다.
책임이 크고 무겁다.
나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게 되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영향을 받고 사는 아이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대립이 첨예하다.
급한 마음에 때때로 그들을 노엽게 만들었던 지난 시간을 주님 앞에 회개한다.
주님께서 내게 알게 하신 이 복음과 생명의 삶을, 내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부모 된 자의 욕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전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한다.
@종과 상전의 입장에서 : 나는 노예는 아니었지만 직장 생활을 통해 윗사람을 섬기기도 했고, 또 누군가에게서는 윗사람의 대접을 받기도 했다.
예수님을 알기 전 그때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했던 것이 전부이고, 때때로 눈가림으로 일했던 적도 많았다.
이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가 되었다.
그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는, 분명하신 하나님이시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내가 약한 자일 때는 무엇보다 듣기 좋은 말씀이지만, 내가 강한 자의 위치에 서게 되면 꺼려지는 말씀이 된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지-나는 여전히 옛사람의 본성이 올라오는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주님의 뜻이 항상 옳은 것이다.
복음을 알게 된 자는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원하지 않아도 성령께서 그 길로 인도하시어 결국 그것을 사모하게 만드시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든지 –나 자신이 입장이 위에 있든 아래에 있든지 간에 – 나의 가장 높은 상전이신 주님 앞에 엎드린 자로 살게 하시니, 그것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별된 자로 만들어 가시는 작업인 것이다.
부부관계에 이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상전과 종의 관계를 말씀하시니 이것은 세상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이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일로 연결되니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아닐 수 없다.
이 비밀에 눈을 뜨게 하시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니 성령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묵상 기도)
주님,
부부 된 자로,
자녀 된 자와 부모 된 자로,
종 된 자와 상전 된 자로,
제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깨달음을 기뻐합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미미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만족합니다.
또한 더욱 잘 알고 잘 믿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사오니
이 소망을 아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