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펌 --수필--버스로 통근하기

[쎄꼴리앙]

연일 기름 값이 치솟아 오를 때, 버스로 출퇴근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고3인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어야

하기 때문에 미루어 왔었다.

직장이 멀리 있는 관계로 길바닥에 들어붓는 기름 값이 정말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는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기름 값이 다시 떨어지긴 했지만 딸아이가 졸업만하면(아직 졸업한건 아니지만 방학도 했거니와 곧 대학생이 되니

데려다줄 일이 없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리란 기왕의 작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대학생이 둘, 더구나 사립대학... 더더구나 딸만 둘이라 군대에 보내 휴학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 허리띠를 오

지게 졸라매야 하거니와, 결심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나답지 않은 일이라 여겨 용기를 냈다.

용기? 그렇다.

십여 년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40분정도 일찍 일어나야하고, 추운 겨울날 20여분을 족히 걸어야 한

다는 건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닝기리~ 십여 년 피웠던 담배도 독종소릴 들어가며 하루아침에 끊었는데 이까짓 걸 못해?'하면서 마음을 다잡아먹

었다.

막상 버스를 타고 다녀보니 나름대로 좋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경제적이다. 비쌀 때 35만 원 이상 들던 기름 값이 버스를 이용하면 달랑 오륙 만 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그리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생긴다.

첫날은 잔돈을 준비하여 버스를 탔지만 다음날부터는 아내가 구입해준 교통카드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전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눈여겨보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꺼내들고 대충 여기쯤이겠거니 하며 돈 통에 들이대 보았다.

현금을 넣거나 카드를 들이대거나, 여하튼 요금은 그 돈 통이 담당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들이댈 때의 전자 반응음인 삑~소리가 나질 않는다.

‘이게 어디 여불때기(’옆쪽‘의 경상도 사투리)에 갖다대야하나?’

내가 하는 꼴을 황당하게 지켜보고 있을 시선들을 의식하며 당황스럽게 돈 통의 모서리 이쪽저쪽으로 지갑을 들이대

보았지만 야속하게도 예의 그 삑~소리는 들려오질 않았다.

창피하다는 생각에 찬찬히 살피지 못하고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간절한(?)마음으로 조급하게 허둥대는 꼴을 지켜

보던 운전기사가 그제야 한마디 했다.

“요기 욜루 대세요.”

그가 가리킨 곳, 돈 통과 인근한 곳에 과연 센서에 어울리는 모양의 계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울 마눌이 내 애길 듣고 ‘넘사스럽따꼬’ 어디 가서 절대 그 얘기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산행 동영상 편집을 하느라 고작 서너 시간 수면을 취한 이튿날이었다.

그날 근무 중에 얼마나 졸았던지...

퇴근길 버스 안에서라도 좀 자면서 가고 싶은데 자리가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훑어보는데 할머니 한분이 가방을 챙기고 있다.

‘옳지, 저기다!“

흔들리는 버스에 적응이 되지 않아 뒤뚱거렸지만 내 딴엔 제법 잽싸게 그쪽으로 옮겼다.

인근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연세 든 분은 없었다.

그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할머니가 앉아있는 좌석과 그 앞좌석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하나씩  움켜잡았다. 할머니를

둘러싼 채로 확고부동한 내 영역표시를 해둔 것이다.

“자고로 사람이 눈치가 빨라야 하거들랑, 흐흐..”

그런데 다음 정류소가 되었는데도 그 할머니는 내릴 생각을 안 하신다.

헛물 킨 건가? 그렇게 실망하고 있을 즈음 할머니가 가방 속에서 목도리를 꺼내더니 목에 칭칭 감는다.

다 되어가긴 하는 구나.

그러나  다음 정류소도 그 다음 정류소도 할머니는 내리질 않으셨다.

언뜻 버스 안을 둘러보니 몇몇 좌석들은 임자가 교체되고 있고 어디에도 빈 좌석은 없다.

할머니가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이번에는 마스크를 꺼내 입을 막는다.

이젠 확실히 내리시겠지.

그러나 아아, 그날 할머니, 나보다 더 멀리 가셨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너무 피곤해서 다리가 다 휘청거린다.

그때 어릴 적,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책가방은 다 챙겨 놓았니?”

“늦을라, 그렇게 준비성이 없어서야 원...”

"그러게 내가 뭐랬어, 미리 미리 준비하랬잖아“

“혹시 모르니 우산 갖고 가라!”

그 할머니, 아무리 어머니 세대라지만 그렇게까지 미리미리 준비할 줄은 정말 몰랐다.

승용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다르게 버스를 타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낄 일이 많아진다.

말하자면 세상과 더 조우하며 산다고나 할까?

요즘 젊은이들 정말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자유분방함이 도를 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옆 사람이 있건 없건 전혀 의식하지 않고 멋대로 지껄인다.

“아이 쓰파 존나 짱나네”

욕설을 그대로 표현하기가 좀 그래서 약간 변형했는데 사실은 ‘쓰파’가 아니라 ‘18’이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까 젊은 친구 하나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어찌나 쓰파쓰파하는지... 관심있게 들어서가 

아니라 귀가 뚫려있는 사람이라면 차안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다.

“어 쓰파, 아 스파스끼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터넷 게임으로 사이버머니 적립하는 이야기 같은데, 게임이라면 완전 백치인 내가 알아듣기

에는 난해한 내용에 수시로 ‘쓰파쓰파’ ‘존나 짱’이 등장한다. 전혀 주의를 의식하지 않는 그 대담성에 혀를 내 둘렀다.

남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아, 스파, 그날 나가보이 완전 졸라 꽝이잖아.”

그런 종류의 욕설을 여학생들도 스스럼없이 해댄다.

옆에 서있는 여학생이 내 딸 은비보다도 더 어려 보였는데 가방을 짊어지고 손에는 책을 수북하게 들고 있어서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사십대가 십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그렇고... 여기 저기 둘러보았지만 서있는 학생

들의 가방을 받아 안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엔 원래 그런가 싶어 망설이다가 어린 학생이 하도 안쓰러워보여서

손을 내밀었다.

“무겁지? 받아줄까?”

그 애는 도리질을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힘들어 보이는데...“

“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더 권유하지 못하고 거기서 끝냈다.

그 애는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을까, 아니면 자기보다 어른인 내게 짐을 맡기는 게 죄송했을까, 그도 아니면 불

필요한 친절을 베푸는 나를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데..

요즘은 가방 들어 주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 세대에겐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가방을 들어주는 일이 당연한 일인데...

20여 년 동안이란 세월의 공백을 훌쩍 뛰어 넘어 어느 날 다른 시대의 문명을 접한 것처럼 요즘 낯선 일상들을 접하

고 있다.

요즘 버스를 타고 다녀보니, 현실에서 오래 유리(遊離)되어 있다가 이제야 제자리에 맞게 들어 온 느낌이이라 좀 낯설

지만,  차 시간에 맞춰 뜀박질도 하고 더 부지런해진 것 같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삶이라서 한결 더 낫다. 몰랐던 것도

더 알게 될 것 같다.

[쎄꼴리앙]

원주님들 안녕하세요? 좋은 날들 보내시구요. 원주 사람 쎄꼴리앙입니다. 대구에 있는 강원인들에게도 좋은 내용 많이 올려 주십시요. 카페 대구 강원사랑은 고향분들을 기다립니다.

[불새5]

ㅎㅎ 재밋는 글 잘 읽었습니다,,^^